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견마지로-121화 (121/226)

121. 강남 소주 (14)

관중들의 환호가 아지랑이처럼 사라져가는 시간이 되어서야 당태세는 천천히 타뢰대를 떠날 수 있었다. 수많은 관중들이 온 길을 막고 있을 때는 따로 발을 뗄 곳조차 없었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백룡문이 준비한 비무초친은 대성황을 거둔 셈이었다.

당태세는 자신의 옷꾸러미를 넣어둔 보따리와 지팡이를 챙기고 곽일지의 집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가 움직이자 여기저기에서 북경 무명수의 이름을 연호하는 이들이 손을 들어 보였다.

유명세를 탄다는 것은 어색하면서도 쉽게 익숙해지는 일이었다.

흑가면은 사람들에게 손을 들어주며 한가로이 길을 따라 인파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와 함께 이젠 익숙해진 살기 또한 다시 그의 뒤로 따라붙었다.

“없을 수가 없지.”

당태세는 사흘 뒤 백룡문 소문주 왕보휘와 비무를 치르게 될 것이다.

화포(火砲)라도 들고 오지 않는 한 왕보휘가 이길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했다. 그건 당태세나 도려진이나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아마도 지금 들러붙는 살수들은 그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고, 그를 습격할 자들도 지금과는 격이 다른 이들이 올 것 같았다. 아니, 당태세는 그럴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백룡삼교가 따라올 지도 모르겠군.”

살기는 점점 강해졌고 그 기운은 지난번보다 잡다하지는 않았지만 정순하게 갈무리되어 있었다. 당태세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래도 한 번 간 길로 다시 가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기왕 움직이는 것이라면 사람이 없고 운신하기 좋은 곳이 훨씬 나아 보였다.

당태세는 남문 근처로 내려가며 항주로 뻗어있는 대로를 따라 걷다가 슬쩍 왼쪽의 소로를 타고 작은 운하가 나 있는 길로 접어들었다.

예전에는 꽤 번성한 물길 같았지만 지금은 이 길로 다니는 배들은 보이지 않았다.

좁은 수로 양옆은 치우는 사람이 없어 갈대가 무성하게 자라 있었고 좁은 물길 아래에선 개구리 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당태세는 좁은 소로 옆의 보도로 내려갔다.

장정 둘이 가까스로 지나갈 만한 길은 고즈넉이 이어져 갈대숲을 향해 뻗어 있었는데, 그 끝은 물인지 뭍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지경이었다.

노인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더니 집에서 지팡이를 뽑아 들고 뒤를 밟아 온 사내들을 쳐다보았다.

“철염라 손고해, 호둔조 하운병.”

흑가면이 그들의 별호와 이름을 부르자 가면사내를 미행해 이곳까지 따라온 두 명의 거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이미 무장을 한 뒤였다.

철염라 손고해는 한 자루 유엽도를 손에 들고 있었고, 그 뒤를 이어 내려온 하운병은 날에 천을 뒤집어 씌운 긴 장병을 지니고 내려온 뒤였다.

실로 만주족의 성시(盛時)에 한족이 칼을 들고 다니는 것도 언어도단이었지만, 백주에 칼을 들고 성내에서 설치는 일은 명나라 시절에도 흔히 볼 수 없는 일이었다.

그만큼 이년 전 소주에서 일어난 병란은 큰 전환점이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백룡문이 때를 잘 만나 살수들에게 칼까지 쥐어 주는구나.”

“네 놈이 나를 잡극의 배우취급하였겠다?”

손고해는 흑가면의 말에 자신의 분풀이로 답을 하였다. 사내의 이가 부드득 갈리는 소리가 들릴 지경이었다.

뒤에 서 있던 하운병은 천천히 자신의 장병기에 씌운 천을 벗겼는데, 병기의 날은 세 가닥으로 갈라진 예리한 삼첨도(三尖刀)였다. 확실히 하운병의 장기는 권각이 아닌 도법인 듯 보였다.

“내가 배우 취급을 하여 기분이 나빴다 이것이냐?”

“내 평생 무공을 연마하였지만 만주족의 치하에서 쓸 곳이 없었다. 그간 쌓인 울분과 성취 못한 청운의 꿈을 네 놈이 아느냐? 이번 비무초친이 그것을 유일하게 풀 수 있는 기회였건만 그 꿈을 네놈이 부숴버리고 말았노라!”

당태세가 피식 실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청운의 꿈이 백룡문의 청부를 받는 일이었느냐? 그게 무슨 꿈인가?”

“알 지 못하는 소리! 나는 평생 무공만 갈고 닦은 무인이다! 지금 쓴 밥 더운 밥을 가릴 것이냐! 네놈도 강호에서 잔뼈가 굵었을 것인데 어찌 혼자 구름잡는 소리를 하고 있느냐!”

“허, 그래. 청부를 받는 것이 어찌 모두 그릇된 일이라 하겠느냐. 예전 강호에서도 분명 그런 일이 있었다.”

흑가면의 사내는 거기까지 말을 하더니 쓱 얼굴을 들고 손고해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 때에도 살수가 제대로 사람대접 받은 적은 없었지.”

그 순간, 하운병이 손고해의 뒤에서 짧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손대협, 말은 그만하고 어서 칩시다. 저 놈 손속이 고약하다고 소문이 자자하오.”

손고해는 하운병의 말을 듣자마자 유엽도를 활짝 앞으로 펼치며 불문곡직 이를 드러내고 당태세를 향해 달려들었다. 불같은 성격이 병장기에도 그대로 스며들어 있었다.

철염라의 칼이 번득이며 당태세의 머리를 향해 떨어지는데 당태세는 들어오는 철염라의 칼을 가볍게 지팡이로 퉁기고 슬쩍 사내를 앞으로 내보냈다.

철염라는 자신의 힘을 못 이기고 앞으로 주르륵 밀려나가는데, 그런 철염라를 못마땅하게 보던 하운병이 삼첨도를 두 손으로 꼬아 쥐고는 당태세를 향해 가볍게 창을 밀며 들어왔다. 당태세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철염라 손고해의 도가 어린아이 장난이었다면 하운병의 창은 말 그대로 산전수전 다 겪은 무인의 연장이었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들던 하운병의 삼첨도가 바로 눈앞에서 짧게 움직이며 붓으로 글씨를 쓰듯 당태세의 양어깨와 목의 요혈을 노리고 들어오는데 당태세가 지니고 있는 지팡이는 그를 맞서기엔 너무 가볍고 짧았다.

예전에 가지고 다니던 목괴가 부러진 것이 천추의 한이었다.

“나와!”

그 순간 철염라 손고해가 뒤에서 다시 튀어나오며 당태세의 등을 한 칼에 베어버릴 기세로 들어왔다. 비록 도법이 권법만은 못하여도 충분히 사람의 피륙을 뼈와 끊어낼 수 있는 패기가 실려 있었다.

당태세의 몸이 축대의 옆으로 붙으며 머리 위로 떨어지는 유엽도와 가슴을 찌르고 들어오는 삼첨도를 피하며 몸을 틀었다.

당태세의 몸이 순식간에 손고해에게 붙었다. 아무래도 둘을 양면으로 받으며 싸울 수는 없었다.

“홀로 일가를 이룬 권법이라 손속에 정을 두었건만….”

당태세의 또렷한 목소리가 바로 턱 아래에서 들려오자 철염라 손고해가 눈을 부릅뜨며 이를 갈았다.

사내의 손에 들린 유엽도가 그대로 가슴 아래로 붙으며 당태세의 목과 가슴을 그대로 눌러 베어버리겠다는 듯 손을 도신에 올리더니 그대로 당태세의 몸을 향해 칼을 밀어붙였다.

순간, 당태세의 좌수가 도를 쥐고 있는 손고해의 손목을 그대로 움켜쥐더니 혈도를 쥐고 안으로 비틀었다.

철염라가 들고 있던 유엽도가 칼과 도신의 방향이 바뀌며 휘릭 뒤집히자 그때를 놓치지 않고 당태세의 지팡이를 잡은 우수가 지팡이를 지렛대 삼아 칼을 받치더니 물 흐르듯 도배(刀背)를 그대로 붙잡고 옆으로 밀어붙였다.

철염라의 눈이 순식간에 둥그래졌다. 칼날이 목에 닿는 자가 흑가면이 아닌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이미 칼날이 자신의 목에 붙은 뒤의 일이었다.

“자…잠깐!”

당태세가 이를 악물고 칼날을 위에서 아래로 호선을 그리며 눌러버렸다.

기분 나쁜 촉감이 두 손을 타고 전해져왔다. 말을 채 잇지 못한 철염라 손고해의 입에서 가래 끓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하지만 노인은 손고해의 마지막을 확인할 시간이 없었다. 당태세의 등 뒤로 삼첨도의 강맹하고 예리한 일격이 쏟아졌다.

당태세는 들어오는 육중한 삼첨도의 공세를 지팡이를 흔들며 겨우 막아내고 있었지만 지팡이는 순식간에 양면이 깎여나가며 나무조각을 사방으로 뿌렸다.

“빌어먹을!”

중병(重兵)인 삼첨도를 나뭇가지처럼 휘둘러대는 하운병의 무위는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공고한 것이었다.

긴 삼첨도를 움직이면서도 보법은 흐트러짐이 없었고 호흡조차 가지런했다. 게다가 상대방을 한 번도 놓치지 않는 예리한 시선까지 갖추고 있었으니, 실로 청조에 무인으로 입조(入朝)하였다면 장군의 반열에 올랐을 터였다.

“사형문주가 용을 길렀구나!”

“감사하오!”

당태세는 깊게 찔러 들어오는 삼첨도를 한줄기 기합성과 함께 지팡이로 퉁기고 재빨리 안으로 밀고 들어가 하운병을 향해 지팡이를 뻗었다.

하지만 하운병은 가볍게 난창으로 들어오는 지팡이를 빗겨내고 칼날을 다시 당태세의 궤도에 밀어 넣었다.

당태세는 순간, 전진을 멈추고 그대로 몸을 튀겨 손으로 바닥을 짚고 뒤로 구르며 쓰러진 철염라의 시신으로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그를 따라 들어온 하운병의 삼첨도가 재빨리 빗자루처럼 땅바닥을 긁으며 철염라 손고해의 유엽도를 찍어 저 멀리 갈대숲으로 내던져버렸다.

당태세의 이가 드러났다. 이미 하운병은 자신의 돌격이 허초인 것을 알고 애초의 목적이 손고해의 칼이라는 것도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맹장인줄 알았더니 지장이로세!”

당태세의 몸이 앞으로 튀어나가며 삼첨도의 끝을 올리고 다시 하운병을 향해 전진해 들어갔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삼첨도의 길이는 너무 길었고 당태세의 짧은 지팡이는 한계가 있었는데, 하운병은 결코 무리하지 않고 슬쩍 한 발을 뒤로 빼 거리를 벌리더니 들어오는 당태세의 지팡이를 다시 나창으로 돌려 튕겨내었다.

고지식할 정도로 정직하면서도 정묘한 창법이었다.

사내는 삼첨도를 당태세 앞에 내밀더니 앞으로 슬쩍 한 발을 전진하며 삼첨도의 칼날을 현란하게 뿌리기 시작했다. 실로 원칙에서 벗어남이 없는 담백한 창술이었는데 오히려 그렇기에 무섭기 짝이 없었다.

당태세의 손에 들린 나무지팡이는 이미 굵은 부분이 반절 이상 깎여 나가 있었다. 당태세가 다시 눈에 힘을 주고 지팡이를 든 오른손에 힘을 주는 찰나, 갑자기 하운병의 입에서 짧은 기합이 터져 나왔다.

그와 함께 꿈틀대던 삼첨도의 기세가 일신하였다. 둥지에 있는 알을 지키던 독사가 지나가는 사냥감을 노리기 시작한 것이다.

하운병의 발이 훌쩍 앞으로 튀어나오는 것과 동시에 세 갈래 예리한 창이 순식간에 당태세의 온몸을 난도질할 기세로 밀려오며 사방에서 바람소리와 함께 앞으로 쏟아지는데 순식간에 당태세의 왼쪽 소매가 소리도 없이 갈라졌다.

“망할!”

당태세는 자기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 패도적인 창술은 어울리지 않는 정교한 보법과 함께 물셀 틈도 없이 당태세를 밀어붙였다.

하운병은 호흡 하나 바뀌지 않고 시선 하나 돌리지 않은 채 매섭게 당태세를 찔러 들어가니, 당태세는 결국 수로의 끝까지 밀려나 질척대는 물가에 발을 올려놓았다.

미끄럽고 끈적한 기운이 발을 타고 밀려왔다. 더 밀려나가면 속수무책이었다. 당태세는 호흡을 가다듬고 부서지는 지팡이를 들어 삼첨도의 공격을 착실하게 막아내었다.

하지만 그 이상의 진전을 만드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앞으로 길어야 세 수 안에 결판이 날 것 같았다.

그 순간, 짧은 기합과 함께 하운병의 삼첨도가 당태세의 눈을 향해 밀려 들어왔다.

당태세의 지팡이가 들어오는 칼날을 막으려는 순간, 삼첨도가 뒤로 빠지며 공세를 바꾸었다. 허공을 친 당태세의 지팡이가 다시 칼날을 향하는 순간, 삼첨도의 칼날이 방향을 바꾸며 당태세의 오른 어깨를 겨누었다.

당태세는 이를 악물고 몸을 돌리며 지팡이로 삼첨도의 앞을 가까스로 막아냈다. 순간 지팡이의 중간부분이 우직 소리를 내며 박살났고, 당태세의 머리를 일촌의 사이로 놓친 삼첨도가 뒤로 빠지며 갈대숲을 헤집었다.

순간 당태세의 좌수가 뒤로 돌아가더니 손에 잡히는 것을 몽땅 잡고는 삼첨도를 향해 휘둘렀다.

삼첨도의 번쩍이는 날이 당태세의 머리를 향해 떨어지는데, 당태세는 몸을 굽히고 자신의 왼손에 들린 것들을 세차게 앞으로 뿌리쳤다.

순간, 하운병은 자신의 창날이 아래로 내려가지 않고 도중에 뭔가에 걸려버린 것을 알았다.

두드득하는 소리와 함께 삼첨도의 세 가닥 날 사이에서 가지와 보푸라기가 하늘로 튀어 올라가는데, 순식간에 맑았던 하늘 위로 뿌연 먼지들이 확 퍼져 올라갔다.

다름 아닌 갈대 뭉치가 삼첨도의 세 가닥 날 사이에 끼어들어오며 뽑힌 것이었다.

“이런!”

하운병이 처음으로 당황하며 창날을 뒤로 빼 들었다. 창날이 빠져나오는 것과 동시에 당태세의 몸이 창날을 쫓아오는 사냥개처럼 먼지를 뚫고 하운병을 향해 몸을 숙이고 뛰어왔다.

가면 사이로 보이는 눈동자에서 흉폭한 살기가 이글대고 있었고, 당태세의 두 손아귀 안에는 삼첨도에 베여진 갈대가 한 자루씩 들려 있었다.

하운병의 손이 움직이며 삼첨도가 옆으로 움직이자 당태세가 갈대를 들어 들어오는 삼첨도의 궤적을 위로 올리며 그대로 돌진해 들어왔다.

나긋나긋한 갈대가 마치 살아있는 사람의 손처럼 삼첨도를 위로 들어 올리며 방향을 틀어버렸다.

호둔조 하운병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다시 창날을 쥔 손을 틀어 당태세의 오른손에 들린 갈래를 휘감았다.

갈대가 하늘에서 박살나며 사방으로 산산히 날아가는 순간, 당태세의 왼손에 들린 갈대가 죽 뻗으며 하운병의 눈을 향해 찔러 들어왔다.

하운병의 발이 뒤로 빠지고 손이 움직이며 난창을 만들어 들어오는 갈대를 다시 옆으로 틀었다.

당태세가 한 발 전진할 때 하운병의 몸도 뒤로 한 발 빠져나갔다. 하운병의 삼첨도가 번개같이 뒤로 빠졌다가 뱀의 머리처럼 앞으로 튀어나갔다.

삼첨도는 들어오는 당태세의 왼손 어름을 휘감고 돌렸다. 왼손에 쥐었던 갈대가 부러지며 줄기가 허공에서 터져나갔다.

비산하는 갈대 조각이 푸른 하늘 위에 흩뿌려지는데, 가면을 쓴 사내는 부서진 갈대와 번쩍이는 삼첨도 사이를 그대로 통과하며 화살처럼 하운병의 몸을 향해 부딪혀 들어갔다.

둥그렇게 커진 하운병의 눈동자와 새파랗게 타오르는 당태세의 눈동자가 동시에 서로를 마주보았다.

순식간에 당태세와 하운병의 몸이 서로를 스치고 지나갔다.

삼첨도는 여전히 허공에 뜬 채로 사라진 적을 찾고 있는데, 당태세는 하운병을 한참 지나간 뒤에야 몸을 멈추고 자기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다. 크아아악. 노인은 입을 크게 벌리고 참았던 숨을 토해내었다.

하지만 등을 보이고 있는 노인을 향해 하운병은 몸을 돌리지 않았다.

당태세의 두 손아귀에는 산산이 부서져 들쑥날쑥 뾰족뾰족 튀어나온 갈대 줄기가 굳게 잡혀 있었고 갈대 줄기의 끝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와 함께 호둔조 하운병의 목에 그어져 있던 붉은 실선 너댓 개가 일시에 굵어지더니만 이내 피가 솟아나오며 목을 붉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삼첨도가 땅에 떨어지며 소리를 내었다.

창의 주인은 천천히 몸을 기울이더니 이내 옆에 있는 운하로 굴러 떨어지며 작은 물소리를 내었다.

그제야 당태세는 몸을 일으키고 자신이 지나온 길을 둘러보았다.

실로 갈대 하나에 모든 것을 다 걸고 시작한 임기응변이었다. 당태세는 다시는 이런 싸움을 하지 않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어서 대장장이를 만나러 가야겠구먼.”

흑가면의 사내는 비틀대며 잠시 벽에 기대어 서 있다가 다시 몸을 일으켰다.

가면의 사내가 사라진 곳에는 창 한 자루와 죽은 사내 하나가 놓여 있었는데, 자욱하게 사방에 뿌려진 갈대조각들은 누가 어디서 무슨 일을 벌였는지 짐작조차 못하게 하였다.

여전히 중천에 걸려 있는 햇살 아래 물길은 천천히 피와 사람을 싣고 아래로 내려가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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