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견마지로-74화 (74/226)

74. 호광 무창(21)

마지막 장침 하나가 무릎에서 뽑혀 나오는 것과 동시에 당태세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침의 남평수는 천으로 당태세의 다리를 닦고 여느 때와 같은 조용한 목소리로 환자에게 말을 걸었다.

“이것으로 제가 노사께 드릴 수 있는 치료는 다 한 것 같습니다. 이 이상은 제 능력 밖입니다.”

“고맙소. 많은 도움이 되었소이다.”

남평수는 슬쩍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접은 종이 하나를 건네주었다. 당태세가 이게 뭐냐는 듯 쳐다보자 남평수는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간의 병세를 기록한 것입니다. 장사로 가셔서 사부님을 만나신다하지 않으셨습니까?”

“나 이거 보게. 늙으니 내가 한 말을 바로 잊는구먼. 해도침옹을 만나겠다 내가 말해놓고 나서 부탁한 것을 까먹었다니…….”

“그간 바쁘신 탓에 그랬겠지요.”

두 사람은 잠시 말이 없었다. 여전히 강렬한 햇살이 하얗게 침방의 안으로 들어오는데, 정작 주변은 고요하기 이를 데 없었다. 먼저 침묵을 깬 것은 남평수였다.

“순무(巡撫)에게서 칙령이 내려왔습니다.”

“뭐라고 말인가?”

“고영약당과 진가약실의 전횡을 타파하고, 지금까지 두 약실이 맡았던 부두의 일을 직접 관(官)에서 처리하겠다고 하더군요. 이제 약재의 수급은 무창현에서 관할하게 되었습니다.”

“둘은 모든 것을 잃었군.”

“백성이 잃은 것은 없지요. 어쩌면 이게 진언표가 원했던 것 일수도 있고요.”

당태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슬쩍 창밖을 바라보았다. 햇살이 눈부셔 채 육안으로 쳐다볼 수 없었는데, 그 정갈함과 강렬함은 마치 불꽃처럼 타올랐다 일순간 스러진 청년을 보는 것만 같았다. 당태세는 자기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어쩌면 나는 그 아이를 계속 생각할지도 모르겠소.”

희로애락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침의는 당태세의 말을 들으며 자신이 사용했던 침들을 가지런히 정리하였다. 사내는 평소와 다름없이 자리를 정리하고 물을 끓여 침을 삶으며 텅 빈 듯한 표정으로 자신의 침방을 돌아본 뒤 혼잣말처럼 당태세에게 대답하였다.

“의자는 죽은 이에 연연하지 않고 산 자에 집착합니다.”

남평수는 물끄러미 비어있는 침상을 바라보다가 슬쩍 천장을 바라보았다. 눈을 빠르게 깜박이던 의자의 입에서 짧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하지만 저도 가끔 생각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겠지요.”

당태세는 은편을 탁자 위에 놓고 천천히 침방을 빠져나왔다. 노인이 목괴를 짚고 자리를 뜬 뒤에도 한참동안 남평수는 천장을 뚫어지라 바라보며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천천히 문이 닫히자 햇살만이 침의와 함께 방 안에 남았다.

***

“끝나셨습니까? 이제 슬슬 저희도 이곳을 떠야겠지요?”

침방 앞에서 수레를 대놓고 있던 아룡이 걸어오는 당태세를 보며 한가로이 말을 걸었다. 이미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귀까지 손질해 놓은 아룡은 먼 길을 떠날 채비를 다 해 놓은 뒤였다. 하지만 사내의 표정은 뭔가 부족하고 아쉽다는 듯 자꾸 주변을 바라보더니만 이윽고 혀를 찼다.

“거 참. 여기서 그 무창신룡을 만난 게 어제 같은데 이렇게 허망하게 가다니… 사람 인생은 모르는 겁니다. 숙부님.”

“그러게 말이다. 참 아까운 사람을 잃었구나.”

“아까운 사람이긴 한데…… 그렇게 창칼 들고 설치니 제 명에 죽었겠습니까요. 그래도 알던 사람이 죽어서 그런지 뭔가 동네가 섭섭한 느낌이 들고 그렇습니다. 거 참, 조심하면서 살 것이지.”

아룡의 말은 동정인지 비웃음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어쩌면 그 나름대로 죽은 자에 대한 헌사일지도 몰랐다. 아무튼 산동 금월방에서 자기 친구의 잔명도 쉽게 끊었던 모진 놈의 입에서 나오기에는 쉬운 말이 아니었다.

당태세도 물끄러미 침방 옆의 골목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수레에 옮겨 탔다.

“그래, 갈 사람은 가야지. 이곳에만 남아있을 수는 없지 않겠느냐?”

“그럼 이 다음에는 어디로 가실 겁니까? 배를 타고 소항으로 가는 게지요?”

기대에 잔뜩 부풀어 있던 아룡의 표정은 이어 나온 당태세의 말에 다시 시무룩한 얼굴로 돌아가 버렸다.

“잠깐만 기다리거라. 좋은 것은 나중에 찾는 법이다. 기왕 이곳까지 내려온 것이니 장사(長沙)를 들렸다 가는 것이 나을 것 같구나.”

“장사요? 장사에 뭐가 있는데요? 숙부님, 왜 점점 삐딱하게 이상한 곳으로만 가십니까? 이러다가 사천이나 감숙까지 가시겠다고 하시는 거 아닙니까?”

“사천은 소항을 들른 뒤에 가 보고 싶은데?”

당태세가 히죽거리자 아룡은 말도 안 된다는 듯 입을 벌리며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세상에! 무슨 생각이십니까? 사천이라면 몇 달 거리입니다! 거기까지 갔다가 산동으로 언제 돌아가시려고요!”

아룡의 반응에 당태세는 껄껄 웃으며 손사래 치는 아룡을 달래며 말하였다.

“무두리, 그건 그때 봐서 할 일이다. 지금은 장사로 가자꾸나. 남평수가 말하는데 그곳에 가면 진짜 좋은 의자(醫子)가 하나 있다고 하였다. 내가 쩔뚝대지 않고 걸을 수도 있다 하였어.”

“아니, 저 침쟁이 말을 정말로 믿고 장사로 가시는 겁니까?”

“이놈아! 장사는 원래 부촌(富村)이니라. 무창보다 나을 수도 있어! 원래 잘 사는 동리에는 한번 가 봐야 견식이 생기는 법 아니냐! 즐길 수 있을 만큼 즐겨야지! 소항만은 못해도 구경하는 재미는 쏠쏠할 것이다. 네가 언제 장사를 가 보겠느냐?”

아룡은 역시나 당태세의 은근한 사탕발림에는 끝까지 고집을 부리지 못하였다.

뭔가 맘에 안 든다는 표정이 역력했지만 돈 많고 화려한 성읍을 한 번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점점 머릿속을 가득 메우는 듯 보였다. 이윽고 아룡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나귀 고삐를 잡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당태세는 웃으면서 아룡의 어깨를 두들겨주었다.

“걱정마라, 아룡. 장사가 무창보다는 훨씬 재미있을 테니!”

“숙부님 말씀만 믿고 갑니다. 이번 무창행은 정말 별로였다고요.”

너만 기분이 안 좋은 게 아니다.

당태세는 속으로 자신의 생각을 여미며 수레 안에 올라탔다. 나귀가 움직이며 천천히 수레가 움직여 포구로 향하였다. 당태세의 얼굴에서는 이미 웃음기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어디선가 향냄새가 피어올랐다. 시장의 골목에서 불어오는 냄새였다.

아마도 상인들은 자신들 앞에서 대의를 위해 싸우다 죽은 젊은이의 화려했던 모습을 잊지 못하고 있는 듯 보였다. 채 여물지 않았던 꽃부리 같은 젊은이는 그렇게 사람들 앞에서 스러져서 백 년이고 천 년이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영원히 살 것이었다.

살아서는 영걸이요 죽어서는 협객이라.

들려온 소리에 당태세는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다물었다. 차라리 살아남아 천수를 누림이 옳지 않았으랴.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헛된 욕심이라는 것을 당태세는 알고 있었다. 진언표는 누가 뭐라고 하던 간에 자신의 길을 갔을 터였다.

그리고 당태세는 진언표의 길과는 다른 또 다른 할 일이 아직 남아 있었다.

“아룡, 잠깐 견정문에 들렸다 가자꾸나.”

“네? 그곳은 왜 들르시게 말입니까?”

“소문주가 죽었는데 그냥 간다는 게 사람의 도리가 아닌 것 같다. 내 잠시 들어가 그 아비와 조문을 하고 다시 나옴이 가당하지 않겠느냐?”

“하긴 저도 잔치에 초대받았으니…….”

의외로 아룡은 당태세의 말을 듣더니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대신 빨리 나오십시오. 괜히 한세월 그곳에서 보내시다가는 배를 내일 타야할 지도 모른단 말입니다.”

“얼굴만 비추고 올 것이야.”

당태세의 인자한 말과는 달리 그의 눈매가 서늘한 빛을 띠고 있는 것을 앞에 있는 아룡은 알지 못하였다.

***

익히 한번 걸어본 길이었지만 견정문의 통로는 좁고 한적하였다. 사람의 기색은 예나 지금이나 느껴지지 않았다. 앞장서서 길을 열던 견정문도는 당태세를 돌아보며 말하였다.

“원래 문주께서는 아무도 만나지 않으시겠다 하였습니다. 하지만 노사께서는 일찍이 소문주와 친분이 막역하신 것 같고 저도 부둣가에서 뵌 적이 있는지라…….”

당태세는 문도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문도들은 그를 기억하고 이곳까지 데려온 것이 분명하였다. 소문주의 공덕이런가. 당태세는 입가에 쓴맛이 느껴졌다.

“나 역시 문주를 뵙는 것이 참으로 민망하고 죄스럽구먼. 그냥 후원의 정원에서 기다리겠다 말씀드리게.”

“별달리 말씀드릴 것이 있으십니까?”

“소문주의 마지막을 지켜보았으니 그를 알려드리는 것이 도리겠지.”

견정문도는 참담한 표정이 되어 당태세에게 고개를 숙여보더니 몸을 돌려 본전을 향해 뛰어갔다. 당태세는 천천히 문을 넘고 또 넘어 높은 담 깊숙한 곳에 숨어있는 정원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누구 하나 이곳을 지키는 이는 없었다.

모든 이들은 견정문의 본청에서 조문객들을 살펴보고 있을 터였고 이곳은 외인이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곳이었다. 당태세야말로 진언표와의 기이한 인연으로 이곳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이었으니, 실로 이 자리에 서 있게 된 것이 공교로운 일이었다.

“인생은 제석망(帝釋網)이라.”

노인은 천천히 흘러가는 물길과 그 위에 떨어지는 나뭇잎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조금 뒤 한 사내가 후원의 작은 문을 통해 정원의 안으로 들러올 때까지도 노인은 물끄러미 정자 위에서 흐르는 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뒤늦게 도착한 사내는 지친 듯한 발걸음을 놀려 힘겹게 당태세가 서 있는 정자로 다가왔다.

“그대가 내게 아들의 마지막을 전해주겠다 한 사람이오?”

“그렇소이다. 소문주는 협객처럼 말하고 용사처럼 싸우다 영웅처럼 죽었소이다.”

“알고 있소. 모두들 그렇게 말하더구려. 그 마지막을 지켜보았소?”

“그는 웃으며 죽었소. 천하에 미련 없이 모든 것을 마무리한 듯 보였소.”

“바보 같은 놈……. 게 무슨 소용인가.”

정원 안에는 두 사람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한참동안 침묵이 흐르던 물길 위에서 자식을 떠나보낸 아비의 입이 열렸다.

“전란 중에 늦게 피붙이를 얻었소. 나라가 허물어지기 전에 얻은 아이요. 그 아이를 데리고 무너지는 황도에서 피난 와 이곳에서 새롭게 살림을 차렸소. 아이에게 망가진 터전을 보여주기 싫었소. 그리고 열심히 일하는 아비를 보여주고 싶었다오.”

“그리고 그 아이는 영웅으로 죽었지.”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아비보다 먼저 앞서 간 불효자식일 뿐인 것을!”

당태세는 천천히 몸을 돌려 격정을 토로하는 아비를 바라보았다. 이도협 진윤타는 입술을 떨며 울고 있었다. 세상 천하 어디서나 볼 수 있고, 언제 봐도 가슴 아픈 자식 잃은 아비였다.

“그 절절한 아픔을 나도 이해하오. 나도 자식을 전란 중에 잃었지요.”

이도협 진윤타의 눈이 천천히 당태세를 향하였다. 당태세는 그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부터 십칠 년 전, 무너지는 황도에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결사대를 꾸렸소. 나는 그때 사람들을 지휘하며 밀려드는 이자성군에게서 황제를 보호하려 하였지요. 그리고 그 결사대에는 내 자식도 있었소이다.”

이도협 진윤타의 물기어린 눈동자가 깜박거리더니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다. 당태세의 말은 흐르는 시냇물처럼 끊이지 않고 조용히 계속 이어졌다.

“적은 앞에서 오지 않고 뒤에서 나타났소. 나와 함께 황제를 지키자 하였던 이들이 일시에 반기를 쳐들었지. 나는 그들에게 기습을 당하였고, 내 자식은 나를 지키다 나보다 먼저 불귀의 객이 되었소이다.”

“잠깐… 잠시만….”

이도협 진윤타가 말을 가로막았지만 당태세는 진윤타의 눈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나는 그때 궁금한 게 있었소이다. 왜 그들은 그런 결정을 하였을까. 같이 충성을 맹세한 당대의 협객들이었는데 왜 그리하였을까? 그것이 내가 다시 강호에 나오면서 가졌던 가장 큰 궁금증이라오.”

이도협 진윤타가 한 발 뒤로 물러섰다. 노인의 눈에는 이제 슬픔과 함께 경악과 공포가 같이 자리 잡고 있었다. 당태세의 눈이 싸늘하게 빛나며 진윤타의 움직임을 쫓았다. 어느새 단정하니 조용하던 목소리에 날이 서기 시작했다.

“누가 그 사람들의 의견을 투항과 배신으로 몰아갔을까? 사람들의 의견이 십인십색 갈라질 때 누가 그것을 하나로 묶었을까? 사람들이 결사항전을 말할 때, 누군가는 이해득실을 따지며 그들에게 가장 좋은 길을 제시하지 않았을까? 그리하여 이자성에게 가장 좋은 조건으로 항복하는 방법을 찾아내지 않았을까? 진가약실과 고영약당이 무창의 성민들과 관계없이 이문을 따지던 것처럼?”

“너는… 순천문주. 순천문주 당태세!”

당태세의 입이 히죽 벌어지며 붉은 입술 사이로 날카로운 이가 드러났다.

“이도협 진윤타, 너는 네 아들이 왜 그렇게 뛰쳐나가 영웅으로 죽기를 바랐는지 모르더구나. 나는 아는 것을 네 놈은 모르더구나!”

“당태세… 네놈이…….”

당태세는 비틀대는 진윤타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목발을 쥐고 있는 노인은 마치 죽어가는 사람이 명이 끊기기만을 바라는 독수리처럼 진윤타를 노려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는 네 아들이 영웅으로 죽기를 바랐다. 아이가 낙망할 때마다 힘을 불어넣어 주었지. 어찌 그 아이를 너처럼 소인배로 천수를 누리게 하겠느냐? 영웅의 자질이 있으면 영웅으로 죽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네… 네 이놈….”

“그래서 그 아이는 영웅으로 죽었고, 네 놈은 내 아픔을 일 푼이라도 느끼게 되었구나.”

“이 견자 놈아!”

당태세가 진윤타의 욕을 듣고 히죽 웃었다.

“견자? 네놈 덕에 나는 십칠 년간 지옥에서 살았다. 그런 네놈이 나에게 견자라고?”

“나는 그날 이후 열심히 살았다! 진심으로 무창을 위해 일했고, 공명정대하게 살려고 노력했다! 돌아가신 황제와 부서진 명나라의 사직을 보면서 가슴아파했어! 그래서 그때의 기억을 잊지 않으려고 공정하고 청렴하게 살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이뤄진 결과가 이것인데! 이렇게 쌓아올린 결과물인데!”

이를 악문 진윤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진윤타가 자신의 가슴을 쥐어뜯으며 당태세를 향해 울부짖었다. 아마 후원 담장의 밖에서는 자식 잃은 아비의 절규로 들릴 것이었다.

“네놈이 무엇이라고! 네놈이 왜 내가 이룬 것을 망가뜨리는가!”

“그래, 어두움 후에 빛이 오며 비바람 뒤에 햇살이 다가오지.”

당태세는 진윤타를 보더니 한숨을 쉬더니 곧 오싹한 미소를 보였다. 햇살을 뒤로 받은 당태세의 그늘진 미소는 실로 악귀처럼 보였다.

“그 덕에 네놈의 자식은 너와 달리 결단이 필요할 때 목숨을 내놓더구나. 진정 대의(大義)가 무엇인지 아는 협객이더구나.”

“당태세!”

“잘 키웠더구나.”

눈물 흘리던 진윤타의 붉은 눈에 살기가 흘렀다. 어느새 진윤타는 자신의 두 손을 뻗어 기수식을 잡았다. 늙은 장문의 몸은 어느새 대적자를 향한 투기가 충천해있었다.

“죽일 테다! 당태세! 죽여버릴 테다! 이 자리에 토막을 내버리마!”

“하지만 늙은 몸이 편안하게 그날을 추억한들 네놈의 과오가 변한다더냐. 잘 들어라 진윤타.”

당태세의 눈에도 새파란 광망이 돌기 시작했다. 당태세의 목괴가 천천히 들렸다.

“네놈이 네 몸을 빼 일가를 이룬 덕에 황성이 뚫리고 황제가 죽고 나라가 망했다. 네 합리적인 판단 덕에 나는 송장이 되었다 살아났고 내 아들은 늙은 나보다 먼저 죽었다.”

당태세의 이가 부드득 갈렸다.

“죽일 테다. 진윤타! 이 자리에서 죽여주마!”

“죽일 테다. 당태세! 지금 죽여주마!”

그 시각, 무창성이 내려다보이는 북로(北路)의 언덕배기 위에 한 필의 군마가 긴 울음소리와 함께 나타났다.

말과 말 위의 사내는 모두 희뿌연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는데 오직 사내의 형형한 눈동자만이 먼지투성이 관모의 아래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사내의 말고삐를 잡고 있던 사내의 오른손이 슬쩍 왼쪽으로 내려와 안모도의 손잡이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사내는 흘러가는 장강의 정경을 말없이 바라보다가 품 안의 종이를 꺼내보고는 확인하듯 한 마디를 던졌다.

“무창, 견정문.”

종리세리는 다시 말에 박차를 가했다. 히힝 하는 말의 울음소리와 함께 말이 땅을 박차고 흙먼지를 뒤에 남겼다. 사내의 몸은 그대로 무창을 향해 돌진하듯 내려가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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