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견마지로-80화 (80/226)

80. 호광 장사(5)

백발노인은 뜨거운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앞에 앉은 다른 노인을 바라보았다.

아직 날이 한창이건만 오래된 나무와 우거진 수풀이 감싼 초가집은 마치 해가 질 때처럼 어두웠고 정적이 일상을 메꾸고 있었다. 이 집은 손님을 들인 적이 없는지 작은 탁자 하나에 의자는 달랑 둘 뿐이었다.

당태세와 해도침옹이 자리에 걸터앉자 류소화는 알아서 자리를 멀리 피하였다. 양중일이 당태세를 보며 조용히 말했다.

“이 나이가 되면 어지간한 일은 놀랄 것도 아니고 흥미가 당기는 것도 아니라네. 이제 오늘 내일이면 죽을 텐데 뭐가 그리 재미있을 게 많단 말인가.”

말을 마친 노인은 앞에 앉아 있는 금전서미로 변발을 치고 하얀 콧수염만을 남긴 또 다른 노인을 바라보고는 피식 비웃음인지 실소인지 모를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죽은 줄 알았던 옛 친구가 무덤에서 기어 나와 머리를 만주족처럼 깎고 내 앞에 앉아있으니 이건 놀랍기 그지없는 노릇이구먼.”

“게다가 절름발이가 되었지요.”

“그것도 기이하군. 아니, 처량하다고 해야겠지. 잔명은 붙어 있는데 몸뚱이는 박살 났구나.”

노인의 말은 가시가 돋다 못해 듣는 사람의 화를 돋우기로 작정한 언사 같았다. 하지만 정작 그 말을 듣고 있는 당태세는 빙긋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었다.

“해도침옹, 나이를 자셔도 그 독설은 버리지 못하셨구려. 오랜만에 보는 옛 벗에게 할 말입니까.”

“옛 버릇을 버리고 얌전해지는 날은 내가 이불 속에서 죽을 날인 게지.”

뒤에서 찻잔을 물에 부수고 집안 가재를 정리하던 류소화는 할아버지의 말을 듣고는 어이없다는 듯 한숨을 쉬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런 괴팍한 노인과 같이 사는 손녀딸의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당태세는 쓴웃음을 지으며 차를 입에 가져갔다.

차는 놀랄 만큼 깊은 향과 맛이 배어나왔다. 이 쓰러져가는 초옥이 아닌 황실에서나 받아먹을 수 있는 차 같았다. 당태세가 눈을 끔벅이고 찻잔을 바라보자 해도침옹 양중일은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백발노인의 하얀 이빨은 빠진 것 하나 없이 가지런히 남아 있었다.

“아무리 늙었어도 혀는 그대로인 모양이구나. 귀린갈. 늙어서 피 냄새에 취해 다향(茶香)을 분간하지 못할 줄 알았더니 차맛이 좋은 것은 알고 있느냐?”

“오랫동안 잠을 잤으니 말입니다. 긴 이야기요.”

“그래, 그 이야기는 조금 있다 듣기로 하지. 내가 가장 먼저 듣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내가 여기 묵고 있는 것을 누가 어떻게 알려주었느냐?”

당태세는 대답 대신 품 안에서 꼬깃꼬깃 접은 종이를 양중일에게 건네주었다. 다름 아닌 무창의 남평수가 그의 병세를 소상히 기록했던 종이였다.

양중일은 그 종이를 들여다보더니만 인상을 있는 대로 쓰며 욕을 내뱉기 시작했다.

“그 젓가락같이 깡마른 새끼를 내 제자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었어! 사내대장부라는 놈이 그리 입이 가벼워서야 어디 쓴단 말인가! 내가 어디 사는지를 만천하에 다 까발리고 다닐 놈이구나!”

“남의원은 나와 인연이 있었던 것뿐이오. 그리고 해도침옹이라는 이름은 무창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던데 뭘 그러시오?”

“아무튼 빌어먹을 잡놈. 내 이럴 줄 알았어…….”

입으로는 험하게 말을 하면서도 양중일은 남평수가 진맥하고 시술한 경과를 꼼꼼히 읽어보더니만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흰 수염을 쓸어내렸다.

읽을 때마다 슬쩍 코웃음을 치는 것을 보니 남평수가 한 처치가 맘에 드는 모양이었다. 결국 양중일은 피식 쓴웃음을 지으며 종이를 내려놓았다.

“그래도 어깨너머로 배운 솜씨치고는 꽤 그럴듯하게 해 놓았구먼.”

양중일의 시선이 종이를 넘어 당태세의 오른발로 넘어갔다.

노인은 손을 들어 당태세의 오른발을 자신의 발 위에 올려놓더니 가죽끈과 부목이 없어져 기묘하게 뒤틀린 당태세의 발을 바라보았다. 양중일은 귀린갈이 탁자 위에 올려놓은 짧은 두 개의 막대기와 끊어진 가죽끈을 보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저걸로 다리를 동여매고 다녔다는 말은 하지 말게.”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 몸뚱이가 어찌 되던 칼날부터 박고 보던 네 놈의 과거지사가 그대로 생각나는구나. 아둔한 놈.”

혀를 차던 양중일의 표정이 전에 없이 진지하고 심각해지더니 두 손으로 당태세의 오른발을 움켜쥐었다. 찌릿한 통증이 순간 머리끝까지 올라오자 당태세는 자기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었다.

“어디서 이런 일을 당했는지 몰라도 꽤나 고생을 했겠구나. 충격으로 죽었을 수도 있었다.”

“사실은 십칠 년 동안 송장으로 누워 있었지요.”

“뭐?”

양중일이 고개를 돌려 당태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당태세가 물끄러미 양중일의 얼굴을 바라보자 양중일은 고개를 들고 당태세의 얼굴을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한참 동안 당태세를 바라보던 노인은 그제야 뭔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의 육신인데 눈빛만은 젊다 하였더니…….”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내가 네 소식을 마지막으로 들은 것이 북경이었어. 이자성이 물밀듯이 황성으로 몰려갈 때 자네가 의병을 꾸려서 성으로 달려갔다는 소식이 마지막이었지. 참으로 귀린갈답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네. 네가 황도에서 황제폐하와 같이 죽었다는 소리만 풍문으로 전해져 왔으니까.”

“죽었더랬지요.”

당태세는 고개를 숙이고 입을 꽉 다물었다. 당태세의 주먹이 불끈 쥐어지는 것을 보던 양중일은 한참 동안 말없이 그를 보더니 다시 말을 걸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독설이 아닌 진중하고 사려 깊은 노인의 목소리였다.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줄 수 있겠는가?”

“……말해야지요. 해도침옹께서는 이 일을 다 들으실 권한이 있으시니까요.”

“내가 내 무덤을 파는 건가? 듣지 말아야 할 이야기 아니냐?”

당태세가 양중일의 말을 듣자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차피 제가 이곳에 왔고 해도침옹께서 장사에 사시는 이상 모두 알게 될 노릇입니다.

작은 초옥 안에서 노인의 메마른 목소리가 조용하게 이어지기 시작했다.

***

당태세는 말을 마칠 때까지 두 잔의 찻잔을 비웠다.

앞에서 듣고 있던 양중일은 첫 번째 찻물이 차갑게 식을 때까지 찻잔에 손도 대지 않고 있었다. 제남, 개봉, 무창을 지나 장사까지 이른 긴 당태세의 여정을 듣던 양중일은 입맛을 다시더니 말없이 당태세의 뒤틀린 발을 바라보았다.

“기이하고도 처절한 이야기로세.”

“이 일을 하려고 다시 깨어났으니까요.”

당태세의 어조는 짧고 스산하면서도 단호하였다. 양중일은 식은 차를 마시며 여전히 장년의 불꽃을 눈에 담은 노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한숨을 쉬었다.

“허망한 일을 좇아 남은 생을 허비하는 것일 수도 있네.”

“그럴 수도 있겠지요.”

“이미 명나라 주씨의 천하는 끝났어. 하늘은 저 북막의 애신각라(愛新覺羅) 씨에게 중원을 넘겨주었다. 이제 명의 치세는 거의 이십여 년 전이고, 청의 세상은 갈수록 고강해지네. 그런 와중에 너는 그 비루한 몸으로 망국의 한을 풀겠다고 나서는 것이냐.”

“원수가 멀쩡히 살아있는데 당연한 것 아닙니까.”

당태세의 목소리는 차갑기만 한데 그를 바라보는 양중일의 표정은 덤덤하면서도 처연하기 그지없었다. 해도침옹은 당태세가 젊은 시절에도 이미 노인이었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더 많은 주름살과 흐릿해진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눈동자만큼은 살아온 생을 반추하고 옥석을 가릴 수 있는 지혜로 번쩍이고 있었으니, 대부분의 노인들이 갖고 싶어하나 갖지 못한 통찰이었다.

“시성(詩聖) 두보는 이곳 장사 인근의 동정호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전란 덕에 평생 그리던 고향은 가 보지도 못하고 작은 배 위에서 죽음을 맞이하였지. 천하를 뒤덮을 재능이 있었던 사람도 때를 얻지 못하여 그리 생을 달리 하였는데, 우리가 두보만 하단 말인가. 당태세?”

“문인과 무인이 길이 어찌 같겠습니까.”

“다를 것은 또 무엇인가.”

“오직 복수에 대한 일념이 죽음에서 저를 깨워 여기까지 왔사오니, 혈채(血債)를 혈채로 갚을 뿐입니다.”

당태세는 양중일을 지그시 올려보며 말을 이었다.

“작은 배 안에서 체념하고 죽음을 기다리느니 원수를 하나 더 지옥으로 끌고 가기 위해 죽음을 재촉하겠습니다. 그것이 문인과 무인의 다른 길입니다.”

해도침옹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웃음을 짓더니 당태세를 보며 빈정거렸다.

“미친놈이 다 되었구나. 이제 보니 망국(亡國)이고 뭐고 다 필요없고 날 죽인 놈들만 잡아 죽이겠다는 이야기냐?”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나라는 망했지만 그놈들은 살아있으니까요.”

“그게 중요해?”

“그놈들과 같은 자리에 서 있다가 배신을 당한 자들은 채 피어보지도 못하고 이미 죽었고, 살아있는 놈들은 자신의 과거를 덧칠하며 생을 누리고 있지 않습니까?”

“……늙은이가 과거의 피 냄새를 좇아 천하를 유랑한다니 이 얼마나 가여운 일인가.”

양중일은 말을 맺고 잠시 시선을 당태세에게서 창문으로 돌렸다.

이 작은 초옥은 어둡고 들어오는 빛이 일정하여 얼마나 시간이 흐르는지를 어림잡을 수가 없었다. 마치 천지의 운행에서 벗어난 공간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한참 동안 창밖을 바라보던 양중일이 말문을 열었다.

“나 역시 기이하다 생각하고 있었다. 황성이 이자성에게 망하고 이자성이 청에게 망한 뒤로 여기저기 북경의 팔대문파가 퍼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 심지어는 장문인들도 사지육신이 멀쩡한 채로 말일세. 단 한 사람이 죽었다는 소문을 빼고 말이야.”

양중일의 시선이 당태세에게 다시 옮겨왔다.

“무창에 내려온 견정문은 엉뚱한 짓을 벌이더군. 나와 견정문주 진윤타는 의기투합하였다가 점점 사이가 틀어졌지. 그놈의 공명정대함 뒤에는 기분 나쁜 욕심이 숨어 있더구먼. 내 그곳에 더 있다가는 분을 못이길 것 같더라고. 골목에서 시비가 붙은 걸 핑계삼아 대충 남평수 그놈에게 진전을 맡기고 이리 온 게야.”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당태세의 말에 양중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견정문 소문주가 그렇게 죽다니 참으로 가슴이 아프다. 견정문주는 어찌 되었는가.”

“죽였습니다.”

양중일은 웃는 건지 한숨인지 모를 짧은 숨을 내쉬고는 다시 당태세에게 물었다.

“영우문도 없앨 요량인가.”

“불편하십니까?”

“아무리 역적이고 배신자라 하나, 나는 활인(活人)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니 불편하긴 하지. 하지만 아예 두 팔 벌리고 막을 생각까지는 없다네. 영우문은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진 않아.”

양중일은 입맛을 다시더니 탁자 위에 두 팔을 얹고는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 당태세 역시 노인을 보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해도침옹은 당태세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를 찾아온 이유는 네 오른 다리를 살려달라는 것이겠지? 영우문주 전영포를 잡을 수 있도록?”

“전영포 뿐이 아니라 다른 네 놈의 목숨을 끊을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네놈은 내가 대라신선이라도 된 줄 아는구나.”

“최소한 발의 감각이라도 돌아오게 해 주시고 발을 디디고 무게를 받을 수만 있게 해 주시면…….”

“그게 대라신선이 할 일 아니냐?”

“안 되는 겁니까?”

당태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변발에 흰 콧수염을 지닌 노인이 애처로운 표정으로 신선 같은 노인을 쳐다보자 백발노인은 풉하고 웃음을 터뜨리더니 고개를 흔들며 의자를 내리쳤다.

“못 봐주겠구만! 네놈이 무슨 이팔청춘 강호초출이야? 어디서 통하지도 않는 울상을 짓고 그래? 그게 사람을 보이지도 않게 찔러 죽이던 귀린갈이 지을 표정이냐?”

“해도침옹, 저는 절박합니다. 제가 기댈 곳은 오직….”

순간, 양중일의 표정이 변하더니 번개처럼 손가락 두 개를 당태세의 눈앞에 펴 보였다. 노인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당태세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네 다리를 봐 주마. 대신 두 가지만 약조해라. 영우문을 제외한 다른 양민들은 건들지 않겠다는 것이 첫째요.”

“맹세합니다.”

“둘째는 나와 내 손녀를 일에 끌어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둘 중 하나라도 어그러지면 네 숨골에 침을 박아버릴 테다! 천리든 만리든 소리 없이 그림자를 타고 가서 네 백회혈에….”

“걱정마십시오. 그런 일은 없을 테니까.”

당태세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제야 자신이 원하는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 당태세는 품 안에서 류소화가 볼세라 조심스레 큼지막한 은괴 하나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이곳에서 정체를 숨기고 사시는 것에는 영우문의 일도 관련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니까요. 맞습니까?”

“네 놈은 계산 하나만큼은 정확했지. 귀린갈.”

양중일은 탁자 위의 은괴를 거두어 가며 고개를 끄덕였다.

해도침옹 양중일은 몸을 일으키더니 뒤의 문갑을 열고 그 안에서 오래된 가죽 주머니 하나를 꺼내었다. 오래된 침주머니였다.

신선 같은 노인은 그를 올려보고 있는 절름발이 노인을 보며 아까와는 달리 노련하고 침착한 말투로 이야기를 걸기 시작했다. 숨겨져 있던 의자(醫子)의 모습이 완연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바로 시작하세. 영우문에 대한 이야기는 치료를 하면서 말하기로 하지. 긴 시간이 소요될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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