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견마지로-156화 (156/226)

156.  서안으로 (1)

길은 물과 뭍으로 이어져 서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천하를 이었다.

장강의 위는 굳건한 땅을 바탕으로 우마(牛馬)가 사람의 발을 대신하였고 강남의 많은 물은 배를 띄워 사통팔달하니 사람의 종적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당태세와 아룡은 다시 북으로 올라가는 중이었다.

소항의 운하를 타고 배를 몰아 북으로 올라간 뒤, 다시 옆으로 이어지는 길을 타고 남경으로 몸을 옮겼다. 당태세는 말없이 길을 따르고 있었다. 북적대는 남경의 성시를 가로질러 움직이면서도 당태세는 별다른 지시가 없었다.

아룡은 알아서 작은 객잔을 알아보고 그곳에 짐을 푸는 일을 도맡았다. 성에 들어갔을 때 아룡이 하는 일은 이제 묵시적으로 정해진 듯 보였다.

아룡은 과묵해진 당태세의 눈치를 열심히 살폈지만 굳이 당태세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당태세의 변한 분위기가 쉽게 말을 걸기도 어려웠지만 항주의 사건 이후 뭔가 당태세의 행보에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은 탓이기도 하였다.

아룡이 딱 한 번 궁금증이 일어 당태세에게 질문을 던진 적은 있었다.

“숙부님, 저희는 왜 서안으로 갑니까?”

“그곳에 볼 일이 있다.”

“아 예….”

그게 전부였다. 볼 일이 있다니 뭐라고 할 수도 없었고 가기 싫다고 떼를 쓸 수도 없었다.

분명 당태세는 나라의 일을 맡아 서안에 가는 것이 분명해 보였고, 숙부가 몸을 일으키면 어디선가 잠복해 있던 팔기가 아룡과 숙부를 도우러 바람처럼 나타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아룡은 세상천하 어디를 가든 두려울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단지 서안이라는 곳이 남경과는 한참 떨어져 있다는 것이 마음에 걸릴 뿐이었다.

“차라리 개봉에 있을 때 먼저 서안을 들를 것을 그랬습니다.”

“……동선이 그렇게 떨어지지는 않더구나. 어쩔 수 없었다.”

“아…. 그렇지요. 그러면 어쩔 수 없지요.”

당태세는 물끄러미 아룡을 보더니 지금과는 다르게 묵직하고 짧게 지시사항을 말했다.

“무두리. 네가 할 일이 있다.”

“예? 예! 마, 아니, 하..하명해주십시오!”

당태세의 눈이 아룡의 눈을 슬쩍 쳐다보았다. 지금과는 다르게 서늘한 한기가 밀려드는 것을 느끼며 아룡은 그 짧은 시간 숙부의 눈을 피할까 말까 수십 번 고민하고 있었다.

“시내에 나가 서안으로 나가는 가장 빠른 마편이 무엇인지 알아보아라. 그게 아니면 서안으로 사람들이 어찌 나가는지를 알아보라.”

그와 함께 당태세의 손에서 뭔가 빛나는 것이 훌쩍 날아왔다. 엉겁결에 아룡이 두 손을 펴서 그를 받아보자 손바닥 위에 쇄은이 한 조각 들어와 있었다.

“혹여 돌아가는 뜬소문 중에 황병아나 절영자라는 이름이 있는지를 알아보아라. 주루나 기루에 들러보면 알 수 있지 않겠느냐?”

“저…제가…그런 곳에 두루 다녀와도 되겠습니까?”

아룡이 당태세의 눈치를 살피며 말하자 갑자기 당태세가 피식 입에 미소를 짓더니 웃음을 지어보였다. 아룡은 당태세의 미소 하나에 천근 무게로 어깨 위에 있던 짐이 삽시간에 날아가는 것만 같았다.

“그냥 하던 대로 하거라. 무두리. 네가 언제 내 눈치를 봤느냐?”

“명을 받들겠습니다! 숙부!”

당태세의 말이 끝나자마자 아룡은 벌떡 일어나더니 두 손을 모아 공수로 인사하며 절도있는 모양새로 객잔을 빠져나갔다. 당태세는 아룡의 그런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고개를 짧게 저었다.

“이거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군.”

아룡을 내보내 사형문의 정보를 알아보라고 한 것은 어디까지나 곁가지에 해당되는 일이었다. 사형문의 존재가 사방에 퍼져 있으니 방비차원에서 하는 조사일 뿐이었고 지금 중요한 것은 서안으로 가는 가장 빠른 마필이었다.

황병아와 절영자가 도주한 마당이고, 황병아는 그가 순천문주 당태세라는 정체를 알고 있으니 사형문과 접점이 있다면 분명 그 이야기는 사형문 본문까지 전파가 될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황병아가 어디로 갔는지는 상관없지. 문제는 소문보다 빨리 가는 것일 뿐이지.”

그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서안에 있는 사형문주 유독중이었고, 유독중의 신변을 지키고 있을 사형문 십대제자들이었다.

사형문의 십대제자는 순천문주 당태세에게도 쉬운 적들은 아니었다. 당태세의 생각에 십대제자 하나하나의 무위는 떨어질지 모르지만 그 격차가 당태세와 그리 큰 것은 아닐 것 같았다.

사형문은 지금까지 줄기차게 그들의 무위를 간직하고 있었고, 제자들이 노쇠하면 그들을 새로운 신진고수로 갈아치우고 있었다. 이는 그들이 무문(武門)의 가치를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계속 날을 벼려내는 칼이라면 아무리 조심해도 지나치지 않다.”

무형쌍륜 은곽과 예봉취 백심주를 해치워 이제는 팔대제자로 줄어들었지만 세심하게 대비하는 것은 나쁠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들이 서안에만 몰려있다는 보장은 결코 없었다. 지금까지의 경험담에 의하면 십대제자는 사방 전역에 퍼져 있는 듯 보였다.

“사형문은 대체 무슨 꿍꿍이인가.”

당태세는 거기까지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흔들고 오른다리에 묶어둔 보철을 풀었다.

팽팽하게 제자리에 돌아왔던 다리가 갑옷을 벗자 다시 옆으로 비스듬히 돌아가면서 찌릿한 통증이 허리를 타고 올라왔다. 분명 통증은 경감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뒤틀린 다리는 결코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었다. 더불어 당태세의 인생 역시 복수행을 끝낸다 하더라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일은 없었다.

노인은 물끄러미 자신의 발을 바라보면서 침상에 앉아있었다. 한참동안 자신의 몸을 바라보던 노인의 입에서 짧은 말이 올라왔다.

“돌아갈 수 없으면 나아갈 뿐이다.”

***

“서안으로 가는 가장 빠른 방안이 무엇인가.”

남경의 역참(驛站) 책임자는 날카로운 콧수염만큼이나 날이 서 있는 눈매를 지닌 무관을 바라보며 자기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지금까지 십수 년간 이 일을 하면서 만나본 수많은 관리 중에 다섯 손가락에 들 만큼 매서운 사내였다.

“관도를 따라가실 요량이라면 북으로 계속 올라가시다가 숙주에서 소로를 타고 영성(永城)쪽으로 빠지는 관도를 타셔야 할 것입니다. 북경까지 가는 관도는 꽤 많이 마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만 숙주 쪽으로 가는 마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다른 소로는 없고? 보통 백성들이 다니는 길도 그러한가?”

“다른 길로 다니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무래도 초적(草賊)이 들끓는데 어찌 다른 곳으로 가겠습니까?”

날카로운 콧수염의 사내, 종리세리는 역참지기의 말을 들으며 슬쩍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는 자신의 품 안에 있는 보국장군의 지시서를 쓰다듬어 보았다.

충심으로 받들어 모신 명이었으나 이제는 아무런 효력이 없는 지시서였다. 이 곳에 적혀진 여덟 개의 문파 중 이미 여섯 개가 순천문주 당태세에 의해 불귀의 객이 된 상황이었다.

다음 목표는 분명 서안의 사형문이 될 터였다.

포일문은 사천에 있었고, 사천 성도는 서안보다 훨씬 먼 서쪽에 있었다. 노인이 서안으로 발길을 옮길 것은 자명한데, 종리세리는 여기에서 추적을 멈추고 다시 북경의 보국장군부로 돌아가야 하는 것인지를 잠시 고민하였다.

하지만 북경의 천호는 자신의 고민을 이내 마음속에서 지워버렸다. 어차피 보국장군부에서 자신을 믿고 명을 내린 자는 죽은 보국장군 한 사람뿐이었다. 이 일을 아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바꿔 생각하면 다른 사람이 맡아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당태세의 일과 팔대문파의 일을 아는 이가 천하에 또 누가 있겠는가? 보국장군과 같은 연배의 늙은 패륵들 뿐이었다. 그들이 지금 새롭게 영을 내겠는가? 오직 이 문제를 심각하게 대한 이는 보국장군 뿐이었다.

최소한 그는 자신을 신뢰한 이의 명을 어기고 싶지는 않았다. 설사 그가 더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영성으로 갈 수 있는 가장 빠른 마편을 준비해주게.”

“시일이 조금 걸리실 것입니다.”

역참지기는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종리세리의 시선이 부담스러운 듯 슬쩍 시선을 피하여 웅얼대다가 뭔가 생각났다는 듯 다시 종리세리를 바라보았다.

“공무(公務)가 아니시라면 방도가 하나 더 있긴 합니다. 아니, 사실 급한 공무로 오신 분들이라면 이 방법을 더 많이 쓰는 게 훨씬 낫지요.”

종리세리가 슬쩍 역참지기를 바라보며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실은, 꽤 규모가 되는 상단(商團)들이 남경에 몇 개가 있는데, 이들이 거리별로 사람과 화물의 운임을 받고 같이 동행하는 역할을 합니다. 조건만 맞고 사람만 많으면 언제든지 떠나지요.”

“상단이라?”

역참지기의 말을 들은 종리세리의 눈이 반짝였다.

***

“표국(鏢局)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으십니까?”

아룡은 저녁 해가 떨어지기도 전에 객잔으로 달려와 당태세에게 자신이 알아낸 것을 보고하기 시작했다. 얼굴이 슬쩍 붉어지긴 했지만 제대로 술자리에서 술도 안 마시고 온 것 같았다.

아룡은 의욕이 과한 것이 어째 불안하기 그지없었지만 그래도 당태세가 말한 것을 충실히 수행한 듯 보였다. 당태세는 슬쩍 이마를 만지작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옛 생각을 반추하였다.

“그러고 보니 옛 명대 말에 상단이 먼 거리를 오가면서 사람들을 붙였던 것이 생각나긴 하는구나. 하지만 그 일은 다 끊긴 줄 알았는데?”

당태세의 말에 아룡이 고개를 저으면서 모르는 말 말라는 듯 손을 흔들어보였다.

“아닙니다. 있어요. 지금 남경에서 서안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표국하고 같이 길을 떠나는 겁니다. 물론 관도를 타고 움직이지만 역참에서 쉬는 게 아니라 표두가 정하는 곳에서 먹고 쉬면서 빠르게 길을 가는 것이지요. 그렇게 길을 타고가면 보름 안짝에 서안까지 도착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표국이라. 내 그 생각까지는 못해 봤구나.”

“사람만 어느 정도 규모로 모이면 바로 출발 가능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출발 가능한 표국도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래? 남경에서 서안으로 바로 갈 수 있다고?”

“사형표국이라는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표국만이 여기서 서안까지 움직입니다. 다른 곳은 그렇게 먼 거리까지는 가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사형표국!”

당태세는 자기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었다. 이제야 모든 것에 실마리가 풀리는 것 같았다. 표국이라. 그래서 십대제자들이 사방에 퍼져 있었구나.

사형문이 하려는 것은 표국의 일이었나. 그렇다면 지금 서안에 있는 것은 표국으로 일하는 사형문의 총집산이 되는 것인가. 아니면 사형문주 유독중도 표국을 운영하며 천하 사방을 떠도는 것인가.

그때였다. 아룡의 이어지는 말이 당태세를 상념에서 벗어나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만들었다.

“그리고 술집에서 사형표국에 대한 대화를 하다 얻어걸린 이야기인데…..”

“음?”

“특이하게, 사람들도 모이지 않았는데 일단의 사람들이 서안으로 엊그저께 먼저 떠난 곳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많아 봤자 두서너 명인데 그 상태로는 절대 호위를 붙일 이문이 안 남아 보내지 않는다고 하였거든요.”

“그런데 떠났다니?”

“검은 옷을 입은 미공자와 백의의 경장미인이 화급하게 표두 하나를 동행하고 먼저 떠났다고…아무래도 남경이나 소항의 공경(公卿) 영애가 사내와 눈이 맞아 도주하는 것 같다고 수군대더란 말입니다.”

“흑의의 남자와 백의의 여인?”

당태세가 눈을 크게 뜨고 되묻자 아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 이들 아니겠습니까? 국적(國賊) 황병아와 그 호법 말입니다.”

아룡의 말에 노인은 입을 다물고 이마를 만지작거리더니 짧은 말을 내 뱉았다. 당태세는 어느 때보다 긴장한 표적이 역력했다.

“생각보다 빨리 움직여야 할 것 같구나.”

“네?”

“독사가 굴에 들어가기 전에.”

아룡은 당태세의 마지막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지만 그 스산한 말에 자기도 모르게 등을 부르르 떨었다. 지금까지 몰랐던 자신의 여행이 어떤 행로인지를 처음으로 자각하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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