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 장사 영우상방 (7)
작게 뚫린 들창들 사이로 햇살이 새어 들어왔다.
바닥에 햇살이 만들어 놓은 창살무늬가 화살처럼 늘어서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두 명의 노인을 향하였다. 가운데 켜져 있는 등불은 밝았지만 넓은 방을 전부 밝히진 못하고 있었다.
조금씩 등 뒤는 밝아지고, 사내들의 앞에 켜져 있는 불빛은 갈수록 사위는데, 두 노인은 도끼와 도를 들고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거한의 두 손아귀에 들린 도끼는 번들대는 묵빛을 뿌리며 도를 든 노인의 피를 탐하였다. 반대편에 서 있는 노인의 유엽도 역시 밝아오는 아침의 햇살을 도신에 받으며 도끼 든 노인의 생명을 원하는 듯 보였다.
두 사내의 손이 천천히 들리며 대적자의 목을 노리자 병기(兵器)들은 살기를 뿌리며 상대방의 목숨을 갈구하였다. 영우상방의 방주, 전 영우문주 전영포의 눈이 매섭게 당태세를 쏘아보며 천천히 앞으로 나서며 두 자루 도끼를 위아래로 흔들기 시작했다.
두서없이 상하로 맥놀이를 하던 도끼는 어느 순간 자신의 길을 찾아 바람소리를 내며 무섭게 번득이는 두 개의 타원이 되어 당태세를 향하였다.
당태세의 유엽도가 허공으로 치솟으며 모든 것을 갈라버릴 기세로 들어오는 전영포의 두 자루 도끼에 대항하였다. 천천히 당태세의 발이 움직이기 시작하였지만 두 노인의 눈은 상대에게서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두 사람은 느리게 오른쪽으로 맴돌면서 작은 원을 만들고 있었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 팔을 뻗어 선공을 치고, 선공을 막고 후공이 들어간 뒤의 수를 계산하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수를 내다보고 얼마나 많은 변초를 대응할 수 있느냐가 고수 간의 싸움이었다. 한번 붙은 싸움이 길게 갈 리는 없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사이였다.
“내가 먼저 간다.”
당태세의 입이 열리자 전영포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당태세의 유엽도가 하늘에서 땅을 향해 떨어졌다.
유엽도가 떨어지며 당태세의 눈높이에 도달했을 때, 당태세의 몸이 앞으로 뻗어 나가며 유엽도의 끝이 화살처럼 전영포의 목을 향해 들어갔다.
바람개비처럼 돌고 있던 전영포의 오른 도끼가 유엽도를 쳐내고 순간 몸을 돌리며 어깨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좌수의 도끼가 당태세의 머리를 찍어버렸다.
하지만 당태세의 몸은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 당태세의 몸은 짧게 왼쪽으로 움직이며 쏟아지는 도끼바람을 흘러버렸다. 도끼날과 당태세의 몸은 채 일 촌도 떨어지지 않는 상태였다.
당태세의 유엽도가 회전하며 튕겨 나간 전영표의 오른 도끼를 다시 휘감고 위로 올리더니 그 사이를 뚫고 전영포의 갈빗대를 오른쪽에서 왼쪽 아래로 힘있게 그었다.
하지만 왼 도끼가 들어오는 유엽도의 길을 막아버리며 주인의 가슴팍을 보호했다. 한 발 뒤로 물러선 전영포가 두 자루 도끼를 돌리는 것을 멈추고 그대로 날을 세운 채 좌우의 손을 번걸아 앞으로 내뻗기 시작했다.
강렬한 참격(斬擊)이 연달아 당태세의 몸뚱어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당태세의 유엽도가 패도적인 기세로 들어오는 쌍도끼를 막으며 허공에 빛의 줄기를 뿌려대었다. 이번에 한 발 물러선 것은 당태세였다.
사내는 쏟아지는 현란한 도끼의 궤적과 뒤에서 뿌려지는 아침햇살을 같이 보았다. 빛살이 검은 도끼에 맞아 산산이 흩어지며 거한의 거대한 그림자가 당태세의 앞에 산같이 드리워졌다.
당태세의 유엽도가 햇살을 향해 올라가는 물새처럼 가슴 위에서 머리 위로 올라가며 들어오는 육중한 도끼날을 날렵한 칼끝으로 막아 돌리며 사내의 몸을 회전시켰다.
모든 것을 부수고 찍어버리는 전영표의 도끼는 살기와 예기를 같이 담고 있었고, 전영표의 두꺼운 팔뚝은 가공한 힘과 놀라운 속도를 병기에 부여하였다. 유엽도의 현란한 궤적을 두 자루 도끼가 따라가며 같은 빛을 뿌려대었다.
어두워 발끝조차 보기 힘든 넓은 방 안에서 두 사내가 모여 있는 곳만 햇살이 사방으로 뿌려졌다. 세 자루의 쇳덩이는 주인을 보호하고 적을 부수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데, 칼과 도끼의 주인은 상대의 목숨을 빼앗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전영포의 도끼가 아래로 꽂히며 당태세의 어깨와 발을 동시에 노리자 당태세는 발을 빼며 전영표의 왼손목과 가슴을 같이 베었다. 도끼가 옆으로 움직이며 방패가 되어 유엽도의 날카로운 기세를 막아내고 들어오는 칼을 다른 도끼가 붙잡았다.
당태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전영표의 눈과 이가 동시에 빛났다. 순간 당태세는 두 다리를 교체하며 몸을 꽈배기처럼 틀며 순식간에 유엽도를 두 자루 도끼 사이에서 빼내었다.
회전하는 당태세의 허리를 몸을 타고 찰싹 몸에 붙었던 유엽도가 순간 화살처럼 앞으로 뻗으며 왼손의 도끼를 교묘히 빗겨 들어가더니 전영포의 왼쪽 팔뚝을 사정없이 찔러버렸다. 순간 전영표의 오른 도끼가 바람을 일으키며 당태세의 유엽도를 세차게 강타하였다.
두 사람을 둘 다 한 걸음씩 물러났다. 전영포는 물끄러미 자신의 왼팔을 바라보았다. 왼 팔뚝에 입은 자상에서 피가 팔목을 타고 내려와 땅에 떨어지고 있었다.
털투성이 얼굴에 주름이 잡히더니 사내의 부리부리한 눈이 당태세를 향하였다. 당태세의 오른발에 번쩍이는 철갑을 본 전영포는 입맛을 다시더니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대체 그 짧은 시간에 무슨 조화를 부렸는지 모르겠군.”
당태세 역시 형편없이 휘어버린 유엽도를 물끄러미 보더니 고개를 내젓고 휘어진 유엽도를 그 자리에 내던졌다.
“그게 사람의 힘이라니 어처구니가 없다.”
피식 전영포가 웃음을 짓더니만 왼손의 도끼를 저 멀리 내던져버리고 옷을 찢어 자신의 왼 팔뚝을 묵었다. 당태세도 천천히 뒤로 걸어가 벽에 걸려있는 큼지막한 안령도 하나를 꺼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전영포는 왼손을 꽁꽁 묶고는 오른손에 쥔 도끼를 흔들며 당태세를 바라보았다. 당태세 역시 안령도를 흔들더니 되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크게 심호흡을 한 전영포가 저벅저벅 당태세를 향해 큰 걸음으로 걸어들어오며 도끼를 되는대로 옆으로 후려쳤다.
당태세는 재빨리 안령도는 거둬들이며 몸을 뒤로 빼내었다. 막 휘두른 도끼질에 하늘을 쪼갤듯한 무지막지한 내공이 실려 있었다.
당태세가 몸을 한 발 뒤로 빼는 순간 도끼를 헛친 전영포가 한 걸음을 따라붙더니 어느새 앞에 세운 도끼를 들어 다시 한 번 당태세의 머리를 향해 휘둘렀다.
이번에는 채 피할 겨를이 없었다. 당태세는 온 신경을 도에 집중시키고 들어오는 도끼의 측면을 향해 안령도를 두 손으로 휘둘렀다.
교묘하게 궤도가 뒤틀린 전영포의 도끼가 그대로 벽을 처박자 벽 전체가 울리며 도끼에 찍힌 부분이 그대로 박살이 나버렸다. 구멍이 아닌 벽 전체가 허물어지는 모습을 본 당태세는 얼굴빛이 변했다.
“늙어도 힘과 기세가 그대로구나!”
당태세는 몸을 틀며 안령도에 내공을 싣고 도끼를 내리쳤다. 도끼가 안령도의 무거운 공격에 슬쩍 옆으로 밀리는 순간, 당태세는 이를 악물고 안령도를 회수하자마자 잔영포의 왼 목과 가슴을 향해 번개 같은 자격을 날렸다.
순간 전영포의 왼손이 그대로 앞으로 뻗으며 들어오는 안령도의 날을 두꺼운 팔로 막아내었다.
피가 튀고 살이 갈라졌지만 전영포는 눈썹 하나 꿈쩍이지 않았다. 당태세가 무식한 방어법에 놀라는 사이 전영포의 도끼가 하늘로 솟구치며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아래로 처박혔다.
당태세의 두 발이 땅을 박차고 뒤로 급히 물러서는 순간 당태세의 도끼가 바닥을 강타하며 나무바닥이 박살 나 허공으로 쏟아졌다.
그와 함께 흙과 파편이 같이 사방으로 퍼지고 사방의 바닥이 덜덜 떨렸다. 당태세는 화급히 몸을 일으켰다. 전영포의 도끼가 내리꽂힌 곳에는 구멍이 뻥 뚫려 아래층이 다 보일 지경이었고 당태세의 앞 옷자락은 이미 길게 찢어진지 오래였다.
전영포가 자신의 도끼와 왼팔을 바라보더니 씩 웃으며 당태세를 보았다.
“이런 걸 원했지! 이런 걸 기다렸어!”
“오냐! 이게 얼마 만이냐!”
당태세 역시 창백해졌던 얼굴에 시나브로 홍조가 들기 시작하더니 이가 드러나며 기묘한 미소가 떠올랐다.
당태세의 안령도가 휘리릭 돌며 들창의 햇살을 사방으로 반사 시켰다. 전영포의 도끼가 당태세를 향해 다시 다가왔다. 두 사내는 이를 악물고 자신의 도끼와 칼을 교차시켰다.
쇳덩이와 쇳덩이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부딪히고 불꽃을 튀기고 떨어졌다. 다시 서로를 내리치며 서로의 몸뚱이를 탐하였다.
전영포가 기합소리를 지르며 온몸으로 당태세를 밀어붙이자 바닥이 끼끽대며 비명을 질러댔다. 당태세는 두 발로 유연하게 보법을 밟으며 구름 위를 걷듯 후보(後步)를 밟아 도끼의 충격을 분산시켰다.
하지만 그보다 빠르게 전영포의 도끼가 당태세의 목을 향해 묵룡(墨龍)처럼 궤도를 틀며 날아왔다. 당태세의 안령도가 도끼의 날을 쳐올리며 옆으로 빠지자 도끼는 당태세 뒤의 들창을 박살 내며 벽을 부쉈다.
뻥 뚫린 벽을 타고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며 방안을 환하게 밝혔다.
당태세의 도가 달려들며 전영포의 목을 향해 매섭게 날아가자 전영포는 다시 왼팔을 뻗어 당태세의 도를 막아내었다. 우두둑 뼈를 긁는 소리가 칼을 타고 당태세의 손아귀에 전해졌다.
시뻘건 피가 쏟아졌지만 전영포는 표정 하나 기세 하나 변하는 것이 없었다. 실로 만부부당(萬夫不當)의 호걸이었다.
순간, 전영포의 몸이 그대로 앞으로 쏟아지며 왼 어깨로 당태세의 몸을 들이받았다.
순간 당태세가 몸과 안령도를 세워 전영포의 어깨를 찍어눌렀어도 황소 같은 사내의 몸뚱어리가 그대로 밀고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당태세가 욕을 내질렀다.
“빌어먹을!”
전영포는 그대로 당태세의 몸을 어깨로 밀어붙인 채 벽에 처박아버렸다. 이미 왼쪽 팔은 눈 뜨고 못 볼 정도의 상처를 입은 뒤였지만 전영포는 그런 것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투였다.
순간, 전영포의 왼팔이 그대로 올라와 당태세의 멱살을 잡고 노인을 벽에 처박았다. 전영포의 오른 도끼가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자신의 왼팔과 당태세의 목을 한 번에 끊어버릴 심산이었다.
당태세의 눈과 전영포의 눈이 동시에 서로를 바라보았다.
당태세는 안령도를 전영포의 팔 아래에서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바꿔 쥐었다. 그와 함께 안령도가 피범벅인 전영포의 왼팔을 그대로 파고 올라가며 팔뚝에 흐르는 핏물을 그대로 전영포의 눈에 뿌렸다.
그와 동시에 회전한 안령도는 궤도를 그대로 틀어 전영포의 손목 아래 혈도를 찍어버렸다. 순간 거짓말처럼 전영포의 오른손이 활짝 펼쳐지며 도끼가 앞으로 날아와 당태세의 머리 위 벽에 들이박혔다.
당태세는 다시 왼손을 곧게 돌려 안령도를 수평으로 쥔 채 전영포의 갈빗대와 갈빗대 사이로 칼을 집어넣었다. 순간 긴 신음과 함께 당태세의 목을 잡고 있던 왼팔의 힘이 빠져버렸다.
전영포의 도끼가 찍어버린 당태세 뒤의 벽이 쩍 소리를 내며 벌어졌다. 이윽고 도끼가 땅에 떨어지며 부서진 벽에서 햇살이 전영포를 향해 쏟아졌다.
안령도가 뽑힌 전영포의 가슴에서 폭포처럼 피가 쏟아졌다. 거한은 천천히 무릎을 꿇더니 입을 벌린 채 부서진 벽을 타고 쏟아지는 햇살을 바라보았다.
“끝났다. 영우문주.”
“…그런 것 같소. 내가 졌군.”
영우문주는 당태세를 바라보고 어설픈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커다란 비석이 땅에 떨어지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당태세가 천천히 사내의 곁으로 다가갔다. 전영포는 누운 채로 눈을 깜박이며 천장과 사방을 바라보더니 곧이어 바깥을 쳐다보았다. 동쪽하늘은 이미 환하게 밝아 있었다. 거한이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당형, 이게 내가 살아온 방편이야. 나는 이런 식으로 밖에 생각을 하지 못했거든. 난 깊은 생각을 안 하니까.”
“그래.”
울컥 피를 한 사발 토해낸 전영포가 떠오르는 해를 보더니 게슴츠레 눈을 돌려 당태세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사내가 무문의 선학(先學)을 바라보는 눈동자에는 어떤 살심(殺心)도, 원한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입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미안하우.”
당태세는 말없이 전영포를 보더니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전영포의 눈에서 서서히 총기가 사라져갔다. 멍한 표정이 되어 당태세의 얼굴과 동녘 하늘을 바라보던 전영포는 가까스로 힘을 짜 내어 당태세에게 말하였다.
“아무쪼록…… 아이들에게는… 심하게 하지 말아주시오. 그래도… 내 자식들은 그렇게 나쁜 놈은 아니오. 그저 아비 말을 잘 들은 효자들이오.”
“영우문주.”
“내 아이들은…… 살려주시구려.”
당태세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노인은 표정을 굳히고 물끄러미 전영포를 바라볼 뿐이었다. 전영포는 당태세를 물기 어린 눈으로 바라보다 천천히 눈꺼풀을 닫았다. 채 닫히지 않은 눈은 이미 혼이 떠난지 오래였다.
가없는 한숨이 당태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어느새 찬란하게 떠오른 아침햇살이 두 노인의 육신 위에 공평하게 쏟아지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