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견마지로-159화 (159/226)

159.  서안으로 (4)

사람들이 탄 수레는 서안을 향해 부지런히 위로 올라가고 또 올라갔다.

남경에서 정주에 이르는 북으로 가는 곧고 넓은 관도를 지나 정주에서 서안으로 옮겨가는 비교적 좁고 험한 길로 들어서면 그때부터가 진정한 표행의 길이었다.

녹음이 짙게 우거진 숲 사이로 난 길을 타고 찌는 듯한 더위와 쏟아지는 폭우를 버티며 서쪽으로 올라가는 길은 사람들의 진을 빼놓기 안성맞춤인데 설상가상 서안으로 다가갈수록 산세는 가파르고 험해져 녹림과 들짐승이 수시로 통행하는 사람들을 핍박하곤 하였다.

그나마 띄엄띄엄 위치해 있는 역참들은 규모가 작고 배치된 군사는 적어 역참 앞 마당 정도만을 감당할 수준이었으니 이 곳을 지나는 이들은 오로지 자신들의 힘으로 길을 타넘어야만 하였다.

당태세는 수로를 타고 배 위에서 움직이던 시절이 수레 위의 처지에 비하면 극락이나 다름없다고 여기고 있었다.

이리저리 흔들리며 몸이 짐짝과 부대끼자 슬슬 오른발이 다시 찌릿찌릿 저리기 시작할 정도였다. 하지만 당태세는 다리의 통증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다. 노인에게는 더 큰 문제가 목전에 들이닥쳐 있었다.

‘이미 이 표행의 표사들에게 내 정체가 알려져 있다.’

동성문의 황병아와 사형문의 제자 절영자는 분명 남경에서 서안으로 떠나기 전, 사형문의 측근에게 당태세에 대한 정보를 넘긴 것이 틀림없었다.

결국 지금 당태세와 함께 움직이는 이 표사들의 행렬은 모두 당태세를 노리는 자객들이나 다름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멀쩡하게 마시던 차에 독이 들어갈 리 만무하였다.

지금까지 계속 우려내던 차에 아룡이 독을 탈 리는 없었으니 누군가 식사시간에 혼란한 틈을 타 당태세의 잔에 따로 독을 넣은 것이었다. 이미 승객들의 취향은 다 파악하고 있는 것이었다. 당태세는 씁쓸한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내 목숨을 내놓고 서안으로 여행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구먼.’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표행에는 승객들이 꽤 많이 타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모두 싸움하고는 거리가 먼 이들이었다.

만약 아룡과 당태세 달랑 둘이 표행에 올라탔다면 아마 채 사흘이 되기 전에 표사들은 정체를 드러내고 당태세에게 칼을 휘둘렀을지도 몰랐다. 아무 힘도 없는 상인들과 아낙이 당태세의 방패가 되어주는 묘한 꼴이었다.

‘게다가 또 다른 비장의 묘수도 하나 있지.’

당태세는 뒤에서 어기적대며 쫓아오는 회색말을 탄 종리세리를 곁눈질로 바라보았다. 종리세리 역시 수레에 탄 당태세의 눈빛을 보더니 슬쩍 행렬에서 멀어지더니 좌우 수레의 표사들과 쟁자수들을 한 눈으로 조망하였다.

마치 양들을 몰고 가는 개와 같은 눈빛이었는데 그 눈길을 벗어나서 다른 짓을 할 엄두는 내지 못할 성싶었다.

다른 건 몰라도 종리세리가 자신의 뒤를 받쳐준다는 것만으로도 당태세는 한결 어깨가 가벼워졌다. 적일 때는 한없이 곤란하나 조력자일 때는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는 사내였다.

당태세는 어느 정도 자신의 주위가 방비되자 천천히 표행을 이끌어가는 표사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황야에서 만난 것이 개인지 늑대인지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아.’

표두 이팔문은 진중하고 능력있는 사내였다. 일신의 무공도 어느 정도 있는 이였다. 하지만 그는 사형문의 둔(鈍)자 결을 이어받은 사형문의 직계였고, 이 모든 일의 책임을 지고 있을 사내였다.

그가 직접 독을 탔는지 의심이 갈수도 있었으나, 그러기에 그는 너무나도 바빠 보였고 표행에 참여한 모든 이들의 목숨을 챙기는 위치였다.

당태세는 슬쩍 그의 옆에서 머리를 맞대고 가는 길을 논의하고 있는 부표두를 바라보았다. 슬쩍슬쩍 주변을 둘러보는 메기수염의 눈매와 종종 행렬에서 내려와 승객들을 바라보는 사내의 행동거지는 당태세의 심기를 늘 건드렸다.

당태세는 메기수염 사내가 살행(殺行)의 책임을 맡고 있을 것이라 믿었다.

‘독차 한 번으로 나를 떨굴 시도를 멈추지는 않겠지.’

분명 다른 시기가 되면 다시 당태세를 표행에서 자연스럽게 제거하려는 시도가 있을 것이고, 그 시행은 이팔문이 아니라 부표두와 아래 표사들이 주축이 되어 움직이게 될 터였다. 당태세는 슬쩍 아룡을 불렀다.

“무두리. 저 부표두에 대해서 뭔가 아는 바가 있느냐?”

당태세의 말에 아룡은 슬쩍 부표두를 쳐다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사람이 쓸데없이 과묵합니다. 예전에 한 번 불러서 말을 해 보려고 했더니 바쁘다면 매몰차게 가 버리더군요. 인상도 쓸데없이 험악한데다가 아래 표사들도 모두 저 사람 명을 받듭니다.”

“보기보다 상하 위계가 확실하구나. 성격도 있어 보이고.”

당태세는 슬쩍 이마를 문지르며 뭔가를 생각하더니 목소리를 낮추고 아룡에게 속삭였다.

“무두리, 너는 다른 이들을 도우며 수레의 일을 보다가 표두와 부표두가 같이 움직이는 것을 보게 되면 나에게 조용히 이르거라. 내가 뭔가 조사할 일이 있느니라.”

이전 같았으면 몸도 성하지 않은 분이 어디를 돌아다니십니까 하면서 이죽거렸을 아룡이었겠지만 이제는 군말없이 당태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아룡이었다.

이젠 오히려 아룡이 심각한 어조가 되어 당태세에게 다른 것을 묻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저들도 우리 대청(大淸)에 위협이 되는 자들입니까? 그저 단순한 표사들 같은데 저들에게도 모반이나 불량한 한족의 낌새가 보이시는 것입니까?”

“아직은 아무것도 모르니 만사 조심하여 행동하거라.”

“존명,”

당태세도 목소리를 낮추자 아룡은 전에 없이 긴장한 얼굴로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부턴가 아룡은 당태세를 대할 때 격식을 차리고 절도있는 행동을 하기 시작하였다.

어느새 두 사람은 숙질사이가 아니라 장수와 부관 같은 형국이 되어버린 듯싶었다.

***

당태세가 노리고 있던 기회는 생각보다 일찍 도착하였다.

정주에서 작은 관도로 접어든 지 이틀 째 새벽, 마차가 출발하기 전 물을 길러 쟁자수들이 움직이고 승객들이 잠에서 깨어나 짐을 정리하고 있을 때, 아룡이 슬쩍 당태세를 보며 눈짓을 하였다.

당태세는 단박에 무슨 뜻인지 알아채고는 목괴를 짚고 소리없이 아룡이 말하는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아직 수풀이 우거진 숲속에는 볕이 들지 않아 사방이 어둠과 침묵으로 가득 차 있는데, 목괴를 짚으며 풀과 나뭇가지를 젖히며 나가는 노인의 발과 지팡이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울려 퍼지지 않았다.

노인은 신중하게 발을 옮기며 몸을 움츠리고 마치 그림자 안에 다른 그림자를 품고 있는 듯 땅에서 바위로, 바위에서 다시 땅으로 형체가 스며들 듯 몸을 놀렸다.

이윽고 커다란 바위 뒤에서 사내 두 사람의 웅얼대는 소리가 들리자 당태세는 자세를 낮추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어떤가 육표두, 할 수 있겠는가? 설명은 이정도 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네.”

이팔문의 조용하고 나긋한 목소리가 바위 뒤에서 새어나오자 퉁명스러운 사내의 목소리가 뒤를 이어 흘러나왔다. 사내의 목소리는 성난 것 같기도 하였고 뭔가 주저하는 듯한 느낌도 섞여 있었다.

“표두께서 말씀하시니 듣기야 합니다만……솔직히 별반 하고 싶지 않습니다.”

“왜 그러는가? 뭐가 문제인가?”

입을 쩝쩝대는 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지더니 육표두라 불린 사내가 다시 투덜대듯 말하는 게 들려왔다.

“아무리 그래도…우리가 표행으로 나르는 승객아닙니까. 명색이 표국이고 그들은 돈을 낸 손님인데 어찌 그 목숨을 노린단 말입니까요. 게다가 그 노인…애하고 아낙에게도 잘 대해주고….”

“육표두.”

“선량한 사람 같았습니다. 표국에서 뭔가 잘못 안게 아닙니까요?”

“표국은 조사를 다 해보았네. 우리 사형표국에 해가 되는 위인이야. 겉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게.”

“그렇습니까.”

“그러면 자네가 맡는 것으로 하지. 오늘 저녁참에 마차를 세우면 바로 노인을 부르게. 몇 명 같이 불러서 처리하는 것이 나을 것 같은데.”

당태세는 짧게 숨을 몰아쉬었다. 결국 이팔문의 지시로 모든 것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었다.

오늘 저녁이 되면 짐과 밥을 챙겨주던 표사들은 단도와 몽둥이를 들고 당태세를 향해 은밀히 들이닥칠 것이었다. 당태세는 어둠속에서 눈을 번득였다.

저녁을 기다리는 것은 그들이 아니라 이쪽이 될 것이다.

그때였다.

“아무래도 안 되겠습니다.”

“뭐?”

“전 빠지겠습니다. 표사가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육표두.”

“정 뭐 하시다면 서안에서 저와 아이들을 다른 사람들로 교체해주십시오.”

의외의 반응이었다. 당태세도 눈을 둥그렇게 뜨고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이윽고 이팔문의 긴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이팔문 역시 육표두의 거센 반발에 다른 도리가 없는 듯 보였다.

“육표두 자네가 정 그렇다면 이번 일은 없는 것으로 하세. 나도 위쪽에 말을 올려 볼 테니.”

“감사합니다.”

“감사하기는. 사실 나도 찝찝했다네. 이제 슬슬 돌아가세.”

두 사내의 말이 끊기고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당태세는 화급하게 기척을 숨기고 어두운 수풀 아래 몸을 숨기고는 두 사내의 발소리가 멀어지기만을 기다렸다. 이윽고 두 사내의 기척이 끊기자 당태세는 숲 속에서 몸을 일으키고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근처에서는 어떤 기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당태세는 조용히 두 사람의 대화를 복기해 보다 짧게 고개를 흔들고는 입맛을 다셨다.

“나도 나이를 헛먹었구나. 사람보는 눈이 좋다 여겼거늘.”

참으로 기이한 일이었다. 불량하기 그지없어 보이던 부표두의 입에서 나온 말은 하나하나가 당태세의 가슴에 묘한 파문을 불러일으키는 중이었다.

당태세는 말없이 밝아오는 동쪽 하늘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숲속에서 발을 떼고 수레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당태세는 일부러 수레의 앞쪽으로 걸어가 그 곳에서 전서구를 날리고 있는 이팔문을 향해 느릿느릿 걸어갔다. 당태세의 기척을 알아챈 이팔문이 짧게 고개를 숙여 아침 인사를 하자 당태세 역시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침부터 표두께서는 바쁘시구려. 이제 출발을 하시겠지요?”

“오늘 길은 좀 고될 것입니다. 안 그래도 좁은 길이 며칠 전 내린 큰 비로 좁아졌다고 하더군요. 부지런히 길을 가야 할 것입니다.”

이팔문의 구변은 여전히 정중하였고 친절하기 그지 없었다. 당태세도 만면에 웃음을 띠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팔문이 날려 보낸 비둘기를 보며 조용히 말을 걸었다.

“이표두. 그대가 무슨 명을 받고 무슨 말을 들었는지 모르지만, 나는 서안까지 조용히 가고 싶소.”

이팔문의 웃던 얼굴이 슬쩍 눈초리가 가늘어졌다.

“무슨 말씀이신지…….”

“이곳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인들과 아낙네. 아이가 있지 않은가. 당신을 그들의 목숨과 재물에 책임이 있는 표두이고.”

이팔문의 얼굴에서 시나브로 웃음기가 빠져나갔다. 당태세 역시 눈을 슬쩍 올려뜨고 이팔문을 노려보았다. 노인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강단과 힘이 있었다.

“평안하게 갑시다.”

“노력해 보겠습니다.”

“노력해야만 할 것이오.”

이팔문은 대답대신 입을 한일자로 굳게 다물었다.

당태세 역시 그런 이팔문의 표정을 보고는 굳이 뒤따르는 대답을 원하지 않았다. 노인이 목괴를 짚고 천천히 수레 뒤쪽으로 걸어가자 이팔문은 눈을 깜박이며 수레의 정면을 쳐다보고 있었다.

표두의 눈은 길이 아니라 전서구가 날아간 서쪽 하늘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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