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견마지로-130화 (130/226)

130. 타뢰대 (11)

당태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순간 수십수백 개의 공방의 수가 한가지로 수렴하며 예봉취의 공격이 무엇인지 단박에 알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을 머릿속으로 판단해서 대처할 시간이 없었다.

당태세는 이를 악물고 그 자리에 몸을 뒤틀며 들어오는 예봉취의 장을 팔뚝으로 막아내었다. 견대모 등순이 쓰던 철비박의 응용이었다.

하지만 그와 함께 당태세의 등이 훤히 예봉취의 앞으로 고스란히 드러났고, 예봉취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순식간에 묵직한 체중이 실린 발차기가 당태세의 옆구리로 들어왔다. 숨이 턱 막히며 온몸의 통각이 터지는 듯한 고통이 몰려 들어왔다.

당태세는 어느새 자신이 허공을 날며 바닥으로 처박히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당태세는 이를 악물고 몸을 공중에서 뒤틀어 겨우 타뢰대의 바닥에 팔다리부터 떨어지는 데 성공했다.

순간 사람들 사이에서 환호성이 터지며 괴성이 용솟음쳤다. 사람들은 예봉취 백심주가 북경 무명수를 때려눕힌다는 것에 내심 쾌재를 부르고 있는 듯 보였다.

특히나 몇몇 곳에 몰려있는 아낙들은 소문주 왕보휘를 때려눕힌 무명수가 한 방에 나가 떨어지자 흥분하며 예봉취에게 비명에 가까운 환호성을 질러대었다.

“무명수를 없애버려!”

“저 가면을 부숴버려요!”

단단히 밉보였구먼.

당태세는 가면 속에서 피식 웃음이 밀려나오는 것을 참으며 몸을 일으켰다.

발에 차인 등쪽에서 욱씬대는 통증이 밀려왔다. 다행히 뼈는 상하지 않았지만 통증은 비무가 끝날 때까지 계속될 것 같았다. 그게 아니라면 예봉취에게 맞아 죽을 때까지 계속 될지도 몰랐다.

비망권의 내가중수가 어찌 비망권만의 물건이랴.

권의 극의에 도달한 자는 결국 촌경과 탄경, 척경에 이르게 되는 것이고 자신의 내력으로 상대의 내부를 파괴할 수 있는 법이었다. 결국 예봉취 백심주의 절초는 천붕괴산의 강력이 들어간 일권(一拳)이 아니라 내가중수의 일격으로 사람의 명을 끊는 일장(一掌)이었다.

예봉취는 지금까지 이 기술을 숨기기 위해 강권을 쓴 것이나 다름없었다.

“나만큼이나 교활한 놈.”

당태세는 다시 자세를 잡으며 자신의 주먹을 모두 펴고 장을 뻗어 예봉취 백심주를 대하였다. 자신의 앞을 막는 모든 것을 헤치고 나아가겠다는 결의가 충천한 자세였다.

예봉취 역시 자신의 속내를 들킨 이상 권을 고집하지 않았다. 그 역시 두 손을 곧게 편 채 마치 찾아오는 손님을 홀대하지 않겠다는 듯한 자세를 취하였다.

둘 다 준비는 끝난 셈이었다. 당태세는 슬쩍 고개를 숙이고 크게 한 걸음을 걸어 들어가며 백심주의 가슴으로 정확하게 일장을 밀어넣었다. 백심주 역시 장을 뻗어 들어오는 손을 막아내며 자신의 장을 뿌렸다.

당태세의 손이 장을 걷어 올리자 백심주의 손바닥이 다시 옆으로 밀려 들어왔고, 당태세의 팔꿈치가 들어오는 장을 막으며 다시 한번 몸을 틀어 일장을 백심주의 어깨로 날리자 백심주는 손을 위로 올리며 들어오는 장의 기세를 죽여버렸다.

그와 함께 두 사람의 몸도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맨 처음 비무를 시작했을 때와 같이 두 사람의 몸이 서로의 방향에 맞춰 같이 돌아가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 때의 느낌과 지금의 느낌은 사뭇 달랐다.

맨 처음의 합(合)은 권과 권이 만나 기(氣)와 기(氣)의 강약으로 승부를 가름하던 투박함이라면 지금은 서로가 가지고 있는 내공과 내공을 가지삼아 서로의 빈틈을 찾아 힘을 뿌리뻗고 한 번에 생사를 꽃피우려는 몸짓이었다.

두 사람은 부드럽게 움직이며 쉴 새 없이 손을 뻗어 상대의 몸을 격타하였지만 한 번도 제대로 된 유효타를 내지 못한 채 전후좌우로 움직이는 중이었다. 마치 회오리바람이 타뢰대 한가운데 불어와 두 사람을 돌리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당태세의 쌍장이 앞으로 뻗어 들어가자 백심주의 두 손이 쌍장을 붙잡고 내공으로 뒤로 튕겨내었다.

당태세가 슬쩍 몸을 뒤로 뺐다가 다시 허리의 힘으로 출렁이며 앞으로 장을 내뻗자, 백심주는 들어오는 장을 무릎으로 걷어 올리고 위에서 아래로 내리치듯 장을 당태세의 어깨에 뿌렸다.

들어오는 장을 다시 팔뚝으로 쳐내며 자신의 장을 백심주에게 뿌린 당태세는 연이어 들어오는 백심주의 공격에 자신의 공세를 거두고 손을 가슴 앞에서 회전시켜 들어오는 적의 손을 거둬내었다.

일진일퇴, 누구 하나 승기를 잡은 이가 없었다.

“이대로라면 젊은 놈이 이기겠어.”

순간 당태세는 이를 악물더니 그대로 장을 밀어붙이며 자신의 몸을 다시 바싹 백심주의 앞으로 밀어붙였다. 순간 백심주의 쌍장이 바람을 뚫고 부드럽게, 하지만 살기를 가득 품고 당태세의 가슴을 향해 밀고 들어왔다.

순간 당태세의 두 손이 백심주의 두 손을 움켜쥐고는 그대로 자신의 가슴 쪽으로 확 끌어당겼다.

백심주의 눈이 휘둥그레지는 순간, 당태세의 손이 그대로 위로 젖혀지며 팔꿈치가 화살처럼 앞으로 뻗으며 주(肘)가 되어 백심주의 가슴팍에 꽂혔다.

백심주가 이를 드러내며 재빠르게 무릎으로 당태세의 팔꿈치를 막아내었다. 하지만 화살이 되었던 팔꿈치는 다시 재빠르게 펴지며 그대로 죽 뻗은 일장(一掌)이 되어 백심주의 아래턱에 그대로 꽂혔다.

정확한 타격감이 당태세의 손에 전해졌다. 순간 다리가 풀리며 비틀대는 백심주의 가슴을 향해 당태세의 좌수가 그대로 뻗어 들어가 가슴팍을 손바닥으로 가볍게 쳐올렸다. 실로 눈 한번 깜짝할 사이의 일이었다.

예봉취 백심주는 그대로 뒤로 물러서더니 세 발짝을 뒤로 물러선 뒤 한쪽 무릎을 풀썩 꿇었다. 어느새 사내의 입에서 가느다란 핏줄기가 내비치고 있었다.

백심주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자신의 턱을 어루만지고 가슴을 누르더니만 당태세를 노려보았다. 사내의 입이 열리며 목쉰 소리가 흘러나왔다.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공부요.”

“자네 역시.”

예봉취는 당태세의 말을 듣고 눈을 감더니 그대로 고개를 떨구었다. 사내의 껑충한 몸이 천천히 무너지며 타뢰대에 몸을 눕혔다.

늘어진 예봉취 백심주의 몸이 미동도 하지 않고 그대로 무대 위에 쓰러지자 장내의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하는데, 재빠르게 들어온 백룡문도들이 쓰러진 예봉취를 옮기고 장내의 소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예의 사회를 주관하던 백룡문도가 좌중을 둘러보며 큰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승자는 북경 무명수! 북경 무명수가 이번 비무초친의 우승자가 되었음을 선언합니다! 북경 무명수는 어서 문주께서 주는 상을 받으십시오!”

사람이 아닌 상을 받는 것이 어찌 비무초친이라 할 수 있겠냐마는, 당태세는 쓰다달다 말도 없이 손을 들어 예를 표하고는 단상 위의 사내들을 바라보았다.

쓸개라도 씹은 듯한 표정의 위장군은 그렇다 치더라도, 옆에 앉은 백룡문주는 세상 관심 없다는 듯 심드렁한 표정으로 가면 쓴 사내를 내려다보는 중이었다.

백룡문주가 자신의 앞에 갖다 놓은 궤짝을 북경 무명수에게 가져가 주라는 시늉을 하자 문도들이 움직였다. 소주성부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비무초친의 마무리치고는 너무나도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하나둘 모여 있던 사람들 역시 입맛을 다시며 타뢰대를 떠나고, 투덜대기 시작하는데, 그 때, 타뢰대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하나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쟁쟁하니 맑은소리도 아니었고, 투박하고 쉰, 어찌보며 거칠기 그지없는 목소리였지만 중후한 내공이 실린 그 목소리는 넓고 깊게 퍼져나가 타뢰대를 메웠던 관중들의 귀에 쏙쏙 들이박히고 있었다.

다름 아닌 북경 무명수의 목소리였다.

“만장하신 성민들이여, 소주의 선량한 백성들이여! 나 북경 무명수가 오늘 이 자리에서 고변할 것이 있소이다! 나는 이 자리에 위소저를 얻으러 나온 것이 아니오!”

흥미를 잃었던 관중들의 고개가 일제히 타뢰대로 다시 쏠렸다. 단상 위의 사내들도 다시 타뢰대의 사내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나는 이곳에 사연을 밝히러 왔소이다! 이곳에 포한을 풀러 온 것이외다! 나는 이곳에서 세 소저의 원한을 풀러 왔소이다! 그 첫째는 십자포의 거부였던 소씨 가문의 소소저이며!”

순간 타뢰대를 둘러싸고 있던 관중들 사이에서 기묘한 웅성거림이 일기 시작했다.

“그 둘째는 지난 전란 때 소주를 위해 싸우다 죽은 협객 이씨와 그 따님 이소저에 대한 것이고! 셋째는 여러분이 익히 아는 동문의 부소저에 대한 이야기요!”

순간 어디선가 올게 왔구나 라는 소리가 들리며 마치 벌집을 건드린 것 같은 웅웅댐이 사방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타뢰대 위의 복면사내는 우렁찬 목소리로 자신의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 세 여인은 재지가 뛰어나고 미색이 출중하여 소주 전역에 그 아름다운 이름이 전해진다 들었소! 그런데 이들이 모두 꽃다운 나이에 아쉽게 요절하고, 심지어는 그 집안까지 같이 멸문한 곳도 있다는 소문이 전해지고 있소! 나는 소주를 드나들다 그들의 억울한 사연을 전해 듣고 발분(發奮)하여 성도의 백성 여러분께 알리고자 이 비무에 선 것이오! 나는 오늘 여러분께 그들의 원수를 고변하고자 하오이다!”

포증의 가면을 쓰고 검은 장포를 두른 사내의 걸걸한 목소리와 당당한 태도는 실로 죽어 사라진 포청천이 다시 명부에서 올라와 재판을 하는 것 같았다.

모든 사람들의 눈과 귀는 이제 북경 무명수, 아니 포증 가면을 쓴 고변자에게 쏠리니 검은 복면의 사내는 손가락을 들어 단상 위의 백룡문주를 힘 있게 가리켰다.

“이 모든 사달의 뒤에 백룡문이 있소이다! 한때 태호에서 같이 동고동락하던 소씨 가문을 수하를 시켜 하룻밤에 멸족시킨 것도 백룡문의 사내들이고! 오직 충심으로 뭉쳐 역적과 칼날을 맞대고 싸우던 협녀 이소저를 살해한 것 역시 백룡문의 짓이고! 아무런 의심없이 연모하던 이의 혈족을 만났다가 죽임을 당하고 자진했다 누명을 쓴 부소저 역시 백룡문의 암습에 당한 것이외다!”

순식간에 타뢰대 아래쪽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사람들은 무명수의 말이 맞네 누명이네 하면서 서로 갈려 말다툼을 벌이기 시작하고, 성미 급한 사람들은 몇몇이 타뢰대에 오르려다 제지를 당하는데, 당태세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지며 좌중을 압도하였다.

이젠 그의 목소리에는 카랑카랑한 쇳소리까지 담겨 듣는 이들의 심중을 오싹하게 얼어붙게 만드는 한기가 담겨 있었다.

“내 이 모든 사건의 답을 직접 백룡문주께 듣고자 하오이다! 나는 세 살겁에 대한 증거를 다 가지고 있소! 문주는 이 일에 대해 변명할 것이 있소이까!”

“이소저의 죽음이 사실이오? 백룡문주?”

단상 옆에 앉아있던 위장군의 말에 수척한 표정의 백룡문주는 잠시 입맛을 다시고 눈을 감더니만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일으켰다.

타뢰대 아래에서 떠들던 관중들의 입이 동시에 닫히고 시선이 일제히 백룡문주 왕양성에게 향하였다.

백룡문주는 눈을 게슴츠레 뜨더니 타뢰대 위에 서 있는 북경 무명수와 타뢰대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소주의 백성들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사내는 하늘을 올려다보더니 가없는 한숨을 내쉬더니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사내의 입이 열렸다.

“북경 무명수의 말이 전적으로 옳소이다.”

순간, 타뢰대 주변의 모든 사람과 백룡문도, 심지어 가면속의 당태세마저 말을 잃은 채 멍하니 백룡문주의 입을 쳐다보았다.

백룡문주 왕양성은 술을 마신 것도 아니었고 정신이 나간 것도 아니었다. 그의 눈은 오히려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뭐?”

위장군의 눈이 휘둥그레지는 가운데 백룡문주는 다시 타뢰대 위의 북경 무명수를 보며 또렷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백룡문이 그 모든 사건의 책임을 질 것이오.”

“아니, 이보게! 이보시게. 왕문주!”

위장군이 다급하게 백룡문주의 허리춤을 잡으려 하였지만 백룡문주는 이미 터덜터덜 발걸음을 옮기며 단상을 내려가는 중이었다.

백룡문주는 무대 위의 가면사내에게도, 관중에게도 시선을 주지 않았다. 사내는 그저 자신의 발을 보며 뚜벅뚜벅 자리를 벗어나 슬쩍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잠잠하던 타뢰대 아래는 이제 시장바닥이 무색할 정도로 들끓기 시작했다.

단상 위의 사람들은 모두 자리를 비우기 시작했고, 주변에 있던 백룡문도들 역시 모두 자리를 비우기 시작했다.

세찬 바람이 무대 위를 오가며 늘어진 밧줄을 마구 흔들어대기 시작했고, 주렴달린 깃발은 비무초친이라는 네 글자를 하늘에 뿌린 채 맥없이 바람의 손아귀에 잡혀 희롱당하고 있었다.

당태세는 말없이 주변의 광경을 바라보다 천천히 뒤로 돌아섰다.

가면 쓴 사내까지 사라진 타뢰대는 텅 빈 무대만이 남아있었다. 언제 이 위에서 피와 땀이 선연한 박투가 벌어졌냐는 듯, 아무도 오르지 않은 무대는 바람만이 홀로 노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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