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호광 무창(4)
남평수는 무표정한 얼굴로 당태세를 바라보았다. 뻔히 자신의 몸 상태를 알면서 그런 것을 왜 물어보느냐는 듯한 분위기였다.
당태세가 더 말을 잇지 않고 남평수를 계속 응시하자 남평수는 한숨을 내 쉬면서 다시 장침 하나를 맨 처음 찔러 넣은 침 아래쪽으로 밀어 넣었다. 이번에는 찌릿찌릿한 통증과 함께 기묘한 시원함이 다리를 타고 전해져왔다. 참으로 신묘한 침술이었다.
“비록 도구를 사용해야 하지만 지금보다는 용이하게 보행을 하실 수는 있을 겁니다. 산책하는 정도라면야 꾸준히 찜질만 해주어도 괜찮을 지경까지는 만들 수 있을 것이오.”
남평수는 말을 마치고 다시 작은 침 하나를 뒤틀린 당태세의 발가락 사이에 밀어 넣었다.
“느낌이 오십니까?”
“아니오. 통증도 감각도 없소.”
휴우, 남평수는 다시 짧게 한숨을 내쉬고 다시 다른 침을 잡고 조용히 말하였다.
“그냥 걸어 다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신 게지요?”
남평수가 짧은 침 하나를 발가락 위쪽, 발등과 무릎 사이로 밀어 넣는 순간, 당태세는 자기도 모르게 짧게 신음을 흘렸다. 마치 어둠속에서 다시 십칠 년 만에 눈을 떴던 충격과 비슷한 느낌이 당태세의 온몸으로 전해졌다.
움찔대는 당태세의 발 모양을 살피던 남평수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냥 걷기 보다는 체중을 이 다리에 싣고, 경사진 곳에서 몸을 웅크리고, 넓은 곳을 뛰어넘으며 불안한 곳에서 중심을 잡기를 원하는 것 아닙니까. 예전의 그 다리를 원하는 것 아니냐는 말씀이지요.”
“바로 그러하오.”
“불가(不可)합니다.”
남평수의 말은 짧고 단호했다. 당태세 역시 각오하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침 하나가 발목에 다시 박혔다. 아까와 같은 찌릿한 통증이 다시 당태세의 머리까지 밀고 올라왔다. 당태세는 자기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대라신선이 와도 고치지 못하는가?”
“대라신선이면 고칠 수 있겠지요.”
“그대의 스승, 해도침옹이라면 어떻겠소?”
남평수의 눈이 당태세의 다리에서 눈으로 향하였다가 다시 다리와 무릎을 내려다보았다. 한참동안 눈살을 찌푸리며 자신이 놓은 침과 뒤틀린 당태세의 다리를 바라보던 남평수는 고개를 슬쩍 갸웃거리더니만 예의 중얼대는 어투로 말하였다.
“지금 이 다리는 근골이 뒤틀리고 혈맥이 막혀 제대로 힘을 받을 수가 없소이다. 그나마 움찔거리는 발의 모양새는 아직 경락이 이어져 있다는 소리요. 다행이긴 하지만 미약하기 그지없지. 내 재주로는 이 경락의 운행을 다시 북돋는 것과 근골의 피곤함을 풀어주어 고통을 덜게 하는 정도일 뿐, 그 이상은 제 재주를 벗어납니다.”
“허면?”
“혈맥을 뚫으면서 침을 박아 넣어 기혈을 돌게 하는 것은 무공의 영역이오. 내 사부님의 가전(家傳)중 내가 유일하게 체득 못한 것이고.”
“배우지 못하였다고?”
남평수는 대답대신 쓴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손을 보여주었다. 깡마르고 하얀 남평수의 팔목에는 새파란 핏줄이 강물의 지류처럼 선명하게 들여다보이는데 근육이라 부를만한 것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내 체질이 무공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입니다. 원래는 허약하여 열 살이 되기 전에 죽을 것이라 하였소. 그나마 사부님을 만나 지금까지 연명하며 사부님의 절기 몇 개를 배운 것이지요.”
남평수는 말을 하면서도 손은 쉬지 않고 있었다.
재빠르게 작은 호침을 잡고 당태세의 발가락부터 무릎 위까지 하나하나 찔러 넣기 시작하는데 발목 아래로는 감각이 없던 것이 조금씩 찌릿대며 기묘하게 시원한 통증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어느새 무릎을 죄고 있던 것 같은 묵직한 느낌도 사라지고 있었다. 남평수는 겸손하게 자신의 과거를 털어 놓았지만 이 정도 경지에 오른 침의는 드물 것 같았다. 당태세 역시 하늘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 정도 경지에 오른 침의가 가능하지 않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안 되는 일 아니겠는가.
“……해도침옹은 가능할 수도 있었다는 소리로구먼. 그 늙은이 손놀림은 의자(醫子)답지 않게 매웠지.”
“역시 무학(武學)을 지니신 분이었군요. 진맥을 하며 느낌이 왔습니다.”
“스승께서는 언제 작고하셨소?”
“작고하시다니요. 살아계십니다.”
“뭣이?”
당태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남평수의 말이 사실이라면 당태세의 뒤틀린 발목을 살릴 수도 있다는 말 아닌가? 남평수는 당태세의 표정을 살피더니만 슬쩍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곳 무창에는 안 계십니다. 손녀딸이 살고 있는 장사로 내려가셨는데 여전히 정정하신 듯싶더군요. 그곳에선 침을 안 놓으신다는 소문도 있습니다만…….”
“허, 침을 안 놓는다니, 양중일 노사가 침을 안 놓으면 대체 뭘 하고 있단 말인가?”
“연세도 있으시고, 그쪽 상황도 그리 녹록한 것은 아닌 듯싶습니다.”
남평수의 마지막 말은 당태세에게 거의 들리지도 않을 지경이었다. 생각 없이 물었던 질문에 예상하지 못했던 낭보였다. 무림제일침(武林第一鍼)으로 불렸던 해도침옹 양중일이 살아있어 자신의 발을 낫게 할 수 있다는 이야기 아니던가. 갑자기 엊그제까지 자신의 마음을 억누르던 답답함이 일시에 날아가는 것만 같았다.
“노사께 한마디 첨언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때, 남평수가 조용히 당태세에게 말을 하였다. 어느새 당태세의 발은 마치 고슴도치처럼 호침이 빼곡하게 박혀 있는 모양새였다. 당태세가 무슨 말이냐는 듯 남평수를 바라보자 남평수는 차분하면서도 힘 있게 자신의 말을 전달하였다.
“설사 제 사부님을 만나실 수 있다 하여도 돌아간 발이 예전과 같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마십시오.”
“그건 염두하고 있소이다.”
“제가 여기서 지금 노사의 발을 회복시키는 것은 이 할 정도일 뿐이고, 제 사부님이 손을 보셔도 반 이상은 되돌릴 수 없을 겁니다. 근골과 혈맥이 상한 것을 예전처럼 돌리는 것은 옛 무림의 고사(古事)에나 나오는 말입니다.”
당태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각오하고 있던 터였다.
그저 발을 디딜 수 있고 통증만 견딜 수 있다면 어찌되든 끝까지 가 볼 생각이었다. 오히려 지금 남평수와 양중일의 행방을 알아낸 것이 천우신조일 뿐이었다. 남평수는 당태세의 발에 놓았던 침을 하나씩 조심스레 제거하였다.
“한 번 일어서 보십시오. 목발은 짚고 일어나셔야 합니다.”
당태세는 목괴를 짚고 발을 땅에 디뎌보았다. 찌릿한 통증은 여전히 허벅지를 타고 올라오고 있었지만 어느새 사내의 발뒤꿈치는 땅에 닿아 있었다. 통증이 심하고 뻣뻣해져 늘 오른발을 허보(虛步)로 놓고 공격을 해야 했던 때에 비하면 비약적인 발전이었다.
“놀랍구먼. 발이 많이 부드러워졌소.”
“통증은 어떠십니까?”
“남아 있지만 견딜 만 하오.”
“제게는 세 번 정도 더 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무릎은 늘 습포로 보해주셔야 다시 관절에 생기가 들어갈 것입니다.”
당태세는 목괴를 짚고 조심스레 침방 안으로 돌아다녀 보았다. 수레에서 내릴 때 혼자 몸을 가누지도 못하던 때와는 천양지차였다. 남평수의 의술이 대단함을 반증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 정도로 몸을 가눌 수 있다면 홀로 무창의 견정문을 찾아내는 것도 가능할 성싶었다. 그 때, 당태세의 눈에 침상에 누워 신음하고 있는 사내의 모습이 들어왔다. 이미 사내는 깊은 잠에 빠진 듯 보였는데 호흡이 고르고 안색이 돌아온 것이 위험한 고비는 넘긴 것처럼 보였다.
“남의원, 그대의 재주가 신묘하여 내게 새 다리를 주었구려. 희사(喜捨)를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구먼.”
“당치 않은 소리입니다. 이미 진료비는 진가약실에서 받았으니까요.”
당태세는 다시 남평수의 곁으로 가 앉으며 슬쩍 침상의 사내를 손짓으로 가리켰다.
“말이 나온 김에 하나 물어봅시다. 진가약실이라는 곳이 분명 약방일 텐데, 어찌하여 약방에서 일하는 자가 백주에 칼을 맞고 이 자리로 들어온다는 말이오? 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구려.”
“이해가 될 리가 없습니다. 이 무창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황당한 상황이니 말입니다.”
“황당하다니?”
남평수는 슬쩍 눈을 돌려 침방의 출입문을 살펴보더니만 몸을 일으켜 문을 살짝 닫고 다시 들어와 당태세 옆에 앉았다. 문을 닫으니 침방의 안은 마치 득도하려는 승려들이 모인 선방처럼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대충 노사께서는 무림(武林)의 이치와 암투(暗鬪)에 대해 아시는 것 같으니 말씀드리지요. 이 일은 제 사부 양노사께서 무창을 떠나신 이후부터 일어난 일입니다.”
당태세는 목괴를 지팡이처럼 앞으로 끌어당겨 두 손을 얹은 채 남평수의 말을 듣고 있었다. 남평수는 칼 맞은 사내의 상세를 보더니 당태세의 앞으로 다가왔다.
열려있는 창문으로 들어온 햇살이 노인과 의자가 앉아있는 곳을 비추고 바닥에 두 개의 그림자를 길게 띄워놓았다.
“원래 무창은 천하사방의 약재가 들어와 이곳에서 도매하여 다시 각지로 보내는 역할을 하는 곳이올시다. 약재(藥材)에 대한 수요도 많고 그들을 거래하는 것도 꽤 이문이 됩니다. 그 양이 어마어마하단 말입니다.”
“그렇겠지. 무창이 원래 조운(漕運)으로 유명한 곳 아니던가.”
“잘 아시는군요. 그래서 이 지역의 약방들은 꽤나 자부심이 높지요. 좋은 약재는 일단 자신들이 선점하여 쓰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좋은 약과 의자(醫子)들이 많기도 하지만 그 덕에 갈등도 많고 다툼도 심했습니다. 다툼이 생각보다 심해서 부두를 막고 싸우는 일도 허다했다지요. 그걸 해결했던 것이 제 사부님과 진가약실입니다.”
진가약실이라는 말에 당태세의 표정이 슬쩍 굳어졌지만 남평수는 계속 말을 이었다.
“제 스승님의 명성도 있었지만 진가약실을 가지고 있는 견정문은 무문(武門)입니다. 그들이 통제를 하게 되자 약재의 배분과 도매가 공평해졌지요. 견정문주는 굉장히 뛰어나면서도 공정한 걸물인지라, 그가 중재를 하면 모두가 그의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저도 어릴 적에 몇 번 봤지만 관후한 공자(公子) 같은 분이었지요.”
관후한 공자라. 당태세가 슬쩍 잇새로 숨을 들이키고는 고개를 숙였다. 견정문주 진윤타, 늘 중재를 잘하던 인간. 그의 약(藥)이자 독(毒)인 재능 아니던가.
그가 이곳에서 선인(善人)행세를 한단 말이구나.
의자 남평수는 자신의 얼굴로 떨어지는 햇살 덕에 굳어진 당태세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하였다.
“그 덕에 무창의 약방들은 한 가지 암묵적인 규칙을 세웠지요. 견정문, 진가약실이 결정하는 약재의 가격과 양에 맞춰서 자신들의 몫을 가져가기로 말입니다. 그 덕에 약재와 비용이 대부분 균일하게 변하였습니다. 물론 터무니없는 폭리도 없었고, 공정한 처사가 있었으니 모두가 합심하여 따른 것이지요.”
“견정문이라는 곳도 꽤 이득을 보았겠구먼.”
당태세의 말에 남평수의 고개를 끄덕거렸다.
“작았던 견정문의 약방은 어느새 무창을 대표하는 약방으로 거듭났지요. 하지만 사달은 지금부터 한 오륙 년 전에 생겨났습니다. 새롭게 고영약당(高英藥堂)이 들어오면서 그가 진가약실의 명성을 가져가기 시작했습지요. 고영약당에도 견정문 같은 무가(武家)가 붙어있습니다.”
“무가? 결국 이곳에서 칼부림이 난 것이 결국 문파싸움이라는 말이오?”
남평수는 슬쩍 뒤의 환자를 다시 한 번 보더니만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올시다.”
“그러면?”
당태세의 말에 남평수는 다른 이들이 듣지 못할 만큼 작은 소리로 노인에게 대답하였다.
“고영약당의 뒤에는 팔기(八旗) 순무(巡撫)가 있다는 소문이 자자하단 말이지요.”
아아, 당태세의 입에서 저절로 한숨이 새어나왔다. 당태세의 표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복잡하였다.
“이제야 이 일이 무슨 연유인지 대충 알겠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