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 서안으로 (10)
당태세의 몸이 복도를 내달리는 순간,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시위가 놓이고 검은 화살이 공기를 찢으며 형상을 알아보지도 못할 속도로 당태세를 향해 날아왔다.
화살을 목괴로 맞받아 튕겨낼 틈이 없었다. 당태세는 그대로 몸을 낮추고 마치 네 발로 뛰어가듯 몸을 바싹 바닥에 붙이며 앞으로 내달렸다.
보철을 댄 오른 무릎 뿐 아니라 멀쩡한 왼쪽 다리도 찌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순간 머리 위로 휙 하는 소리와 함께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첫 번째 화살을 머리 위로 내보낸 당태세는 그대로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우영송을 향해 달려 나갔다.
하지만 혜광시 우영송은 당황한 기색 없이 그대로 두 번째 화살을 시위에 올리고는 당태세를 향해 번개처럼 시위를 당겼다.
그 순간 당태세의 목괴가 땅을 찍으며 달려가던 당태세의 발이 복도를 박차고 벽을 밟으며 옆으로 내달았다.
노인의 몸은 공중에서 번신(飜身)하여 천장에 붙을 정도로 허공에서 몸을 똬리틀며 내려오는데, 그 아래로 노인의 명치를 노렸던 검은 화살이 다시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빠져나갔다.
혜광시의 눈이 슬쩍 가늘어지면서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마지막 세 번째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그 때, 당태세의 오른손이 앞으로 뻗으며 들고 있던 단도가 번쩍이며 혜광시 우영송을 향해 날아들었다.
혜광시의 눈이 커지며 날아드는 단도를 활로 쳐내는 순간, 당태세의 목괴에서 빛이 번뜩였다. 당태세의 목괴에서 뽑힌 소도가 혜광시의 가슴을 노리고 날아갔다.
순간, 혜광시는 시위에 얹은 화살을 내던지고 그대로 화살을 들어 당태세의 소도와 맞부딪혔다.
묵직한 타격감이 당태세의 손을 타고 전해져왔다. 혜광시 우영송이 사용하는 활은 다름아닌 철궁이었다.
우영송은 철궁을 양 손으로 들고 마치 쌍인도처럼 휘두르며 당태세를 압박해 들어갔다. 당태세 역시 단괴와 소도를 들고 우영송의 철궁을 막으며 사각을 노렸다.
우영송이 눈을 부릅뜨고 철궁을 창처럼 뻗어 당태세의 명치를 향해 뻗자 당태세의 단괴가 철궁을 그대로 위로 젖히며 우영송의 손을 뒤틀었다.
순간 우영송은 철궁을 내던지고 등 뒤로 두 손을 돌리더니 화살을 그대로 움켜쥐고 당태세의 목을 향해 그대로 내뻗었고, 당태세의 우수에 잡힌 소도는 그대로 화살을 잡은 우영송의 팔목을 찌르며 팔꿈치로 우영송의 턱을 강타하였다.
비틀대는 우영송의 머리로 이번에는 당태세의 단괴가 날아들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그대로 벽에 머리를 처박은 우영송이 그대로 고개를 떨구며 계단을 타고 주저앉듯 아래층으로 굴러갔다.
“빌어먹을!”
당태세는 파아하고 숨을 몰아쉬며 한순간에 숨을 들이켰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이 모든 것이 한 호흡 안에 일어난 일이었다.
노인은 눈 앞에 노래지는 것을 가까스로 참으며 다리에 힘을 줄었다. 지금 주저앉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았다. 저 아래에는 지금 자신보다 더 화급한 이들이 모여 있었다.
***
“이런 견자놈들!”
육해주가 이를 악물고 들어오는 칼을 박도로 맞받아치며 사람들을 한 곳을 몰았다.
육해주는 들어오는 칼을 맞받으면서 옆에 쓰러진 채 피를 흘리고 있는 쟁자수를 바라보았다. 이가 저절로 갈리고 가슴에서 불길이 솟아올랐다.
이번 표행이 처음인 어린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낯선 역참에서 물을 뜨다가 정체도 알 수 없는 놈들에게 칼을 맞은 것이었다. 육해주는 이를 부드득 갈며 박도를 풍차처럼 휘두르며 앞에 서 있는 살수의 단도를 막았다.
제대로 배운 무예는 없더라도 칼과 칼을 부딪히며 늘어난 악과 배짱이 육해주의 칼을 매섭게 만드는 묘리였다. 살수들의 칼이 무뎌지자 육해주는 뒤를 보며 빽 하니 고함을 질렀다.
“모두 수레로 돌아가라! 수레로 모여! 승객을 보호해라!”
순간 구성진 비명과 함께 성루에서 군관 복장을 한 사내 하나가 가슴을 부여잡고 떨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그와 함께 또 다른 군관복장의 사내도 난간을 잡더니 천천히 허물어지고 있었다.
황색장포를 입은 사내는 마지 살쾡이처럼 뛰어다니며 역참의 대문 앞에 늘어선 살수들을 하나하나 요격하고 있는데 그 손놀림이 빠르고 칼질이 비정하기 그지없었다.
다름 아닌 말을 타고 표행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는 사내. 종리세리였다.
육해주는 그 모습을 보면서 다급하게 뛰었던 가슴이 진정되고 사방의 움직임을 눈으로 쫓을 수 있었다.
“쓰러진 아이들을 옮겨라! 여기 놔두고 가지 않는다!”
순간 한 명의 살수가 또 쓰러지며 종리세리가 훌쩍 무너진 담벼락을 딛고 수레를 향해 달려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육해주의 험상궂은 얼굴에 이가 드러나며 히죽 귀신같은 웃음이 드러났다.
잘하면 살아서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관세음보살님일세.”
그때 들려온 소리에 육해주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사라졌다.
다리와 귀를 통해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말발굽소리가 전해지고 있었다. 다름 아닌 언덕 위에서 수레를 향해 몰려들던 그 마필의 발굽소리였다.
“망할…모두 수레에 타라! 이곳을 떠난다!”
피를 흘리는 동료를 수레에 싣고 쟁자수들이 수레의 말을 돌리는 순간에도 육해주와 표사들은 사방에서 밀려오는 살수들과 칼을 부딪히며 싸움을 벌이는 중이었다.
말발굽소리는 점점 가깝게 들려왔다. 육해주는 이를 부드득 갈며 박도를 다시 움켜쥐었다.
아직 사방의 살수들은 몇이나 더 남아있는지 알 수가 없는데 정문마저 예장청 일행에게 막힌다면 옴짝달싹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천지신명이시여.”
인상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육해주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마차에 타고 있는 쟁자수들과 승객들도 마필의 말밥굽 소리를 들었는지 모두 하나같이 입구쪽을 쳐다보며 해쓱한 얼굴이 되어 있었다.
그 순간, 역참의 입구 앞으로 쑥하니 말머리가 들어오며 검은 옷을 입은 기수와 칼든 손이 들어왔고, 그를 보던 여인의 입에서 자기도 모르게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육해주는 이를 악문 채 다가오는 검은 기병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그때였다.
“아무것도 안 하면 천지신명이 돕기나 하겠는가!”
대갈일성은 육해주의 뒤에서 흘러나왔다.
그와 함께 검은 화살 하나가 육해주의 귀를 스치며 검은 그림자가 바람으로 변해 그대로 검은 말의 위로 빨려 들어갔다.
검은 옷을 입은 기수의 몸이 갑자기 뒤로 껑충 젖혀지더니 그대로 말 위에서 몸을 뒤집으며 땅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순간 뒤를 따르던 말들이 주춤하며 앞발을 들고 허공에 발길질을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서 말을 부리시오 육표두!”
노인은 왼손에 목괴를 짚고 오른손에 시커먼 활을 든 채로 날듯이 수레를 향해 달려와 훌쩍 수레 위로 몸을 날려 짐칸에 몸을 던졌다.
육해주는 반사적으로 채찍을 내리치며 말에게 구령을 내질렀다. 지금 절름발이 노인이 두 발로 달려와서 마차에 탔다는 사실은 육해주에게 하나도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표행의 마차들이 무사히 이 지옥도를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모두 전력으로 몰아라! 무조건 밀고 나가!”
육해주의 고함과 채찍에 말들은 일사불란하게 반응했다. 짐말들이 온 힘을 다해 마차를 끌고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당태세의 철궁이 다시 한번 튕기자 역참의 대문에 시커먼 화살이 하나 더 박혔다. 주춤하던 기병대가 다시 말들을 부리는 사이 육해주의 마차가 역참의 대문을 빠져나와 앞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를 보던 표두들도 자신들이 맡은 마차를 몰고 바퀴가 부서져라 앞만 보고 달려 나가는데, 잠시동안 혼란스러웠던 검은 말들은 다시 대오를 정비하고 달아나는 마차들을 향해 말을 달려나갔다.
그 순간, 한 마리 회색 말이 역참에서 마지막으로 튀어나오더니 검은 말들이 모여있던 대오 한 가운데로 뛰어들었다.
사내의 손에 들려있는 안모도가 번뜩이며 사내들의 종심을 뚫고 거리를 벌렸다.
차갑게 번득이는 사내의 눈초리와 콧수염은 말을 타고 수레를 쫓는 모든 이들의 시선에 또렷하게 음영을 새기는 중이었다.
“수레에 더 붙으면 참할 것이다.”
사내의 싸늘한 목소리는 혼잣말처럼 들렸으나 모든 이들의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어느새 종리세리와 회색 말은 전력을 다해 수레를 당해 달려가기 시작했고, 흑말을 탄 사내들의 수장은 이를 악물고 종리세리를 따라 수레를 향해 달려오는 중이었다.
육해주는 슬쩍 뒤를 돌아보고는 당태세에게 말을 걸었다.
“놈들이 따라오고 있소이다. 마차는 말에 비해 느리오!”
“그렇겠지.”
당태세는 슬쩍 뒤로 돌아 정좌를 한 상태에서 자신이 가져온 검은 철궁과 쇠화살을 잡고는 작은 소리로 고삐를 잡은 육해주에게 말하였다.
“약간 옆으로 수레를 빼시오, 뒤의 수레들 때문에 맨 뒤가 안 보이는구먼.”
당태세의 말에 따라 천천히 육해주가 말을 몰자 당태세가 탄 마차는 조금씩 뒤를 다르는 수레들로부터 옆으로 방향을 틀기 시작했다.
당태세는 크게 숨을 들이쉬고 시위에 화살을 얹은 뒤 천천히 시위를 뒤로 당기기 시작했다. 조금씩 철궁이 뒤로 휘면서 끽끽대는 소리가 활의 양 끝에서 울리기 시작했다.
마차가 조금 더 방향을 틀면서 앞으로 나아가자 이제 뒤를 따르는 네 대의 수레가 온전히 당태세의 눈에 들어오는데, 그 수레의 뒤쪽에는 회색말을 탄 채 수레를 따라오는 종리세리의 모습과, 종리세리의 바로 뒤로 일곱 필의 말이 한 눈에 들어왔다.
노인은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고 시위를 더 뒤로 당겼다. 부르르 떨리는 시위와 활의 진동이 고스란히 노인의 팔에 전해졌다.
노인의 눈은 종리세리의 너머, 가장 가까이 종리세리를 향해 다가와 있는 흑마의 기수를 향하고 있었다.
노인이 숨을 멈추고, 손을 시위에서 놓으며 활을 앞으로 내미는 순간, 검은 화살은 선에서 점이 되며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와 함께 종리세리를 따라오던 검은 복색의 사내가 탄 말이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지며 기수를 땅바닥에 처박았다.
그와 함께 나머지 여섯 명의 기수가 제자리에 멈추며 추격을 관두는 모습이 보였다. 당태세는 이를 악물고 지나간 흙먼지에 가려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추격자들을 보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활솜씨가 정말 형편없어졌구나.”
“어찌되었소? 맞추었소?”
육해주의 말에 당태세는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뒤에 대고 중얼대듯 말하였다.
“이제 당분간은 추격을 멈추겠지. 당분간은.”
***
수레는 저녁 놀이 질 때까지 쉬지 않고 길을 달렸다.
육해주는 수레들을 원래 행로에서 벗어나 작은 산이 첩첩이 쌓인 산의 아랫목에 놓아두었다. 그들은 불을 피지 않고 마른 건량과 물만으로 배를 채우며 서로 모여 앉아있었다.
“이틀 정도만 더 가면 서안인데….”
표두 육해주는 말을 채 잇지 못했다.
젊은 쟁자수는 산까지 오는 도중 목숨이 끊어졌고, 살수와의 대결 중 큰 상처를 입어 칼을 들지 못하는 표사가 셋이었다.
육해주는 침울한 표정이 되어 험상궂은 얼굴에 주름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그의 옆에 있던 당태세와 종리세리도 말없이 서안과 지나온 길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앞으로의 이틀이 문제인가.”
당태세의 말에 육해주가 아닌 종리세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였다.
“저들은 이제 뭉쳐서 올 것이요. 길어야 내일. 빠르면 반나절 뒤쯤에.”
“뭉쳐 온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육해주의 말에 종리세리는 슬쩍 역참쪽을 바라보더니 말을 이었다.
“맨 처음 저들은 순차적으로 들이칠 계획이었을 것이오. 맨 처음에 우리 수레를 치러 온 사내는 맨 처음에 이팔문의 안부부터 물었소. 저들은 이팔문이 죽은 것을 몰랐지. 하지만 그 뒤 역참에 우리가 도착했을 때 두 번째 기다리고 있던 살수들은 우리에게 사정을 듣지않고 그대로 들이쳐 죽이려고 하였지. 이미 그들은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있는 거요.”
“그래서 협공을 노리고 명적을 쏘아올린 겁니까?”
육해주의 말에 종리세리는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내 생각엔, 전서구는 하나하나 각 살수에게 전달이 되었을 것이고 그들은 말 그대로 순차적으로 다가왔을 거요. 하지만 이제 이팔문이 죽은 것을 알았고 역참에서 요격에 실패한 것을 알았으니.”
“한꺼번에 들이닥친다 이거렸다.”
당태세의 말에 종리세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저들은 이유가 어찌 되었든 이제 한꺼번에 몰려들 것이었다.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된다면 결국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당태세가 아니라 이 표행에 참여한 승객들과 표사들이었다.
육해주는 더욱 인상을 굳히더니 두 사람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 지금이라도 말을 몰아 조금이라도 서안 가까이 달려가는 것이 상책입니다. 우리 애들이 많이 다쳐서 더 이상 접전은 불가합니다. 노사와 대협이 같이 있더라도 이젠 어디서 쉬엄쉬엄 쉬면서 싸울 수는 없소이다.”
“그렇겠지.”
당태세는 육해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육해주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게 상책은 아닐세. 육표두.”
“그럼 다른 방법이 있습니까?”
“내가 여기 남겠네.”
“네?”
당태세의 말에 육해주가 눈을 크게 뜨자 당태세는 다짐하듯 다시 한번 육해주에게 말했다.
“내가 여기 남아서 나머지들을 상대한다. 그대는 마차를 몰고 서안으로 가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