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 강남 소주 (13)
어찌보면 하등 쓸모없는 짓이었다.
냉정하게 생각해도 지금 하는 일은 앞으로 당태세가 벌일 일에 대해서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는 일이었고, 이 일의 진위여부와 관계없이 당태세는 자신의 살업을 충실히 이행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노인은 알고 싶었다. 지금 자신이 파헤치고 알아내고자 하는 일의 끝에는 결국 십칠 년 전의 이야기가 매달려 있을 것 같았다.
어젯밤 당태세는 부후경과 갈대밭에서 나눈 이야기를 단초삼아 피혁장 곽일지와 술을 하며 넌지시 이야기를 물어보았다.
곽일지는 당태세가 가져 온 이야기를 듣더니 처음에는 긴가민가하는 듯한 표정으로 천정을 보며 골똘히 생각하다 문득 입을 벌리고 당태세를 쳐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아귀가 맞아 떨어지는 게 있습니다.”
“생각나는 게 있는가?”
곽일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손으로 턱을 매만지는데 표정으로 봐서는 영 떠올리고 싶지 않은 듯한 이야기 같았다.
“그러니까 2년 전이었지요. 정성공이 장강의 하구를 걸어 잠그고 소주성을 위협하고 있는 찰나에 백룡문이 소주의 세력을 규합해 그들의 잔당을 토벌했습니다. 백룡문주와 문도들이 솔선해서 그들과 싸운 뒤로 백룡문의 위세가 올라갔고요.”
“그게 나쁜 일은 아니지, 그게 괴소문과 관련이 있다고?”
곽일지가 고개를 다시 끄덕였다.
“당시 수비대에 이씨 성을 쓰는 무가가 하나 있었는데, 부녀가 같이 참전을 했었지요.”
“부녀(父女)?”
“둘 다 창술의 달인이었습니다. 원래 청조(淸朝)가 한인들에게 무기를 못 들게 하고, 특히나 장병기는 단속을 엄하게 하였으니 가전(家傳)으로 전해지는 것이었겠지요. 꽤나 무공도 뛰어난데다 그 이소저는 용모도 출중했지요. 나이도 딱 소문주하고 맞았을 겁니다. 진중에서 꽤 둘이 잘 어울린다고 말이 많았지요.”
당태세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다음의 이야기는 안 들어도 익히 알 법 하였다.
“그 소저와 아버지가 동시에 죽었나?”
“같은 날, 같은 시각에 죽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이야기가 떠돌았지요. 그 둘은 그날 후방으로 따로 떨어져 원군에 호응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들었거든요.”
“적군이 죽일 수 있었던 게 아니란 이야기군.”
“그건 단언할 수 없습니다. 정성공의 수군은 사방에서 산발적으로 나왔으니 후방에서 희생자가 나왔다 해도 뭐라고 하겠습니까?”
곽일지가 어깨를 으쓱거렸지만 자기가 이야기를 풀어갈수록 사내의 표정은 영 떨떠름했다.
“전투가 끝나고 두 사람의 장례가 성대하게 열렸지요. 백룡문이 그 집안에 꽤나 후사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 덕에 남은 가족들은 소주를 떠나 북쪽으로 올라갔다지요. 제가 들은 바는 그것까지입니다.”
당태세는 술을 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2년 전이라면 분명 소주 어딘가에 그들과 함께 전투에 참여한 자들을 찾아낼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또 다른 사건은 과연 아는 이가 있을 지 의심스러웠다.
“그렇다면 곽대협, 혹시 소씨(蘇氏)가문이라고 들어본 적이 있나? 한 칠팔 년전의 일이라 들었네. 태호 남쪽의 큰 부호가 하루아침에 몰살당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은 없는가?”
“들은 적 있지요. 고기잡이로 일가를 이룬 어부였죠.”
곽일지가 눈을 껌벅이며 당태세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곽일지는 말을 하려다가 혀로 연신 입술을 핥더니 급기야는 사방을 둘러보고 옷으로 자신의 입을 닦았다. 마치 누군가 자신들을 감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은 태도였다.
“수적(水賊)들에게 당했다고 들었는데…설마 지금…….”
“…. 거기도 여식이 있었다고 들었네.”
“재녀(才女)였다고 들었습니다.”
말을 마친 곽일지는 고개를 들고 당태세를 쳐다보았다. 사내의 눈은 불신과 경악과 분노가 같이 섞여 있었다.
옹고집이지만 사람 곧은 피혁장은 지금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어처구니없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노대협, 이건 아닐 겁니다.”
당태세는 말없이 술잔만 보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소문주는 그런 위인이 아니에요.”
“소문주는 아닐게야.”
“백룡문도…그럴 위인들이 아닐 겁니다.”
곽일지는 스스로의 생각을 자신의 말로 반박하고 있었지만 사내의 마지막 대답은 힘없이 허공에서 바스라졌다. 당태세는 물끄러미 곽일지를 바라보다 조용히 말을 마무리 지었다.
“내가 내일 돌아다니며 알아보겠네. 세월이 지나면 비밀을 감출 이유가 적어지니까.”
***
당태세는 남문 앞에 있는 커다랗고 허름한 집 안에 서 있었다.
대문은 온통 검게 칠해놓은 채로 환기를 위해 약간 문을 벌려놓은 상태였는데, 문 안쪽에서 불어오는 짙은 향목(香木)냄새가 거리까지 스며 나왔다.
주변에 있는 민가는 오직 이 집 하나뿐인 듯 보였다.
대문만큼이나 어두운 집 안은 마치 창고와 같이 커다란 독채로 지어져 있었는데 벽마다 오동나무를 깎아 만든 관들이 즐비하게 세워져 있는 것이 이 집안의 업(業)이 무엇인지 짐작하게 해주었다.
“산동에서 오셨다고 하셨지요?”
흰 수염을 기른 장의사는 당태세의 행색을 힐끗대며 물어보았다. 당태세는 노인의 말에 정중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예를 취하였다.
“산동에서 온 이모라고 합니다. 뭔가 여쭤볼 것이 있어 이리 왔지요.”
“무슨 일로 찾아오신 겁니까?”
“저는 원래 회음에 살다가 북으로 올라간 사람입니다만, 제 조카가 소주에 있었지요. 그런데 최근에 소식을 들었는데…2년 전 전란으로 여기서 죽었다고 하더군요.”
“그렇습니까?”
“당시 전란에서 죽은 이들을 이곳에서 많이 염습을 했다고 하여…….”
흰 수염의 노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수십 명이 넘었지요. 모든 사람들을 다 기억할 수는 없습니다.”
“제 조카는 딸과 함께 둘이 죽었습니다. 부녀가 모두 무인이었지요. 가전인 한 자루 창을 잘 썼는데 그만 하루아침에 이곳에서 같이…….”
아아.
갑자기 흰 수염의 장의사가 뭔가 생각이 난다는 듯 크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침중한 표정이 되어 당태세를 보며 고개를 엄숙하게 끄덕였다.
“그 두 분이라면 제가 두 손으로 염을 하였지요. 기억납니다. 안타까웠지요.”
“사실이구려!”
당태세는 탄식을 하며 고개를 떨구는데, 장의사는 낙담한 당태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노인을 위로하였다.
“너무 상심 마십시오. 두 사람 다 호걸처럼 싸우다 무인답게 죽었습니다. 그 덕에 소주가 살아났지요.”
“어찌…어찌 죽었습니까? 육신은 멀쩡했던가요?”
어두운 벽에 머리를 기대고 있던 절름발이 노인이 겨우 힘을 내어 말하자 늙은 장의사는 두 손을 모은 채 눈을 가만히 감았다가 말을 이었다.
“두 분 다 강가 인적이 드문 곳에서 발견되었지만 큰 상처는 없었습니다. 이대협은 긴 창상 하나로 심장이 정확히 뚫려 죽었지요. 시신을 인도받았을 때에도 살아있는 사람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심장을 뚫려요?”
“보이지도 않게 가느다란…바늘 같은 상처였는데 그게 뭔지 모르지요. 옆에서 죽은 소저가 아니었으면 그냥 돌아가신 줄 알았을 겁니다. 이 생활 사십년 동안 수많은 주검을 모셨지만 그런 시신은 처음이었지요.”
가느다란 상처.
당태세는 눈을 껌벅이고는 다시 장의사 노인을 보며 물었다.
“딸의 시신이 대체 어땠기에….”
당태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장의사 노인이 한 숨 섞인 목소리를 내었다.
“……목불인견이었지요. 얼굴을 난도질당했거든요.”
장의사 노인은 슬쩍 몸서리를 치더니 당태세를 바라보며 한숨처럼 말을 이었다.
“전쟁이라는 건 원래 비참한 것 아니겠습니까?”
***
“솔직히 바다가 만경창파라고 하지만 우리는 그런 거 안 부럽소. 아니 부럽기는커녕 우리가 있는 이 호수도 감당이 안 되는걸.”
당태세를 태운 작은 배는 조용히 태호를 가로질러 가는 중이었다.
노인은 자신을 태운 뱃사공이 말한 ‘감당 안 되는 호수’를 바라보았다. 당태세의 오른쪽으로 펼쳐져 있는 호수는 말 그대로 일망무제(一望無際), 걸리는 것도 없이 보이는 것은 오직 하늘과 물 뿐이었다.
바다라 부른다 하여도 어폐가 없을 거대한 호수는 바람이 그치자 거울처럼 매끄럽게 하늘 아래 몸을 눕혔는데 오직 당태세의 배 하나만이 중천에 떠오른 햇살 아래로 물결을 내며 그 위를 미끄러지고 있었다.
“노인장이 가고 싶어 하는 곳이 저 십자포(十字浦) 맞소?”
햇살을 피해 작은 죽립을 눌러 쓴 절름발이 노인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노인이 내린 십자포는 십수 가옥이 모여 사는 작은 어촌이었는데, 해안가에서 조금 들어간 언덕배기에는 다 무너진 집들이 숱하게 보이는 것으로 봐서 예전에는 꽤나 큰 마을을 이루고 있는 듯 보였다.
노인은 슬쩍 주변을 돌아보고 비틀대며 언덕 위를 향하였다. 언덕 위에서 바라본 태호의 정경은 실로 만경창파라 칭한 뱃사람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지경이었다.
눈이 닿는 곳 모두가 물이었다.
이 언덕은 그 바다 위에 툭 튀어나와 있는 외로운 섬과 같았고, 뒤를 돌아선 노인의 눈에 들어온 장려한 폐가(廢家)는 마치 섬을 지키다 부서진 망루를 보는 듯 싶었다.
“수적(水賊)이 들어왔다지요.”
마을 사람들은 외지인의 말에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나이 지긋한 이들은 죽립 쓴 노인의 시선을 피하여 날씨를 이야기하듯 말했고, 젊은이들은 노인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이 곳에 있던 소씨 집안이 꽤나 명문이었다고 들었소만.”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모두가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과 같았다.
“예전 일이오. 다 죽었는데 무슨 소용인가.”
“다 죽었는데 무슨 소용이요.”
“다 죽었지.”
당태세는 죽립 안으로 눈빛을 감추고 뒤의 바다 같은 호수와 앞의 그림 같은 언덕을 바라보며 한참을 멍하게 서 있었다.
노인은 어촌을 떠나 다시 언덕 위의 집터로 올라갔다.
화려하던 대문은 이제 기둥 두 개만 남아있었고, 부서진 처마는 그 옆에서 썩은 채 개미들의 집이 되어 있었다.
당태세는 부서진 가옥의 한 가운데로 걸어 들어갔다. 여전히 넓고 평평하게 터를 닦아놓은 내당은 사람의 터전으로 손색이 없었건만 아무도 그곳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
아니, 저 멀리서 쓸만한 땔감을 줍고 있던 노인 하나만이 적적한 풍경 아래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당태세는 그에게 말을 걸었다.
“이곳이 소씨 집안 맞소?”
“맞아.”
변발을 틀지도 않은 봉두난발에 다 해진 옷과 찢어진 바지에 맨발로 다니던 퀭한 눈의 노인은 죽립을 쓴 당태세를 보더니 히죽 웃어보였다.
“당대의 부자였다고 들었소.”
“맞아.”
“수적이 들어서 다 죽었다 들었소.”
“소씨는 어부였고 장자(長子)였어. 그래서 죽었어.”
당태세는 죽립을 들고 노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노인의 눈은 이리저리 흔들리며 보는 것을 정하지 못하고 손과 발은 대중없이 흔들려 갈 곳이 없었다. 당태세가 노인의 모습을 빤히 쳐다보다 다시 죽립을 내리는 순간, 노인의 입이 다시 열렸다.
“소씨는 괴물에게 죽었지.”
“괴물이라고 하였소?”
“괴물이 죽였지.”
노인은 혓바닥을 날름대더니 주위를 살피고는 고개를 갸웃대더니 다시 자신이 주워 모은 나무토막들을 바라보며 뭔가 중얼대더니 당태세를 바라보았다.
“괴물은 소씨에게 공양을 원했는데 소씨는 공양을 하지 않았지. 그 전에 이미 많은 걸 줬단 말이야.”
“뭘 주었소?”
“외지에서 온 이들에게 배를 빌려주었지. 같이 지분을 나누었지. 소씨는 어부였고 장자였어. 호수의 고기는 제 것이 아니라고 하였지. 그래서 죽었어.”
“괴물이 그래서 죽인 거요?”
“공양을 하지 않았어.”
노인은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태세는 노인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공양을 했으면 소씨는 살았소이까?”
순간, 노인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노인의 고개가 천천히 실에 꿴 듯 당태세를 향해 움직이더니 또렷한 눈동자로 죽립 아래 있는 당태세의 눈을 바라보았다.
“자기 딸을 없애라는 말을 누가 듣는단 말인가?”
바람 한 점 없는 무더운 날, 참지 못할 침묵이 폐허 위를 맴돌았다.
당태세는 뭔가 말을 이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뭐라 말해야 할지 몰랐다. 오히려 침묵을 깬 것은 노인이었다.
“괴물은 장자였던 사내에게 다가가 하룻밤 내 성벽을 무너뜨리고 모든 것을 불태웠지.”
“그 괴물이 용이오?”
당태세의 말에 노인의 눈이 다시 좌우를 오가기 시작하더니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노인의 입이 덜덜 떨리더니만 고개를 제멋대로 돌리더니 당태세를 보며 이를 드러내었다. 노인의 입에서 침과 함께 욕설과 알 수 없는 말이 섞여 나왔다.
“용은 피래미보다 작지만 하늘을 덮을 수 있어! 석가여래보다 관후하지만 씨앗 잃은 농민보다 절박하지! 사람은 용을 건드리면 안 되는 거지. 그 비늘을 건드리면 안 되는 거야! 그럼 죽는것이네!”
“소씨 댁의 딸이 용의 아들을 좋아하였나?”
“아니야!”
노인의 눈이 화등잔해지더니 고개를 세차게 돌렸다. 그러더니 노인은 당태세를 노려보았다.
“그 아이는 뒤집힌 비늘을 건드린 거야!”
“그래서 다들 어찌 죽었소?”
노인은 당태세의 말에 손으로 흘리던 침을 닦고 손을 들었다. 그 손으로 망망한 호수를 가리키던 노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더듬대며 떨리고 있었다.
“배 세 척이…밤에…들어왔지…늙은 용들…셋이 들어와……모두를….”
“백룡삼교.”
당태세는 죽립을 벗어던지고 그의 앞에 서 있는 노인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광인 노인의 표정은 침착하게 변해 있었다.
당태세는 노인의 근원을 알지 못하였다. 이 자는 소씨 집안의 생존자나 가솔은 아닐 터였다. 백룡문의 백룡삼교는 결코 일을 소홀하게 처리하는 이들이 아니었다.
저 미쳐버린 노인은 아마 저 넓은 바다나 이 웅장한 언덕 어딘가에 있었을 것이다. 모두가 잊어버린 그 날 밤에.
“노인께선 그 장면을 보셨소?”
당태세의 말에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의 모든 사람이 보았지.”
노인의 눈은 더 이상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고 있었다.
“견딜 수 없는 이들은 이미 다 떠나갔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