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견마지로-158화 (158/226)

158.  서안으로 (3)

남경에서 출발한 표행은 빠르지도 늦지도 않게 시간과 날짜에 맞춰서 움직이고 있었다.

속도의 완급을 조절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표두의 몫이었고, 노련하고 지세(地勢)에 밝은 표두일수록 물건과 승객들을 안전하고 편하게, 그리고 빠르게 목적지에 데려갈 수 있었다.

표두의 자질은 그가 밟아 온 거리에 비례하는 것이었다. 무공이 뛰어나다 하여 총표두가 되는 것이 아니었고 지리만 정확하게 안다하여 공을 인정받는 것도 아니었다.

천변만화하는 하늘과 어찌 바뀔지 모르는 도로와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을 데리고 속이 썩을 대로 썩은 뒤에야 원행(遠行)의 도(道)를 볼 수 있는 것이 표행이었으니, 길을 걷고 걸으면 사람은 도(道)를 통해 도(道)를 알게 되는 법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당태세 일행을 데리고 서안으로 가는 이팔문은 꽤나 솜씨좋은 표두였다.

그는 수레에 탄 사람들을 세심하게 살폈고, 일행의 앞으로 말을 타고 달려가 길의 사정을 보았고, 작은 촌락과 마을에 들려 솜씨 좋게 흥정하여 물과 음식을 마련할 수 있었다.

사내는 마차 앞에 작은 새장을 놓고 그 안에서 전서구(傳書鳩)를 키웠고, 그 전서구를 이용하여 다른 표두들과 소식을 교환하여 앞길의 위태로움을 파악하고 있었다.

“꽤 괜찮은 친구로구먼. 사형문만 아니었으면 더 좋았을 것인데.”

당태세는 이팔문의 솜씨에 감탄하면서도 슬쩍슬쩍 주변의 표사와 쟁자수, 그리고 수레에 타고 있는 이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수레 안에 타고 있는 이들은 모두 무공과는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면포와 비단을 싣고 서안으로 넘어가는 장사꾼이 대부분이었고, 개중 한 명은 서안에서 석류를 가져와 남경에서 팔겠다는 황당한 소리를 하는 사내도 있었다.

그리고 당태세의 눈길을 끈 이는 채 스물을 갓 넘긴 듯한 젊은 아낙과 그 품에 안겨 있는 너댓 살 되어 보이는 계집애였는데 아무리 봐도 비싼 돈을 주고 서안으로 가는 표행길에 오를만큼 넉넉해 보이지 않는 차림새였다.

“고향이 서안이고 어쩌다 남경에 시집을 왔는데 지난 전란 때 남편을 잃고 과부가 되었답니다. 그 와중에 어머니도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듣고 홀로 남은 아버지를 봉양하러 고향으로 돌아간다는군요.”

아룡에게서 사정을 들은 당태세는 젊은 시절 한 번도 내지 않았던 감탄사를 무심결에 내고 말았다. 늙어서 저절로 나오는 탄식이었다.

“어이구. 저런. 딱하기도 하지.”

붙임성이 좋은 아룡은 며칠 지나지 않아 수레 안의 승객들과 전부 친해졌고, 스스럼없이 그들과 어울릴 수 있었다.

그 덕에 당태세는 서안으로 유람가는 유복한 늙은이가 되어 있었고, 아룡 덕에 저녁에는 모두 같이 모여 식사를 할 때 스스럼없이 장로(長老)의 대우를 받을 수도 있었다.

“노사께서는 실로 복도 많으시네요. 서안은 좋은 곳이에요. 좀 메마른 것 같고 비가 적게 오긴 하지만 오래된 성읍과 궁궐이 남아있는 웅장하고 아름다운 성도입니다.”

서안이 고향인 아낙네가 웃으면서 당태세에게 말하자 당태세는 히죽 웃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여보았다.

“젊은 시절에 잠시 서안까지 가본 적은 있소이다. 당현장의 홍교사는 여전히 그 처마가 건재하며 숲처럼 울창하던 비림(碑林)은 그 서늘한 정취가 여전합니까?”

“네! 아직도 그대로입니다! 노사, 꼭 서안에 도착하시면 한번 식사대접을 하게 해주세요! 제 아버지도 비슷한 나이시거든요!”

눈을 반짝이며 아낙네가 말하자 당태세는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당운천이 살아 있었으면 이 정도 나이의 여인을 만나 품에 저렇게 작은 손주를 품고 있었을 터였다. 당태세는 자기도 모르게 코끝이 찡하게 울리며 가슴 한구석이 저려왔다.

아마 아룡이 슬쩍 옆구리를 찌르지 않았다면 아마 당태세는 오랜만에 아낙네와 함께 두런대며 밤새 긴 이야기를 나눴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나저나 저 표두 아래 있는 표사들은 영 인상이 안 좋긴 합니다. 숙부님, 쟁자수들은 그나마 일꾼같이 무뚝뚝하고 투박해 보이는데 말입니다.”

“그래, 나도 그걸 유심히 바라보는 중이었다.”

아룡의 말 그대로였다.

이번 원행길을 같이 하는 표사들은 표두 이팔문을 제외하고는 모두 인상이 날카롭고 살기를 띠고 있었다. 날붙이를 만지는 사람들은 원래 그 기운을 받는다고 하지만 그를 감안하더라도 꽤나 드세 보이는 인상들이었다.

특히나 부표두로 있는 메기수염의 사내는 시간이 날 때마다 힐끔거리며 사방을 흘겨보는데 그 모습은 사방을 경계하는 것인지 원군을 기다리는 것인지 알 도리가 없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당태세는 아룡의 생각보다는 쉽게 그들을 판단하고 있었다.

“사형표국이라고 이름을 거창하게 써 붙인 곳에 들어와 장사를 하는 이들인데 별개로 행동을 할 위인들은 아닐 것이다. 단지 저들이 일사불란하게 조직으로 움직이며 뭔가 음습한 일을 취한다면 그것이 문제가 되겠지.”

당태세가 소리죽여 말하자. 아룡은 침을 꿀꺽 삼키며 당태세는 겁먹은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럼 대체 언제쯤 저들이 움직인단 말입니까?”

당태세는 아룡의 표정을 보더니 말을 골라서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어차피 저들은 사형문의 제자들일 터이니 만약 당태세의 정체를 알게 된다면 일시에 들이닥쳐 그에게 칼을 들이밀지도 몰랐다.

저들의 무공수위가 어느 정도일지 당태세는 정확하게 갈음할 수 없었다. 하지만 대충 보이는 내공과 무위로 보건데 만약 사달이 벌어지면 당태세는 반 식경 안에 쟁자수까지 모두 도륙해버릴 수 있을 듯싶었다.

이팔문 정도는 따로 상대하더라도 다섯 합 안에 끝낼 수 있을 터였다.

허나 그렇게 된다면 당태세는 아룡 뿐 아니라 아무 관계없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무위를 보여야 할 것이고, 만약 잘못된다면 승객들의 안전을 위협할 수도 있었다. 굳이 저들이 마각을 드러내기 전까지 먼저 일을 벌릴 이유가 없었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로 걱정하지 말아라. 무두리. 일이 벌어진 다음에 해결하면 될 것이 아니냐.”

“그, 그야 그렇습죠.”

당태세는 슬쩍 입술을 올리더니 아룡에게 귓속말처럼 작은 소리로 소근 거렸다.

“나는 저 표사들보다 저 사람이 더 적응을 못 할 것 같아 걱정이로다.”

아룡은 당태세가 슬쩍 가리키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곳에는 황포를 걸쳐 입고 모닥불 곁에 앉아 미음같이 끓인 곡량을 먹고 있는 종리세리의 모습이 보였는데 사내는 승객들이나 쟁자수들의 사이에 끼지 않고 그 가운데 떨어진 곳에 앉아 홀로 밥을 먹고 있었다.

아룡이 물끄러미 그를 쳐다보다 슬쩍 인사를 하려 하자 종리세리는 되었다는 듯 살짝 손을 들어 아룡을 제지하였다. 아룡은 종리세리의 반응을 보더니 고개를 숙이고 투덜대는 말투로 당태세에게 말하였다.

“저 천호 나리는 어째 저리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혼자 있단 말입니까? 무슨 밀명을 받고 움직이는 사람이면 다른 이들하고 살갑게 다녀야 없던 이야기도 들을 수 있는 법인데 말입니다.”

“그런 면에서는 무두리 네가 종리천호보다 훨씬 낫구나. 네 말이 백번 옳다.”

아닌게아니라 종리세리는 표행에서도 유별나게 혼자 겉도는 중이었다. 당태세가 보아하니 종리세리는 군문(軍門)을 벗어난 환경에서 따로 움직이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것이 분명해보였다.

그나마 관복이라도 벗고, 뻔히 보이지만 칼을 봇짐 뒤에 숨긴 것까지는 어찌어찌 하였지만 자신이 지낸 환경과 품성을 사람들과 어울리게 할 정도의 깜냥은 못 되는 모양이었다.

어느 날은 말을 타고 수레 뒤에서 과묵하게 따라오는 종리세리를 보며 한 상인이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종리대인, 대인께서는 무슨 이유로 서안으로 가시는 겁니까?”

“그곳에 가서 친구에게 받을 물건이 있소이다.”

딱딱하고 짧은 어조에 아무리 봐도 ‘청부’를 받았다는 느낌이 물씬 나는 대답을 받고 나니 수레 안에 있는 상인들 중 누구도 더 이상 그에게 말을 거는 이가 없었다.

표두 이팔문도 영 맘에 들지 않는 손님이라는 눈치였지만 그나마 녹림도라도 만나면 같이 힘을 보태주지나 않을까 싶은 생각인지 종리세리를 건들지 않고 있었다.

“알게 뭐냐. 어차피 서안에 가면 서로 자신의 일을 할 터인데.”

당태세는 서안에 가서도 종리세리가 자신의 일을 봐 줄 것인지, 아니면 그곳에서 유독중을 참하면 자신에게 죄를 물을 것인지가 궁금했다.

지금까지는 팔대문파의 문주들이 모두 청의 법을 크든 작든 어겼기에 종리세리가 그를 묵과한다는 일말의 경계가 있었지만 서안에서는 그것이 통할 것인지 의문이었다.

조심성 없고 탐욕스럽기 그지없던 동성문주 황칠이조차 자취를 숨기고 일을 하는 지경이라면 무정금 유독중은 결코 꼬리 밟힐 짓은 하지 않을 터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다고 내 칼이 그 놈의 목을 빗겨가지는 않겠지만.”

당태세는 여전히 혼자 앉아있는 종리세리를 보며 다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천호와 결국 한바탕 검결을 다시 펼쳐야 할지도 모르지. 인연이 닿았다 생각했는데 아쉽구먼.”

마지막 탄식은 당태세의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날 밤, 다시 수레가 걸음을 멈추었을 때 당태세는 슬쩍 아룡이 우려낸 찻잔을 들고 목괴를 짚은 채 뚜벅뚜벅 종리세리에게 다가갔다.

종리세리는 당태세를 바라보며 왜 이쪽으로 오냐는 듯 눈살을 찌푸렸지만 당태세가 다가오는 것을 굳이 제지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모닥불 옆에 같이 앉은 당태세는 종리세리를 보며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굳이 이렇게 따라올 것이면 사람들하고 어울려 흰소리도 하고 웃기도 하고 하시오.”

“왜 그래야 하오?”

“사람들이 무서워하지 않는가.”

종리세리는 당태세의 말에 힐끗 사람들을 쳐다보더니만 고개를 끄덕이며 죽통에 들어있는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 모습을 보던 당태세가 한 마디를 덧붙였다.

“선무사라는 직책이 있다면서 어찌 그리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소이까.”

“선무사는 그릇된 것을 바로잡아 백성을 위무하는 것이지 이유없는 접촉은 금지되어 있소이다. 뇌물과 청탁을 막기 위해서요.”

“평소에도 갑옷을 두르고 다니시는구먼.”

당태세의 말에 종리세리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어느새 해는 지고 달은 기울어 하늘 위에 편만한 별들이 어우러지며 은한(銀漢)이 하늘을 가로질러 가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당태세는 슬쩍 종리세리를 보며 쓸쓸한 표정을 지어내었다.

“천호는 아직 살날이 창창하시니 인생의 고삐를 너무 바싹 죄지 마시구려. 그건 노인이 할 일이지.”

“내가 봤을 때 당문주는 오십년은 더 살 것 같소.”

종리세리가 불을 보며 무덤덤한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당태세는 피식 웃음을 띠고는 종리세리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두 사람은 서로를 대하는 것에서 시나브로 격식을 벗어나고 있었다.

당태세가 칼 같은 사내를 보면서 물음을 던졌다.

“기왕지사 이야기가 나온 것 하나만 더 물어봅시다. 대체 종리천호는 왜 나를 쫓는 거요?”

“뭔가 찾는 것이 있소이다.”

“그게 뭔지 들어볼 수 있겠소?”

당태세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종리세리를 바라보던 순간, 갑자기 당태세는 눈이 커지더니 차를 땅바닥에 내뱉었다.

종리세리가 그를 바라보자 당태세는 손을 불쑥 내밀었고 종리세리는 망설임 없이 자신의 죽통을 노인에게 건넸다.

죽통의 물을 한 모금 입안에 쏟아 부은 당태세는 쉴 새 없이 입 안을 물로 헹구더니만 다시 물을 땅바닥에 쏟아 부었다.

종리세리가 말없이 당태세의 얼굴을 주시하자 당태세는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죽통을 종리세리에게 돌려주었다.

“독(毒)이오?”

종리세리의 짧은 물음에 당태세 역시 짧게 고개를 다시 끄덕였다. 모닥불에 반사된 노인의 눈빛이 번득이기 시작했다. 당태세의 이가 히죽 드러났다.

“생각보다 빨리 움직이는구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