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호광 장사(6)
“이곳에서 영우문을 본 적이 있나, 당태세?”
양중일은 당태세를 침상으로 데려가 그곳에 걸터앉혔다. 그를 침상에 올려놓고 앉아서 침을 놓을 작정인 듯싶었다. 당태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실은 아까 류소저를 데리고 오는 길에 수하 둘을 만났습니다.”
“뭐야?”
“저를 미행했더군요. 시장에서 영우문을 묻고 다녔다는 이유로.”
양중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래서, 어찌 되었나? 소화가 보았느냐? 그들은 지금 어디있느냐?”
“유인해서 모두 없앴습니다. 소저는 이 일을 모릅니다.”
양중일은 어이가 없다는 듯 당태세를 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느새 노인의 손에는 세침이 들려 있었다.
“사람 잡는 귀신은 네 놈을 안 떠나는구나. 당태세. 내가 널 고치는게 옳은 일일지 모르겠다.”
양중일은 한숨을 쉬면서도 당태세의 오른발을 쓰다듬으려 침놓을 곳은 신중하게 고르는 중이었다. 노인의 매서운 눈은 당태세의 다리를 떠나지 않고 있었지만 그 입은 쉬지 않고 이야기를 꺼내고 있었다.
“네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모르지만, 영우문은 이곳 장사에 와서 더욱 세력이 커졌다. 예전 북경에 있을 때보다 말이야.”
신선 같은 생김의 노인은 침상에 걸터앉은 당태세의 앞에 의자를 놓고 앉았다. 해도침옹 양중일의 세침이 당태세의 뒷무릎 안으로 깊숙이 파고 들어갔다. 찌릿한 통증조차 느끼지 못하는 오묘한 침술이었다.
노인은 한가로운 손놀림으로 당태세의 혈과 근육에 세침을 하나씩 박아넣고 있었지만 침이 들어가는 것은 눈에 보이되 발에는 어떤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무창에 있을 때는 장사에 영우문이 남아있다는 것도 알지 못하였지. 와 보니 소화가 그 안에서 허드렛일을 하고 있더구먼. 작은 상방의 포주(庖廚: 주방)에서 일하고 있다기에 그런가 보다 하였는데 후일 알고 보니 그곳이 영우문이었어.”
“영우문주 전영포와 인사는 하신 겁니까?”
양중일은 고개를 저으며 다시 침을 꽂아 넣었다. 이번에도 통증하나 없이 발목 안으로 침이 밀려 들어갔다. 당태세는 자신의 다리 안으로 쇠침들이 끝머리만 남기고 다 들어가는 것을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중이었다.
“무창 견정문의 선례가 있으니 그냥 나 혼자 아는 것으로 하였지. 영우상방이라 불리더군. 그곳의 화주가 전씨고 아래 있는 이들이 무공을 한다 하니 내가 혼자 알아본 것이다. 너도 영우문의 일편칠경(一片七驚)은 한눈에 봐도 알지 않느냐? 그런 수법을 쓰는 철편이 그곳 말고 또 있느냔 말이지.”
“독특한 보법과 타점(打點)을 가지고 있지요. 그 꽃잎 같은….”
“매화문(梅花紋)이 남게 되지. 그걸 보고 영우문이라는 걸 확신하게 된 거야.”
또 다른 침 하나가 발꿈치 뒤쪽으로 하나 들어갔다. 당태세가 양중일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디서 일편칠경을 보셨습니까?”
“서문 앞에서 죽은 장사꾼의 등판에 찍혀 있더군.”
순간, 작은 세침 하나가 무릎 아래쪽으로 깊숙하게 박히자 갑자기 온 다리에 통증이 밀려오며 침이 박힌 곳마다 짜릿한 통증이 오른 다리 전체를 뒤흔들었다.
자기도 모르게 당태세는 인상을 쓰며 오른 다리를 내려다보는데 양중일은 다시 침 하나를 밀어 넣었다. 순간 다리를 뒤흔들던 고통이 눈녹듯 사라지며 거짓말처럼 다리의 떨림이 멈추었다.
“상회의 회주까지 올랐던 사람이야. 상회 발전에 대해 장사지부에게 몇 번 투서까지 올렸던 사람이었지. 하지만 어느 날 새벽, 그렇게 죽고 말았지. 나는 우연히 그 광경을 보게 된 것이고.”
“그게 영우문의 소행이라는 증거가 있습니까?”
“영우문의 전영포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다네. 하지만 그 아들 둘은 가끔 시중을 돌아다니지. 개중 하나는 동편(銅鞭)을 차고 다니고 한 놈은 쌍단도를 사용하지. 전영포의 두 아들이야. 하지만 사람들은 그들을 쌍도자(雙屠子)라고 부른다네.”
“쌍도자…….”
“그놈들의 짓이라고 사람들이 말하지.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순간, 양중일이 입을 닫았다. 어느새 뒤에 류소화가 다가온 것이다. 류소화는 작은 잔에 백주(白酒)를 담아 왔는데 당태세에게 그 잔을 건네고 있었다. 당태세가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듯 양중일을 보니 해도침옹 양중일은 엄숙하게 당태세를 보며 말하였다.
“백주(白酒)에 미혼분을 탄 것이다. 죽 마셔라.”
“미혼분? 이걸 왜 먹습니까?”
“지금부터 놓는 침은 사람이 견디기 힘들다. 네놈이 아무리 강골이고 성격이 더러워도 참기 힘들게야.”
당태세는 물끄러미 술잔을 바라보더니만 되었다는 듯 손을 들어 거절해 보였다. 난감해하는 류소화를 보며 해도침옹 양중일이 당태세에게 눈살을 찌푸렸다.
“왜, 못 믿겠어? 내가 직접 만든 미혼분이야. 즉효니 한 잔 마시면 바로 한 다경 정도는 늘어지게 잘 수 있다고.”
“약을 먹고 정신을 놓고 싶지는 않습니다.”
“허, 이런 막 되어먹은 놈이 있나! 내가 널 어쩌기라도 한다는 말이야?”
“그렇진 않겠지요. 하지만 마시진 않으렵니다.”
당태세의 눈빛을 바라보던 양중일은 끄응 하며 주름을 잡더니만 류소화에게 물러서라는 손짓을 하였다. 류소화가 조심스레 뒤로 물러나자 양중일은 장침을 두 자루 손에 쥐더니만 당태세의 무릎을 자신의 두 다리 사이에 끼고는 당태세를 노려보았다.
“네놈이 게거품을 물고 쓰러져도 나는 모른다. 다리를 움직이지나 말거라.”
“알겠습니다.”
“지금부터 위아래로 장침이 네 발을 뚫고 들어가 무릎과 발목에서 혈을 점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진기를 그 안으로 넣어 두 혈 사이를 뚫을 것이야.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네 발의 움직임이 발끝까지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남의원에게 들었습니다. 해도침옹만이 가능하시다고.”
“빌어먹을 제자놈, 입이 깃털처럼 가볍구나! 그렇다면 이렇게 처치를 한 뒤에도 발이 다시 예전처럼 돌아오지 못하는 것도 아느냐?”
당태세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해도침옹의 능력이라면 오 할은 살릴 것이라 하더군요. 남의원이.”
해도침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제자욕을 하면서도 제자가 내린 진단은 정확하다 여기는 것이 틀림없었다.
“지금 혈이 교통하게 되면 네 의지대로 발끝까지 근육을 움직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뒤틀린 근육과 엇나가게 붙은 뼈를 돌릴 수는 없어. 체중을 다 싣거나 진각(震脚)을 내는 것은 엄두에도 두지 마라. 그건 다른 식으로 해결할 문제다.”
“해결할 수는 있습니까?”
“내 걱정은 하지 마라. 지금부터는 네 걱정을 하게 될 것이니!”
해도침옹이 말을 마치고 심호흡을 하였다. 그를 보던 당태세도 깊게 숨을 들이쉬고 해도침옹의 손에 들려 있는 대침을 바라보았다.
뒤에 서서 술잔을 들고 있던 류소화는 차마 못 보겠던지 몸을 돌리고 주방 쪽으로 종종걸음을 쳤다.
그 순간 해도침옹의 짧은 날숨과 함께 손에 들린 장침이 휘어진 무릎의 연골 사이를 뚫고 그대로 다리 아래쪽으로 틀어박혔다.
당태세의 눈매가 찌그러지며 이마에 깊게 주름살이 파였다. 사내는 이를 드러 내었지만 입 밖으로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해도침옹의 손을 타고 조금씩 장침이 아래로 박힐 때마다 해도침옹의 입에서 끓는 물이 새어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무릎의 장침이 깊숙하게 아래쪽으로 박히자 이번에는 당태세의 뒤틀린 발목에 정강이와 무릎을 향하여 침이 거꾸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순간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고통이 발과 정강이를 통해 올라오며 온몸의 통각을 일깨우기 시작했다. 당태세는 자기도 모르게 악문 잇새로 신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참아라 귀린갈! 각각 장침이 여섯 치는 들어가야 서로의 혈을 타고 진기가 교통할 것이다!”
“……걱정마십시오.”
발목 안쪽에서 무릎을 향해 발을 통과하여 쑤시고 들어가는 장침이 무릎 쪽에서 들어온 장침을 향해 조금씩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이제는 전혀 상관없는 왼쪽 다리까지 저리고 아프기 시작하고, 허리와 등까지 통증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당태세는 목에 핏발이 곤두서고 저절로 얼굴에 깊은 주름이 패이는데, 정작 진땀을 뚝뚝 흘리고 있는 것은 침을 놓는 해도침옹이었다.
노인은 두 장침의 양 끝을 잡고는 깊게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는데 필경 자신의 내력을 쏟아부으며 당태세의 죽은 발 사이에 있는 혈과 기맥을 뚫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한 다경만 버텨보게!”
해도침옹의 말에 당태세는 대답도 나오지 않는 듯 잇새로 신음을 흘리며 숨을 길게 내쉬고 있었다. 고통을 그대로 감내하며 내공을 돌려 육신의 고통을 상쇄하려는 것이었다.
그 순간, 무릎과 발목 끝에서부터 갑자기 불이 붙는듯한 뜨거운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해도침옹의 정순한 내공이 침을 통하여 흘러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당태세는 이를 악물다 못해 결국 잇새로 욕을 내뱉었다.
“젠장!”
생살에 불이 붙고 뼈가 조금씩 위아래로 깨져나가는 격통이 느껴졌다. 마치 석공이 끌과 망치를 가지고 조금씩 다리를 깎아내는 것 같은 착각마저 불러일으켰다. 당태세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가 다시 침상을 꽉 잡았다. 노인의 두 손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다리는 움직이지 마!”
해도침옹 양중일은 짧게 말하면서도 두 손은 침을 잡은 채 놓지 않고 있었다. 어느새 양중일의 코를 타고 땀이 뚝뚝 아래로 떨어졌다.
당태세 역시 눈을 부릅뜨고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이 뺨을 타고 내려오는 것을 그대로 지켜보고 있었다. 당태세의 두 손은 갈퀴처럼 침상을 찍은 채로 몸이 움직이지 않게 만드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류소화는 자신의 외조부와 당태세가 침을 놓고 맞으면서 서로 비명과 진땀을 흘려대는 광경을 멀리서 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
“소화야, 저놈……입에 재갈이라도 물려라! 동네 사람들이 다 듣겠구먼!”
“재갈은…무슨……찍소리도 안 내었구만….”
“아직도 입은 살아있구나. 귀린갈.”
“어차피 시간도 남는데……영우문 이야기나…계속해주십시오.”
해도침옹은 눈을 슬쩍 흘기며 당태세를 쳐다보더니만 가쁜 숨을 쉬며 천천히 잇새 사이로 말을 흘려보냈다.
“영우상방은 물건을 팔지 않는다. 거간(居間)을 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상방이라고 이름을 붙여놓았지! 그들이 뭘… 팔고… 산다고 생각하느냐. 당태세?”
“…..모르겠습니다. 청부라도…… 한단 말이오?”
이를 악물고 땀을 흘리던 해도침옹이 슬쩍 고개를 끄덕거렸다. 땀을 뻘뻘 흘리는 노인의 얼굴은 어느새 해쓱하게 변해 있었다.
“생(生)을 사들이고 사(死)를 판다. 협박으로 일을 시작하고 살인으로 일을 끝내지. 장사의 모든 부둣가와 상인들의 머리 위에는 그들의 전주(錢主)가 있고 관(官)이 있지. 영우상방은… 그 전주들과 관(官)의 사냥개야.”
“영우문주가 그런 일을… 한단 말입니까?”
“예전의 자네가 알고 있던 전영포는 이제 없어. 귀린갈. 지금은 쌍도자의 아비이자 영우상방의 방주인 흑천상제(黑天上帝) 전영포만 남아 있을 뿐이라네.”
“무슨 말도 안 되는…….”
그 순간, 딱 하는 소리가 당태세의 오른발에서 울려 퍼졌다. 아니, 그런 소리가 당태세의 귀에 들린 것 같았다.
그와 함께 온몸을 뒤흔들던 격통이 사라지며 말할 수 없이 이상한 느낌이 무릎부터 발목을 타고 아래로 흘러내렸다.
마치 따듯한 물이 다리를 타고 흘러내리는 듯한 느낌은 급기야 발목을 건너 엄지부터 모든 발가락에 이어지기 시작하는데 그 순간 발가락들이 짜르르 울리는 것과 동시에 갑자기 안으로 구부러지더니 다시 활짝 펴졌다.
눈이 둥그레진 당태세가 자기도 모르게 힘을 주자 발가락들이 당태세의 마음먹은 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당태세의 입이 자기도 모르게 벌어지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해도침옹의 입에서 긴 한숨이 새어 나오더니 두 가닥의 장침을 잡고 천천히 위아래로 빼내기 시작하였다.
“어떠냐 귀린갈?”
“통합니다… 통해요! 발이 다시 움직이고 있습니다!”
두 자루 장침을 뽑아낸 해도침옹이 당태세의 말을 듣자 고개를 끄덕이며 준엄하게 말하였다.
“일어서라 귀린갈 당태세. 네 두 발로 장부답게 당당히 일어서 보아라!”
순간, 당태세가 침상에 몸을 내리고 아직 세침이 가득 꽂혀 있는 오른발을 땅에 디뎠다.
땅에 내려놓기만 하면 종이로 만든 모형처럼 힘없이 옆으로 무너져 내리던 오른발이 왼발과 보조를 맞춰 굳건한 기둥이 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던 류소화가 짧은 비명을 지르며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해도침옹 양중일은 의자에 앉아 수척해진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었다.
“느낌이 있느냐?”
“당태세는 말없이 앞을 쳐다보고 있었다. 사내는 눈을 깜박이며 멀리 창밖으로 보이는 한적한 수풀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사내의 눈에 비친 풍경이 흐릿하게 변하며 이지러지기 시작했다. 사내의 눈이 재빠르게 깜박였다. 잠시 뒤, 당태세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초옥 안에 울려 퍼졌다.
“예상했던 그대로군요.”
사내는 입과 눈을 닫았다. 그리고는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