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견마지로-161화 (161/226)

161.  서안으로 (6)

위둔보 이팔문은 손에 큼지막한 도를 쥐고 있었지만, 실제 그의 절기는 도가 아닌 듯 보였다.

사내는 기이하게 보법을 밟으며 당태세와 거리를 한 장 이상 띄우고 있었는데, 사내의 상체는 당태세에게 고정되어있는 반면, 사내의 하체는 방위를 밟으며 자유자재로 거리를 조절하고 있었다.

당태세가 이팔문의 동작에 신경을 쓰며 그쪽으로 목괴를 뻗는 순간, 옆에 서 있던 녹아방주가 재빨리 대도를 어깨 위로 들어 올리며 당태세의 어깨를 노렸다.

당태세의 주의가 멀리 있는 이팔문에서 가까이 있는 녹아방주에게 옮겨왔다.

노인의 몸은 바람을 탄 구름처럼 움직이며 번개처럼 떨어지는 대도의 옆으로 어깨를 빼냈고, 땅으로 떨어지는 대도를 가볍게 우수로 밀어젖히고 빈 틈을 타 녹아방주의 옆구리로 목괴를 찔러 넣었다.

순간 다른 녹림도의 칼날이 방주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 목괴와 녹아방주의 사이로 밀려 들어왔고 당태세는 목괴를 휘저어 칼날의 서슬을 몸 밖으로 튕겨내었다. 몸이 훤하게 드러난 녹림도의 낭패한 표정이 당태세의 눈을 가득 채웠다.

그때였다.

일순간 당태세와 녹림도 사이를 예리한 기운이 비집고 들어오며 한줄기 빛나는 살기가 당태세의 목을 노리는데, 당태세가 일각이라도 늦게 몸을 틀며 목괴의 손잡이를 올리지 않았다면 아마 그 빛살은 정확하게 당태세의 울대를 뚫어버렸을 터였다.

당태세의 목 대신 목괴의 손잡이를 맞춘 빛살은 청아한 소리를 내며 튕겨나가 번쩍이며 당태세의 머리 뒤로 넘어가 버리는데, 당태세는 그것이 이팔문의 손에서 빠져나온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당태세는 이팔문을 바라보며 슬쩍 눈가에 힘을 주었다.

“쓸 만한 비도(飛刀)구나.”

위둔보의 보법은 느렸고 신중했지만 방위를 밟은 뒤 팔에서 내던지는 비도는 화살보다 빠르고 정확했다. 그의 별호 위둔보(威鈍步)가 어디서 나온 것인지 그제야 당태세는 알 수 있었다.

그나저나 진용이 갖춰진 세 사람의 협격은 여간 성가신 것이 아니었다.

녹아방주의 대도가 전위를 담당하고 뛰어난 용력으로 당태세를 밀어붙이면 뒤에 있는 녹림도가 박도로 다시 한번 당태세의 방위를 차단하고 그 자리에 붙잡아 두었다.

그리되면 몸을 뺄 수 없는 당태세를 향해 멀리서 이팔문의 비도가 요혈을 노리고 날아드는 것이었다.

당태세는 오랫동안 이 협격진이 유지될수록 저승 문에 가까워지는 것은 세 사람이 아니라 자신임을 알아챘다.

아무리 뛰어난 무예의 고수라도 일순간의 실수로 죽을 수 있고, 무명소졸의 칼이라도 제대로 천시(天時)와 인화(人和)를 만나면 대종사라도 쓰러트릴 수 있는 것이 강호의 매서움이었다.

당태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사방을 조망하며 자신에게 달려드는 녹아방주의 대도를 맞이하였다.

팔방(八方)의 모든 기운이 전신을 타고 느껴지며 싸움터의 살기가 고스란히 당태세에게 전해져왔다. 오랜만에 온 몸의 신경이 예민해지며 충만해진 기감이 전장의 대국(大局)을 훑고 있었다.

당태세는 비구름을 몰고 다니는 용처럼 영활하게 몸을 움직이며 녹아방주의 대도를 향해 목괴를 내리치며 다시 합을 겨루었다. 아까보다 훨씬 명확하게 자신을 향해 들어오는 노골적인 적의와 살기가 느껴졌다.

당태세는 녹아방주의 칼을 맞부딪히고 뒤로 빠지면서 옆을 파고 들어오는 녹림도의 박도를 그대로 목괴의 손잡이로 걸어버렸다.

칼날이 목괴에 걸려 빠져나가지 않자 녹림도는 눈이 둥그레져 당태세를 바라보는데, 그 순간 당태세의 보철 두른 오른 무릎이 그대로 녹림도의 낭심을 걷어차고 우권이 사내의 태양혈을 직격했다.

녹아방주의 부하는 소리 한번 못 지르고 눈을 뒤집으며 그대로 땅바닥에 머리를 처박았고, 당태세는 그 여세를 몰아 대도를 든 녹아방주를 향해 달려들었다.

순간 당태세의 등 뒤에서 날카로운 살기가 하나 튀어나왔다. 이팔문의 비도와는 다른 종류의 병기였다.

당태세가 몸을 움츠리고 한 바퀴 목괴를 들고 회전하며 재빠르게 녹아방주와의 간격을 벌리는 순간, 화살 하나가 녹아방주와 당태세의 사이로 휙하니 지나갔다.

녹아방주가 성을 내며 화살이 날아온 곳을 쏘아보았다.

“뭐하는 짓이냐!”

순간, 당태세의 뒤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며 화살이 날아온 쪽으로 몸을 날리는 그림자가 보였다. 다름 아닌 선무사 천호 종리세리의 신형이었다.

“저 자는 내 거요.”

순간 짧은 비명과 함께 궁수의 기척이 단박에 사라졌다.

하지만 숨 돌릴 틈도 없었다. 종리세리가 궁수를 처리하는 것과 동시에 이팔문의 손에서 떠난 두 자루 비도가 그대로 당태세의 배와 목을 향해 동시에 날아왔다. 차마 피할 시간이 없었다.

당태세는 목괴를 들어 안면을 막아내고 오른발을 금계독립(金鷄獨立)으로 올리며 단전 앞에 무릎을 세웠다. 동시에 날아든 비도가 목괴와 오른발의 보철에 맞고 튕겨나갔다.

망가진 오른발에 쇠로 된 보철을 끼운 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것이었다.

“세치 쇳덩이 몇 개로 죽을 내가 아니다.”

당태세의 눈이 빛나며 이가 드러났다. 녹아방주가 짐승 같은 괴성을 지르며 당태세의 머리를 향해 다시 대도를 치켜들고 위둔보 이팔문이 방위를 밟는 순간, 당태세의 우수가 번개처럼 아래로 내려가며 목괴의 중간을 잡고 비틀었다.

노인의 품 안에서 번득이는 광망이 솟구치더니 하늘에서 떨어지는 대도를 좌수의 단괴가 그대로 옆으로 후려쳤고, 그와 동시에 우수의 소도가 날이 이지러질 정도의 속도로 녹아방주의 옆구리를 단숨에 베어버렸다.

녹아방주의 입에서 짧은 신음이 흘러나오는 순간 위둔보의 발이 멈추고 손이 움직였다.

당태세의 두 손이 번갈아 움직이며 들어오는 두 자루의 비도를 튕겨내며 다시 한 번 번뜩이는 소도가 비틀대는 녹아방주의 명치를 그대로 파고 들었다.

녹아방주의 거대한 체구에서 바람 빠지는 듯한 기이한 소리가 흘러나오며 거한의 몸이 옆으로 쓰러졌다.

위둔보 이팔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순간, 당태세가 목괴와 소도를 들고 그대로 땅을 박차며 앞으로 포탄처럼 튀어나왔다. 노인은 더 이상 발을 절지 않았고, 그 신법은 젊은 사내의 질주보다 빨라 보였다.

홉뜬 이팔문의 눈은 마치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사내는 비갑을 젖히고 수두룩하게 꽂혀있는 비도를 한 손에 세 개씩 잡아채더니 그대로 당태세를 향해 매섭게 던졌다.

당태세의 눈이 번득이며 빛나는 여섯 개의 빛덩이를 노려보았다.

여섯 개의 비도가 화살이 되어 유성처럼 당태세의 몸을 향해 떨어져 나가는데, 당태세의 양손이 좌우로 엇갈리며 들어오는 여섯 자루의 칼날을 일제히 튕겨내며 거리를 좁혔다.

이팔문은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잠깐, 잠깐만!”

순간 당태세의 우수에 잡힌 소도가 그대로 아래에서 위로 움직이며 이팔문의 가슴팍과 어깨를 한 번에 긋고 앞으로 튀어 나갔다.

비갑이 찢어지며 아직 쓰지 않은 비도들이 우수수 땅에 떨어지고 핏물이 하늘로 승천하며 혈우를 내렸다.

비도의 주인 위둔보 이팔문은 멍하니 눈을 부릅뜬 채 입을 채 다물지도 못하고 땅에 쓰러지기도 전에 숨이 끊겼다.

전황은 순식간에 정리되고 있었다.

사형표국의 표사들은 생각보다 무공이 고강하였다. 무예가 출중하다기보다는 악에 받친 듯 녹림도와 칼을 뿌리면서 싸우는데, 그 독기가 오히려 녹림도보다 승하여 녹림도가 사방에서 밀리는 모양새였다.

게다가 장대한 체구의 녹아방주가 눈 앞에서 쓰러지는 꼴을 본 졸개들은 더 싸울 의향이 없는 듯 보였다.

누군가가 달아나자는 소리를 내지르는 것과 동시에 하나둘 자리를 비우던 녹림도들은 이내 꼬리를 말고 숲속으로 자취를 감춰버리니 언제 그랬냐는 듯 주위에는 다시 정적이 감돌기 시작했다.

당태세는 말없이 소도를 죽은 사내의 옷자락에 닦고 다시 목괴를 조립했다.

“뒤를 봐 줘서 수월하게 끝냈소. 종리천호.”

당태세는 뒤에서 죽은 녹림도의 화살과 활을 수습하던 종리세리에게 말을 걸었다. 종리세리는 힐끗 당태세는 보더니 무덤덤한 목소리로 대꾸하였다.

“무고한 승객들에게 피해가 갈까봐 녹림도를 처리한 것뿐이오. 문주는 착각하지 마시구려.”

“거 사람 참…….”

한편, 부표두 육가는 멍하니 허탈한 표정이 되어 사방을 둘러보고 있었다.

이번 싸움에서 죽은 녹림도는 총 여섯인데 표사중에 녹림도와의 싸움에 죽은 이는 하나요 다친 사람은 둘이었다.

그나마 다친 이들은 경상이라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하필이면 죽은 사람이 총표두 이팔문이라는 게 문제였다. 더군다나 그 죽은 과정 자체가 표사가 벌이지 말아야 할 짓을 하다 죽었다는 게 더 문제였다.

“산적하고 배가 맞아 승객을….”

육가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눈을 뜨고 죽은 이팔문을 쳐다보다가 말없이 목괴를 짚고 서 있는 당태세와 맹금 같은 표정으로 사방을 노려보는 종리세리를 바라보았다.

황당하게 표두가 죽은 것도 모자라 기인(奇人) 고수가 두 사람이나 표행에 참가하고 있다는 것도 어이없는 일이었다.

“지금 벌어진 일이 무슨 일인지 혹시 알고 계십니까?”

부표두 육가가 당태세를 바라보며 중얼거리자 당태세는 사내를 빤히 쳐다보며 퉁명스레 대답했다.

“표사가 그걸 승객에게 물으면 어찌하나. 나는 그저 살려고 싸운 것인데.”

“실은, 죽은 표두가 노사를 노상에서 없애라는 지시를 제게 한 적이 있습니다.”

“뭐요?”

“표국의 윗선에서 받은 청부라 하였습니다. 자기가 독을 썼는데 독이 안 들었다고 노상에서 저와 부하들을 시켜 없애라 하더군요. 그 요청을 거절했더니 의외의 곳에서 녹림도를 만난 것입니다. 원래 녹림도는 표국을 이 정도로 몰아부치지는 않는 법입니다.”

당태세는 빤히 육가를 바라보았다.

이 험상궂은 사내는 오전에 당태세가 몰래 바위 뒤에서 엿들을 이야기를 뭐 하나 보태고 빼지도 않은 채로 그대로 그에게 들려주고 있었다.

사내는 생각보다 훨씬 담백하고 솔직한 성격일지도 몰랐다. 그게 아니라면 책임을 지고 싶어하지 않는 자일수도 있었다.

“그대는 이름이 무엇이오?”

“마면걸(魔面傑) 육해주라 합니다. 이번 표행의 부표두를 맡고 있습니다.”

당태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면걸 육해주와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서안에 가는 것은 사형문의 문주를 만나러 가는 것이 맞소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와 사형문주의 일이지 다른 사람들과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오. 다른 이들에게는 피해가 가지 않는 것이 올바른 일이라 생각되오만.”

“그것은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노사께서 노중에 다른 험악한 일만 벌이지 않으신다면야….”

당태세가 허탈한 표정으로 웃음을 지어보였다.

“내가 무슨 일을 벌이기라도 하였소? 나는 그저 여기 있는 사람들과 무사하게 서안까지만 가면 그만이오. 그리고 육표두 그대도 그걸 원하는 거 아니오?”

육해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이표두의 방법에는 한사코 반대하던 사람입니다. 저는 강호의 은원이야 어찌되었든 표사로 일하는 한 표행에 모든 심력을 쏟기를 바랍니다. 노사께서도 서안까지는 제 뜻을 존중해주십시오.”

“물론이오. 헌데 육표두가 이 표사들을 모두 통솔할 수 있겠소? 총표두가 노상에서 죽었는데 반발하는 이들이 없겠느냔 말이오.”

육해주는 씁쓸한 표정으로 쓴웃음을 짓더니 걱정 말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십시오. 어차피 이들은 모두 제 부하들입니다.”

“부하?”

“……젊은 시절에 저도 녹림에 있었지요. 부하들을 이끌고 산채에서 나와 이 짓을 한 지 벌써 이 년입니다.”

이번에는 당태세가 말없이 눈을 크게 뜨고 육해주를 바라볼 차례였다.

그 때 터덜터덜 안모도를 허리에 차고 걸어온 종리세리가 두 사람을 보더니 슬쩍 할 말이 있다는 듯 앞을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죽은 표두가 어떻게 이들과 교통을 했는지가 궁금하지 않습니까. 이들은 모두 원지(遠地)에 있다가 갑자기 손발을 맞춘 듯이 튀어나와 우리 수레를 기습했소이다.”

욕표두가 종리세리를 보더니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슬쩍 손가락으로 맨 앞의 수레를 가리켰다.

“이팔문은 저 수레 앞의 전서구(傳書鳩)를 이용해서 우리의 위치를 다른 이들과 공유하였습니다. 정해진 거소가 있고 연락할 대상이 있다면 얼마든지 연락을 할 수 있겠지요.”

“이 녹림도와도 예전부터 교분이 있었다는 이야기로군.”

“따로 비장의 수로 준비해 두었겠지.”

당태세와 종리세리가 서로 대화하는 것을 듣고 있던 육해주는 성큼성큼 수레 앞으로 걸어가 전서구들이 들어있는 새장을 바라보더니만 이내 인상을 굳혔다.

종리세리와 당태세가 수레 곁으로 다가가자 육해주는 가뜩이나 험악한 인상을 더욱 찌푸리며 두 사람을 쳐다보며 말을 하였다.

“원래 이 전서구는 출발할 때 정주에서 서안 사이의 역참 두 군데에 기별을 보냅니다. 다시 말해 보통 새장 두 개를 비우지요.”

“헌데?”

“여섯 개가 비어있습니다.”

종리세리와 당태세가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육해주는 빈 새장을 쳐다보더니만 신음소리와 함께 혀로 입술을 핥았다.

“이런 망할.”

나머지 네 구의 전서구가 어떤 적을 불러올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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