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 호광 장사(11)
“우리 가문은 대대로 장사에서 거간(居間)을 하며 사는 집이지요. 우리 처가도 그랬고 시댁도 그랬어요. 우리는 쌀을 파는 게 직업입니다. 장사의 성벽이 올라갈 때부터 이곳을 지켜온 가문이었지요.”
호부인은 차를 손수 내왔다. 당태세는 넓은 장원의 호젓한 안마당에서 늙은 부인과 독대하는 중이었다.
하인들보다 손에 긴 막대와 몽둥이를 쥔 이들이 훨씬 많은 집이었다. 지금 이집안에 닥친 일이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당태세도 바로 알 수 있었다.
“대봉상회는 명이 망하면서 들어온 외지인이지요. 그리고 영우문은 그보다 훨씬 늦게 들어왔을 거예요. 그들은 청나라가 산해관을 넘어온 뒤에야 장사에 들어왔으니까요.”
“그럴 거요. 그때쯤 북경 밖으로 나갔으니까.”
호부인이 당태세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영우문이 북경 출신이군요. 하여간 그들이 들어온 뒤 세상이 달라졌지요. 청나라가 들어오고 나서 세상이 변했다지만 장사는 영우문이 들어오고 나서 확실하게 변했어요.”
호부인은 차를 입에 대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영우방주의 첫 모습을 기억하지요. 순박한 나무꾼같이 생긴 사내가 쌀 거간을 하겠다고 뛰어들었지. 영 상재(商才)는 없는 사람이었어요. 허구한날 돈을 꾸러 다녔지요. 사람이 그렇게 하루하루 힘겹게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신색이 바뀌었다지요.”
“다른 일을 한 거군요.”
당태세의 말에 호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에는 장사 지부(知府)의 자리가 비어있었고, 청나라 군장(軍將)이 성의 일을 맡아 했지요. 성 안팎이 시끄러웠어요. 여전히 명을 그리는 사람들도 있었고 혈기방장한 이들은 다시 복명(復明)을 하겠다고 날뛰었지요. 그 숫자가 그래도 꽤 되었는데… 그들이 하루아침에 시신이 되어 시장바닥에 나뒹굴었어요.”
“그 뒤에 영우문이 있고 말이오?”
호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주족은 직접 한인을 치는 것을 싫어했지요. 시끄러워지니까… 말은 안 해도 다 그 사람이 한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그 쌍도끼. 그 체구… 한 눈에 영우상방의 두목임을 알아봤지. 수많은 지사와 학생들이 그 날 죽었어요.”
호부인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한참 있다 말을 이었다.
“그중에 내 맏이도 끼어 있었지요.”
당태세 역시 표정이 굳으며 찻잔을 들이켰다. 북경에서 일어났던 일을 뻔히 기억하면서 영우문주가 똑같은 일을 저질렀단 말인가. 동포의 등 뒤에 도끼를 찍어댔단 말인가.
호부인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 뒤로 영우상방은 쌀거래에 손을 떼었지요. 누구도 그들에게 가까이 가지 않았어요. 하지만 상방이라는 간판은 그대로 놔뒀어요. 무언가를 계속 거래는 했겠지요. 관부하고 작당하고 하는 짓 말이에요. 하지만 그들은 대봉상회하고 연을 맺은 뒤에 거리낌 없이 다시 시장에 나왔어요. 이 산판 대신 몽둥이와 쇳덩이를 끌고 말이지요.”
“대봉상회라는 곳이 장사의 미곡 시세를 좌우하는 것이군요.”
“맞아요. 이제 장사의 미곡 시세는 다 그들이 관할하지요. 제 차남이 그 때 장사 시장의 방회를 대표해서 미곡의 시세를 관리했는데….”
호부인의 말이 속절없이 끊겼다. 여인의 손이 떨리며 찻잔을 찾았고 당태세는 더 들을 필요 없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여인은 잠시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거운 차를 술 마시듯 입 안에 털어넣었다.
한참 동안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감돌았다. 장사의 여름은 뜨거웠고 장원 안은 세상과 단절된 듯 평온해 보였다. 앉아있는 두 사람의 표정만이 평화로운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을 뿐이었다.
“영우문의 죄가 크군요.”
“먹고 살기 위해 뭐든지 일을 시작했겠지요. 거기까지는 이해하지요. 하지만 어느새 그들은 살생에 거리낌이 없어지고 자신의 벗이었던 이들에게 칼을 수시로 들이대요.”
“나는 영우문을 처치할 겁니다.”
당태세의 말은 짧았고 단단했다. 호부인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근심 어린 낯빛을 드러내었다.
“대협께서 과연 가능할지 모르겠네요. 수많은 이들이 사람들을 고용해서 영우문을 노렸지만 모두가 실패했어요. 그들은 생각보다 고강해요. 관(官)도 그들의 뒤에 있지요.”
“부인께서도 여기서 싸우고 있지 않습니까?”
호부인은 당태세의 말에 슬쩍 웃음을 지어 보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늙은 여장부의 얼굴에는 처연한 미소가 감돌고 있었다.
“먼저 간 두 아들을 저승에서 만나 해 줄 말은 있어야지요. 이 어미도 최선을 다했다는 말을 해 주고 싶어요. 저는 이번 보리 수매가 제대로 일어날 때까지는 물러서지 않을 거예요.”
“다시 아까와 같은 일을 하시겠다고요?”
호부인은 당태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틀 뒤에 다시 상인들을 모아놓고 이야기할 거에요. 보리 수매는 며칠 안 남았어요. 상인이 하나가 되어 대봉상회에게 언질을 놓으면 아무리 그들이 힘을 가졌어도 쉽게 가격을 높게 잡진 못해요. 그때까지만 버티면 이기지요. 작년에는 실패했지만 재작년엔 우리가 이겼어요.”
여인은 다시 기력을 회복했는지 눈을 반짝거리며 또렷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주름투성이 눈매에는 집념과 끈기가 가득했다. 아들 둘을 가슴에 묻은 여인은 꺾이면 꺾이지 굽힐 사람이 아닌 듯 보였다.
“만약 실패한다면 어쩌실 겁니까?”
“그때는 제 딸이 이 상회를 받아 저 대신 일을 하겠지요. 하지만 그런 일은 없어야죠. 제 때에 끝낼 겁니다.”
호부인은 거기까지 말하고 슬쩍 당태세를 보더니 갑자기 크게 숨을 들이켜고는 자신의 두 손을 앞에 잡더니 깊게 읍을 하였다. 당태세가 눈이 휘둥그레져서 그를 쳐다보는데 여인은 당태세 앞에 고개를 숙인 채로 말을 이어갔다.
“대협, 천첩이 한가지 청이 있습니다. 이를 들어주시겠습니까?”
“무슨 일이십니까. 부인? 이런 과한 예는 안 차리시는 것만 못합니다.”
당태세의 말에 호부인이 머리를 들고 그를 쳐다보았다. 당태세는 깜짝 놀랐다. 호부인은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이 되어 그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이틀 뒤엔 제가 다시 시장에 나가 상인들을 규합할 것입니다. 하지만 저도 사람인지라 두렵기 그지없고, 무엇보다 제가 잘못되면 제 딸이 대신 저 시랑(豺狼) 같은 이들에게 맞서야 합니다! 대협, 대협께서 제 옆에서 저를 보호해주실 수 있습니까? 만금을 드리겠습니다. 부탁 드립니다!”
아뿔싸, 일을 그르치겠구나. 당태세는 그리 생각하며 이를 악물었다.
이미 그를 노리는 자들은 당태세의 용모를 파기하였을 것이고, 영우문에도 자신의 소식이 들어가 있을지도 몰랐다. 그런 이 시기에 호부인을 따라 시장에 간다는 것은 제사상에 목을 바치는 것이나 진배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 앞에서 울부짖는 여인을 놔두고 가자니 잊고 있던 협의(狹義)가 다리를 잡고 있었다.
아니다. 귀린갈 당태세. 너는 다리도 예전 같지 않고, 사람들에게 몸을 보여서도 안 된다. 팔대문주 모두의 목을 끊기 전까지 너는 실패하면 안 된다! 그러려고 지옥에서 나온 것 아니냐! 다시 살아난 것 아니냐! 알량한 강호의 협의는 나라가 망하며 사라지지 않았느냐!
사내의 머릿속에는 백 가지 천 가지의 목소리가 웅웅거리고 있었다.
당태세가 얼굴을 굳히고 쉽게 마음을 정하지 못하자 호부인은 별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며 슬쩍 옷섶으로 얼굴을 가렸다.
“죄송합니다. 오늘 일만 해도 저는 이틀 치의 명을 대협에게 산 것이나 다름없는데… 괜한 일로 늙은 것이 투정을 부렸군요. 대협에게 누가 되는 일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무쪼록 제 말은 잊으시고….”
“그림자.”
“네?”
호부인이 다시 얼굴을 들고 당태세를 바라보자 당태세는 굳은 얼굴을 채 펴지도 않고 땅을 보며 무뚝뚝하게 말을 꺼냈다.
“나는 그림자 사이에 있겠소이다. 행여 누군가 부인을 위해하려 든다면 그자는 내 손에 죽을게요. 대신 모두에게 비밀로 해 주시오.”
“대협!”
호부인은 감격하여 자기도 모르게 당태세의 두 손을 잡았다. 당태세는 여인의 두 손을 부드럽게 감싸쥐고 크게 숨을 들이쉬더니 호부인을 보며 두 손을 모아 예를 차렸다. 호부인 역시 다소곳이 손을 모으고 앞에서 당태세에게 예를 올렸다.
보는 사람 하나 없는 두 사람만의 엄숙한 맹세였다.
당태세는 자신의 행동이 잘한 것인지 잘못한 것인지 구분을 할 수 없었다.
“내가 아직 악귀 야차가 덜 되었구나.”
한참 뒤, 호부인의 장원에서 나온 당태세의 입에서 독백이 흘러나왔다. 사내의 머리 위로 짙은 먹구름이 하나둘 뭉치기 시작하였다.
***
“언제까지 장사에 머무실 예정이십니까? 숙부? 슬슬 자리를 떠야 하는 거 아닌가요?”
숙소에 돌아온 당태세를 보며 아룡이 객쩍은 소리를 내자 당태세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아룡을 바라보았다. 원래부터 한 곳에 오래 있는 것을 싫어하고 그 동네의 풍류에 진력이 나면 다른 곳으로 가자고 투정하는 게 아룡의 일이었지만 이번에는 빨라도 너무 빨랐다.
“아니, 왜 이리 빨리 가자는 것이냐? 장사가 놀 만하다고 좋아할 때는 언제고?”
“놀기야 좋습니다만 분위기가 영 아니지 않습니까.”
아룡이 개구리처럼 볼을 불룩 내밀더니만 한숨을 쉬며 투덜거렸다.
“술이나 음식이나 기루가 모자라는 것은 없습니다. 오히려 화려하다 못해 분에 넘칠 정도지요! 하지만 보십시오 숙부! 이 성안에서 주정뱅이 하나 보신 적 있으십니까?”
“그러고 보니 술 취한 사람들이 잘 안 보이는 것 같구나. 희안하도다.”
“이 동네는 외지인 아니면 술이 꼭지까지 취해도 다 집까지 걸어간답니다! 절대로 길에서 주사를 부리는 이가 없어요! 게다가 말도 점잖고 절대로 싫은 소리 안 하지요! 욕도 안 해요! 이게 무슨 사람 사는 동네란 말입니까? 어딘가 사방이 꽉 막혀서 숨도 못 쉬는 동리지요!”
“너는 그러니까 길거리에 주정뱅이가 없어서 맘에 안 든다 이거냐?”
“그렇지요! 아니, 아니, 제 말은 사람들이 절대로 틈을 보이려고 하지 않는다 이거지요! 장사꾼이 많아서 그런 건지 사람들 사이에 틈이 없어요! 그냥 정붙이기 힘든 곳이다 이겁니다.”
당태세가 보기에 아룡이 희한한 비유를 들어서 그렇지 장사에 대한 느낌은 정확하게 꿰고 있는 것 같았다. 관과 거상이 통제하고 영우문이 처리하는 규칙이 거대한 장사부를 움직이고 있었다. 외지인이 며칠 만에 알 수 있는 일이라면 이 안에서 사는 이들은 오죽하랴.
“하지만 지금 바로 갈 수는 없느니라.”
“왜요?”
“그 침의가 말하기를 최소 열흘 정도는 치료를 받아야 한다 하였으니.”
“숙부님, 그 침장이 순 사기꾼 아닙니까? 열흘간 침을 맞으면 숙부님이 훨훨 날아가기라도 한다고 한 겁니까?”
“그건 아니다만… 맞으니까 효험은 분명 있는 것 같아서 하는 말 아니냐.”
당태세가 슬쩍 풀죽은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아룡은 숙부를 딱하다는 듯이 쳐다보더니 입맛을 쩝쩝 다시더니 다시 말을 번복했다.
“숙부님이 그러시다면 열흘 정도야 더 있어야겠죠. 저는 슬쩍 부둣가나 시장 쪽을 벗어나서 다른 한적한 곳을 봐야겠습니다. 차라리 그런 곳에서 더 나은 풍류를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르겠으니까요.”
“그래, 네 맘대로 하거라.”
당태세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다리를 두들겨 보았다. 이제는 통증이 허벅지 위까지 올라오는 일은 드물었지만 아룡 앞에서는 여전히 아픈 다리를 연기해야 할 것 같았다. 아니, 그가 다리를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것은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았다.
한편 그 시각, 종리세리는 천천히 넓은 대로를 돌면서 문이 굳게 닫힌 거대한 대문들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개중 하나는 오전에 그가 시중에서 주목하며 쳐다보았던 여상인, 호부인의 저택이었다.
“확인한 바가 맞느냐.”
종리세리는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시립해 있는 사내에게 말했다. 녹영의 제복을 입고 있던 사내는 마치 종리세리의 등 뒤에 눈이라도 달려 있는 듯 꼿꼿한 자세로 서서 그의 말에 답하였다.
“네, 그렇습니다! 호부인과 기이한 노인이 서로 한담을 나누고 서로 길게 인사하는 것까지 목격했다 하였습니다.”
“믿을만한 사람인가?”
“저희 형부(刑部) 쪽에 인척이 있는 사인(使人)입니다. 호부인 아래에서도 오랫동안 일했습니다.”
종리세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장사의 관원들은 호부인의 종자들이 골목에서 죽은 것과 호부인을 쫓던 영우문도들 역시 같은 곳에서 죽은 것을 확인한 뒤였고, 희생자 중에 호부인만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역시 알아낸 뒤였다.
“문제는 부인이다. 부인이 밖으로 나오게 되면 언제든 나에게 알리도록.”
“존명!”
녹영의 병사가 짧게 구호를 붙였다. 그의 휘하에 모여있던 일고여덟 명의 병사는 각자 맡은 방향으로 모습을 숨겼다. 사내 역시 관모를 깊게 눌러쓰고 천천히 대로를 따라 어둠 속으로 몸을 숨기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