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호광 장사(3)
“수춘루(垂春樓)라….”
당태세는 자신의 머리 위에 있는 편액을 읽으며 높은 지붕이 올라가 있는 기루를 쳐다보았다.
화려한 단청 대신 고풍스러운 갈색과 감색의 단청을 옛스럽게 섞어 만든 지붕의 아랫장식, 유려하게 뻗어 내려온 기둥, 그리고 높은 담장과 정갈한 화초들은 이곳이 기루라기 보다는 학생들이 다니는 학당과도 같은 기분이었다.
그나마 정원 너머에서 들려오는 은은한 여인들의 노랫소리가 아니었다면 당장이라도 학창의를 두른 문사가 담 아래로 나와 자신을 맞이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당태세가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니 근방에 있는 곳은 대부분 학당과 서원이었으니, 이곳은 그들을 대상으로 열려 있는 기루인 듯 보였다.
사람은 원래 자신이 사는 곳의 풍조를 따라간다고, 기루 역시 상인들이 북적대는 상가의 화려함을 벗어던지고 고아하고 진중하니 절제된 듯한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문인(文人)들에게 노래를 파는 곳이란 말인가. 거 참 희한한 기루도 다 보겠구먼.”
당태세는 입술을 씰룩대며 기루를 노려보았지만 차마 그 안으로 들어가기는 꺼림칙한 듯 몇 번이고 주저하는 중이었다.
젊은 시절이라면야 아름다운 것과 즐거운 것을 보고 누리기 위해 불구덩이라도 뛰어들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한쪽 다리도 성치 않은 흰 수염을 기른 노인이 된 처지였다. 이런 몰골로 기루에 들어간다는 것은 당태세 자신의 성에 차지 않는 일이었다.
“나 참. 절름발이가 기루에 들어간다니, 색(色)에 미친 늙은이로 볼 게 아닌가.”
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한참 동안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수춘루의 지붕을 쳐다보던 노인은 입맛을 한번 다시더니 결국 목괴를 또각또각 짚으며 수춘루의 문 안으로 들어섰다.
웃으면서 달려오던 기루의 여주인이 당태세의 행색을 보고 잠시 멈칫하더니만 다시 웃음을 머금고 노인 앞에서 예를 갖추었다. 그나마 옷이라도 깔끔하게 차려입고 온 것이 축객(逐客)을 당하지 않은 이유인 듯 보였다.
“노대가. 이른 아침부터 이리 찾아주시니 광영이옵니다. 일전에 우리 집을 들르신 적이 있으십니까?”
“찾는 사람이 하나 있어서 들렀다네.”
당태세의 말에 여주인은 다시 고개를 숙이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가식이 철철 흐르는 눈매였다.
“그러시겠지요. 찾으시는 아이 이름이 무엇인지요?”
“흠… 그… 류소화라고 하네만….”
“누구요?”
“류소화라고… 여기 있다고 들었는데.”
여주인이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자신의 뒤를 돌아보더니 다시 당태세를 보며 말하였다.
“그런 이름의 아이는 우리 집에 없는데요.”
“뭐라고? 류소화가 없단 말인가?”
“그런 이름은 둘째치고 기명으로도 쓰는 이가 없습니다. 다른 곳을 잘못 보고 오신 것 아니신지요?”
“그럴 리가 있는가… 분명 이곳에 있다 들었는데….”
“찾는 아이 말고도 우리 수춘루에는 기(技)와 예(藝)를 갖춘 아이가 많이 있습니다. 다른 아이를 보시고 한번 말씀을 나눠보심은 어떻습니까?”
“나는 그 아이가 아니면 안 된다네.”
“아니, 없는 애가 아니면 안 된다니 그 무슨 말씀이신지….”
바깥에서 작은 실랑이가 벌어지자 안에 있던 사내들이 하나둘 머리를 불쑥 밖으로 내밀었다.
보아하니 기루를 관리하는 기둥서방들인 듯싶었다. 무슨 시비가 붙는가 싶어 인상을 쓰며 나왔던 장정들은 기생어미와 이야기하는 이가 노인인 것을 보고 다시 안색을 바로 하며 무슨 용건인지를 물었다.
“무슨 일이길래 이리 시끄럽소? 이 노인이 뭐라 하였습니까?”
“아니야, 별일 아니네. 글쎄, 이분이 여기 있지도 않은 아이를 찾는다 하지 뭔가.”
“아니, 기적(妓籍)에 없는 사람을 기루에서 왜 찾는단 말인가?”
장정이 슬쩍 눈을 부라리자 당태세는 슬쩍 겁먹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사내를 올려보았다. 그러자 지금까지 당태세와 이야기하던 여주인은 장정을 뒤로 물리고는 걱정 말라는 듯 당태세를 보며 손을 내저었다.
“아이고, 노대가. 이곳에 류소화라는 아이는 없다니까요. 그리 말을 나눴으면 이젠 돌아가시구려. 이곳이 아니라 다른 기루에 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닙니까?”
그러자 그 순간, 뒤에 서 있던 다른 장정이 불쑥 머리를 내밀더니 당태세와 여주인 사이에 끼어들었다.
“류소화? 우리 가게에 류소화라고 한 명 있지 않습니까?”
“뭐?”
여주인과 당태세가 동시에 장정을 쳐다보자 장정이 피식 이를 드러내더니 머리를 건물 쪽으로 까닥대며 말을 이었다.
“주방에서 일하는 류씨 성 가진 아낙네 이름이 소화라고 들었소. 그 이를 찾아온 거 아니오?”
“뭐야? 그 아이?”
“주방에서 일한다고?”
당태세가 멍하니 장정의 말을 듣고 혼잣말을 중얼대는데 여주인이 당태세의 얼굴을 묘하게 쳐다보더니 조금 전까지 보여준 인자한 미소는 어디론가 던져버리고 있는 인상을 다 찌푸리며 날카롭게 고함을 질렀다.
“뭐야! 손님이 아니라 허드렛일 하는 계집애 찾아온 거야? 당장 여기서 꺼지지 못해!”
“아니, 이보게. 나도 잘 몰랐다니까…….”
당태세는 자기도 모르게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기루에서 소란을 피웠다가는 무슨 소문이 퍼질지 몰랐다. 당태세는 예전 개봉에서 했던 것처럼 자신을 잡극의 배우라고 생각하고 울적한 표정을 지으며 절절하게 말을 잇기 시작했다.
“내가 그 아이를 찾는 연유가 있단 말이오…….”
***
결국 당태세는 수춘루의 후원 구석에 앉아 류소화가 일이 끝난 뒤에 만나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그나마 수춘루의 사람들이 아주 정이 없는 것은 아니어서 후원에서 일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게 해 주는 대신 정문에서 윽박지른 대가로 만두 하나를 늙은 당태세 손에 쥐어 주었다.
아마 그들은 당태세가 류소화의 혈육이거나 먼 고향에서 찾아온 동리 어른 정도로 보인 모양이었다. 당태세도 더는 말없이 그들이 준 만두를 씹으며 류소화를 기다리기로 하였다. 더 크게 일을 벌려 봤자 자신에게 이득 될 것은 하나도 없었다.
“저를 보러 오셨다고요? 어르신?”
수춘루의 후원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당태세에게 한 여인이 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또 다른 수건으로 머리를 질끈 싸매고 소매를 위로 걷어 부친 팔뚝은 어지간한 남정네 못지않게 탄탄하고 굵어 보이는 기골 장대한 여장부였다.
서른 남짓 되어 보이는 여인은 뭉툭한 코와 두터운 입술에 대추씨만큼 작은 눈을 지니고 있었는데, 아무리 잘 봐줘도 미색(美色)하고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장사(壯士) 같은 체구의 여인이었다. 하지만 목소리 하나만큼은 꾀꼬리처럼 청아하기 그지없었다.
“부인께서 류씨 성에 소화라는 이름을 쓰는 분이시오?”
“네. 제 이름이 맞습니다. 노사께서는 누구신데 절 아시나요?”
당태세가 먹던 만두를 품에 넣고는 류소화를 바라보았다.
“부인께서 해도침옹 양중일의 손녀 되시오?”
류소화는 당태세의 말을 듣고 슬쩍 고개를 끄덕이더니만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네. 제 외조부님의 성함이 맞습니다. 그런데 그걸 어디서 들으셨나요?”
남평수가 거짓을 말한 것이 아니었다. 당태세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여인에게 말을 걸었다.
“내 예전부터 양노사와 교분이 있던 사람이외다. 지금도 양노사는 강녕하신가?”
“네… 강녕하시기는 한데… 그게…….”
“음?”
류소화는 당태세의 눈치를 살피더니 덩치에 안 맞는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조부님은 아무도 만나지 않으려고 하세요. 그리고 저는 과년(過年)하였지만 아직 시집을 가진 않았습니다.”
류소화는 귀밑까지 새빨개진 채로 당태세에게 말을 하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어지간히 부끄러움이 많은 여인 같았다.
“그럼 지금은 의자(醫子) 노릇도 하지 않는단 말이오?”
“침 놓으신 지 꽤 오래되셨어요.”
“아무도 안 만나고 진맥도 안 한다고?”
“……당신 이름을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세요. 지금 이렇게 제가 노사와 말하는 것도 아시면 불호령을 내리실 거예요.”
여인은 말을 마치고 자신이 무슨 죄라도 지은 것처럼 수건을 두 손으로 꼭 잡고 눈을 깜박이고 있었다. 강건해 보이는 허우대에 비해 속은 무척이나 여린 여인같았다.
당태세는 슬쩍 류소화를 살펴보았다.
깔끔하고 깨끗하게 옷을 입었지만 꽤나 낡았고 얼굴도 푸석해 보였다. 보아하니 하는 일은 많고 고되며 벌이는 적지만 기본적으로 부지런한 사람 같아 보였다. 해도침옹 양중일이 따로 일하는 것도 아니라면 딸린 입만 많다는 소리였다.
당태세는 잠시 혀를 끌끌 차고 앉아 있다가 다시 류소화를 보며 말을 이었다.
“보시오 류소저. 나는 예전부터 양노사와 친분이 있었소. 벌써 몇십 년이 흘렀지.”
당태세가 소저라고 부르자 류소화는 눈을 들고 당태세를 빤히 쳐다보았다.
당태세의 손이 품속으로 들어갔다가 슬쩍 나오는가 싶더니 번개처럼 류소화의 두꺼운 손을 덥썩 잡았다. 류소화가 화들짝 놀라며 다른 손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는데, 당태세는 나직한 소리로 다시 말을 이었다.
“양노사가 내 생명을 구해준 것이 한두 번이 아니라오. 그러던 분이 어느 날 종적을 감추었는데 안부를 물을 수 없으니 어찌 답답하고 절통하지 않은가 말이오.”
스르륵 물이 흐르듯 당태세의 손이 류소화의 손을 놓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류소화는 눈을 깜박이며 당태세에게 잡혔던 자신의 손을 펴보았다.
여인의 손바닥 안에는 큼지막한 은편(銀片) 하나가 놓여 있었다. 류소화가 재빨리 다시 주먹을 꽉 쥐는데 당태세의 한가로운 목소리가 다시 잔잔하게 흘렀다.
“내 나이도 이제 적다 할 수 없고 양노사를 더 볼 시간도 모자란데…… 어째 한 번 얼굴이나 보면서 한담을 나누기가 쉽지 않구려. 내가 장사까지 일부러 천리길을 내려왔건만…….”
“저… 잠시만 기다려 주실 수 있으세요?”
당태세가 류소화를 올려다보니 류소화는 뭔가 결심한 듯 입을 굳게 다물고 고개를 연방 끄덕이는 중이었다.
“반 시진 정도만 더 일하면 제가 수춘루에서 오늘 할 일이 다 끝나거든요? 그러면 제가 외조부님께 노사를 모셔다 드릴게요.”
“아이구. 그런 수고를 부탁드려도 되겠소?”
“수고는요. 멀리서 외조부님을 찾아오셨다면서요? 제가 오늘 뵙게 해드릴게요!”
“류소저가 그렇게만 해 준다면 내 참으로 감사하겠소.”
소저라는 말을 다시 들은 류소화는 얼굴이 다시 홍조를 띠더니 고개를 꾸벅 숙여 보였다. 여인의 모습을 보고 있던 당태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제야 꼬였던 실마리 하나가 풀린 셈이었다.
***
집객소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관인(官人)은 만남을 무척이나 껄끄러워하는 것이 느껴졌다. 아마 사내는 평소와 다름없이 타 지역의 관원을 맞이하는 요식적인 인사를 하러 온 게 분명해 보였다.
그는 자신의 손안에 들고 있는 장군부의 옥패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두 손으로 잡았다가 한 손으로 잡았다가를 반복하며 슬쩍 옥패를 보여준 앞의 흙투성이 무관(武官)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날카롭게 다듬은 콧수염만큼이나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무관은 옥패를 어찌할지 감을 못 잡는 관리를 보며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통판(通判, 정 6품 문직외관. 지방시정의 실무담당)께서는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시오. 보다시피 소관은 서림각라씨 보국장군부에서 내려온 천호 종리세리라고 하오.”
“아. 네! 종리천호! 황도의 고관을 만나 뵙게 되어 대단한 광영으로 생각하옵니다. 저희 장사는 백성과 관인이 합심하여 대청제국의 발전을 위해 애쓰는 곳으로…….”
“장사부의 지부대인을 뵙고 싶소만.”
무 자르듯 일시에 말을 끊어버리고 들어오는 종리세리의 단호한 말에 통판은 눈을 껌벅이더니 고개를 단호하게 저었다.
“지금 지부대인께서는 맡은 일이 다망하셔서 따로 시간을 내기 힘드십니다. 필요하신 것은 제게 말씀하시면 제가 빠른 시일 내에 답을 얻어 드리겠습니다.”
전형적인 관인의 대답이 통판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아무리 북경에서 내려온 고관의 말이라 하더라도 절차를 따질 것은 따지는 관인(官人) 특유의 고집이었다. 종리세리는 그럴 것이라 예상을 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용건을 말하였다.
“보국장군부의 밀명을 받았소이다. 당분간 이곳에서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으며 묵을 수 있는 침소를 마련해 주시겠소? 적어도 보름은 걸릴 일입니다.”
“그건 문제없이 처리해드리지요. 제 선에서 가능한 일입니다.”
통판은 별 것 아닌 일을 부탁한다는 듯 미소까지 지어 보이며 턱을 슬쩍 치켜들었다. 종리세리는 알겠다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계속 말을 이었다.
“후의에 감사드리오. 그리고 한 가지 더 알고 싶은 게 있는데 영우문이 장사부 어디쯤에 위치하고 있는 지 알 수 있겠습니까?”
순간, 통판의 자신만만하던 표정이 갑자기 찌푸려지며 당혹스러움을 여과 없이 드러내었다. 통판은 자신의 품계도 잊은 듯 질문을 던진 사내를 주름진 이마를 아래로 내리고 눈을 치켜떴다.
“영우문을 왜 찾으시는 겁니까? 그곳에 대해서 뭐 아시는 게 있기는 하신 겁니까?”
종리세리의 눈이 자신을 노려보는 통판을 뚫어지라 쳐다보았다. 종리세리의 메마른 목소리가 작은 집객소 안에 스며들 듯 흘러나왔다.
“일이 더 꼬이게 되면 보국장군부의 위에서 통판을 찾을 수도 있소.”
순간, 통판의 일그러진 얼굴에서 눈동자가 튀어나올 듯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