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견마지로-77화 (77/226)

77. 호광 장사(2)

아침나절이 되자 하늘이 무너질 것처럼 내리던 폭우도 어느새 멎고 어두운 하늘이 조각조각 갈라져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나오기 시작했다.

천지를 구분하기 힘든 폭우를 무릅쓰고 가기 싫다는 나귀를 질질 끌다시피 하여 분투한 아룡이 잡아놓은 시커멓던 객잔도 날이 개고 보니 그럴듯하니 괜찮은 숙소였다.

생각보다 안마당도 널찍할 뿐 아니라 방과 음식도 나쁘지 않았다. 아침에 만난 푸짐한 용모의 객잔 주인은 자신의 객잔에 찬사를 보내는 당태세를 바라보며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노대가께서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입니다! 어쩌면 어제 쏟아지는 빗속에서 저희 집을 찾아주신 것이 천운이라 이겁니다! 비록 이렇게 겉모습은 조금 낡았지만 이 집이 강남의 내로라 하는 미곡상들이 한 번씩은 들르는 곳이지요! 빈방 찾기 쉽지 않아요!”

“오호, 그렇소? 어쩐지 음식 솜씨가 범상치 않다 했더니.”

당태세가 슬쩍 주인을 치켜세우자 주인은 입에 싱글벙글 웃음을 띠고 콧수염을 만지작거렸다.

“그럼요! 우리 천품객잔의 음식이야 장사 인근에서는 알아주지요! 노대가야말로 한 끼를 드시고 바로 그 음식의 가치를 알아보시니 가히 그 연륜을 알 법 합니다요!”

두 사람의 오가는 말을 듣던 아룡은 슬쩍 객잔 주변을 살피다가 입맛을 다셨다. 아무래도 근방에는 그리 쓸만한 주루가 안 보이는 모양이었다.

“이 근방에 쓸만한 주루나 기루는 없는 겁니까.”

“아, 공자께서는 남대로를 따라 상강 근처로 가보십시오. 들어오신 부둣가에서 조금만 더 내려가면 있습니다. 그곳이 경치도 좋을뿐더러, 각처의 부상대고들이 몰려와 노는 곳이니 공자께서 원하시는 것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조용히 풍취를 볼만한 곳은 있소이까?”

“동쪽으로 가면 주자께서 세우신 그 유명한 악록서원이 있고, 그 건너편으로 늘어선 옛 성도의 성벽과 정원들이 풍취를 더하지요. 서쪽으로 돌면 무너진 명대(明代) 포탑과 전루(戰樓)가 남아 세월의 무상함을 보여주며 북쪽으로 가면 동정호로 이어지는 소상강의 자취가 기암괴석과 어우러집니다. 장사로 여행을 왔다면 당연히 사방을 모두 둘러봐야 하는 것이지요!”

객잔주인은 청산유수의 달변으로 자신의 고장을 자랑하는데 현란한 말솜씨에 자부심이 섞여 듣는 사람의 마음을 싱숭생숭 들뜨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아룡이 객잔주인의 말에 감탄하며 자기도 모르게 엉덩이를 떼는데, 당태세는 아직 궁금한 것이 남았다는 듯 주인을 보며 한마디를 더 물어보았다.

“그렇다면 이 근처에 좋은 의자(醫子)들이 많은 곳은 어디입니까?”

“의자요? 아… 의자라면 서쪽의 장터 앞 서문패루(西門牌樓)를 지나시면 그 근방에 모여있습니다. 솜씨도 좋고 약재도 비싸지 않습지요.”

객잔주인은 장사에서 움직이는 모든 물산(物産)을 꿰고 있는 사람 같았다. 아룡이 슬쩍 당태세의 눈치를 보더니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숙부께서는 진짜로 그 침의가 말한 늙은이를 찾아보실 요량이십니까?”

“여기까지 왔는데 한번 가 보는 것도 좋지 않겠느냐?”

“그렇긴 해도 헛걸음하시는 건 아닌지…….”

“걱정 말거라. 내가 아침 일찍 다녀오마. 그래도 이젠 제법 걸을 만하니 너는 네 볼일을 보러 가도 괜찮으니라.”

당태세가 웃으면서 자신의 주머니에서 슬쩍 은편을 꺼내어 아룡의 손에 쥐어 주니, 눈을 끔벅이며 불안해하던 아룡의 안색이 순식간에 환해지며 고개를 꾸벅 숙여 당태세에게 절을 하더니 객잔의 문 밖으로 향하였다.

“저는 먼저 다녀오겠습니다! 숙부께서도 잘 다녀오십시오! 일 생기면 연락하셔야 합니다!”

당태세가 알겠다고 대답을 하기도 전에 아룡은 몸을 대문에 던지듯 후다닥 튀어나가 당태세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보던 객잔주인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이거 참! 조카분께서는 여행 중의 객고(客苦)가 꽤 심하였던 모양입니다! 젊은 날에는 신나게 노는 것도 일이지요!”

하도 놀아서 그게 여독(旅毒)이 된 놈이라오.

당태세는 차마 입 밖으로 말은 내뱉지 않았지만 객잔주인의 얼굴을 마주 보고는 씩 하니 웃음을 지어 보였다. 당태세도 이제 장사에서 할 일을 실행에 옮길 때였고 지금부터는 아룡이 알 필요가 없는 사람을 만나야 할 때였다.

“그럼 나도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야 오전에 성과를 보겠구먼.”

당태세는 객잔주인이 알아듣지 못할 말을 남기고 객잔 밖으로 천천히 목괴를 짚고 나서기 시작했다.

***

“도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당태세는 지금 미간을 있는 대로 찌푸리며 서문패루에 몸을 기댄 채 이마를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대는 중이었다.

당태세가 서문시장 앞에 도착해서 즐비한 약재상과 의원들을 돌아다니며 발품을 판 지가 한 식경 가까이 되어갔지만 그가 찾는 사람을 안다는 이는 하나도 만날 수가 없었다.

“혹시 양씨 성 쓰는 침의를 아시오?”

“양씨 성 쓰는 침의가 한둘이오?”

다른 집, 다른 골목을 들어가 물어봐도 대답은 매한가지였다.

“양중일. 양중일이라고 하는 늙은 침의요. 나이가 팔순은 되었을 것인데….”

“어허, 이 분이 아침 댓바람부터 뭘 잘못 잡쉈나. 팔순이 넘은 양반이 아직까지 침을 잡는다는 게 말이 되는가?”

다음 침방과 그다음 약재상에서도 당태세의 질문에 나온 대답은 판에 박은 듯 똑같았다.

“늙은 침의라. 양씨 성 쓰는 이 중에 이름 아는 사람은 없는데?”

“나이 팔십 먹은 침의가 있다고? 허허! 애가 웃을 노릇이구먼!”

정신이 아득할 지경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늙은 의원의 이름을 묻고 다니는 당태세를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양중일 노사가 지금이면 분명 여든 줄이 되었을 터, 그가 이곳에서 활약을 하고 있다면 모를 사람이 없을 터였다. 이쯤 되면 해도침옹의 존재부터 의심을 해봐야 할 지경이었다. 이마를 연신 문지르던 당태세는 지그시 감았던 눈을 뜨고 주변을 지켜보았다.

무창이나 개봉에 버금가는 수많은 인파들이 시장의 골목을 타고 사방으로 퍼져나갔다가 다시 모이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아직 흐리지만 천천히 밝아져 가는 아침의 하늘 아래로 사람들은 활기차게 움직였다.

여기저기 드문드문 흩어진 녹영군이 도적들을 감시하며 상인들과 아침 인사를 나누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 공기에서는 물내음이 사라지지 않았고 젖은 회색성벽은 꿈틀대며 잠들어 있는 용처럼 사방을 둘러싸고 있었다.

성내의 모든 것이 평온해 보이고 가지런히 질서가 잡혀 있었다. 그러나 당태세는 그런 성읍을 보면서 찌푸린 미간을 풀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상책(上策)이 어그러지면 차선책을 찾는 수밖에 없지 않는가.”

당태세는 일단 양중일 노사를 찾는 것은 다음으로 미루고 영우문에 대한 것을 먼저 알아보기로 마음먹었다. 당태세는 조금 전 자신과 말을 나누었던 약재상에게 다시 찾아가 슬쩍 운을 띄워보았다.

“대가. 여기 양노사가 없다면 영우문이라는 곳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소이까? 내 아는 사람이 그곳에 연을 두고 있다 하여 이렇게 찾아왔는데.”

순간, 조금 전까지만 해도 너털웃음을 지으며 사람을 대한 약재상의 인상이 확 바뀌며 싸늘한 표정으로 당태세를 돌아보았다.

“이 노인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이보시오! 여기서 당장 나가시오!”

“뭐요?”

“아침부터 재수가 없으려니 무슨 소리요! 나는 모르오!”

가게 주인은 길에 당태세를 세워두고는 후다닥 가게 안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오히려 당황한 것은 당태세였다.

그것을 시작으로 당태세는 여남은 곳을 다니며 영우문에 대한 것을 상인들에게 물어봤지만 돌아온 반응은 처음 만난 약재상과 대동소이한 반응이었고, 어떤 경우는 영우문이라는 이름이 나오자마자 등을 돌려버린 사람도 있을 지경이었다.

“모두가 이름이 나오면 안색이 변하고 아예 입을 다무는구나.”

그러고 보니 금월방주 장철오가 조사하여 준 팔대문파의 첩지에도 장사의 영우문은 달랑 이름과 문주의 이름만 나와있을 뿐, 어떤 세부사항도 적혀 있지 않았다. 장철오조차 하오문의 정보를 이용해 파악을 할 수 없었다고 봐야 했다.

당태세는 결국 영우문에 대한 것을 묻는 것도 잠시 접기로 마음먹었다. 영우문이라는 이름에 대한 반응이 대동소이한 것으로 봐서 당태세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하나였다.

“두려움인가.”

당태세는 작은 다관에 들어가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해도침옹 양중일은 장사에 내려와 아예 침의를 관두고 종적을 감췄다고 봐야 하였다. 아니, 어쩌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그렇다면 그를 찾는 일은 더이상 의미가 없었다.

그리고 영우문은 분명 장사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으며 사람들 역시 영우문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영우문을 경원시하고 있었다. 단지 당태세가 타향 사람이라 예민하게 구는 것 같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영우문이라는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조차 싫은 듯 보였다. 그렇다고 영우문이 사람들에게 공공연히 패악을 떨고 다니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랬다면 오히려 영우문을 욕하고 멸시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터였다.

“이건 뭐 어디서부터 풀어야 하는 것인지도 막막하구먼.”

차라리 객잔으로 돌아가 현하지변(懸河之辯)으로 사람들을 구워삶던 객잔주인에게 물어보는 것이 더 빠를 듯싶었다. 최소한 그는 돈을 내는 손님의 질문에 무턱대고 등을 돌려대는 일은 하지 않을 것 같았다.

“애초에 객잔주인에게 물어보고 나올 것을 그랬지. 이리될 줄 누가 알았을꼬.”

당태세는 주섬주섬 장철오가 준 첩지를 다시 꺼내 보다가 고개를 흔들고는 종이를 품 안에 집어넣었다. 어느새 당태세의 가슴팍 옷섶 안은 그가 가져온 단서들로 두둑하게 채워져 있었다.

장문인들에게 빼앗은 세 장의 증서. 장철오가 써 준 팔대문파의 단서. 그리고 무창의 남평수가 써 주었던 당태세의 병세기록이 그들이었다. 당태세는 품속의 종이들을 가지런히 모으다가 남평수가 준 기록을 보다가 문득 손을 멈추었다.

“양중일이 이곳에 있으니 남 의원이 기록을 쓴 거 아니겠는가?”

당태세는 눈을 찌푸리고는 남평수가 써 준 종이를 멀리 들고 써 있는 글들을 읽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인가 가까이 있는 글은 흐릿하게 보여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다.

남평수는 자신의 체형과 흡사한 얇고 가지런한 필체로 당태세의 무릎과 오른발에 대한 소견을 빼곡하게 적어놓았는데, 그가 처음 진맥을 본 날부터 행한 침술의 경과를 세세하게 밝히고 있었다. 요령 없고 성실하기 그지없는 침의의 인성이 쓴 글에 그대로 묻어나왔다.

“그 사람 참…….”

당태세가 쓴웃음을 지으며 남평수가 쓴 첩지를 다시 접으려는 순간, 당태세는 다시 종이를 펼쳐보이더니 눈살을 다시 찌푸리고 종이의 아래쪽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종이의 맨 왼쪽 끝머리에 써 있는 글은 당태세의 다리에 대한 글이 아니었다. 당태세는 자기도 모르게 입으로 조용히 소리내어 그 글을 읽기 시작했다.

“사부의 행방을 찾지 못할 시 사부의 손녀 되는 류소화를 찾으시고… 류소화는 동부의 대로 앞에서….”

당태세는 글을 소리 내어 읽다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 노인의 눈은 계속 글을 따라가면서 조금씩 커지고 있었다.

글을 다 읽고 난 뒤 당태세는 눈을 끔벅이더니 종이를 꾸깃꾸깃 접어 다시 품 안으로 밀어 넣었다. 당태세는 자기도 모르게 콧수염을 쓰다듬고는 다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기루라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