소설리스트

견마지로-171화 (171/226)

171.  섬서성 서안 (2)

아룡은 객잔을 급하게 빌렸는지 지금까지의 객잔보다는 시끄럽고 좁은 골목에 방을 빌린 뒤였다. 방에는 햇볕 하나 들어오지 않았다.

당태세는 어두운 방 안에서 오른다리의 보철을 풀고 시큰한 오른 무릎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부서지는 마차에서 뛰어내리고 광풍인 나유박과 일전을 벌인 것이 아무래도 무리가 된 듯싶었다. 오랜만에 욱신거리는 통증이 다리를 타고 전해졌다.

당태세는 침상 위에 놓인 흉하게 뒤틀어진 오른다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리의 통증이 밀려왔지만 당태세의 표정은 예전보다 훨씬 누그러져 있었다.

살아있으니 통증이 있는 것이고, 혈맥이 통하니까 아픈 것 아닌가. 무엇보다 예전보다는 훨씬 나아진 다리 아니던가.

“게다가 아직도 갈 길은 멀겠지.”

당태세는 물끄러미 열린 문을 바라보며 아룡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어느 순간, 당태세는 자신이 아룡을 도중(途中)에 처리하기로 한 계획을 접은 것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당태세는 혼자 뭔가를 곱씹더니 다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아직 쓸만한 놈이야. 생각 외로 효용도 높은 놈이고.”

당태세는 마치 자신을 설득시키려는 듯 혼잣말을 계속 되뇌었다.

이미 자신의 정체를 다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알게 된 지금도 아룡은 자신을 추종하고 있었다. 아룡의 속내를 십분 신뢰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서안까지 오는 이 험한 여정에서도 자신을 따르는 것을 보면 아주 못 미더운 놈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당태세가 생사의 경계에서 오락가락하던 때, 아룡이 보여줬던 잔혹함과 비루함을 잊은 것은 아니었다.

“잊지는 말되 그것으로 발목을 잡을 필요는 없겠지.”

당태세는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을 다시 한번 복기하였다.

지금 당태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일은 오히려 표두 육해주를 구하는 일이 아닌 사형문주 유독중을 잡아 참하는 일이었다. 표두 육해주를 구하는 일은 부차적인 일임에 틀림없었다.

당태세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눈살을 찌푸렸다.

“빌어먹을.”

자기도 모르게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지금까지 자신이 천하를 종횡한 이유는 오직 복수행 하나 때문이었다. 길을 가다 만난 녹림출신 표두가 어찌 되든 솔직히 알 바 아닌 일이었다.

그 일 때문에 발목을 잡힐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이미 아룡을 표국에 보내 놓았으니 표국에 대한 사항은 소상하게 알아두는 것도 나쁠 일은 아니었다. 당태세는 한숨을 쉬고 다시 생각을 진행시켰다.

“첫째는 사형문주 유독중을 잡는 것이고, 둘째는 달아난 동성문의 잔당 황병아를 없애는 것이다. 셋째가 육표두…….”

당태세는 말을 잇다가 다시 고개를 내저었다.

“빌어먹을.”

말을 멈춘 노인은 입을 다문 채 어두운 방 한구석을 노려보았다. 좁은 골목 사이로 인기척이 들려왔다.

당태세는 재빨리 오른다리의 금속 보철을 다시 여미었다. 뒤틀린 다리가 돌아오며 날카로운 통증이 다시 다리를 움찔거리게 하였다. 통증은 사내의 눈시위를 전과 다름없이 매섭게 다듬어 주었다.

아룡이 방으로 들어와 당태세를 바라보았을 때, 당태세는 예전과 다름없는 모습으로 침상에 앉아있었다. 아룡이 침을 꿀꺽 삼키며 당태세의 옆으로 다가가자 당태세는 아룡을 보며 조용히 말했다.

“뭔가 알아낸 것이 있느냐?”

“사형표국은 성하(城下) 대로의 오른쪽 끝에 붙어있었습니다. 검은색 커다란 문 위에 사형표국이라 써있고 커다란 수레가 나가는 대문이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규모는 크지 않았습니다.”

“그래?”

“안에 들어가 보니 사람들이 꽤 북적대는데, 가운데 정방(正房)에는 표두들이 기거하는 곳 같아보였고, 앞에 제단이 있었습니다. 우방에는 서리들이 손님들을 받았고, 좌측에는 수레들과 물건들이 쌓여있는데 그곳에서 수레가 나가는 듯 보였습니다. 그런데 기묘하게 크기가 작더란 말이죠.”

아룡은 생각보다 훨씬 조리있고 자세하게 풍경을 설명했다. 이런 쪽으로는 확실히 재능이 있는 아이였다. 당태세가 조용히 되물었다.

“그게 문제가 되느냐?”

당태세의 말이 아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이상합니다. 숙부님, 저희가 타고 온 수레는 바퀴가 네 개인데다가 사람과 재물을 싣고 그 위에 천막까지 두른 커다란 마차나 다름없는 수레 아닙니까? 그런데 그런 것을 넣을 자리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힐끗 방 안을 살펴보니 대부분이 이륜거(二輪車)였습니다. 근거리를 오가는 작은 화물 수레더라 이겁니다.”

당태세가 아룡의 말을 듣고 보니 꽤나 이상한 말이었다. 아룡은 당태세가 집중해서 자신의 말을 듣는 것을 보자 더욱 열심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손님들은 대부분 표국의 앞에서 내려서 그곳에서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그걸 보면 큰 수레는 따로 부리는 장소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제 생각이 그럴 듯하지 않습니까?”

“말이 되는 이야기다. 다른 곳에 또 다른 표국의 보금자리가 있다는 말이구나. 네가 간 곳은 그저 표행의 접수만 받는 곳이라 이런 말이로다.”

“네, 그렇지요. 게다가 육표두의 행방과 표사들을 찾아보려고 이리저리 기웃대고 근처에 있는 표사들을 봤는데…종적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딱히 어디 가둘만한 장소도 없습니다. 정말 단출한 곳이었습니다. 대문만 엄청나게 크지.”

“보통 표국들은 정방(正房)의 뒷마당에 궁시(弓矢)를 연습할 수 있는 표적이나 무공을 연마할 수 있는 연무장을 두는 법이다. 그곳까지 들어가 보았느냐?”

“아니, 제가 거기까지는 못 가 봤는데….”

아룡이 머리를 긁적거리다가 슬쩍 사방을 둘러보다 당태세를 보며 소리를 낮춰 말했다.

“기묘한 것 하나는 보았습니다.”

“뭐가 기묘하냐?”

“사형문의 정방 뒤쪽으로는 큰 담이 있어 하늘도 가릴 지경이고, 그 뒤로는 번듯하니 커다란 저택이 놓여있더란 말이지요. 얼핏 보기에는 전혀 다른 집 같았는데….”

“그런데?”

“끝으로 깃발이 보였습니다.”

“뭐?”

“우리가 타고 왔던 사형표국의 수레에 모두 사(四)자 깃발이 있지 않았습니까? 제가 더 볼 것이 없어 사방을 훑어보다가 슬쩍 담 너머로 깃발들이 올라갔다 사라지는 것을 봤단 말이죠.”

“그게 사실이냐? 헛것을 본 게 아니고?”

아룡은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당태세를 슬쩍 노려보더니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제 생각에는 그곳에 큰 수레를 정리하는 곳이 있다는 겁니다. 수레에 꽂힌 깃발을 누가 들고 위로 올라가든지 창고에 넣든지 하는 것이겠죠. 그러니 깃발 여러 개가 불쑥 올라왔다가 사라진 게 아니겠습니까?”

“담 넘어 큰 저택에서 깃발을 보았다고?”

“네.”

순간, 당태세는 아룡의 말에 짧은 생각이 머릿속을 번개처럼 스쳐갔다.

개봉의 구봉문도 비슷한 구조를 띠고 있었다. 무창의 견정문은 아예 본가와 상회를 나눠놓았지만 사형문 같은 경우는 오히려 구봉문에 가까운 형상을 띠고 있는 것일지 몰랐다.

“그래. 남경의 사형표국이 엄청나게 큰 마당을 가지고 있었는데 정작 자신들의 본거지인 서안에 그런 작은 표국을 경영할 리가 만무하다.”

“그렇지요?”

“그 뒤의 장원이 본체(本體)다. 그곳이 사형문의 본거지야.”

“사형표국이 아니라 사형문입니까?”

아룡이 뭔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당태세는 말없이 뭔가를 생각하다가 이를 드러내며 히죽 웃음을 지었다. 그 웃는 모양새가 기묘하게 사람을 소름끼치게 만들었다.

아룡은 자기도 모르게 당태세를 보다가 어깨를 움츠리며 눈치를 살폈다. 당태세는 이를 드러내며 낮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아주 잘 되었다. 아주 잘 됐어. 일석이조로구나. 내 마음의 빚과 포한을 같이 청산할 기회로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무것도 아니다.”

당태세는 불쑥 몸을 일으키더니 아룡을 보며 미소를 지었는데, 그 미소는 푸근함도 아니고 멋적음에서 나온 것도 아니었다. 마치 한겨울 밤 숲속에서 꽁꽁 얼어붙은 얼굴이 굳어버리며 입 끝을 올려버린 듯한 표정이었다.

아룡은 당태세의 얼굴을 제대로 마주볼 수조차 없었다. 노인의 얼굴을 볼수록 가슴 속 깊은 곳이 오싹해지는 것 같았다.

“이건 두고 가자.”

노인은 목괴를 들어보면서 아룡에게 말하였다. 아룡은 갈수록 당태세의 하는 언행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네? 왜 지팡이를 두고 가십니까?”

“황야에서 우리를 쫓아오던 놈들. 그러니까 황병아의 사주를 받았던 놈들은 나를 안단 말이다.”

“그, 그렇지요?”

아룡이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다가 혀로 입술을 축이며 몸을 부르르 떠는데, 당태세는 슬쩍 이마를 만지더니 들고 있던 목괴를 바라보았다.

“그 놈들이 내 인상착의를 무엇으로 기억하겠느냐? 변발 친 백발 늙은이가 천하에 한둘이냐?”

아룡이 그제야 목괴를 바라보다 당태세를 바라보며 소리없이 입을 벌리며 감탄하자 당태세는 고개를 끄덕이며 목괴를 침상 위에 올려놓았다.

“절름발이가 아니면 못 알아볼 것 아닌가.”

“거…걸으실 수 있겠습니까?”

“이젠 조금 걷는 것은 지팡이 없어도 가능하다.”

당태세가 말을 마치고 뚜벅뚜벅 걸어서 객잔을 먼저 빠져나가자 입을 벌리고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아룡은 하늘을 보더니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장사의 침쟁이가 진짜 화타나 편작이었나보군.”

***

두 사람은 성하(城下)의 어두운 길을 따라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룡은 허리를 꼿꼿이 펴고 뚜벅뚜벅 기세좋게 길을 걸어가는 당태세를 바라보며 여전히 놀란 눈을 풀지 못했고, 당태세는 사방을 둘러보면서 사람들의 모양새를 살펴보는 중이었다.

아룡이 고개를 죽 빼고 당태세의 뒤를 따라오다가 작은 소리로 말을 걸었다.

“숙부님, 이 곳에서 우측으로 꺾으면 바로 사형표국이 나옵니다.”

“그렇구나.”

갑자기 당태세는 그곳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아룡이 갑자기 자리를 멈춘 당태세를 바라보며 무슨 일이냐는 듯 쳐다보았다. 당태세는 아룡을 바라보며 슬쩍 턱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무두리. 목이 칼칼하지 않으냐?”

아룡이 당태세가 가리킨 곳을 바라보자 그곳에는 주(酒)자 현액이 붙어있는 작은 주루가 하나 있었는데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것이 동네 주민들을 상대로 하는 작은 술집이었다.

아룡이 당태세를 보더니 무슨 소리냐는 듯한 표정이 되었다.

“지금 사형표국에 가야 하는데 갑자기 술이라니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너는 한 잔하고 가는 것이 나을 것 같은데 말이다.”

“네?”

당태세는 입가에 미소하나 짓지 않은 채로 아룡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번에 나와 함께 표국에 들어가거든 네가 주의를 끌어야 한다. 아무래도 전에 네가 말했던 것처럼 시비를 거는 것이 낫겠지.”

“저…저더러 시비를 걸라고요?”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이 커진 아룡이 자기도 모르게 침울 꿀꺽 삼켰다. 그 모습을 보며 당태세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창 내려가는 비용이 너무 비싸다고 해라. 사람 등쳐먹는 표국 아니냐고 서리랑 멱살 잡고 싸우란 말이다.”

“아니 제가 왜….”

“네가 시비에 걸려 표사들이 뒤숭숭할 때, 나는 뒤로 돌아 본채에 들어갈 것이니.”

당태세의 번득이는 눈동자를 바라본 아룡은 입을 벌리고 채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그저 입만 뻐끔거리며 연신 공기만 들이마시는데, 당태세의 예리한 눈빛은 여전히 아룡을 노려보고 있었다.

“네 재주 하나에 내 목숨이 걸렸다. 네가 그것을 감당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나는 네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믿는다만……네 생각은 어떠냐?”

아룡의 목울대가 다시 한번 꿈틀거렸다.

“꼭 해야 합니까요? 이번엔 필경 맞아 죽을지도 모르는데…….”

“만성의 문 앞에서 옥패를 들이밀던 때의 패기를 잊었느냐? 너는 청조의 충신, 무두리 아니냐?”

순간 멍하니 벌어져 있던 아룡의 입술이 다시 한 일자로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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