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호광 장사(7)
“숙부님, 그 침의는 찾아보셨습니까? 효험은 있으시던가요?”
새벽녘 객잔에 짐을 풀고 나갔던 아룡은 해가 지고 저녁참이 끝날 때가 되어서야 불콰해진 얼굴로 어슬렁대며 객잔 안에 들어섰다.
그래도 그 와중에 침상에 앉아서 다리를 주무르고 있는 당태세를 본 아룡은 걱정된다는 듯 노인의 안부부터 물으니, 나름대로 긴 여행길 속에서 정이 든 것은 확실해 보였다.
“찾아서 가 보긴 하였는데 몇 번 더 봐야 할 것 같구나. 그다지 효험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고…….”
“생각보단 별로였던 모양입니다. 어쩐지 그 빼빼 마른 무창 침쟁이, 별로 맘에 들지 않더라니…….”
당태세는 가죽끈이 끊어진 부목 두 자루를 침상 아래 곱게 숨겨두고 있었다.
당태세가 목괴의 도움이 거의 없이 두 발로 객잔까지 왔다는 사실을 아직 아룡에게 알리고 싶지는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았다.
당태세는 그동안 자신이 발을 절며 창촉 없는 괴창(拐槍)을 목발처럼 짚고 다니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달픈 것인지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른다리에 조금씩 힘이 붙고 급기야는 조금이라도 체중을 싣고 다닐 수 있게 되자 생각이 바뀌고 있었다.
‘두 다리로 버티고 무공을 쓸 수 있다고 한다면 오히려 목발이 적을 속이는 계책이 아닌가.’
계책으로는 만천과해(瞞天過海)요 허허실실(虛虛實實)의 병법이니 오히려 평소에 목발을 짚고 다닌다면 적들을 쉽게 속일 수 있을 것이고, 다급할 때는 임기응변이 될 것이었다. 그리고 어느새 그냥 걷는 것보다 목괴를 옆에 끼고 걷는 것도 익숙해진 터라 상대를 방심시키기에는 그만이었다.
당태세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스스로 흡족하며 표정이 풀어지는데 그 모습을 보던 아룡이 씩 웃으며 자신의 침상에 벌렁 누우며 말했다.
“그래도 숙부께서 기분이 좋으신 듯하니 다행입니다. 어쨌거나 침 맞은 게 효과는 있군요!”
“허허, 그러는 너는 오늘 재미를 좀 보았느냐? 장사의 풍류가 어떠하더냐?”
“대단합니다. 기루와 주루의 생김새며 들어오는 사람들의 면면이 무창과는 달라요! 진짜 이곳은 돈 있는 이들이 드나드는 곳이라는 생각이 확 들더란 말이죠!”
“그래? 나도 제대로 그런 곳에서 놀아보진 못했으니…….”
“시간 나면 한번 같이 가시죠! 이게 말로 설명하는 것으로는 모자라는 뭔가가 있습니다. 하다못해 점소이도 옷태가 다릅니다. 음식은 물론이고 나오는 술도 종류가 다르지요! 진짜 물산이 모이는 곳이 어떻구나 싶은 생각이 든단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데?”
한참 동안 말을 지껄이던 아룡은 슬슬 술이 깨는지 다시 눈빛이 살아났다. 아룡은 잠시 주루의 일을 떠올리는 듯 턱을 쓰다듬더니만 눈을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사람들이 술에 취하질 않아요.”
“뭐라고?”
아룡은 허공에 손가락으로 뭔가를 그리면서 생각나는 대로 지껄이기 시작했다.
“좋은 술을 먹고 어여쁜 가기들이 좋은 노래를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자기의 속내를 맘대로 터놓는 것이 주루와 기루의 미덕 아니겠습니까? 그런 풍취를 좋아해서 그곳을 들르는 저 같은 인생들이 있지요. 그런데 이곳은 조금 달라요. 아무리 말술을 먹고 대취한 사람들도 말이 이어지다보면 갑자기 정신을 번쩍 차리고….”
“정신을 번쩍 차려?”
아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실제로 취한 게 깬다기 보다는 갑자기 표정이 급변하면서 정색을 하죠. 이게 몇 명만 그런 게 아닙니다. 오늘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어요. 한참 동안 신나서 자기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말을 끊고 주위를 보더군요.”
“상인들이 대다수 손님들이니 그럴 게다. 상인들은 자기 이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목숨을 내놓고서라도 함구하지 않겠느냐?”
“네, 그건 그렇겠지요. 그런데 이문에 관련된 이야기는 아닌 것 같던데….”
“그래?”
아룡이 한참 동안 벌게진 얼굴을 만지작거리며 천장의 나무무늬를 쳐다보더니만 생각이 난다는 듯 당태세를 바라보며 말하였다.
“보리를 가지고 뭐라고 했던 것 같은데 말입니다. 아, 보리수매대금이 어떻다는 둥 하다가 갑자기 모두 말문을 닫았어요. 보리 이야기만 나오면 말이 끊어져서 제가 기억합니다요.”
당태세가 눈을 둥그렇게 뜨고 아룡을 쳐다보자 아룡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짓더니 말을 이었다.
“아, 점소이도 그 이야기가 나오면 고개를 돌리더란 말이죠.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요?”
***
선무사 천호 종리세리는 작은 등롱 하나가 달랑 붙어있는 검은 대문 앞에 서서 현판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중이었다.
‘영우상방’이라는 평범한 서체의 커다란 편액이 대문의 가운데 붙어 있었다. 종리세리는 슬쩍 주변을 돌아보고는 다시 대문을 노려보았다.
기이한 골목의 기이한 집이었다.
거택은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상가의 한복판 골목 사이에 자리 잡았으면서도 오가는 행인이 하나 없었고, 흑칠(黑漆)이 되어 있는 위압적인 대문 앞에 걸려있는 성의없는 등롱과 격 떨어져보이는 편액은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이 대문을 열고 들어오지 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종리세리의 뒤에서 그를 이곳까지 데리고 온 통판(通判)은 검은 짐승같이 웅크리고 있는 거대한 대문을 질린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종리세리에게 말을 걸었다.
“종리천호, 여기까지 모셔다 드렸으면 제가 할 일은 끝난 겁니다. 그렇지요?”
“수고하였소. 이다음부터는 제가 알아서 하겠으니 처소나 잡아주십시오.”
“아! 그럼요! 그럼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말을 마친 통판을 등을 돌리기가 무섭게 회황한 불빛이 기다리고 있는 골목 바깥으로 허겁지겁 달려나갔다. 마치 무서운 것을 보고 엄마를 찾아 달리는 아이와 같은 모습이었다.
종리세리는 도망치다시피 자리를 벗어나는 통판은 아랑곳하지 않고 천천히 대문 앞으로 걸어가 주먹으로 대문을 두들겼다.
“누군가.”
거대한 대문은 끼이익 소리를 내면서 힘겹게 열렸다. 사람의 반신(半身)이 보일 정도의 틈새 사이로 시커먼 천으로 온몸을 감싼 사내의 번득이는 눈매만이 종리세리의 눈에 들어왔다.
종리세리는 검은 옷의 눈동자를 보며 자신의 오른손을 왼쪽의 검대 위에 올리고 차분하게 말했다.
“황도에서 온 선무사 천호 종리세리다.”
“우린 관(官)과 상관없다.”
심드렁한 흑의인의 대답을 들은 종리세리의 눈이 슬쩍 위로 치켜 올라갔다.
“영우문주께 말하라. 보국장군 서림각라부에서 연락이 왔다고.”
“뭐?”
“더는 네 놈이 들어도 아는 이야기가 아니다. 가서 전하라. 기다린다.”
“이 자식, 뭐가 어쩌고 저째?”
“더 입을 놀렸다가는 네놈의 절반이 문 밖으로 굴러 떨어질 게다.”
종리세리의 눈이 번득이며 어둠 속에서 깜박이는 흑의인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잠시 정적이 흐르던 검은 대문이 다시 천천히 닫히고 누군가 화급하게 안으로 달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종리세리는 검대에 올렸던 오른손을 다시 내리고 말없이 맨 처음 있던 자세 그대로 고개를 들어 등롱 위의 편액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얼마쯤 지났을까. 검은 문이 다시 끼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열리기 시작했다.
시커먼 문짝이 입을 크게 벌리고 그를 기다리고 있던 종리세리 앞에 그 뱃속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문의 안쪽 기다란 정원에는 석등(石燈)이 군사들처럼 이 열로 도열하여 밝은 빛을 뿌리고 있었다.
“선무사 천호를 모셔오라는 문주님의 지시요. 이리 들어오십시오.”
종리세리는 안내하는 자를 따라 영우상방의 안으로 들어섰다.
상방의 안은 깊었고 마당은 넓었으며 거대한 전각들이 성곽처럼 사방을 둘러싸고 있었다. 아니, 그렇게 보이는 것 같았다. 영우상방의 색은 흑(黑)이었다.
양쪽으로 도열해 있는 석등만이 유일하게 발아래를 비춰주는 불빛이었다. 종리세리는 어둠으로 칠해진 시커먼 사방의 벽 아래에 무엇이 있고 벽 위에는 무엇이 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그림자와 흑칠과 은밀함이 사방을 물들이며 사람의 오감을 막고 있었다. 종리세리는 이 칠흑 같은 건물에 왜 상방(商幇)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지, 그리고 상업에 종사한다면 무엇을 팔고 있는지 감이 오지 않았다.
종리세리는 검은 그림자 사이로 나 있는 어두운 소로를 지나 검은 문을 거쳐 검게 칠해진 계단을 올라 사방이 시커먼 방과 복도를 지나 커다란 방 안으로 들어섰다.
다행히도 이곳에는 멀쩡한 촛불과 등불이 사방에 놓여 있었고, 방안은 생각보다 웅장하고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북경에서 오신 선무사 천호시라니…….”
그때, 방의 한 가운데 거대하고 화려한 조각이 그려진 탁자 뒤에 있던 그림자가 불쑥 등불 앞으로 나오며 대종(大鐘)같이 굵은 목소리를 내었다.
번득이는 이마 아래로 시커먼 수염이 얼굴의 반을 가리고 있는 거한(巨漢)은 그 몸뚱이가 방을 받치고 있는 기둥만 하였다.
실로 거대한 범이나 황소가 두 발로 서서 사람을 맞이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짙은 누에가 붙어 있는 듯한 굵은 눈썹 아래로 우뚝 산처럼 솟은 콧날과 부리부리한 눈은 그야말로 호걸이라 불리기에 아쉽지 않은 인물이었다.
“영우상방의 방주, 전영포라 합니다. 원로장도에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사내는 거대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자상한 어조로 손을 뻗어 종리세리에게 의자를 권하였다. 공손히 뻗은 사내의 손은 종리세리의 손보다 배는 커 보였다. 종리세리가 사내가 권한 의자에 앉자 그도 맡은 편의 탁자에 앉아 종리세리를 쳐다보았다.
서 있을 적에도 거대한 사내였지만 앉은키도 일반인들보다 머리 하나는 컸고, 나이를 먹은 것이 분명해 보이는 얼굴임에도 불구하고 종리세리를 내려다보는 전영포의 위압감은 말로 형연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종리세리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의 앞에 앉아 전영포를 마주 보았다. 그러자 전영포가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음을 지어보였다.
“천호께서는 참으로 헌걸찬 무인이십니다.”
자신을 마주 보고 앉아 그의 눈을 거리낌없이 바라본 사람이 없다는 뜻인지, 말 그대로 종리세리에 대한 칭찬인지 분간되지 않는 말이었다. 어느새 두 사람이 마주 앉은 탁자에 간결한 주안상이 펼쳐졌다.
전영포가 솜씨 좋게 두 사람의 술잔에 술을 따르고 손을 들자 뒤에 시립하고 있던 사내들이 소리 없이 방을 빠져나갔다. 은밀한 대화를 원한다는 표시나 다름없었다.
종리세리는 힘만 믿고 날뛸 것 같이 생긴 거한이 의외로 섬세하고 예리한 사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국장군 서림각라부에서 온 종리세리라 하오.”
“아랫것들에게 이미 존함은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무엇이 필요하십니까?”
“무엇이 필요하냐니?”
전영포는 슬쩍 밤송이 같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여기저기 희끗한 터럭이 올라와 있었지만 여전히 전영포의 수염은 시커먼 색이었다.
“이미 서로가 필요한 것은 알고 있으니 과한 겸양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종리천호. 이곳 영우상방을 알고 들어오신 데에는 그만한 부탁이 있으신 것 아닙니까?”
“무엇을 해 줄 수 있소이까?”
종리세리의 말에 전영포는 미소를 지우고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무엇이든 원하시는 것을 말씀하십시오. 인명(人命), 재물, 명성, 모략. 모든 것이 가(可)하고 모든 것을 불가(不可)하게 할 수 있지요.”
아아, 종리세리의 입에서 탄식 같은 함성이 새어 나왔다.
무엇인지 알 것 같다는 듯 종리세리의 고개가 상하로 움직였다. 하지만 종리세리의 표정에는 한 치의 변화도 없었다. 전영포가 새삼스레 눈을 뜨고 종리세리를 쳐다보자 선무사 천호는 영우상방의 방주를 보며 말했다.
“나는 경고를 하러 온 거요. 영우문주.”
“뭐라고?”
“누군가 당신의 목을 노리고 있소이다.”
“무슨 말이오. 누가 말이오?”
전영포가 슬쩍 불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종리세리를 노려보았지만 종리세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상대방의 눈을 쳐다보며 조용히 말하였다.
“그대는 절름발이 노인을 아시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