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 서안으로 (9)
언덕 위의 대치가 유야무야 넘어간 뒤 당태세 일행이 탄 표차는 별다른 저항 없이 그대로 직진하여 이틀 째 되는 날 작은 역참까지 도착하였다.
이 역참은 서안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관문이자 청(靑)의 강역임을 알려주는 요충지였다. 최소한 이곳에서는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멀리서 역참의 깃발이 나부끼는 것을 본 육해주는 짧게 안도의 한숨을 쉬고 옆자리에 앉아있는 당태세를 바라보았다.
“최소한 한숨 돌리겠습니다그려.”
어느새 당태세는 수레의 앞으로 자리를 옮겨 온 뒤였다. 이틀 째 거의 잠을 자지 못해 눈이 퀭한 표두 육해주를 바라보며 당태세는 다행이라는 듯 역참의 누각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만 제대로 눈을 붙이시게. 안 그래도 그동안 마음 고생이 많았을 터인데.”
“마음고생이야 여기 있는 이들이 다같이 하는 것입니다. 전 괜찮습니다.”
표두는 얼굴을 제외하고서는 모든 것이 반듯한 사내였다.
당태세는 더 말하는 것을 멈추고 슬쩍 고개를 뒤로 빼고 마차들의 맨 후위를 지켜보았다. 여전히 그곳에는 말을 타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후위를 지키고 있는 종리세리의 모습이 보였다.
아마 저 천호도 쌓여있는 피로와 긴장은 당태세나 육표두 못지않을 것이었지만 말 위의 사내는 한 치도 흐트러짐이 없어보였다.
당태세가 짐작컨대, 저 단단한 쇠 같은 사내는 부러질 때까지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을 유형의 사내였다.
“일단 들어가면 수레의 승객들과 표사들을 내리는 것부터 해야겠습니다. 원기를 회복하고 난 뒤에 출발을 해야지요. 앞에 무슨 일이 기다리고 있든 말입니다.”
당태세는 육해주의 말에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역참의 모습은 성큼 눈 앞에 가까이 들어와 있었다.
오가는 상인들과 관인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 인지 그리 크지 않은 규모의 역참은 덩치와는 어울리지 않는 두꺼운 대문과 그 위에 누각까지 달려있는 작은 토성이나 진배 없었다.
커다란 대문은 수레 두 대가 같이 들어갈 정도의 넓이였는데다 그 위에는 성루를 쌓아 군사들이 위에서 사방을 보며 방비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얼마나 되는 수비인원이 저 곳에 주둔하고 있소?”
“보통 두 오(伍)가 있습니다.”
“잘해야 열 명이라는 이야기군. 그 정도로 가능한가.”
“누가 관의 역참으로 쳐들어오겠습니까? 서안에서 팔기가 떼거리로 몰려올 것인데.”
순간 당태세의 눈이 천천히 가늘어지며 역참의 성곽과 열려있는 문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대문은 양편으로 활짝 젖혀져 있었고 누각 위와 성루에는 서너 명의 군졸이 번을 서고 있었다. 군졸들은 표국의 깃발을 보자 들어오라는 듯 손을 흔들어 보였다. 성루 위의 군사들이 없었다면 마치 텅 빈 막사로 착각할 정도로 조용한 곳이었다.
“원래 이리 조용한 곳이오?”
작은 소리로 묻는 당태세의 질문에 육해주도 주위를 살피더니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떠들썩한 곳은 아니었습니다. 뭔가 맘에 안 드십니까?”
당태세는 잠시 이마를 짚으며 생각하더니만 어깨를 으쓱하고는 육해주를 바라보았다.
“표두가 판단하시구려. 나는 긴장을 풀지 않는 것이 나을 것 같아 하는 말이오.”
“이곳엔 우물이 있습니다. 마지막 물을 보충하고 표사들도 쉬게 해야지요. 조금이라도 쉬고 지나가는 게 맞습니다. 그리고 몇 푼 쥐어주면 나름대로 신경을 써 주는 곳이 역참이니까요.”
당태세는 가타부타 말없이 마차 뒤로 몸을 숨겼다. 다섯 대의 마차가 천천히 열린 역참의 문 안으로 들어섰다. 역참답게 넓은 안마당 안에는 개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텅 빈 광장같은 마당에 다섯 대의 마차가 들어왔지만 마차 여남은 대는 더 들어오고도 남을 지경이었다. 당태세는 슬쩍 입술을 혀로 축이면서 해가 쏟아지는 사방을 돌아보았다.
비가 내리지 않은 지 벌써 보름은 된 듯싶었다. 바싹 마른 땅 위로 쏟아지는 열기가 포석을 타고 올라왔다. 밝은 햇살아래 사방을 둘러 싼 침묵이 오히려 을씨년스러웠다.
“먼저 내려서 주변을 보겠소. 표두도 조심하시오.”
육해주도 긴장을 풀지 못하는 얼굴로 사방을 바라보더니
“표사들을 주변에 두겠습니다. 쟁자수들에게 물만 뜨게 하지요.”
당태세는 마차에서 내려 목괴를 짚고 절뚝거리며 천천히 역참의 건물 안으로 향하였다. 당태세가 움직이자 성루 위에 있던 병사 하나가 천천히 계단을 타고 아래로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당태세는 슬쩍 뒤쪽의 기척을 확인해 보았다. 말에서 내린 종리세리가 시야도 돌리지 않고 그대로 반대편의 건물 안쪽을 향해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저 천호 역시 사방을 둘러싼 침묵을 믿지 않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당태세가 문에 손을 대자 햇살 아래 뜨거워져 있던 문은 저절로 안쪽으로 열렸다.
밝은 바깥과는 대조적으로 그늘진 역참의 안쪽은 어두운 그림자로 뒤덮여 있었다. 서늘한 공기가 당태세의 온 몸을 감쌌다.
성루에서 내려오는 병사의 발소리가 계단을 타고 당태세의 귓가에 들려왔다. 노인은 재빨리 몸을 움직이며 방에서 방으로 움직였다. 인적 하나 발견할 수 없었다.
원래 역참은 늘 관리가 상주하는 곳이었고 누가 밥을 먹으러 나가더라도 한 사람은 안에서 역무를 보는 것이 상례였다. 당태세는 얼굴을 굳히고 짧게 혼잣말을 내뱉었다.
“덫이야.”
당태세는 작은 복도를 빠르게 가로질러 위로 통하는 작은 계단을 통해 위로 몸을 옮겼다. 뚜벅거리는 소리가 어디선가 울려 퍼지며 당태세의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당태세는 계단을 타고 올라 바로 앞에 있는 큼지막한 문을 열었다. 침상들이 주르륵 연달아 있는 방을 보고 당태세는 눈을 껌벅였다. 이곳은 역참의 관리들이 머무는 숙소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당태세의 눈이 커진 것은 연달아 놓여있는 침상때문이 아니었다. 침상 위에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놓여있는 관인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사내들은 바닥과 침상에 되는대로 누워있었는데 모두가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그렇다고 피를 흘리거나 몸이 상한 것 같지 않았다. 당태세는 방 안의 공기에서 살짝 풍겨오는 들큼한 냄새를 맡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미혼분”
당태세는 목괴를 잡고 몸을 뒤로 돌렸다. 그 순간, 노인은 자신을 쫓아오던 발소리가 멈춘 것을 알아챘다.
당태세는 목괴의 중간부분을 잡고 소도를 뽑으려다가 다시 마음을 고쳐먹고 허리춤으로 손을 옮겨갔다. 어느새 당태세의 오른손에는 짧은 단도가 잡혀 있었다.
노인은 천천히 방문을 향해 발소리를 죽이며 앞으로 다가갔다. 기척을 숨긴 당태세의 귓가에 누군가의 숨소리가 벽을 타고 들려왔다. 당태세의 눈이 좌우로 움직이며 방문을 향해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당태세가 왼손을 뻗어 목괴를 앞으로 불쑥 들이밀었다. 순간 왼쪽 옆에서 단도가 번득이며 당태세의 목괴 앞으로 튀어나왔다. 당태세는 목괴로 단도를 밀어붙이고 앞으로 돌진하며 단도를 쥔 사내에게 몸을 밀착시켰다.
그 순간, 문의 반대편에서도 단도를 든 사내 하나가 당태세를 향해 덤벼 들었다.
당태세가 처음 단도를 내민 사내의 팔을 잡고 다리를 다른 다리로 휘감으며 몸을 빙글 돌려 또 다른 자객의 칼을 동료의 등으로 막아냈다.
그와 함께 당태세의 단도가 번뜩이며 자객의 가슴팍을 아래에서 위로 찌르며 어깨로 들이받았다. 짧은 비명소리와 함께 자객의 몸이 무너지는데, 쓰러지는 동료를 밀치고 뒤에 있던 사내가 앞으로 튀어나왔다.
사람 하나 지나가기 힘든 좁은 복도에서 노인과 자객이 단도를 들고 서로의 몸을 후벼파며 난도질하기 위해 짧은 쇳덩이들을 휘둘렀다.
자객의 단도가 당태세의 목을 향해 들어오는 순간 당태세의 목괴가 자객의 손목을 치고 손잡이를 돌려 자객의 목을 잡아챘다.
일순간 자세가 무너진 사내의 옆구리로 당태세의 단도가 가볍게 빨려들었다가 튀어나왔다. 짧은 비명과 함께 사내는 다리가 풀린 채 그대로 계단을 타고 아래층으로 굴러 떨어졌다. 자객들은 모두 역참 관인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당태세는 화급하게 목괴를 들고 이층의 복도를 날듯이 뛰기 시작했다. 노인의 오른발에 찬 보철에서 나는 금속성의 소리가 복도를 울리기 시작했다.
복도가 끝나고 바깥으로 통하는 회랑이 햇살을 받아 밝게 빛났다. 당태세는 안마당에 모여있는 다섯 대의 수레를 향해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매복이다!”
순간, 귀를 찢는 날카로운 소리가 하늘에서 울려 퍼졌다.
마치 맹금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역참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당태세는 이 소리가 무엇을 뜻하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명적(鳴鏑)!”
노인이 이를 부드득 갈았다. 소리화살은 원군을 부르는 법. 당태세의 눈이 넓은 안마당에서 활짝 열린 역참의 대문으로 향했다.
이미 이곳은 사지(死地)였다.
포위된다면 뚫고 나가기 힘든 곳이었다. 그 순간, 당태세는 사방의 공기와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흐름과 함께 빗살처럼 차가운 살기(殺氣) 하나가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것을 느꼈다. 방향을 파악하고 몸을 추스릴 새도 없었다.
노인은 그대로 바닥으로 넘어지며 회랑의 난간 아래로 몸을 굴렸다. 그와 동시에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나무 난간이 박살나며 긴 화살촉이 당태세가 서 있던 벽에 틀어박혔다.
“빌어먹을!”
솜씨 좋은 궁수였다. 게다가 매복하고 있는 위치도 좋았다.
순간 아래쪽에서 왁자지껄한 소리와 함께 고함과 비명이 산발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쇠와 쇠가 맞붙는 소리가 같이 흘러나왔다. 수레를 향해 살수들이 움직인 모양이었다.
당태세가 인상을 찌푸리며 목괴를 잡고 몸을 일으켰다. 그 때 여인의 비명과 아이의 울음소리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당태세의 눈이 둥그렇게 변하며 이를 악물었다.
“개 같은 것들이!”
당태세의 사지에 자기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노인은 발로 땅을 박하고 목괴를 짚으며 노출된 회랑을 벗어나 다시 복도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 순간, 회랑의 바깥쪽에서 지붕 끝을 잡아타고 곡예를 하듯 당태세 앞으로 한 사내가 뛰어내렸다.
사내는 입에 칼을 물고 당태세를 보며 피식 웃음을 짓는데, 그 순간 번개처럼 목괴가 뻗어나오며 사내의 태양혈을 후려쳤다.
노인의 얼굴은 마주 보지도 못할 만큼 무섭게 인상이 변해 있었다.
“꺼져라, 어디서!”
정신을 잃은 살수가 난간을 부수며 아래로 떨어졌다. 그와 함께 또 다른 살수가 단도를 빼들고 당태세의 뒤에서 덮쳐왔다. 목괴를 휘두르기엔 좁은 복도 안에서 다시 당태세와 살수는 단도를 빼 들고 서로의 요혈을 노렸다.
살수의 단도가 번개처럼 휘어져 들어오며 당태세의 목을 노리는 순간, 당태세는 목괴의 가운데 손잡이를 잡고 목괴로 단도를 누른 채 오른 손의 단도를 들어 살수의 목을 베어버렸다.
사내는 짧은 신음과 함께 그대로 다리가 풀려 주저앉는데, 당태세는 숨이 끊어지는 것도 확인할 틈새도 없이 다시 몸을 돌려 계단을 향하였다.
그 순간, 당태세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재빨리 목괴를 들어 앞을 막았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목괴를 든 손이 짜르르 울렸다. 당태세는 재빨리 몸을 움츠리고 벽 옆으로 몸을 붙였다.
내려가는 계단이 있는 복도 끝에, 한 사내가 서 있었다.
회색장포를 입고 하관에 복면을 두른 사내는 손에 검은색 활을 들고 오른손에 화살 세 개를 들고 서 있는데, 궁수는 복도 끝에 우뚝 선 채로 다음 화살을 시위에 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당태세는 천천히 복도로 다시 나와 목괴를 짚고 서서 궁수를 노려보았다.
풍겨나오는 기도와 자세가 일반 잡졸의 분위기는 아니었다. 당태세는 저 자가 조금 전 회랑에 서 있던 자신을 저격했던 그 궁수임을 확신했다.
“사형문이냐.”
“혜광시(暳光矢) 우영송이라 하오. 노사.”
당태세의 눈초리가 번득이는 가운데, 혜광시라 불린 회색장포는 시위에 살을 걸었다. 검게 번뜩이는 활은 여느 활 같지 않았고, 시위를 당기는 사내 역시 보통 힘으로 화살을 당기는 것 같지 않았다.
천천히 활의 시위가 당겨지며 활은 만곡이 되었다.
자칫하면 한 방에 숨통이 꿰뚫린 채 벽에 처박힐 공산도 있었다. 하지만 당태세는 이를 드러내며 웃음을 짓고 있었다. 어느새 심장이 두근거리며 두 손과 두 다리가 긴장으로 조금씩 경련을 일으켰다.
좋은 싸움이 벌어질 때마다 억누를 수 없는 살심의 맥동이었다.
길고 좁은 복도는 전력을 다해 뛰면 열 걸음이었다. 당태세는 오른 무릎을 슬쩍 만지고는 시위를 있는 대로 당기고 있는 혜광시를 노려보았다.
“아무려면 어떨까.”
혼잣말을 마친 노인의 오른발이 땅을 박찼고 노인의 몸은 검은 그림자가 되어 앞으로 튀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