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 서안으로 (7)
수레를 탄 행렬은 조용하지만 신속하게 울창한 숲속을 빠져나가 언덕을 향해 올라가는 중이었다.
늙은 상인의 말에 따르면 이틀은 걸린다고 한 길이었지만 지금 속도로 올라간다면 내일 저녁 무렵에는 너끈하게 언덕의 위에 올라갈 수 있을 듯싶었다.
“그 언덕 위에는 샘이 있고 분지가 있으니 하루 저녁을 묵기에 알맞습니다. 그곳은 지나면 작은 역참이 사흘 길에 있으니 그곳을 지나면 되고, 그 역참을 통과하여 사나흘쯤 더 가면 서안에 들어갈 수 있을 겁니다.”
서안으로 가는 길을 꿰고 있는 육해주의 말을 들으며 종리세리와 당태세는 고개를 짧게 끄덕였다.
어느새인가 이 두 사람은 총표두가 된 육해주와 함께 여정에 대해 깊은 논의를 나누고 있었는데 다른 손님들은 그에 대해 일언반구 반대 의사를 밝히는 자가 없었다.
승객과 쟁자수들은 모두 수레 안에 숨어서 녹림도와 표사들이 싸우는 것을 고스란히 지켜본 데다 당태세와 종리세리가 목림도와 어찌 싸우는 지까지 두 눈으로 확인한 사람들이었다.
모두가 두 사람의 무위에 찬탄을 아끼지 않았고 특이 당태세라는 노익장의 뛰어난 무공에 감탄을 발하고 있었으나 그 중 제일 놀란 사람은 따로 있었다.
바로 무두리 아룡이었다.
솔직히 아룡은 지금 자신의 눈 앞에 보이는 것이 실제인지 환각인지 믿지 못할 지경이었다.
제남에서 장사까지 하루가 멀다하고 다리가 아프다며 한숨에 신음을 내뱉던 병약한 노인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지금 자신의 눈 앞에 서 있는 것은 축지법을 쓰듯 단숨에 몇 장을 가로질러 적의 목을 따버리는 백발의 노장 아닌가.
“내가 애당초 숙부님을 잘못 본 것인가? 아니면 장사의 침의가 진짜 하늘이 낸 명의였던가?”
한참동안 머리를 굴리며 지나온 길을 복기해 봐도 도저히 답을 찾을 수 없는 아룡이었다.
결국 아룡은 자기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수십 가지 사실을 자기 나름대로 짜 맞춘 뒤에 제멋대로 결론을 내리기로 하였다.
“금월방주가 모시는 분인 것은 예전부터 알았으니 흑도(黑道)의 실력자였던 것은 분명하지. 하지만 그 와중에 대청(大淸)의 부름을 받고 밀명을 품에 쥐고 있던 것이 틀림없어. 그렇지! 숙부께서는 역적들의 공격으로 거진 죽게 된 것을 나의 극진한 간호를 받고 다시 몸이 회복되신 뒤에 그 명을 재차 받으신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제남에 들르신 게지! 말하자면 우리 청조의 밀사(密使)같은 것 아닌가!”
아룡은 손바닥을 주먹으로 치더니만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일부러 환자인 척 세상의 눈을 속이며 내가 숙부의 눈과 귀가 되도록 하여 천하의 적도들을 염탐하도록 시키신 것이다. 저 천호는 우리 뒤를 받쳐주는 관(官)의 세력이고!”
여기까지 결론에 이르자 아룡은 감개무량한 표정과 더불어 결의에 가득한 눈빛을 번득이며 마차 앞쪽을 바라보았다.
“금월방주께서 나를 지목하신 이유를 이제야 알겠구나. 어찌 대붕(大鵬)을 작은 포구에서 기를 수 있겠냐는 배려였던 것이다! 그 은혜가 실로 하해같구나! 내 기필코 숙부와 함께 대청 제국의 천하를 평탄케 하고 입신출세하여 금월방주에게 그 모습을 보여주리라! 당신의 투자가 성공했음을 당당히 알려주리라!”
아룡의 분연한 다짐과는 관계없이 정작 마차 앞에 앉아있는 세 사내는 심각하게 머리를 맞대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대비하고 있었다.
죽은 표두 이팔문이 뿌려놓고 간 전서구 여섯 둥지는 앞으로 서안으로 갈 여정에 심각한 장애물이 될 거라는 것이 세 사람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일단 둥지 두 개의 전서구들은 역참으로 보냈을 것입니다. 그건 사형표국의 규례와 같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얼마나 왔는지를 말해주는 것이니까요.”
마면걸 육해주의 말에 종리세리가 매서운 눈을 번득이며 하늘 위를 바라보더니 말을 꺼냈다.
“넷 중 하나는 녹림도, 그 녹아방이라는 곳에 보냈을 테지. 그렇다면 세 군데에 더 보냈다는 이야기 아닌가.”
“육표두, 따로 이 표행길에 이팔문이 알고 있는 녹림도나 비슷한 세력이 있는가?”
육해주는 당태세의 질문에 수염을 쓰다듬다가 인상을 쓰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죽은 이표두는 나름대로 원칙에 충실하던 위인입니다. 옆길로 새는 사내는 아니었지요. 제가 알기로는 다른 쪽으로 연락을 할 곳이 없습니다. 아마 이런 청부를 받고 따로 연락처를 받았겠지요.”
“사형문의 원칙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이거구먼.”
당태세의 말에 육해주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입맛을 다셨다. 지금 가장 처지가 난감한 사람은 죽은 이팔문이나 표적이 된 당태세가 아니라 바로 표행을 이끄는 육해주였다.
그는 서안까지 표물과 승객을 옮길 책임이 있는데 사방에서 전서구를 받은 세 갈래 세력이 육해주가 담당한 수레를 향해 달려오고 있다는 이야기나 다름없었다.
육해주는 당태세와 종리세리를 노려보듯 쳐다보더니만 이내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턱짓으로 언덕 위를 가리켰다. 이제 수풀 사이에 우뚝 왕릉처럼 솟은 언덕은 육안으로도 충분히 구별이 가능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저 곳까지 어서 올라가서 진을 치고 하루를 법시다. 최소한 제 아우들과 두 분이 계시면 어지간한 공격이야 막을 수 있겠지요.”
“자네는 무슨 연유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묻지를 않는구먼.”
당태세의 말에 육해주는 가뜩이나 험상궂은 얼굴을 찌푸리더니 습관처럼 고개를 내저었다.
“표행으로 천하를 떠돌다 보면 별별 일이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어떤게 옳고 그르다를 따지는 것은 예진작에 포기했어요. 지금 제게 중요한 것은 표물과 승객들을 서안까지 안전하게 옮기는 일입니다. 그게 제가 확실하게 아는 유일한 길입니다.”
당태세는 육표두가 맘에 들었다. 종리세리 역시 육표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최소한 이 사내는 자기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이였다.
당태세는 알겠다는 듯 육표두를 따라 앞을 바라보며 짧게 이야기를 맺었다.
“그럼 저 언덕까지 무조건 빨리 가세나. 공성전이라면 일가견이 있긴 하지.”
***
다음 날 저녁.
손에 잡힐 듯 잡힐 듯 가까워지지 않던 언덕배기가 결국 수레의 바퀴 아래 밟히는 때가 왔고, 언덕 위에 도착한 표국의 수레들은 넓은 공터에 자리잡고 본격적으로 진을 치기 시작했다.
육해주의 판단에 의하면 역참에 도달하기 전까지 다른 세력이 도달할 수 있는 곳은 이틀 거리 내에 이곳밖에 없었고, 샘에서 물이 솟는 곳인 만큼 최대 사흘 정도는 버틸 수 있는 곳이기도 하였다.
“윤자반두(輪字盤頭)를 취해라.”
“윤자반두를 취하라!”
표두 육해주의 고함과 함께 쟁자수와 표사들이 말고삐를 잡고 수레바퀴를 떠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다섯 대의 수레가 꼬리에 꼬리를 물더니 거대한 원이 되었다.
육해주는 순식간에 마차에서 마구를 풀어 말들과 승객들은 수레의 안쪽 원에 머물게 하더니 수레바퀴와 바깥 사이에 무거운 짐짝으로 울타리를 만들고 표사와 쟁자수들을 배치하였다.
기물의 배치와 부하들을 부리는 모양새가 신속하고 절도가 있었으니, 육해주는 마치 작은 진의 장수와도 같았다.
“이런 일에 익숙하구먼.”
당태세의 말에 육해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표사를 하면서 몇 차례 시연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직접 부딪혀본 적도 있고요.”
육해주의 말에 당태세는 이를 드러내며 미소를 짓고는 사방을 둘러보았다. 키 낮은 풀과 수풀이 우거진 언덕 위쪽은 마치 제초라도 한 듯 사방이 탁 트여있는데, 천하 사방이 푸른색 풀과 나무로 가득 차 있으니 망망대해 위에 있는 절해고도와 같은 풍경이었다.
“녹림도를 그만 두고 표사라니,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텐데.”
“……마누라와 자식이 생겼습니다.”
짧지만 많은 것이 담긴 말이었다.
육해주는 당태세의 말에 대답을 하면서도 수레 위에서 사방을 둘러보며 다가오는 인적이 있는지를 감시하는데서 눈을 떼지 않았다. 당태세 역시 옆에서 다른 방향을 둘러보며 저무는 햇살을 바라보았다.
다른 표사들과 쟁자수들은 승객들과 함께 모여 불을 피우고 이른 저녁을 짓고 있었다. 해가 떨어지면 그때부터는 쉴 틈이 없을 터였다.
“표사의 일은 녹림도보다 힘들지 않은가?”
당태세의 말에 육해주는 슬쩍 당태세를 노려보았다. 사내의 대답은 퉁명스럽고 거칠었다.
“백성으로 사는 삶은 늘 도적의 삶보다 고단한 겁니다.”
“각오를 한 말투로군.”
“나는 예전처럼 살지 않을 겁니다. 나는 가족이 있단 말이오.”
육해주는 당태세가 무엇을 묻고자 하는지 알고 있는 듯싶었다. 어쩌면 육해주의 과거사를 아는 이들은 모두 같은 것을 그에게 묻고 다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내 부하들도 내가 다 끌고 산채에서 나왔소. 어느 날. 산채에서 아이들을 키우다 문득 든 생각이오. 이런 일은 절대로 밝은 하늘 아래에서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지.”
“과거를 후회하나?”
당태세의 말에 육해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개를 끄덕이며 응답했다.
“후회하지요. 내 인생에서 그 날을 도려내 버리고 싶을 정도로 후회하지.”
육해주는 거기까지 말하더니 당태세를 슬쩍 바라보았다. 햇살 아래 사방을 보느라 찌푸려진 사내의 험악한 인상이 더 험상궂게 변하며 당태세를 노려보았다.
“그런 것을 묻는 이유가 뭐요. 노사? 나를 못 믿겠다는 거요?”
“자네를 못 믿는다기보다는 사람을 믿지 않아. 진정으로 과거를 후회하고 그 날을 쳐다보지 않는 사람은 드물더군.”
당태세는 자신의 말에 육해주가 발끈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외로 험상궂은 표정의 표두는 당태세의 말에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사람은 막다른 곳으로 몰리면 사람의 도리를 어기는 법이오. 변변한 벌이가 있고 인정받는 직업이 생겼다면 그 짓을 왜 또 한단 말이오? 모르지, 궁즉통이라고 또 일거리가 없어지고 살기가 먹먹하면 칼을 차고 숲으로 들어갈 지도 모르겠소.”
사내는 자신이 말한 것을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 같더니만 이내 사나운 얼굴에 웃음 비슷한 것을 지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지. 다시 그렇게 살면 아니 되는 것이지. 사람으로 돌아왔는데 그리 살면 안 되지.”
“사람으로….”
“사람이 그리 살면 안 되지 않소. 그러니까….”
육해주는 입맛을 다시더니 다시 사방을 보며 투덜거렸다.
“나는 공맹(孔孟)의 말도 모르고 배운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건 알아요. 애들을 보면 알지요. 애들에게 해 줄 말이 없잖습니까?”
당태세는 멍하니 육해주의 말을 듣고 있었다.
노인은 전(前) 녹림도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들으며 입을 한일자로 굳게 다물더니 조금씩 고개를 떨구고 언덕 아래를 바라보았다. 노인의 머리 위로 서늘한 바람 한줄기가 밀려가며 수풀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노인은 잠시 눈을 깜박이며 앞으로 불어오는 바람에게서 눈을 돌려 육해주와 다른 방향을 쳐다보았다. 노인의 입에서 짧은 독백이 흘러나왔다.
“배운 것 없는 초적들도 사람 사는 여염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데, 가진 것 있고 배운 게 있다는 것들이 왜 자기 삶의 궤적이 벗어났음을 회개하지 않는 것일까.”
노인은 물끄러미 초록 임해(林海)를 바라보다 다시 한 마디를 덧붙였다.
“나는 제대로 내 삶을 살고 있는 것인가?”
그때였다. 군령을 전달하는 듯한 종리세리의 메마르고 짧은 목소리가 또렷하게 당태세의 귀에 얹혔다.
종리세리는 칼집에 손을 얹은 채 날카로운 눈을 빛내고 있었다.
“북쪽 길을 타고 일군의 마필이 접근하오. 여덟 마리. 모두 군마(軍馬)같소이다.”
“군마? 팔기의 복색이오?”
“한족의 복색이오. 모두 경장에……칼을 차고 있군.”
종리세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육해주가 수레 안 쪽으로 돌아보며 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얘들아! 젓가락 놓아라! 놈들이 밀려온다!”
당태세도 목괴를 움켜잡으며 북쪽으로 시선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