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호광 무창(14)
“조심하라 그리 말씀드렸지만 결국 이리 되셨군요. 차라리 어린아이에게 주의를 주는 것이 더 효과가 있겠습니다그려.”
“미안하게 되었네.”
남평수는 투덜대면서도 정성스레 당태세의 발목과 무릎에 침을 놓고 있었다. 시큰한 느낌이 가시며 시원한 통증이 밀려왔다. 당태세는 물끄러미 남평수의 침놓는 모습을 보고 있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 침의에게 말을 건넸다.
“혹시 자네, 지금까지 자네가 치료한 바를 적어서 내게 줄 수 있겠는가?”
“어디 쓰실 요량이십니까?”
“장사에 내려가서 해도침옹을 만나 볼 생각이네.”
“사부님이 제 욕하는 걸 듣고 싶은 모양이십니다.”
남평수는 가시 돋친 말로 응수하였지만 슬쩍 입술에는 미소가 올라와 있었다. 당태세도 웃으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얼른 이곳 일을 마무리하고 장사에 가 보고 싶구먼.”
“장사도 이곳과 별반 다름없는 곳일 겝니다. 사람이 사는 곳은 육도(六道)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지요.”
“의자인지 선승인지 모를 말이구먼.”
“그리고 이곳의 일을 마무리 지으신다는 뜻은 무엇입니까?”
당태세는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는 듯 남평수를 바라보았다. 남평수 역시 당태세를 쳐다보더니 고개를 짧게 가로저었다.
“쉽지 않을 것입니다. 노사께서 원하는 식의 해답이 나오기는 쉽지 않습니다.”
“자넨 내가 모르는 것을 아는구먼.”
“견정문의 소문주가 원하는 세상은 천하의 모두가 공평하게 거래하며 다툼이 없는 세상이지요. 하지만 그런 세상이 오기나 하겠습니까? 아무리 무창 도읍이 천하에 비해 콩알만큼 작다 하더라도 이곳도 사람들의 칠정육욕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당태세는 남평수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당태세는 남평수의 말에 동조하고 있었다. 세상천하 어디에도 그런 곳은 존재하지 않는 법이었다.
이젠 아침햇살도 숨이 막힐 만큼 더웠고, 창틀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이 내리쬐는 곳은 손을 올리지 못할 만큼 뜨거웠다.
“하지만 견정문이 있고, 진언표가 있는 한, 사람들은 그런 날이 올 것이라 믿겠지.”
“진언표가 있지만 견정문이 있기에 사람들은 낙망할 수도 있습니다.”
남평수의 말에 당태세는 고개를 들었다.
“무슨 소리인가?”
“세상에는 분란으로 손해를 보는 다수와 이득을 보는 소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소수가 늘 강하지요.”
남평수는 바람도 없는 무더운 침방 안에서 혹여 누군가의 귀로 흘러 들어갈 새라 조심스레 말문을 열고 조용하게 말을 이어갔다.
“지난 오년 여간, 무창의 약재 값은 올라가면 올라갔지 떨어진 적은 없습니다. 두 약방 모두 가격을 내리려 애쓴 적은 없단 말이지요.”
***
“늦은 저녁까지 어디에 계셨던 겁니까? 제가 들어왔을 때에도 침상에 안 계시던 것 같은데 말입니다.”
어찌된 영문인지 아룡은 일찌감치 숙소에 들어와 있었다. 아마 술자리가 일찍 파했던지 어제 마신 술의 숙취가 덜 깨어서 일찍 객잔에 들어왔던 지 둘 중 하나일 터였다. 당태세는 아룡의 말에 눈을 끔벅끔벅 대면서 핑계거리를 찾았다.
“부둣가를 따라 침잠해진 강물을 바라보며 옛 시절을 생각하였지. 떠나간 친구들도 그리워하면서…….”
“숙부님, 그런 것도 좋긴 하지만 밤에는 어지간하면 객잔에 계시는 게 낫겠습니다. 이 동네는 밤이 되면 정말 전쟁터나 마찬가지입니다.”
“무슨 소리냐. 그게?”
이미 아룡의 귓가에도 소문이 들어갈 정도라면 무창의 어지간한 사람은 부둣가에서 새롭게 시작된 진가약실과 고영약당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 해도 과장이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룡은 부둣가를 가리키며 중얼대기 시작했다.
“부둣가에서 밤마다 칼부림이 난답니다. 게다가 그 당사자가 누군지 아세요? 바로 그 진씨 소공자란 말입니다! 그 친구 허우대 멀끔하고 선하게 생겼더니만 밤에는 피에 취해서 사람들을 개잡듯이 죽이고 다닌다고 말이 자자해요!”
“뭐라고? 그게 진짜야?”
당태세가 화들짝 놀라는 시늉을 하자 아룡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제가 그냥 부둣가 놀러가지 말라고 말씀을 드리겠습니까? 제가 주루에서 말을 들어보니 소공자 그 놈의 문제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고영약당인가 하는 놈들이 원래 뜨내기인데 이 무창을 먹으려고! 응? 고영약당은 돈이 많은 놈이 뒷배라 일단 무창에 자기 힘을 과시하려 했다는 거지요!”
“저런!”
“그 놈들이 타지에서 왈짜들을 고용해서 부둣가 사람들을 잡아 패고 했던 것이 시발이 되어서 이런 일이 생겼다는 겁니다. 하지만 결국 지금 와서는 다 짜고 치는 판이 되었다 이거지요!”
“그건 무슨 소리냐?”
주루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진언표나 남평수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시각의 이야기였다. 당태세가 눈을 빛내며 자신의 이야기를 듣자 아룡은 신이 나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무창에서 오래 산 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라고 합니다. 고영약당하고 진가약실이 서로 담합해서 겉으로는 싸우는 척하고 뒤로는 동고동락한다 이거지요. 오직 진가댁 소공자만이 그게 못마땅해서 저렇게 싸운다 이겁니다.”
“그래? 진언표가 그걸 알면서도 저런단 말이냐?”
아룡이 고개를 잠시 갸웃거리더니 머리를 벅벅 긁고 눈을 껌벅이더니만 다시 고개를 도리질하고 말을 이어갔다. 아마 술이 잔뜩 들어간 새에 얻어들은 말인지라 정리가 안 되는 모양새였다.
“아니 그러니까… 다시 생각해보니까 사람들이 진가 소공자를 불쌍하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그렇지. 그러니까 혼자 예전으로 세상을 돌리려고 하는데 그게 가능할 것 같냐 이거지. 이미 녹색 마차가 동에서 서로 가면, 백색마차가 서에서 동으로 가는데 왜 혼자 저러느냐 이거죠.”
“녹색마차? 백색마차는 또 뭐냐?”
아룡이 당태세를 보더니 세상물정 하나도 모르는 아이를 가르치는 듯 슬쩍 흘겨보더니 한 수 가르쳐 주겠다는 듯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저렇게 소공자가 사달을 내면 그 날로 견정문에서 백색마차가 고영약당으로 간다 이거죠. 그러면 또 고영약당에서 녹색마차를 진가약실로 보낸다 이겁니다. 그게 뭐겠습니까? 서로 어느 정도 피해를 입었으니, 응? 이쯤해서 그만 접고 서로 손해를 보상한다 이런 거 아닙니까?”
“그런 이야기는 어디서 들었느냐?”
당태세가 넋 나간 표정으로 아룡에게 물었다.
이번만큼은 당태세가 가식으로 꾸며낸 표정이 아니라 진심으로 놀란 것인지라 얼굴에 적나라하게 당태세의 감정이 다 드러났다. 아룡은 그런 당태세를 보더니만 씩하니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제가 주루에서 고영약당의 사내에게 들은 것 아니겠습니까!”
“주루에서 만난 사내가 너에게만 말했겠느냐? 그런 이야기라면 무창 성민이 다 알고도 남음이….”
“아닙니다. 그 인간은 어제까지 고영약당에서 일하다가 어제 관뒀다고 했습니다. 자기가 원래 부두에서 들어오는 약재 총괄이었는데 부두 하나가 갑자기 줄어드니까 마구간으로 가라고 했다는 겁니다. 화가 나서 때려쳤다든가… 하여간 되게 오랫동안 일한 사람이라고 하더라고요.”
당태세는 멍하니 아룡의 말을 듣고 있었다. 실로 기이한 일이었다. 아무런 재주가 없는 아룡이지만 기이하게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풍설은 기가 막히게 주워듣는 재주가 있었다.
당태세가 재빨리 정신을 수습하고 아룡을 바라보더니 감탄 섞인 말을 내뱉었다.
“거 참 대단하구먼. 그런 중요한 일을 네게만 말하는 걸 보니 역시 그 사람이 사람 보는 눈이 있는 모양이다. 신의가 두터운 사람을 알아본 게지.”
“그렇지요. 그 사내도 신신당부하며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제가 누굽니까? 제 입이 천근만근 무겁다는 것은 숙부님이 제일 잘 아시지 않습니까?”
당태세는 부둣가에서 싸웠던 사형문의 성낙신이 했던 말이 대충 아귀가 맞아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결국 견정문과 진가약실은 고영약당과 한 배를 타고 있다는 이야기 외에는 다름이 아니었다.
오직 하나 그 중에 튀어나온 못처럼 박혀 있는 것이 소문주 진언표였다. 당태세는 물끄러미 바닥을 살펴보더니만 다시 이마를 꾹꾹 눌렀다.
“나 이거야 원.”
당태세는 자신의 주름 잡힌 이마를 손가락으로 누르면서도 못내 인상을 풀지 않았다.
***
견정문 내에서 근신하고 있는 진언표를 만나는 일은 이외로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일전 하례 때 진언표와 함께 후원 근처를 돌아다니던 당태세를 알아본 문도들이 꽤 되었는지 진언표를 보고 싶다는 당태세의 한마디에 견정문의 출입문은 활짝 열렸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진언표의 배려였다.
“노사께서 오시면 지체 없이 처소로 모시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이미 진언표도 당태세가 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이었다. 당태세는 말없이 그를 인도하는 견정문도를 다라 견정문의 깊은 곳까지 발걸음을 옮겼다.
정문과 정원, 그리고 후원과 소문주의 처소까지 이르는 모든 통로가 당태세의 머릿속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비록 지금은 일이 다르지만 언제가 다시 이 길을 걸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당태세는 천천히 목발을 짚으며 최대한 발걸음을 늦춰 지나가며 길과 문과 담벽의 구조를 머릿속에 넣는데 집중하였다. 노인이 그렇게 자신의 걸어온 길을 복기하며 움직이고 있을 때, 저 멀리 문 앞에서 한 사내가 그를 보며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다름 아닌 무창신룡 진언표였다.
청년은 마치 오래 된 친척이라도 만난 듯 반갑게 당태세를 맞이하며 환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당태세는 그 웃음이 너무 눈부셔서 슬쩍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노야! 이미 말은 전해 들었습니다! 저보다 훨씬 깔끔하게 일을 처리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지요! 역시 노야십니다! 제가 본 사람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드시는 분입니다!”
“다섯 손가락 안에서는 몇 번째인가?”
“하하! 글쎄요. 굳이 대답을 드려야 합니까?”
“굳이 들을 필요는 없겠지. 더 중요한 일도 있으니 말일세.”
진언표는 당태세의 말을 듣더니 슬쩍 손짓을 하여 주변의 사람들을 물렀다. 눈치도 있고 지략도 있는 청년이었다. 하지만 그 눈빛만큼은 고지식하고 순진무구하기 그지없어 보였다.
당태세는 이 아이의 뒤에 흑막을 누가 드리웠는지 이미 짐작을 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천하에 고지식한 사내를 앞세우고 뒤에서 다른 일을 꾸미고 타협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특기였다.
이도협 진윤타.
그가 뒤에서 아들을 기만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자네는 별 일 없었나?”
“저야 무슨 일이 있겠습니까. 그저 노야와 같이 등을 맞대고 싸우지 못함이 한스러울 뿐이지요.”
당태세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를 어찌 말해야 할꼬.
“그리 길지 않은 싸움이었네만…… 자네가 늘 그렇게 전장에서 빠졌으면 녹록치 않은 세월이었겠구먼.”
진언표의 표정이 굳으며 고개를 위아래로 움직였다.
“제 한계입니다. 어쩔 수 없는 숙명일지도 모르지요. 제가 대붕(大鵬)의 뜻을 어찌 알겠습니까?”
“자네가 싸움을 무르고 나면 늘 모든 것이 원래대로 되돌아가 있고 말인가? 그래서 지금껏 일궈왔던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고 자네 수하들은 숫자가 줄어들고?”
“짐작하신 그대로입니다. 대체 그를 어찌 아셨습니까?”
지금까지 정갈히 깔려있는 포석을 바라보던 당태세가 고개를 쳐들고 진언표를 쳐다보았다.
“그럼에도 불굴하고 진가약실과 견정문의 세는 그리 줄지 않았겠지. 아니, 매출은 줄어도 견정문의 규모와 씀씀이는 바뀐 것이 없을 테고.”
진언표는 눈을 크게 뜨고 당태세를 묘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호기심이 경계심을 뚫고 사내의 입을 통해 튀어나왔다.
“……어떻게 그것까지 아시는 겁니까?”
당태세의 입이 바싹 말라붙었다. 노인은 그를 노려보는 진언표를 쳐다보다 짧게 다시 한 번 한숨을 쉬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내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으시게.”
사내와 노인은 한참동안을 마당 앞에 서서 잘 들리지 않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는 노인이 하고 듣는 것은 청년의 몫이었다. 하지만 말하는 자의 표정은 덤덤하기 그지없었고 말을 듣고 있는 자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주먹을 쥐기를 수차례 반복하더니 결국은 노인의 얼굴을 멍하지 쳐다보고 있었다.
노인이 말을 마치고 입을 다물자 청년은 입을 벌렸다. 하지만 청년의 입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어눌하고 끝이 갈라져 채 말을 끝맺지 못하고 있었다.
“……믿을 수가 없습니다.”
“나도 들은 바일세. 가려서 듣게. 하지만 봤다는 사람이 있어.”
청년은 노인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하늘로 고개를 쳐들었다. 어느새 진언표를 이를 악물고 있었다.
“…실은… 봤습니다.”
“음?”
“몇 번을 봤습니다. 녹색의 마차라는 것. 전 그게 외지에서 들어오는 수입원인줄 알고 있었지요.”
“허.”
당태세가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려 주변을 바라보는데, 진언표의 연이은 말이 당태세의 귓속으로 파고들어왔다.
“실은…… 오늘도 와 있습니다.”
당태세가 눈이 둥그레져 진언표를 바라보는데 진언표는 멍한 표정으로 담 건너편, 견정문의 본전을 쳐다보는 중이었다.
“문주님을 만나 예를 표하고 가곤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