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견마지로-94화 (94/226)

94. 장사 영우상방(4)

“괜찮으세요. 당노사? 어디 다치신 것은 아니죠?”

건장한 체구에 걸맞지 않은 청아한 음성이 전혀 어울리지 않은 장소에서 울려 퍼졌다. 당태세는 멍하니 침을 잡고 여차하면 찌를 자세를 잡은 채 입을 벌리고 류소화를 바라보았다.

“노사가 여기 계실 줄 알았어요. 영우상방은 감옥이 많지 않거든요.”

“여기 소저가 어쩐 일이오?”

“시간이 없으니 일단 용건부터 정리할게요.”

“용건?”

“문 좀 활짝 열게요. 여긴 너무 어두워서 잘 안 보이네요.”

류소화는 문을 벌컥 열어젖히더니 성큼 당태세가 갇혀있던 방 안으로 들어왔다.

보아하니 이곳은 애초에는 창고로 지었다가 다른 용도가 있어 감옥으로 쓰고 있는 곳 같았다. 널찍한 방 안에는 오직 당태세만 갇혀 있고 소리가 울리는 것으로 봐서 영우상방의 어지간한 사람은 들어오지 않는 깊숙한 곳인 듯 보였다.

슬쩍 당태세가 침을 내려놓고 류소화를 바라보자 류소화는 당태세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치마를 훌쩍 걷어 올렸다. 당태세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자, 어서요!”

“아니 지금 뭐 하는 겐가! 이런 곳에서 지금 이게 할 일이오?”

당태세가 소리를 죽여 황당한 표정이 되어 재빠르게 속삭이는 것을 듣던 류소화가 슬쩍 이맛살을 찌푸렸다.

“노사, 지금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건가요?”

“엉?”

“다른 곳을 보지 말고 제 오른쪽 다리를 보세요.”

류소화의 말에 당태세는 주문이라도 걸린 듯 시선을 류소화의 오른 다리로 향하였다. 순간 당태세는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여인의 발목부터 허벅지까지 쇠로 된 갑옷이 착 달라붙어 있지 않은가. 마치 전쟁터에서 사용하는 경갑(脛甲)이 무릎 위까지 올라와 있는 듯 하였다.

“외조부님이 주문하신 보호구가 어제저녁에 들어왔어요. 생각보다 빨리 나와서 그걸 드리려고 온 거죠. 대체 무슨 생각을 하신 거예요?”

“아니 그게 아니고…….”

당태세는 채 말을 잇지 못하고 입술만 쩝쩝거리고 있는데, 그 모습을 보던 류소화는 시간이 없다는 듯 주위를 둘러보더니 다시 걷어 올린 치맛단 사이로 손을 넣으며 중얼거렸다.

“일단 이걸 벗는 걸 잘 보세요. 이렇게 하나하나 가죽끈을 푼 뒤에 젖히면…….”

여인은 자신의 발에 끼고 온 경갑을 허벅지부터 풀러 냈다. 경갑은 앞과 양옆의 세 부분이 경첩으로 젖혀지도록 만들어졌는데 그것을 가죽끈들로 단단히 고정하도록 되어 있었다.

당태세는 조금 전의 머쓱함은 잊은 채 자신의 앞에 보이는 기물(奇物)을 넋을 놓고 보고 있었다. 류소화는 멍하니 그를 보고 있는 당태세를 쳐다보더니 안 되겠다는 듯 경갑을 가져와 직접 당태세의 다리에 채워주었다.

“입을 때는 종아리 쪽부터 채우면 된다고 하셨어요. 벗을 때랑 반대지요. 시간이 없으니 옷 위에 바로 씌울게요.”

여인의 부드러운 손에 단단한 철갑을 가져와 당태세의 무릎부터 대고 뒤에서 가죽끈을 하나씩 조이기 시작했다. 당태세는 발목부터 단단한 물건이 자신의 발을 한 겹 더 감싸는 게 느껴졌다.

경갑이 무릎 위까지 채워지고 허벅지 쪽의 철갑이 가죽끈으로 조여지는 순간, 틀어져 있던 당태세의 무릎이 다시 앞으로 돌아서 들어오며 왼다리와 똑같은 자세로 곧게 펴졌다. 당태세는 자기도 모르게 신음을 내었다.

“많이 아프세요? 좀 풀러드릴까요?”

“아니오. 이대로가 좋소이다!”

“그럼 됐어요!”

류소화가 일어서며 당태세의 앞으로 돌아왔다. 류소화는 물끄러미 당태세의 모습을 보더니 싱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기이한 일이었다.

휘어져 있던 당태세의 다리가 어느새 멀쩡한 왼쪽 발과 같은 자세로 땅을 디디고 있었다.

경갑은 정강이와 허벅지가 따로 움직이도록 만들어져 있었으니 굽히고 뻗는 것이 자유로웠다. 당태세는 자신의 오른발을 천천히 들어올리더니 굽혀서 금계독립(金鷄獨立)의 자세를 취하였다. 발이 약간 저리기는 하였지만 당태세의 의지에 의해 무릎과 다리가 같이 움직였다.

당태세는 자신의 오른발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면서도 믿기지 않는다는 모습이었다.

“내가 지금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꿈을 꾸는 것인가.”

류소화가 당태세를 보며 말을 걸었다.

“서 있는데 불편함은 없으신가요?”

“……무릎 아래가 저리긴 하지만… 불편하진 않소이다.”

“무겁지 않으신가요?”

“보기보다 가볍구려.”

“보호구는 어떻고요?”

“내 살갗과 같소이다. 딱 맞게 다리를 감싸주는구려. 좀 따끔하긴 하구먼.”

“외조부께서 말씀하셨는데, 그 보호구 안에는 여기저기 가시 같은 돌기들이 나와 있다고 하셨어요. 노사의 다리를 치료할 때 침이 들어갔던 혈도라고 했어요. 그 보호구를 착용하시면 계속 그 혈도를 눌러주면서 압박을 해 주니 다리에 기력이 도는 것도 돕는다고 했어요.”

당태세는 자신의 오른발이 똑바로 앞을 향해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노인은 천천히 자세를 잡았다. 사내의 두 손이 양 옆구리에 붙더니 다시 앞으로 뻗어 나왔다.

그에 이어 주먹이 동시에 허공에서 원을 그리며 다시 쌍장을 그리더니 전후를 치고 몸을 굽혔다. 사내의 손이 뻗어 나간 곳에서 바람소리가 일어나며 조용하던 감옥 안에 회오리바람을 일으켰다.

비망권의 기수식, 전후열세(前後裂勢)였다.

류소화가 자신의 머리카락이 날리는 것을 깜짝 놀라 지켜보는데, 당태세는 다시 자세를 풀고 똑바로 서더니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당태세의 입가에 저절로 환한 미소가 맴돌며 흰 이가 드러났다. 사내는 류소화를 보며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다리에 힘을 실어도 멀쩡하구려. 진실로 꿈같소이다.

“그렇게 맘에 드세요?”

“……아니지, 이것을 어찌 꿈이라 생각하겠는가.”

당태세의 입에서 미소가 떠나가고 한일자로 굳게 다문 입이 드러났다. 당태세는 슬며시 눈을 감았다.

아직도 닫힌 그의 눈앞에는 어두운 창고 안에서 허공에 띄워 보았던 아들 당운천의 헌걸찬 용모가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당태세의 입이 조용히 시부를 읊는 것처럼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홀로 갈 길이 머니 새로 길 떠날 채비를 해야겠구나.”

***

두 사람은 길고 음습한 영우상방의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오직 횃불에만 의존하며 사방을 밝히는 복도는 마치 토굴같이 길면서도 어두운데, 당태세가 보기에 이곳은 한참 깊이 땅을 파고 들어온 곳 같았다. 당태세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무사태평한 표정으로 옆에서 걷고 있는 류소화를 바라보며 말을 걸었다.

“내가 여기 얼마나 오래 갇혀 있었던 거요?”

“아마 어제 잡혀 오신 것 같네요. 지금은 오전 식사시간 전이고요.”

“새벽이란 말인가?”

류소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태세는 이야기를 들을수록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여기 들어온 건 어찌 알게 되었소?”

“대봉상회 회주가 시장에서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요. 그리고 영우상방의 방도들이 절름발이 늙은이를 데리고 가더라는 풍문도 파다하게 돌고요. 결국 그게 누구겠어요. 단박에 알아챘지요.”

당태세는 류소화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대봉상회의 일은 어차피 백주 대낮에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한 일이었다. 그다음이 괴상하게 얽힌 것이 문제였지만 따지고 보면 그게 흉(凶)이 길(吉)로 변한 것이었다.

“그건 그렇다 치고, 대체 이곳엔 어찌 들어온 게요? 그리고 보초를 서는 위병들은 어찌 된 것이고?”

류소화는 슬쩍 고개를 앞으로 빼고 두리번대더니 앞쪽에서 작은 복도로 휙 꼬부라지며 길을 인도했다. 여인은 이곳의 지리를 잘 아는 듯 보였다.

“제가 예전에 말씀드렸잖아요. 원래 저 여기서 일을 하고 있었다고요. 예전에도 주방에서 찬모(饌母)를 하다가 이리저리 사람들 밥을 나르는 역할도 했고요.”

류소화는 복도 끝에 붙어 있는 작은 방의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당태세는 순간 방을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예닐곱 명의 위사들이 창과 도를 들고 방 안에 모여 있었는데 모두가 하나같이 탁자나 바닥에 쓰러진 채 정신을 잃고 있었다. 류소화가 당태세의 뒤에서 조곤거렸다.

“어디에 모여서 간수들이 밥을 먹는지 정도는 알고 있지요.”

“대체 이 이들은 어찌 된 거요? 죽였소?”

류소화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더니 소매 안에서 작게 싼 약첩을 들어 보였다.

“이거예요. 그때 드시라고 했더니 안 드신 미혼분이요. 술병 안에 넣어서 돌렸어요. 잘 마시더라고요.”

당태세는 기가 질린다는 듯 류소화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당차기가 그지없네. 표정 하나 변하지도 않고.”

당태세가 그리 말하자 류소화는 이내 얼굴이 새빨개지며 고개를 푹 숙였다. 당태세는 빤히 그녀를 쳐다보더니 땅이 꺼지라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저나 나는 지금 해도침옹에게 약조한 두 번째 일도 어기고 있는 것이오. 지금 류소저가 여기 있는 것을 그 노인네에게 들키게 되면 내 맹세가 헛되게 된단 말이오. 고맙기가 한량없지만 어찌 하려고 혼자 이곳을 들어오는 게요? 목숨이 아깝지 않소?”

“저를 일에 끌어들이지 않는 것 말이죠?”

“알고 계시는구먼.”

“걱정마세요. 저를 여기 보낸 것은 다름 아닌 외조부님이시니까요.”

“뭐요?”

놀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당태세를 바라보며 류소화는 조용히 속삭이듯 노인에게 말하였다.

“외조부님은 노사를 아끼세요. 그렇게 기분 좋게 사람하고 말씀 나누는 건 제가 처음 보는 광경이었어요. 장사에 오신 다음에 그렇게 즐거워하시는 건 처음 봤거든요.”

당태세는 어이없다는 듯 류소화를 쳐다보다 이내 피식 쓴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당태세 역시 기분 나쁜 표정은 아니었다.

“……망할 늙은이, 그렇다고 손녀를 용담호혈에 밀어넣는가?”

“저도 오고 싶어 온 거예요. 제가 도움이 되고 싶었으니까요!”

류소화는 당태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느덧 류소화의 얼굴에도 결기가 서려 있었다.

“호부인의 일은 저도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어요. 대봉상회를 언젠가 누가 바로 잡아주기를 바랐지요. 영우상방도 무서웠고요. 하지만 장사의 누구도 그 일을 바로잡지 않았어요. 노사께서 오기 전까지는 말이죠. 저는 제가 여기 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조부님이 막으셨어도 왔을 거예요.”

“협객은 내가 아니라 소저로구먼.”

당태세는 우뚝 서서 류소화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뚫어지라 그녀를 바라보는 노인의 시선이 못내 부담스러웠던 류소화가 얼굴을 돌리며 겸연쩍다는 듯 중얼거렸다. 여인은 노인이 매서운 눈동자를 부라리며 왜 자신을 바라보는지 알 수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갑자기 왜 그러시나요. 노사?”

“지금 저기 누워있는 위사들은 모두 소저의 얼굴을 본 것이오?”

“저들이 저를 아니까 들여보내 준 것입니다만…….”

“그렇다면 여기서 기다리시게.”

당태세는 뚜벅뚜벅 뒤로 돌아 걸어가더니 다시 위사들이 있는 방으로 건너 들어갔다.

채 반각도 지나지 않아 위사들의 처소에서 튀어나온 당태세는 붉은 기가 감도는 유엽도를 하나 들고 류소화의 앞으로 다가왔다. 시퍼렇게 불붙은 듯한 당태세의 눈빛과 칼날의 끝에서 뚝뚝 떨어지는 무언가를 본 류소화는 차마 당태세를 바라보지 못하고 뒤로 고개를 돌렸다.

여인의 등 뒤에서 당태세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부터 소저는 나왔던 길을 따라 그대로 나가시게. 그중에 만났던 위사들이나 위치를 알고 있다면 멈춰 서서 나에게 먼저 알리고.”

“저… 꼭… 이래야 하는 건가요?”

“이리하지 않으면 소저와 해도침옹이 후일 변을 당할게요.”

당태세의 입에서 말이 끊겼다. 류소화는 눈을 질끈 감고 이를 악물더니 다시 발을 옮겼다. 여인은 계단을 올라 좁은 복도 앞으로 지나가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당태세를 바라보았다. 여인의 손가락 두 개가 펼쳐지자 당태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여인의 앞으로 나갔다.

조금 뒤 무엇인가 풀썩 땅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며 당태세가 다시 류소화의 앞으로 걸어왔다. 류소화는 당태세의 칼끝을 보지 못하였고 복도 앞으로 나가는 것을 주저하였다. 당태세의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앞만 보고 나가시오. 그래야 그대의 외조부가 살 것이네.”

류소화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눈가에 눈물이 어렸지만 여인은 이제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여인은 정확하게 다섯 번 걸음을 멈추었고, 당태세는 향에 불을 붙일 시간이 되기도 전에 다섯 번 앞으로 건너갔다 다시 류소화의 앞으로 돌아왔다.

마지막 소문(小門)의 시위들이 그늘 아래 몸을 누이게 되었을 때, 류소화의 앞에서 검은 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 당태세는 류소화의 뒤에 칼을 쥔 채 남아 있었다.

“가시게. 류소저. 외조부께 감사의 말을 잊지 말고 전하시오.”

“노사께서는 어찌 하시려고요?”

류소화가 뒤를 돌아보며 당태세를 돌아보았을 때, 이미 검은 문은 굳게 닫혀버린 뒤였다.

문을 닫아버린 당태세는 작은 문에 빗장을 걸어버리고 다시 유엽도를 고쳐잡은 채 지금까지 걸어온 어두운 복도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이제 곧 해가 뜰 것이었으니 시간이 별로 오래 남은 것은 아니었다.

“오늘부로 영우문은 멸문(滅門)이다.”

당태세의 나직한 목소리와 함께 쇠로 감싼 오른발이 앞으로 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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