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호광 무창(2)
당태세의 다리를 바라보던 의자(醫子)는 한참동안 당태세의 부은 다리와 무릎과 뒤꿈치를 만져보더니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러나 정작 당태세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자신의 다리와 의자를 번갈아 바라볼 뿐이었다. 결국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의자였다.
“어디서 크게 낙상하신 적 있습니까?”
“소싯적에 무너지는 기둥을 받치려 다가 그 아래 깔린 적이 있는데….”
“어이구 저런.”
의자가 노인의 말을 듣다가 눈살을 찌푸렸다. 옆에 앉아있던 아룡은 처음 듣는 말이라는 듯 눈을 휘둥그레 뜨며 당태세를 바라보았다.
“아니, 그게 정말이십니까? 왜 지금까지 그런 말씀을 안 하셨어요?”
“뭐 대단한 일이라고 말을 하느냐. 어차피 기둥이 박살나 넘어가 버렸는걸.”
“어떤 기둥이었습니까?”
당태세는 아룡의 말에 입맛을 다시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당시 북경에 있던 꽤 유서 깊은 고택이었지. 기둥 속을 벌레가 파먹은 줄 모르고 그 집의 앞마당에서 기둥을 바로 세우는 허드렛일을 거들었다. 기둥이 넘어가기에 내가 지탱할 수 있을 줄 알았더니만…….”
당태세는 쓴 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오른다리를 쓰다듬었다.
“이미 위아래가 다 썩어 문드러져 있을 줄 어찌 알았겠느냐?”
“큰일 날 뻔 하셨습니다. 하여간 한족 놈들은 자기 집 간수 하나 제대로 하지도 못한다니까.”
아룡의 말에 당태세는 지그시 이를 깨물고 의자를 바라보았다. 의자는 여전히 인상을 쓰면서 당태세의 환부를 만져보더니 다시 고개를 흔들었다.
“다리가 붙어서 피가 통하는 것이 기적입니다. 여러 번 부러져 뼈가 어긋나 붙고 힘줄이 뒤틀렸소. 한 발 한 발 땅을 디딜 때마다 고통이 장난 아니었을 텐데…… 지금까지 어찌 버티신 겁니까?”
“늙으니까 그냥저냥 걸을 만 하더이다.”
의자는 어영부영 넘어가는 당태세의 말에 인상을 있는 대로 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는 영영 오른다리로 땅을 디딜 수 없을 것입니다. 이건 탕약을 쓴다고 나을 일이 아니오. 차라리 침의를 만나 침을 맞거나 뜸을 떠야 어느 정도 차도가 있을 것입니다. 저는 약재 몇 개로 습포(濕布)를 만드는 정도만 처방을 해 드릴 수 있겠습니다.”
말은 장황해도 정직한 의자였다. 그러나 당태세는 의자의 처방을 들으면서 저절로 표정이 굳어졌다. 아닌 게 아니라 점점 다리가 안 좋아진다는 것은 자신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이러다가 복수는 고사하고 길거리에서 쓰러지는 게 당연할 것 같았다.
사실 십칠 년 만에 송장에서 벗어나 걸어 다니는 것만 해도 기적인데, 사지 멀쩡하게 원수들을 때려잡는다는 것이 어불성설(語不成說)이 아니고 무엇이랴. 아룡이 굳어진 당태세의 표정을 보더니 의자에게 물었다.
“그럼 이 근방에서 용한 침의가 누구요?”
“가만 있자…이곳 포구 쪽에서는 손순학과 남평수가 그나마 침을 잘 놓을 거요. 손순학은 치료를 빨리 끝내고 남평수는 정확하지요. 남평수가 원래 그 스승 양중일 노사의 진전을 이어받았다고 하여 명망도 좀 높고요.”
의자의 말을 듣던 당태세의 눈이 번쩍 뜨였다.
“양중일? 해도침옹(海到鍼翁) 양중일 말인가?”
“아니, 노사께서 어찌 그 별호를 아십니까? 무창 사람들이나 이야기하는 별호인데?”
“무슨 소리, 북경까지 유명했던 침의(鍼醫)인데! 그 이가 아직도 여기 살고 있소?”
의자는 껄껄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고향 사람이 북경까지 유명하다 하니 무창 사람인 자기도 기분이 나쁘지 않은 듯싶었다.
“그분이 살아 계셨으면 이미 팔순이 넘으셨을 것인데 어찌 거동이나 하시겠습니까? 그분이 은퇴를 하셨으니 남평수가 진전을 이은 게지요! 한번 궁금하시면 남평수를 만나 보시구려!”
진맥은 거기까지가 끝이었다. 당태세는 씁쓸한 표정으로 다리를 어루만지고 있었는데 조금 떨어진 곳에서 아룡이 의자와 함께 약재 값을 계산하다 이내 투덜대기 시작했다.
“아니, 습포 몇 장 할 정도의 약재인데 왜 이리 비싸단 말이오? 내 술병 하나가 풀잎 몇 점에 날아가 버리네?”
“원래 약초 값이 그 정도 합니다. 무창에서는 정가(定價)라오.”
“아니, 약초가 정가(定價)라니? 그런 게 또 어디 있소?”
의자는 당황스럽다는 듯 객잔주인의 얼굴을 보더니만 아룡에게 차근차근 설명을 시작했다.
“객잔 주인께서 말을 안 하셨구먼. 무창의 약재는 모두 공급하는 곳이 하나로 통일이 되어있는 바람에 그곳에서 일괄적으로 계산을 한단 말입니다. 저도 이문(利文)은 빠져야 하니 받은 가격에서 조금 올려 받는 것뿐이지요. 너무 섭섭하게 생각지 마십시오.”
“아니, 산에 가서 약초를 캐면 되지 어떻게 약재를 한 곳에서 통일하여 공급하오?”
“그게 이쪽 업계는 따로 이유가 있습니다요. 하여간 약재가 비싸다 생각되셔도 그 가격이 그나마 제일 헐하게 나온 가격입니다.”
의자는 아룡의 말에 입맛을 다시더니 더 말을 이어가고 싶지 않다는 눈치를 보였다. 아룡은 당태세의 눈치를 보다가 당태세가 슬며시 고개를 끄덕이자 선심 쓴다는 표정으로 전대에서 돈을 계산해 의자에게 건네주었다.
계산이 끝나고 투덜대며 당태세 곁으로 돌아온 아룡은 볼멘소리를 중얼거렸다.
“거 참, 어딜 가든 간에 고장마다 하나씩 병폐는 있는 모양입니다. 산동 제남에서는 충룡대가 조정의 권세를 빙자해 호가호위를 하지 않나! 개봉에서는 역적 놈들이 술집에서 모의를 하지 않나! 이곳 무창은 아예 약방이 담합을 한 모양이니 이거 원… 하여간 한족 놈들이란.”
“허허 너무 그렇게 따지지 말거라. 고장마다 고장의 특색이 있는 거 아니겠느냐.”
당태세는 사람 좋게 웃었지만 조금 전 본 정경은 당태세가 보기에도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고 있었다. 젊었을 적에도 협행을 하다 피륙이 상하고 뼈를 다쳐 의자의 도움을 받은 적이 백여 차례이고, 그 장소도 위로는 북막이요 아래로는 남해까지 열거하기도 힘든 지경이었다.
하지만 어느 고장에서도 약재를 한 곳에서 전매하여 균일가로 판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엄연히 그것은 약재상과 의자의 몫이었다.
“그런데 이 습포가 약효는 있기는 한 걸까요? 괜히 돈만 비싸게 받아먹고 도망간 거 아닙니까? 저 한족 의자?”
“허허, 도망이야 갔겠느냐? 저 의자도 습포만 해서는 효용이 없다 하지 않았느냐. 침의(鍼醫)를 찾아봐야 효험이 있다면서?”
“침의를 찾아보시게요?”
당태세는 아룡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의자까지 불렀으면 제대로 치료를 받는 것이 낫겠다. 내가 이렇게 붙잡혀 있으면 너도 무창을 구경하고 즐기는데 방해가 되지 않겠느냐.”
“별 방해는 안 됩니다. 숙부님은 그냥 객잔에만 계시면 되는 거죠.”
낯빛 하나 안 바뀌고 뻔뻔하게 말을 하는 아룡은 당태세에게 맞아죽기로 결심이라도 한 듯싶었다. 하지만 아룡은 이내 생각을 고쳐먹은 듯 고개를 끄덕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하지만 정작 여기까지 내가 온 건 숙부님을 모시고 유람하라는 방주님의 명을 받은 것이고, 제대로 명을 수행해야 돌아가서 포상을 받을 거 아닌가? 아무리 고생스러워도 할 일은 해야 하는 것이지!”
허구한 날 술집과 기루에서 시간을 보낸 사내가 하는 말치고 고결하기 그지없었다.
“숙부님, 기왕지사 이렇게 된 거 침의를 찾아보시지요. 숙부님도 무창에서 따로 돌아다니시면서 구경을 하고 재미있는 것도 보시고 해야 제 마음이 좀 가벼워질 것 같습니다.”
“그래, 네가 그리 이야기하니 한번 침의란 사람을 만나 보자꾸나! 허허! 무창에 와서 하는 첫 번째 일이라는 게 여기저기 약방 전전하는 꼴이라니!”
“괜찮습니다. 숙부님! 나이 먹으면 다들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아룡은 딴에는 위로랍시고 아무 말이나 지껄이는 중이었다.
***
“어디 보자…이 근방인 듯싶은데…….”
당태세는 수레 뒤에 앉아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포구 근처의 가옥들을 살펴보는 중이었다. 객잔에서 목괴를 짚고 나가려는 것을 아룡과 객잔주인이 한사코 말려 결국 나귀 수레에 실린 채 침의를 찾으러 나온 것이었다. 당태세는 바깥의 경치를 살피면서도 자신의 처지에 짜증이 나고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수차례 터뜨리는 중이었다.
“복수행을 하겠다고 십칠 년 만에 산송장에서 벗어났더니…….”
당태세는 물끄러미 자신의 오른발을 바라보았다. 통증은 점점 심해져 허벅지까지 쑤셔왔다.
“결국 정해 놓은 길의 반도 못 가서 다시 산송장이 되려는가.”
좁은 골목 옆으로 항구의 쌓아놓은 짐들을 피해 투덜대며 아룡이 당나귀를 고삐를 이끌었다. 허름한 상가들과 이리저리 바람에 흔들리는 점포의 낡은 간판들이 당태세의 머리 위를 새처럼 지나갔다. 덜컹대는 수레의 움직임에 다시 오른발의 통증이 도지기 시작했다. 당태세는 눈을 지그시 감고 나직하게 신음을 흘러내었다.
“아, 이곳입니다! 생각보다 작은데요?”
아룡의 말에 당태세의 눈이 번뜩 뜨였다. 어느새 나귀와 수레는 허름한 집안의 마당으로 들어서 있었다.
수레가 들어온 비좁은 마당 앞에는 한눈에 봐도 세월의 풍파를 고스란히 맞은 시커먼 고옥(古屋)이 하나 놓여 있었는데 집 안에서 풍겨 나오는 약재 냄새가 이곳이 약방이라는 것을 광고하고 있었다.
고옥의 서까래 위에는 빛바랜 글씨로 써져 있는 침방(鍼房)이라는 특색 없는 현판 하나만 덜렁 붙어 있었다. 아룡이 당태세의 어깨를 부축하며 허름한 집 안으로 들어가며 주위를 둘러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말 이곳이 무창 제일의 침의가 사는 곳이란 말입니까? 건물 모양새를 봐서는 무창 제일 허름한 가게 같은 데 말입죠.”
“일단 들어나 가 보자.”
아룡이 어깨로 문을 들이밀고 들어간 침방 안에는 자욱한 약향(藥香)이 사람의 후각을 마비시킬 지경이었다. 그나마 환하게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햇살마저 없었다면 그리 오래 머물고 싶지 않을 만큼 낡은 가옥이었다.
당태세와 아룡의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안에서 하얗게 핏기 없어 보이는 빼빼마른 중년사내가 두 팔을 걷어붙이고 걸어오는데 몸에 기름기라고는 하나 없어 보이는 주름투성이의 얼굴이었다.
“당신이 침 잘 놓는다는 의자 남평수요?”
아룡의 말에 빼빼 마른 사내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까닥거렸다.
“침을 놓는 남평수 맞소이다. 잘 놓는다고 생각하진 않소만…….”
사내의 말에 아룡이 눈을 부라리며 사내에게 턱을 치켜들었다.
“뭐요? 지금 우리 숙부 다리를 고치려고 여기까지 고생하며 왔는데 침을 잘 놓는다 생각하지 않는다니! 그게 침의가 할 소리인가!”
그래도 나름대로 덩치가 있고 산동 뒷골목에서 놀던 가락이 있는 아룡이 건들대자 바로 불량한 자세가 튀어나왔다. 그러나 가냘픈 체구의 남평수는 아룡의 시비에 가까운 언사에도 불구하고 슬쩍 눈썹만 꿈틀거릴 뿐이었다. 이런 일은 늘 겪는다는 표정이었다.
“환자를 성의 있게 보긴 하오만 모든 환자에게 효험이 있는 것은 아니니 내가 침을 잘 놓는지 못 놓는지 스스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뭐가 어째? 숙부님, 아무래도 이 의자 미덥지가 못한데….”
“잠깐 기다려라.”
당태세가 아룡의 말을 막으며 남평수를 보았다. 남평수의 눈은 당태세의 다리를 보고 있었다. 말은 먼저 건 것도 남평수였다.
“근골이 뒤틀리고 혈맥이 끊긴 것을 침으로 온전히 치료하기는 불가합니다. 통증은 줄일 수 있으되 완치는 불가하오.”
한눈에 사람의 외관으로 상대방의 병세를 진단하는 모양새였다. 어쩌다 넘겨짚은 것인지 명의의 반열에 든 것인지 확신은 없었지만 당태세는 이 사내가 최소한 언변으로 사람을 홀리는 부류의 의자는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대가 해도침옹 양중일의 제자 맞소?”
남평수의 시선이 당태세의 다리에서 얼굴로 옮겨왔다. 주름투성이 얼굴 위에 붙은 눈이 처음으로 이채를 띠었다.
“외지인이신 것 같은데 제 스승님의 별호와 존함을 어찌 아십니까?”
“이십여 년 전에 뵌 적이 있소이다. 해도침옹의 제자라면 내 다리를 봐 주셨으면 하오만…….”
이번에는 남평수의 눈이 슬쩍 커질 차례였다.
“제 스승님을 뵈신 적이 있단 말씀입니까?”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출입문 쪽에서 우당탕 소리가 나더니 대여섯 명의 사내들의 말도 없이 침방 문을 난폭하게 밀어젖히고는 화급하게 안으로 뛰어들었다.
개중 한 사내가 남평수의 얼굴을 확인하더니만 숨 돌릴 틈도 없이 절박한 목소리로 의원을 불렀다.
“남대가! 우리 동접이 칼에 맞았소! 제발 도와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