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 서안으로 (12)
당태세의 채찍을 맞은 두 마리의 말이 발로 땅을 박차고 앞으로 튀어 나갔다.
수레바퀴가 돌면서 돌과 먼지가 튀는데, 밤하늘의 별들 아래로 검은 차양이 내려온 황야의 사방에서 말발굽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비록 달과 별이 하늘을 밝히고 있지만 인마의 위치가 어디이며 얼마나 되는 군세가 그들을 따라오는지 어림잡기 힘들었다. 단지 그 자리에 등불을 켠 채로 머물다가는 좋은 목표가 될 뿐이었다.
당태세는 양 옆에 등불을 켜놓고 흔들리는 마차를 애를 쓰며 몰고 있었다. 마차의 앞자리를 잡고 채찍과 고삐를 잡은 것은 근 이십 년 만이었다.
당태세는 입이 바싹 말랐다. 살아있는 말 두 마리를 방향에 맞게 트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고, 그동안 까먹고 있던 말부림을 생각해 내느라 머릿속이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망할, 아무 생각이 안 나는구먼. 제발 좀 빨리 달려라, 멍청한 망아지들아!”
“중군(中軍)에 다섯 기, 우군에 셋, 좌군에 여섯이오!”
종리세리가 활과 화살을 잡으면서 중얼거렸다.
잠깐, 뒤에서 봤을 때 좌군이렸다. 그러면 오른쪽으로 틀어야 하나?
당태세가 고삐를 어렵사리 쥐고 좌측의 고삐를 풀며 오른쪽을 굳게 잡아당겼다.
빠르게 달려가던 마차가 크게 오른쪽으로 돌며 천천히 방향을 바꾸었다. 그때 종리세리의 목소리가 빠르게 울려 퍼졌다.
“반대요! 반대방향으로!”
“젠장!”
당태세가 바로 고삐를 틀어쥐고 반대방향의 고삐를 풀어내는데, 그 순간 휙 하는 소리와 함께 화살 한 대가 퍽 하니 당태세의 옆 나무판에 그대로 꽂혔다. 당태세와는 한 치도 떨어져 있지 않은 거리였다.
당태세는 저절로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견자놈들! 궁시는 제대로 배웠구먼!”
“우리 등불을 보고 쏘는 중입니다.”
당태세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볍게 두 필의 말에 채찍을 가했다. 수레는 덜컹대며 곧장 앞으로 나갔다. 양 쪽에 밝혀 놓은 호롱이 사정없이 양 옆으로 흔들리며 수레의 그림자를 달려가는 땅바닥에 두서없이 그려댔다.
돌멩이가 바퀴 아래에서 튀고 바람이 노인의 머리를 타고 뒤로 지나갔다.
어느새 산봉우리들과 언덕은 저 뒤로 사라지고 눈앞에 시커먼 평원이 나타나는데 시커멓게 입을 벌리고 있는 평원은 그나마 빛나는 달빛 덕에 검푸른 음영으로 천지(天地)의 경계를 나누고 있었다.
쉭 하는 소리와 함께 당태세의 귓가를 스치며 한 대의 화살이 더 날아왔다.
“종리천호!”
“기다리시오. 좌군과 우군이 중군에 합세하오.”
종리세리는 빠르게 달려가며 상하로 요동치는 수레에 정좌하고 앉은 채 활에 시위를 먹이고 있었다. 사내의 손에 들린 화살이 천천히 뒤로 당겨졌다. 당태세는 힐끗 뒤를 돌아보고는 종리세리에게 외쳤다.
“이 자리에서 쏠 수 있겠소?”
“나는 팔기입니다.”
종리세리의 목소리와 함께 종리세리의 손에서 화살이 날았다.
당태세는 종리세리의 화살이 맞았는지 맞지 않았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단지 종리세리의 침작한 목소리만이 뒤에서 들려올 뿐이었다.
“하나.”
당태세는 계속 채찍을 휘두르며 고삐를 좌우로 잡아당겨 조금씩 수레의 방향을 바꾸었다. 아무리 야밤이라지만 일직선으로 등불을 켜 놓고 달려가면 고슴도치처럼 살에 꿰일 것이었다.
“둘.”
종리세리의 목소리에 화답하듯 쉭쉭 소리를 내며 수레의 옆으로 날아드는 화살들이 창백한 달빛을 반사하며 당태세의 시야에 들어왔다. 당태세는 이를 악물고 고삐를 잡았다.
“...넷.”
어느새 종리세리의 무덤덤한 입에서 나오는 계수(計數)는 훌쩍 다섯을 뛰어넘고 있었다.
당태세는 종리세리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고삐를 죄었다 풀었다를 반복하고 있는데, 어느 순간 두 필의 말은 당태세의 지시를 그대로 따르며 수레와 말이 하나가 되어 노인이 원하는 곳으로 달리며 방향을 바꾸고 속도를 조절하고 있었다. 이제야 말과 마부가 맘이 통하고 있었다.
두 사내가 탄 수레는 끝없이 펼쳐진 어둠 속의 평원을 하염없이 달리고 있었다. 바람이 귓가를 스치고 어두운 풍경이 순식간에 뒤로 지나가는데 마치 영원한 밤의 나라에 떨어져 삶의 종당까지 수레를 몰고 끝없이 밤의 중심을 향해 달려가야 할 것만 같았다.
그때, 종리세리의 입에서 한숨 비슷한 게 새어나왔다.
“좌측에서 여섯 기가 더 나타났소.”
“망할!”
“남은 화살은 셋입니다.”
“몇이나 쓰러트렸소?”
“일곱이오.”
“화살이 떨어지면 말하시오!”
당태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또 한 발의 화살이 당태세가 앉아있는 나무좌석의 아랫둥치에 꽂혔다. 당태세는 이를 악물고 계속 말을 몰았다.
언제까지 이런 속력으로 말들이 달릴 수 있을지 당태세는 걱정이 되었다. 하늘에 찬란하게 빛나는 은한(銀漢)은 땅 아래에서 벌어지고 있는 급박한 추격전과는 관계없이 영롱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종리세리의 침착하지만 단호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아홉! 한 발은 놓쳤소이다! 화살이 떨어졌소!”
“적들은?”
“바로 코앞까지 들어왔소!”
종리세리의 말이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당태세가 목괴를 잡았다.
“교대합시다! 이젠 내 차례요!”
말을 마친 당태세가 훌쩍 마부의 자리에서 일어나 구르듯이 수레 안쪽으로 들어가고 종리세리가 번개처럼 앞으로 튀어나오며 당태세의 자리에 앉아 고삐를 잡았다.
종리세리가 앉아있던 자리에 우뚝 서 있던 당태세는 목괴를 들어 수레의 지붕을 씌웠던 천조각을 단번에 걷어 밖으로 내던졌다.
천조각이 뒤로 날아가며 사방이 뻥 뚫린 수레 위에 노인은 목괴를 바닥에 짚고 한 손을 허리에 짚은 채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추격자들을 바라보았다. 수레의 옆으로 조금씩 가까이 다가오는 마필들은 모두 합해 열 필 남짓 되었다.
흔들리는 수레위에 몸을 세운 노인은 용케 중심을 잡으며 허리를 꼿꼿이 펴고 말에 탄 사내들을 향해 소리쳤다.
“오너라! 순천문주 당태세가 여기 있다!”
노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화살 하나가 야음을 뚫고 노인의 인중을 향해 날아왔다. 당태세의 고개가 슬쩍 옆으로 젖혀지며 화살은 노인의 귓가를 스치듯 날아갔다.
두 필의 말이 전력으로 질주하며 수레 양쪽으로 붙었고, 기수의 손에 들린 시퍼런 칼이 월광을 받아 요염한 빛을 흩뿌렸다. 그 순간, 말이 그대로 수레의 옆으로 붙으며 기수의 손에 들린 칼이 허공에서 당태세를 향해 내려왔다.
당태세의 목괴도 칼과 함께 같이 움직였다.
번득이는 칼날이 목괴에 걸려 튕겨나가자 당태세는 재빠르게 손아귀에서 목괴를 돌려 목괴의 손잡이를 뻗어 그대로 기수의 머리를 강타했다. 짧은 비명과 함께 기수가 그대로 고삐를 놓치며 낙마하는데, 뒤를 따르던 두 필의 말이 빈 자리를 향해 전력으로 말을 몰고 들어왔다.
이번에는 건너편에 있던 기수가 칼날을 번득이며 당태세의 목을 향해 말 위에서 손을 뻗었다.
당태세의 목괴가 들어오는 칼날을 휘감고 칼을 쥔 손을 그대로 감아 수레의 난간에 처박았다. 두둑 소리와 함께 팔이 부러지며 사내는 비명을 지르고 말 위에서 떨어져 수레의 바퀴 밑으로 떨어졌다.
덜컹거리는 요동과 함께 수레가 위아래로 크게 흔들리며 앞으로 나아가는데, 죽은 기수의 자리를 향해 다시 두 필의 말이 전속력으로 뛰어 들어왔다.
“하나가 죽으면 둘이 덤비는가!”
전력으로 움직이는 수레는 바람을 뚫고 달리는 중이었다. 당태세는 등으로 바람을 받으며 다가오는 네 필의 마병을 무섭게 노려보는 중이었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는 모두 어두운 밤의 들판을 죽기 살기로 달리는데, 마치 오늘 밤이 인생의 마지막 밤인 듯 절박하기 그지없었다.
당태세의 수레 옆으로 달라붙은 마병이 쓱 대도를 내밀고 당태세를 위협하는 순간, 건너편에 있던 기수가 수레 옆으로 붙더니 가볍게 수레의 난간을 잡고 수레 위로 올라탔다.
혀를 내두를 정도의 마술이었다. 당태세는 자신을 위협하는 마병의 대도를 한 합에 튕겨내고 수레에 올라와 박도를 휘두르는 사내와 합을 맞추었다.
사내의 박도가 번득이며 아래로 떨어질 때 당태세는 한 발 뒤로 움직여 박도를 피하고는 목괴를 두 손으로 잡고 창을 휘두르듯 박도 사내를 뒤로 밀어붙였다.
그때, 한 명의 사내가 수레 위로 풀쩍 뛰어올라오며 안령도를 옆으로 휘둘렀다.
좁은 수레 안에 세 명의 사내가 서서 서로에게 칼날을 휘두르는데, 당태세는 가운데서 목괴를 잡고 들어오는 두 자루의 날을 연달아 막으며 자세를 잡았다.
두 명의 살수가 노인의 목과 허리를 노리고 칼을 옆으로 잡은 채 번개처럼 휘둘렀다. 그 순간, 당태세의 두 손이 양쪽으로 뻗으며 목괴가 단괴와 소도로 나뉘며 들어오는 칼을 동시에 받아냈다.
노인의 몸은 그 자리에서 선풍처럼 휘돌며 소도를 뻗어 안령도의 사내를 단숨에 베어버리고 다시 뒤에 서 있던 박도사내에게 다가가 단괴로 박도를 누르고 소도를 휘둘러 살수의 목을 그어버렸다.
돌을 밟은 수레가 위아래로 요동쳤다. 순간 목과 가슴을 부여잡고 있던 두 살수가 그대로 수레에서 떨어지며 땅바닥을 굴렀다.
종리세리의 덤덤한 목소리가 앞에서 흘러나왔다.
“몇 명 남았습니까?”
“네 명 잡았소.”
“아직 좀 남았습니다그려.”
그때였다. 당태세의 옆으로 질풍같이 한 필의 말이 다가왔다.
말 위에 탄 장대한 사내는 커다란 장창을 들고 있었는데, 손에 들고 있는 장창 외에도 안장에 긴 창 하나를 더 끼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 자가 나타나자 순간 수레의 양 옆에 붙었던 두 필의 말이 재빠르게 뒤로 빠져나갔다. 장창 기수가 수레를 향해 달려오는 순간, 당태세는 그 자가 무엇을 할 심산인지 알아차렸다. 당태세는 고개를 돌려 종리세리를 돌아보았다.
“수레가 부서지네! 조심하게!”
당태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장창사내의 손에서 떠난 장창이 수레의 바퀴살을 향해 날아갔다.
순간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나뭇살이 박살나고 수레바퀴의 나무테가 엇나가며 터져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어지간한 여염집의 나무 문짝만큼 두꺼운 크기의 수레바퀴가 사내의 창질 한 번에 휘어지고 쪼개지기 일보직전이 된 것이었다.
“수레가 부서진다!”
당태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종리세리가 고삐를 잡아챘다. 두 마리 마필이 급하게 속도를 죽이기 시작하자 당태세 역시 앞으로 달려가 종리세리의 옆으로 움직였다.
수레의 뒷바퀴가 틀어지며 옆으로 돌기 시작하고 급기야 한쪽 바퀴가 들리며 허공으로 치솟기 시작했다.
“더는 어렵소!”
당태세와 종리세리는 마치 합이라도 맞춘 듯 그대로 수레를 박차고 땅으로 몸을 날렸다.
아직 수레의 속도는 빠르기 그지없었고, 두 사람은 땅에 떨어지는 순간 그대로 몸을 다시 뒤집으며 땅바닥을 쓸듯이 두 다리를 땅에 대고 그대로 몸을 낮춰 뒤로 미끄러졌다.
자욱한 흙먼지와 함께 요란한 소리를 내며 수레가 뒤집어지는데, 어느새 마구가 박살난 두 필의 말은 서로 묶인 채 수레에서 벗어나 달아나고 있었다.
“괜찮소이까?”
종리세리가 자욱한 먼지를 헤치고 일어나 당태세를 쳐다보는데, 당태세는 오른 무릎을 잠시 움켜쥐었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허리를 폈다.
“괜찮소이다.”
박살난 수레는 마치 죽은 생물처럼 옆으로 누워 있었고, 수레의 앞에 매달았던 호롱불이 떨어져 조금씩 나무 바닥에 불이 옮겨 붙고 있었다.
수레에 붙은 불이 조금씩 번지며 사방을 점점 밝혀가는데, 수레의 뒤쪽으로 불이 만들어 내는 빛살을 받은 그림자들이 하나둘 당태세의 앞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아직 일곱기 정도 남아있는 사형문의 살수들이었다.
“저 정도면 괜찮겠소이까?”
종리세리의 말에 당태세는 고개를 끄덕이며 앞을 바라보았다.
“어렵지는 않겠지만 조심은 해야 할 것이오.”
당태세는 불붙은 수레 옆으로 천천히 나타난 장창의 기병을 바라보며 이를 드러내었다.
“게다가 저 놈은 내가 아는 놈이오.”
“누구요?”
종리세리가 몸의 먼지를 툭툭털며 자신의 허리춤에 달린 안모도를 슬쩍 어루만지자 당태세 역시 두 손에 잡고 있던 단괴와 소도를 다시 하나로 합치며 중얼거렸다.
“사형문의 빌어먹을 십대제자 중 하나지.”
당태세는 말을 타고 있는 장창수를 바라보며 이를 드러냈다.
“광풍인(光風刃) 나유박, 네 놈 맞느냐!”
말위에 타고 있던 장창수가 당태세의 목소리를 듣자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예를 표하였다.
“광풍인 나유박, 순천문주를 뵈오이다.”
수레의 이글대는 불꽃을 받은 장창수의 눈빛은 당태세와 진배없이 번득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