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견마지로-150화 (150/226)

150.  절강 항주 만성 (2)

찌는 듯한 더위는 해가 뜨기 전부터 시작되었다. 사람들의 자취가 보도에 닿기 전부터 길거리는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물과 나무가 많기로 소문난 항주의 거리였지만 여름철의 기운은 결코 사람들에게 거리에서 쉴 틈을 주지 않으려는 듯 싶었다.

당태세는 북문의 앞으로 나아가 성문의 옆으로 들어오는 장대한 운하의 흐름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동성문주 황칠이의 동생, 황하사(黃河蛇) 황칠삼이 팔짱을 낀 채 들어오는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황칠삼은 슬쩍 목괴를 낀 당태세를 바라보다가 인상을 쓰며 고개를 갸웃거리기를 반복하였다.

당태세가 황삼을 바라보고 살짝 고개를 숙여 목례를 하자 황삼 역시 떨떠름한 표정을 짓더니 그에게 말을 걸었다.

“굳이 배를 타고 선적하는 모습을 보시겠다니…그럴 필요까진 없는데 말이오.”

“그래도 백문이 불여일견 아니겠습니까? 제 돈이 들어가는 일인데 한 번은 봐야지요.”

“허…거 참…묘할세.”

“뭐가 말입니까?”

황삼은 멋적은 웃음대신 인상을 쓰며 이를 드러내었다.

사내는 기분이 좋거나 머쓱할 때 웃음을 짓지 않는 듯 보였다. 군살 하나 없이 말라 근골이 도드라진 초로의 사내는 늘 화가 나 있는 표정이었다.

“장대인의 말투나 행색이 예전에 알던 사람과 비슷한데 하는 말씀은 태어날 때부터 장사꾼이시니 묘해서 하는 말이오.”

“허, 그렇습니까? 그 사람도 장사꾼이었습니까?”

“아니오. 못 들을 걸로 하시오. 좋은 기억은 아니었으니까.”

당태세는 슬쩍 황삼을 쳐다보고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박명을 뚫고 검고 낮은 중선들이 항주의 성벽을 향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배가 보이자 황삼은 당태세에게서 주의를 돌려 슬쩍 주변의 일꾼들을 인솔하고 들어오는 배를 강가에 솜씨 좋게 접안시키고 사람들을 태웠다.

당태세 역시 목괴를 짚고 훌쩍 배 안으로 들어갔다.

배는 길고 낮았으며,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깊게 속이 파여 있었다. 이미 배 안에는 싯누런 보리가 뱃전에 이를 정도로 가득 실렸는데, 그런 배가 세 척이 한꺼번에 조를 이루어 내려가는 중이었다.

“빨리 갑시다. 해가 뜨기 전에 만성에 보리를 하역해야하오.”

“무슨 일이오? 동성문이 이리 일을 서두르는 경우는 처음 봤는데….”

검은 옷을 두른 배의 선장은 슬쩍 당태세와 동성문의 무리를 보고 중얼대자 황삼은 재빠르게 소리를 죽여 말하였다.

“술도가에 문제가 생겼소. 철적귀성이 사고를 당했거든. 빨리 재료를 내려주어야 다른 사람들이 재고를 맞출 수 있어요.”

“우리와 관계는 없는 일이겠지요?”

“선장과 사형문에는 털끝만큼도 해가 되지 않을거요.”

당태세는 배에 가득 실린 보리를 보면서 귀로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사형문은 약방의 감초였다. 무창부터 지금까지 강을 따라 움직이는 모든 성도에서 사형문의 손길이 안 닿은 곳이 없었다.

당태세는 이쯤 되자 사형문주 유독중의 복안이 대체 무엇이며 그 뜻이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동성문의 이번 일도 사형문의 안배가 들어가 있는 것은 아닐까?’

당태세가 곰곰이 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배를 몰던 선장의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만성에 들어간다! 모두 물건에서 손을 떼어라! 제자리에 서! 고개를 들어 얼굴을 보이라!”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하던 일을 멈추고 고개를 들고 허리를 폈다. 당태세 역시 목괴를 옆에 세우고 몸을 펴고 고개를 들었다. 얼굴 위로 거대한 성벽 아래 뚫린 수문이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다.

시커먼 돌담 안으로 배가 들어가자 사방이 칠흑 같은 어둠으로 변하였는데, 수문의 안쪽 쇠창살 사이로 들어오는 배를 내려다보는 팔기군의 번들거리는 눈동자와 번쩍이는 창날이 보였다.

두꺼운 수문을 통과하자 항주의 여느 운하와 다름없는 정경이 다시 당태세의 앞에 펼쳐지는데, 양 쪽으로 보이는 병영과 사방을 둘러싼 성벽은 지금 당태세가 만성(滿城)안으로 들어왔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부두 접안!”

선장의 말과 함께 세 척의 커다란 세곡선이 그대로 옆으로 붙으며 부두 옆에 일렬로 서 있는 군량고 앞에 멈춰섰다. 부두에서 내리자마자 곡량을 내릴 수 있도록 만들어진 부두였다.

실로 만성의 만주족들은 하루하루를 전쟁을 대비하고 사는 족속이었다. 당태세도 걸쳐진 나무판자를 타고 위로 올라와 보리를 내리고 있는 사형문의 사내들과 멀리 초소에서 이들을 감시하며 활을 들고 있는 만주족들을 바라보았다.

누구 하나 자신의 일에서 시선을 떼게 되면 그때부터 사달이 날 것이었다. 누구 하나 필요없는 말을 하는 이가 없었다.

아직 채 해가 넘어오지 못한 만성의 성벽은 검은 그림자를 멀리 드리운 채 당태세를 노려보고 있었다.

당태세는 슬쩍 주변을 돌아보았다. 아직 어떤 낌새도 보이지 않았다. 천호 종리세리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지금 그가 동문 어귀에서 아룡을 만나 장부를 받았는지 아닌지 알 도리도 없었다. 당태세는 자기도 모르게 목이 타기 시작했다.

“어떻소. 실제로 만성에 들어와 보니 뭔가 다르오?”

어느새 뒤쪽에서 건들대며 걸어오던 황삼이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당태세는 고개를 끄덕였다.

“실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규모가 크구려. 놀랐소이다. 만성도 놀랍구려.”

“놀랍지. 놀라운 놈들이지. 만주족이란 것들은.”

황삼이 메마른 원숭이 같은 얼굴을 들어 당태세를 바라보며 희끗한 구레나룻을 쓰다듬었다.

사내의 눈동자는 당태세에게서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차가우면서도 날카로운 황삼의 시선이 천천히 당태세의 전신을 훑어 내려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목소리가 너무 흡사해. 얼굴도 비슷하고.”

“누구와 말인가.”

당태세가 슬쩍 눈초리를 흘기며 성벽과 돈대의 팔기들을 쳐다보았다. 아직 어떤 움직임도 없었다. 종리세리는 기척도 찾을 수 없었다.

“십 몇 년 전에 죽었던 사람이 그대와 너무나도 흡사하단 말이야. 사람은 별로였지만 싸움질은 꽤 잘하던 친구였지.”

열심히 사형문의 사내들은 보리를 퍼 담으며 군량고로 개미떼처럼 오와 열을 지어 움직이고 있었다.

군량고를 감시하던 청의 병사들은 이제 슬쩍 동녘 하늘을 보며 교대시간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황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까 보니 그 목발 없이도 잘 움직이는 것 같던데? 모두 고개를 들라고 했을 때 말이야. 두 발로 뱃전을 디디고 서 있었지?”

황삼의 얼굴이 다시 당태세의 앞으로 다가왔다. 황삼은 당태세의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이를 드러냈다. 예의 화가 난 듯한 표정 그대로였다.

“난 눈썰미가 좋아. 한 번 본 사람은 절대 잊지 않아. 목소리도 잊지 않지. 그 사람을 마지막으로 본 게 무너지는 북경의 성벽이었어도 말이야. 지금까지 그 사람이 죽었다고 생각했어도 말이야! 내 눈을 속일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어. 무슨 소리인지 알아?”

“……잘 보았구나. 황하사 황칠삼.”

당태세의 나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황삼의 입이 부르르 떨리더니 히죽 위로 입술이 올라갔다. 험악하게 인상을 구긴 사내는 자기 딴에는 웃음을 짓는 것 같았다.

“역시 그랬지! 그랬어. 이 얼마 만이오? 순천문주 귀린갈 당태세!”

“너와 네 형을 잡으려고 십칠 년만에 지옥에서 올라왔다. 황하사 황칠삼.”

“이거 고마운걸. 그런데 어쩌나? 이곳에서 칼이라도 뽑았다간 우리 둘 다 고슴도치가 될 터인데?”

당태세가 황삼의 말을 듣고 이를 드러내며 히죽 웃어보였다.

“조용한 곳으로 가자. 황삼.”

“싫은데? 난 보리를 다 내리고 배 안에서 너를 죽일거야. 사형문과 동성문의 사람이 여기 몇이나 모여 있는지 아느냐? 백 명이다. 아무리 귀린갈이라도 백 명을 다 죽일 수는 없어. 그것도 배 안에서!”

당태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여기 맨손으로 서 있는 너만 죽이겠다.”

“뭐?”

“나는 항주 만성에 아는 고관이 있거든. 서호에서 나를 보지 않았던가? 나는 잡혀가지 않는다. 이곳은 한인에게는 도살장이나 마찬가지야.”

황삼의 표정이 슬쩍 변했다. 황삼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움직이더니만 혀가 연신 들락거리며 입술을 훔쳤다.

당태세의 눈을 바라보며 사내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를 확인하려 애쓰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마른 원숭이 같은 얼굴에 주름이 잡히고 이가 드러났다. 그는 활짝 웃고 있었다.

진짜 웃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웃기지마, 당태세. 이 동네는 내가 십 년을 드나든 곳이야! 어디서 왕 노릇을 하려 드는 거지? 지금 따라와라. 아니면 죽을 테니까.”

황삼은 이를 드러내더니 천천히 몸을 돌려 배를 향하였다. 외통수였다.

당태세는 황칠삼이 이 정도로 교활하고 자신의 계획을 손바닥에 올려놓듯이 볼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하였다. 노인은 자기도 모르게 이를 악물고 자신의 목괴를 손에 꽉 쥐었다.

지금 칼을 뽑아 들거나 목괴로 황삼의 머리통을 날려버리면 말 그대로 팔기의 화살에 맞아 고슴도치가 되어 죽을 터였다. 그렇다고 그대로 배에 올라타게 된다면 배 안에서 백여 명의 사내들과 생사결을 벌일 지경이었다.

황삼이 뱃전에 서서 당태세를 보며 이를 드러내었다.

“걱정마라. 보리를 다 내리기 전까지는 죽이지 않을 테니. 이곳은 내 밥벌이를 하는 곳이거든. 이곳을 피로 물들이고 싶지는 않아.”

“황삼, 너는 늘 말이 많구나. 북경의 성문을 방어하자니까 구구절절 변명으로 일관하던 네 소싯적이 생각나는구나.”

황삼의 눈이 날카롭게 빛나더니 드러낸 이를 부드득 갈면서 사내를 노려보았다.

“그래서, 그 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건가? 그 시절로 돌아가 다시 황제하고 같이 죽기라도 하시게?”

“아니.”

당태세는 고개를 저었다. 당태세는 보루와 성루에 늘어선 팔기의 깃발과 기인들을 보더니 천천히 입가에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너는 사태파악을 못 한다는 거지. 그때 네놈들이 서 있던 곳은 가장 수비하기 좋았던 곳이거든.”

“뭐?”

“지금도 역시나 너는 기회를 놓친거야.”

“그게 무슨 헛소리….”

순간 사방의 침묵을 한 번에 깨버리는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사방을 울렸다.

날카로운 만주어가 병사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것과 동시에 한 명의 인영이 성루를 타고 뛰어 들어오며 배에서 하역을 하고 있는 사내들을 보고 또렷한 한어를 내뱉었다.

“모든 사람들은 동작을 멈춰라! 나는 북경 보국장군부의 선무사 천호 종리세리다! 지금부터 관곡을 횡령한 자를 추포할 것이니 모두 하던 일을 멈추어라!”

순간 모든 사람의 눈이 종리세리를 향하는 순간, 얼굴이 하얗게 질린 황삼이 당태세와 종리세리를 번갈아 보더니 이를 한껏 드러내고 선장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출항! 선장! 배를 띄워!”

“뭐라고요?”

“띄워라! 안 그러면 개죽음이야! 다 죽는다! 모두 승선하라!”

당태세가 황삼의 말을 듣는 것과 동시에 부두를 박차고 배를 향해 몸을 날렸다.

사내들의 모습을 보고 있던 종리세리의 입에서 날카로운 만주어 구령이 튀어나왔다. 팔기들의 손이 일제히 시위를 향해 올라갔다.

당태세의 발이 부두를 박차고 검은 뱃전으로 튀어드는 순간 수많은 화살이 동시에 배와 위에서 일하고 있는 인부들을 향해 쏟아졌다.

일시에 사방이 아수라장이 되며 비명이 터져 나왔다.

배가 기우뚱하더니 출렁이며 부두에서 멀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거대한 세곡선은 선장의 구령 하에 천천히 운하를 벗어나는 중이었다.

쏟아지는 화살이 탁탁 소리를 내며 세곡선의 사방에 박히는데, 당태세는 화살을 피하며 세곡선의 깊은 선창 아래로 몸을 피하였다.

그 때였다. 어두운 선창 안에서 번득이는 빛살 하나가 당태세의 목을 향해 찔러 들어왔다.

당태세는 반사적으로 몸을 숙이며 목괴를 들어 들어오는 빛살을 퉁기고 선창의 아래로 구르듯 움직였다.

번득이는 칼날을 휘두른 것은 다름 아닌 황하사 황칠삼이었다.

그의 손에는 가늘고 긴 쌍수대(雙手帶)가 들려 있었는데, 쌀자루를 끊으려고 배 안에 넣어둔 물건은 분명 아니었다.

황칠삼의 눈이 번득이며 당태세의 목을 향해 칼날을 날리는 순간, 당태세의 목괴가 들어오는 칼날을 막으며 빙글 한 바퀴를 돌아 그대로 황삼의 오금을 걸어버렸다.

순간 황삼의 몸이 그대로 배 안에서 한 바퀴 공중제비를 넘으며 바닥에 처박혔고, 깡마른 원숭이 같은 얼굴은 고통에 일그러지며 신음을 내뱉었다.

“제대로 칼을 써 본 것이 오래된 것 같구나. 황하사.”

“시끄럽다 당태세!”

순산 뱃전이 출렁대며 몸이 뒤로 쏠렸다. 지금 세곡선들은 만성을 흐르는 운하를 타고 필사적으로 도주를 하는 중이었다.

배의 사방에서 화살 꽂히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멀리서 알 수 없는 새된 만주어가 쏟아지는데, 배를 운하의 양 쪽에 머리를 들이받아 가면서도 기를 쓰고 남쪽으로 내려가는 중이었다.

“죽어!”

순간 황삼의 쌍수대가 선실 안을 휘저으며 당태세를 향해 움직였다. 당태세는 목괴를 들어 들어오는 쌍수대를 가볍게 막아내고 인상을 쓰고 있는 황삼의 옆구리를 향해 목괴를 내질렀다.

헉하는 소리와 함께 황삼이 그대로 제자리에 주저앉자 당태세는 목괴를 거꾸로 돌려 잡으며 황삼을 보고 나직하게 말하였다.

“지옥에 가거든 당태세가 보냈다고 명왕께 이르거라.”

그때였다. 살 맞은 멧돼지처럼 사방을 들이받으며 내려가던 세곡선이 운하의 옆부분을 모질게 들이받았다. 쾅하는 소리와 함께 세곡선이 부서질 듯 흔들렸고, 서 있던 당태세는 그대로 옆으로 날아가며 선실 바닥에 그대로 처박혔다.

목괴가 손을 벗어나 뱃전을 구르며 멀리 떨어져나갔다.

당태세의 눈이 휘둥그레지는데, 저 멀리서 주저앉아있던 황삼이 다시 쌍수대를 움켜쥐고는 쓰러진 당태세를 향해 돌진해왔다. 채 몸을 돌릴 틈조차 없었다.

당태세를 향해 다가오는 황삼의 일그러진 얼굴에 한줄기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황삼의 쌍수대가 허공을 베며 그 여세를 몰아 당태세의 머리를 일도양단 하려는 순간, 당태세는 몸을 비틀며 쌍수대가 노리는 곳에서 벗어나 뱃전으로 몸을 최대한 붙인 채 사지에서 빠져나왔다.

바들대던 황삼의 두 손은 마치 무거운 짐을 내려놓듯 쌍수대를 천천히 떨구더니 목을 움켜쥐었다.

자신의 목을 쥔 채로 혀를 죽 빼고 당태세를 바라본 황삼의 표정은 경악 그 자체였다.

“대체…이게…뭐…당태세….”

“백사은침(白絲銀鍼)이다. 그 비싼 물건을 황하사 너 같은 놈에게 쓸 줄이야.”

황하사는 눈을 부릅뜨고 당태세를 향해 비척비척 걸어오는데, 이미 호흡이 끊어져 숨을 쉬지 못하는 것 같았다. 컥컥대는 상대의 호흡을 보고 있던 당태세는 한숨을 쉬더니 입맛을 다셨다.

“네 놈은 죽어서도 죄과를 인정 못하겠지. 네놈의 형도 그럴테고.”

당태세는 굴러다니던 목괴를 잡자마자 소도를 뽑아 일격에 황하사 황삼의 목을 베어버렸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깔끔한 동작과 함께 황삼의 몸이 그대로 선실 아래 처박혔다.

당태세는 쓰러진 황하사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로 뚜벅뚜벅 사다리를 타고 선실 위로 몸을 드러냈다. 시원한 바람이 노인의 얼굴을 후려치는 것과 동시에 귀 옆으로 화살이 스치고 지나갔다.

“젠장맞을!”

이미 갑판 위에는 활을 맞고 쓰러진 사형문도와 동성문도들이 즐비한데, 배는 선장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는 지경으로 마구잡이로 앞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당태세는 자신의 눈 앞으로 만성이 순식간에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분명 저 성벽은 남쪽의 수문(水門)이 있는 곳일 터였다. 당태세는 이를 악물고는 팔과 허리에 힘을 주고 재빠르게 선실에서 갑판으로 튀어 올라왔다.

순간, 당태세는 자신의 눈 앞에 보이는 광경을 보며 깜짝 놀랐다.

고슴도치나 다름없는 세곡선 세 대에 탄 사내들이 모두 노와 삿대에 매달려 배를 앞으로 보내는 중인데, 숱한 사람이 화살을 맞아 운하로 굴러 떨어지면서도 누구 하나 삿대를 손에서 놓는 이가 없었다.

“빨리 저어라! 못 빠져나가면 우린 모두 죽는다!”

선장의 절규에 가까운 외침이 들려왔다.

“수문이 내려오기 전에 통과해야 한단 말이다!”

순간, 당태세의 눈앞으로 거대한 수문이 거짓말처럼 튀어나왔다. 그리고 수문 위에 달려있던 쇠창살이 조금씩 아래를 향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이런 망할!”

당태세의 입에서도 욕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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