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하남 개봉부
따사로운 햇살은 어느새 찌르는 듯한 열기로 사람들을 대하는 폭염이 되어 있었다.
관도를 오가는 사람들이나 관문을 지키는 사람들 모두 하늘을 제대로 보지 못하였다. 그냥 서 있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땀으로 젖어버릴 것 같은 날씨였다. 게다가 가끔 불어오는 메마른 바람은 아직 다 영글지도 않은 어린 풀을 말려죽이고 하늘로 밀어 올렸다.
관문을 지키는 파수들은 인상을 쓰고 모자를 눌러쓴 채 수건으로 입을 막고선 지나가는 사람들을 확인하는 중이었다. 흑마를 탄 검은 장포의 사내가 관문의 군졸들 앞에 나타는 때는 머리 위에 해가 드높이 걸린 정오 무렵이었다.
“사람을 찾고 있다.”
사내의 손에서 나온 통부가 파수들의 찌푸린 눈을 크게 만들 때, 사내의 차분하고 메마른 목소리가 관문의 모래사람 사이에서 울렸다. 나이 지긋한 군관이 먼저 예를 갖추었다.
“말씀하십시오. 누굴 찾으십니까?”
“제남에서 이리로 넘어온 수레를 찾는다. 보름에서 한 달여 정도 지났으리라. 사내가 나귀고삐를 잡고 노인이 수레에 타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는…….”
“노인은 다리를 절고 있다.”
사내의 예리한 눈이 군관들을 돌아보며 첨언하자 저 멀리서 사내를 바라보고 있던 군관 둘이 손을 번쩍 들었다.
두 군관은 행여 뭔가 자신들이 잘못한 것이라도 있는지 서로 눈치를 보며 앞으로 나섰다. 쭈뼛대며 사내의 얼굴을 힐끔대던 군관 하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희가 본 사람들 같습니다. 한 달 조금 안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무슨 죄라도…….”
“나는 선무사 천호 종리세리라고 한다. 그들에 대해 뭔가 특이한 것이 있었는가?”
“노인이 다리를 절고 허우대 멀쩡하게 생긴 청년이 나귀를 몬 것은 기억납니다. 자신을 무두리라고 했던 것도 기억납니다.”
“무두리?”
종리세리가 묻자 군관이 피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족(漢族) 사내입니다. 한사코 자신의 이름이 무두리라고 하더군요. 그게 기억에 남습니다.”
“무두리라…….”
종리세리가 군관의 말을 되풀이하자 뒤에 있던 군관 하나도 슬쩍 손을 들어보였다. 꽤나 과묵해 보이는 표정의 군관은 종리세리를 보며 짧게 말했다.
“노인은 목발을 쓸 줄 몰랐습니다.”
“뭐라고?”
“다리를 전 지는 꽤 되어 보였는데, 목발을 짚을 줄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종리세리가 눈썹을 위로 올리며 군관을 쳐다보았다.
“무슨 소리인가?”
“노인은 목발을 짚는 법을 배우지 못한 듯 보였습니다. 평생 잘못 짚었을지도 모릅니다만 그런 경우는 드물지요. 어쩌면 목발 없이 다른 것에 의지하고 다니다가 목발을 짚게 되었을지도 모르고요.”
군관은 말이 너무 많았다고 생각했는지 자신의 수염을 만지작거리더니 고개를 숙였다.
“쓸데없는 말을 전해드린 것 같습니다. 별로 중요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아니야.”
종리세리가 겸연쩍어하는 군관을 보더니 슬쩍 개봉부로 통하는 성문을 바라보았다. 관문을 지나 일직선으로 개봉부를 향해 펼쳐진 널찍한 관도가 종리세리의 눈에 들어왔다. 종리세리는 햇살을 피해 다시 죽립을 뒤집어쓰고는 군관을 향해 말했다.
“어쩌면 가장 필요한 정보일수도 있지.”
***
“한 달쯤 전에 그런 용모의 사내 둘이 묵었지요. 젊은이는 노인을 숙부라 칭하였습니다.”
“내가 찾는 이들이 맞는 것 같군.”
종리세리는 그늘이 짙게 드리운 나무 아래에서 객잔의 노주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종리세리가 찾던 노인과 청년이 이 객잔에서 묵었다는 풍문은 사실이었다. 노주인은 선무사 천호에게 차를 내왔다. 풍미가 좋은 차였다. 종리세리는 말없이 차를 마시며 객잔 안을 살펴보았다. 오래 되었지만 깔끔하고 큰 객잔이었다.
“두 사람에 대해 기억나는 게 있으시면 말해주시오.”
늙은 객잔 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꽤 점잖아 보이는 노인은 다리를 절고 목발을 짚었지요. 청년은 호남아에 준수한 용모였는데 노는 걸 좋아하는 듯 보였습니다. 좀 경박하긴 했지만 젊은 때는 다 그런 법이지요.”
“객잔에서는 주로 뭘 했소?”
“잠만 잤습니다. 두 사람은 개봉에 놀러왔다고 했지요. 대중없이 아침저녁을 번갈아 들락거렸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같이 다니지도 않았고요.”
“같이 다니질 않아?”
객잔 주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청년은 주로 기루와 주루에서 하루 종일 돈을 탕진하며 사는 것 같았고, 노인은 개봉 성내를 구경하며 다닌다고 하더군요. 가끔 노인이 주루에서 만취한 청년을 데리고 온 적도 있습니다만.”
“동선이 다르단 말인가.”
종리세리는 찻잔 사이로 날카로운 눈을 보이며 다시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종리세리를 보던 객잔주인은 잠시 망설이더니 자신이 질문을 던졌다.
“나으리. 그들이 무슨 죄를 저질렀습니까?”
“정확한 것은 아니오. 단지 용의선상에 있을 뿐이지.”
“……그들은 죄를 짓고 도망 다니는 사람들은 아닌 듯 보였습니다만…….”
객잔주인이 말을 끊자 종리세리의 눈이 늙은 주인의 얼굴을 지그시 쳐다보았다. 종리세의 눈빛은 여름철 그늘 아래의 시원함이 아닌 백설이 만천하에 휘몰아치는 삭풍과 같았다. 주인의 입이 열렸다.
“그 두 사람 중 하나를 뽑으라면 청년이 아니라 노인입니다.”
“왜 그리 생각하시오?”
“그는 악인은 아닐지언정 선인은 아니었습니다. 본인도 자신은 선인이 아니라 하였지요.”
“그게 무슨 뜻입니까?”
종리세리의 말에 여관주인이 입에 어색하게 웃음을 머금었지만 오히려 그 표정은 당황스러움을 감추려는 것이 더 확실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그냥 본능이요. 감입니다. 전란(戰亂)을 겪은 사람이 그때 만났던 사람들을 기억하는 본능이오.”
늙은 객잔주인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종리세리를 보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
“그 노인은 결기가 대단한 인물 같았어요. 뭐든지 할 수 있는 사람 말입니다.”
***
“구봉문은 멸문당할 만한 쓰레기들이었소.”
녹영군 참장은 가뜩이나 작은 눈을 가느다랗게 만들면서 종리세리를 기이하다는 표정을 쳐다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뒤룩뒤룩 살찐 참장의 뺨 위로 땀방울이 가늘게 줄기가 되어 흘러내렸다.
“여기서 지난달에 있었던 일은 필설로 형용도 못할 만큼 괴이한 일이었소. 북문의 공사를 감독하던 개봉 유수의 무문이 갑자기 반기를 들고 개봉지부를 척살하겠다고 난리를 부렸지. 그놈들이 구봉문이오. 그리고 그 놈을 막겠다고 개봉의 다른 문파들이 우리 관부와 연합하여 개봉부를 지켜낸 것이고.”
“그렇습니까?”
미덥지 못하다는 듯한 종리세리의 말투에 녹영군 참장은 슬쩍 언성을 높이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니까! 그날 새벽 일찍 고변을 듣고 내가 직접 병사들을 끌고 개봉부로 들어가 지부 대인을 보호하였소. 갑주도 제대로 갖춰 입을 새가 없었다고! 구봉문이 흉심(凶心)을 그렇게 감추고 있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구봉문이 그런 곳이라….”
“나쁜 놈들이었다니까! 아무쪼록 북경에도 말씀을 잘 드려주오! 아주 역심으로 똘똘 뭉친 놈들이었다고 말이오!”
종리세리는 눈살을 찌푸렸다. 자신이 찾는 방향과 전혀 다른 쪽으로 이야기가 엇나가고 있었다. 구봉문이라는 곳의 행동에 대해서 장군부가 알 도리는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구봉문주를 살해한 범인을 그대로 놔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혹시 절름발이 노인과 그를 수행하는 종자에 대해서 들어보신 적이 있으시오?”
“금시초문이오. 그들이 누굽니까?”
“그들이 구봉문과 연관이 있는지를 조사하는 것이 제 일입니다. 이번 변고에 대해 들은 말이라도 있으신가 해서 말이오.”
종리세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참장은 투실한 볼과 손을 동시에 흔들었다. 자신은 그런 일과는 절대 관련이 없다는 듯한 과장된 몸짓이었다.
“그런 일은 내가 접해보지 못한 소문이오! 들은 바도 없지요.”
“그렇습니까?”
참장의 눈이 슬쩍 창밖으로 향하였다. 참장의 눈동자가 슬쩍 종리세리를 기웃대며 지나가는 것을 종리세리는 놓치지 않았다.
“아, 그러고 보니…… 모든 걸 알 법한 사내가 하나 있긴 한데….”
***
“그는 선인(善人)입니다. 천호 나리.”
가지런히 변발을 땋아 내리고 금가락지를 양손에 끼고 있는 중년의 두령은 호피무늬 의자에 앉아 종리세리를 물끄러미 보며 웃음을 짓고 있었다.
덥수룩한 수염 위로 번득이는 사내의 눈동자는 호기로움과 강맹함이 같이 보이니 가히 두령의 재목으로는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종리세리는 개봉팔십방회의 맹주, 흑풍방주 백당락의 말을 곱씹어보더니 재차 질문을 던졌다.
“그 노인이 선인이라 말했소? 맹주?”
“당연히 선인이고, 청의 충신이지요. 그 노인이 어찌어찌 알게 된 구봉방의 음모를 제게 말하며 도움을 청하였고, 저는 그 길로 녹영군 참장을 찾아가 이 끔찍한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게 된 것이지요. 실로 그 공(功)으로 따지자면 그 노인이 갑(甲)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대는 노인의 말만 믿고 개봉팔십방회를 이끌고 그를 도왔단 말이오?”
종리세리의 물음에 흑풍방주 백당락은 빤히 종리세리를 보더니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자가 가져온 정보가 신뢰할 만 하였고, 상당수는 예전부터 저희가 의심하던 것과 부합하였습니다.”
“그 자가 어디서 그런 정보를 얻었단 말인가?”
“그것은 저도 알 수가 없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캐물을 것을 그랬지요.”
백당락은 말을 하다가 피식 웃음을 지으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구봉방에 원한이라도 있었는지 원… 그건 모를 일입니다만 구봉방이 역모를 꾀한 것은 사실입니다. 녹영군에서도 조사를 한 사건이고 말입니다.”
“그 노인이 누군지는 맹주께서도 모른단 말이오?”
“초면이었으니까요.”
개봉팔십방회의 맹주는 북경에서 온 선무사를 겁내지 않았다.
사내의 미소를 보고 있던 종리세리 역시 더는 물어보는 것을 원하지 않는듯한 눈치였다. 종리세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손을 탁탁 털더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알겠습니다. 맹주께서 모르신다면 더 물어도 소용이 없지요.”
“소용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혹시 그 노인을 가까이에서 본 사람은 없습니까?”
흑풍방주 백당락이 빤히 종리세리를 쳐다보았다. 종리세리는 슬쩍 입술을 찡그렸는데 아마도 자기 딴에는 그것이 미소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북경까지 그냥 빈손으로 갈 수는 없으니 보고서라도 올려야지요. 하지만 장군부에 거짓을 고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풍문이라도 옮겨 적어야지요. 맹주도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는 그런 소문 말입니다.”
“풍문 말입니까?”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풍문 말이오.”
백당락의 눈동자는 여전히 종리세리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종리세리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지만 쉽게 대문 밖으로 나설 것 같지 않았다. 백당락은 그를 바라보더니만 머리를 벅벅 긁더니 허공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무책임한 소문이야 많이 떠돌긴 하지요. 그러고 보니 누구더라. 그 노인을 따라다니던 인간이 있다고 하던데… 이름이 아마….”
***
“네가 문각이냐?”
흑풍방의 대문을 벗어나자마자 종리세리는 그의 뒤를 따르던 깡마른 사내를 보며 말하였다.
종리세리의 눈빛에는 어떤 감정도 드러나 있지 않았다. 아니, 사내의 시선은 무정(無情)함을 넘어 비정(非情)함을 담고 있었다. 그를 따르던 문각은 이 사내가 백주에 자신을 허리에 찬 안모도를 빼들고 목을 날려버릴 수도 있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네가 절름발이 늙은이를 만나고 다녔다는 소리를 들었다.”
“네? 아니… 누, 누가 그런 말을 한단…….”
“그 자는 누구냐?”
“아니, 저는….”
순간 종리세리의 눈동자가 그의 눈을 뚫어지라 바라보았다. 문각은 그가 눈빛으로 자신의 눈동자를 꿰뚫고 뒤통수를 뚫어버리는 것만 같았다. 삽시간에 사지의 맥이 풀려버리고 혀가 뻣뻣하게 굳어버리는 것이 느껴졌다.
“지금 말하여라. 아니면 베겠다. 그 자는 누구냐.”
“그… 그… 그… 자는….”
“누구야!”
“그 늙은이는 천하의 고수입니다!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보다 쉽게 날립니다! 살려주십시오! 그 자에게 이 말이 들어가면 저는 죽습니다!”
문각이 사색이 되어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지도 모르고 바들바들 떨고 있는데, 그를 바라보는 종리세리의 눈에는 이채로움이 가득 떠오르고 있었다. 사내는 문각의 말을 천천히 음미하듯 곱씹어 보았다.
“천하의 고수라?”
“네! 그렇습니다! 절대 말씀하지 마십시오! 저는 죽습니다. 진짜입니다!”
종리세리의 매서운 눈동자에서 살기는 사라졌지만 냉랭한 사내의 목소리는 여전히 문각의 목을 죄는 것만 같았다.
“어디로 가더냐.”
“나, 남쪽으로 향했던 것 같습니다! 정확하게는 모릅니다! 남쪽 같습니다!”
“소항으로 갔다면 나와 마주쳤겠지.”
종리세리는 슬쩍 눈을 올리고 뭔가를 생각해보는 것 같더니만 눈썹을 가운데로 모았다.
“무창이로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