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산동, 호광
“충룡대주라… 허허, 생각하기도 싫은 이름이군요. 이 노납(老衲)은 그 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벌렁거리고 온몸에 선득한 기운이 돕니다그려.”
투실한 만연사의 상좌는 끔찍한 이야기라고 손을 저으면서도 만면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
가느다란 상좌의 눈동자는 대화를 하면서도 사방 여기저기를 힐끗거렸다. 진심이라고는 콩알 반쪽만큼도 느껴지지 않는 인상이었다. 몇 안 되는 콧수염을 날카롭게 다듬은 변발의 중년사내는 다시 상좌를 보며 물었다.
“충룡대주가 죽을 때 이곳에 들른 사람이 있다고 들었소. 아마 대사께서는 그를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되오만?”
햇살 가득한 고즈넉한 사찰 앞에 우거진 소나무는 빛살에 하얗게 반짝이며 짙은 그늘을 아래 드리웠다. 만연사의 상좌 역시 햇볕에 눈이 부시다는 듯 가느다란 눈을 더 가늘게 주름잡으며 고개를 흔들더니 아쉽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 노납의 기억력이 혼미하여 정확하게 누구인지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이 조그만 선방을 지키고 있는 가련한 중인데 어찌 세상의 모든 일을 알고 있겠습니까?”
“그렇습니까?”
“잠시만 생각할 시간을 주시면 생각이 날 것 같기도 하고…….”
만연사의 상좌가 웃음을 지으며 중년사내를 돌아보자 중년사내는 잠자코 첩리의 안쪽을 뒤로 젖혔다. 검은 안모도(雁毛刀)의 손때 묻은 손잡이가 햇볕을 받아 먹구렁이 같은 빛을 발하자 그를 보던 만연사의 상좌는 웃는 모습 그대로 표정이 굳어버린 채 눈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보국장군의 명을 받고 나온 선무사 천호 종리세리라고 한다.”
만연사 상좌의 눈은 이제 구슬 같은 눈동자가 다 보이도록 커져 있었다. 노승의 눈을 보던 종리세리가 다시 말을 이었다.
“찾아온 자가 누구냐.”
“이름은 모르겠고 인상착의만 생각납니다.”
“그래?”
갑자기 총기가 돌아온 만연사의 늙은 중은 목이 떨어지라 세차게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절름발이 늙은이였습니다! 그 자가 충룡방주의 거처를 물었습니다요!”
“절름발이?”
지금까지 무심한 표정이던 종리세리의 눈썹이 슬쩍 움찔거렸다.
***
“어디로 가신다고요?”
둥그렇게 눈을 부릅뜬 아룡을 보며 당태세가 눈을 껌벅거렸다. 우뚝 나귀를 멈춰 세운 젊은 사내의 표정은 마치 자기가 끄는 수레 위에 못된 도깨비가 앉아있는 걸 발견이라도 한 듯한 모양새였다.
“아 이 놈아, 왜 그러냐? 사람 칠 것 같은 표정이네?”
“아니, 아닙니다. 너무 급작스러워서 그런 거죠. 갑자기 소항도 아닌 무창(武昌)을 가시겠다고요?”
“왜, 무창은 싫으냐?”
“저는 소주나 항주로 가시는 줄 알았습니다요!”
당태세가 혀를 끌끌 차며 아룡을 훈계하듯 중얼거렸다.
“이 녀석아. 개봉에서 어찌 소주와 항주로 바로 간단 말이냐? 그 길이도 길이지만 그동안 우린 뭘 하고 놀자는 거야? 차라리 아래로 죽 내려가 무창에서 배를 타고 소주와 항주로 들어가는 것이 훨씬 빠르고 좋으니라.”
“아, 그런겁니까요?”
아룡의 표정이 한풀 풀어지자 당태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두서없이 말을 섬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창이 얼마나 볼 것이 많은데 그러느냐? 누각이라면 천하제일 누각인 황학루가 있고 최고(最古) 도관인 장춘관이 있으며, 경치가 좋기로는 구산(龜山)이 있고, 풍광이라면 알아주는 동호(東湖)가 있으니 어찌 장부가 한 번 들러봄직 하지 않겠느냐?”
“거 참, 잘도 아십니다그려. 말씀하신 대부분은 다 노인들이 좋아하는 곳 아닙니까요.”
“아니, 그럼 너는 명산대천에 뭘 구경하러 다니느냐? 좋은 풍경과 기묘한 경치를 보는 게 목적 아니더냐?”
아룡은 당태세의 말에 입맛을 다시더니 어깨를 으쓱거렸다.
“저도 숙부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좋은 경치 보는 것을 즐깁니다만 어찌 대장부가 좋은 경치만을 봅니까? 좋은 술과! 예쁜 여인과 맛난 음식이 있어야 진짜 풍류라 할 만 하지요! 만금을 뿌리며 사람들과 교우하고 그곳에서 호연지기를 찾는 것이 인생의 쾌락 아니겠습니까?”
당태세는 절로 나오는 한숨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
아마 진짜 피붙이 조카가 이런 말을 당태세 면전에서 했다면 그 아이는 그 날로 비 오는 날 먼지가 나도록 두들겨 맞았을 터이지만 당태세는 굳이 그런 공이 드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아룡은 이런 식으로 살게 놔두는 것이 당태세에게도 편했다.
“그렇다면 안 갈 것이야? 소항은 가는 데 시일이 한참 걸릴 터인데. 무창도 여기저기에서 들어오는 산물이 많아 좋은 물건, 훌륭한 기루는 꽤 될 것이다.”
당태세가 슬쩍 미끼를 던지자 잠시 고개를 갸웃대던 아룡은 누가 그답지 않다고 할까봐 던진 꼬임수를 덥석 물어 챘다.
“뭐…… 거리가 멀긴 하니 그곳에서 배를 타고 유람하며 소항으로 가는 것도 나쁘진 않겠습니다.”
거기까지 말한 아룡의 얼굴이 갑자기 찡그러졌다.
“근데 원래 강남의 한족(漢族)들은 성격이 교활하고 돈밖에 몰라 처음 만나는 사람은 등쳐먹을 궁리밖에 안 한다고 하던데 말입니다요. 숙부님처럼 선하고 사람 잘 믿는 분이 그런 곳에서 견뎌내시겠습니까?”
너도 그 교활한 한족 아니냐.
당태세의 입이 들썩이다가 말을 주워섬기고는 이마를 꾹꾹 눌렀다.
“원래 대처 사람들이 그런 것이지. 그래도 큰 도읍이니 한 번 들러보자꾸나. 너 같은 대장부는 천하를 둘러보고 안목이 점점 커져야 하느니라! 아니 그러냐?”
“정히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면 이 무두리, 안 갈 이유가 없습니다! 대청(大淸)의 넓은 강역을 보며 황제의 은혜를 느끼는 것이 우리 여행의 근본 아니겠습니까?”
“그래, 그것이 황제의 은혜를 누리는 길이렷다.”
당태세는 그렇게 말을 뱉고는 몸을 수레에 길게 눕혔다. 아룡과 말을 섞고 나면 고수들과 창칼을 들고 합을 겨루는 것보다 피로가 더 쌓이는 기분이었다.
당태세는 슬쩍 몸을 구부려 아룡의 눈에 보이지 않게 자세를 잡고는 다시 품속에서 천천히 두 장의 종이를 빼 보았다. 충룡문주 주통산과 구봉문주 오자평이 받았던 두 장의 증서였다.
누군지 알 수 없고 읽을 수도 없는 만주어로 적힌 서명과 그 옆에 나란히 적힌 여덟 문파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제야 당태세는 이 문서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면사(免死)와 권리(權利)의 보장이라…….”
당태세는 입을 다물고 두 장의 종이를 품 안에 밀어 넣었다. 아직 만나지 못한 여섯 개의 문파 역시 같은 증서를 지니고 있을 터였다. 이들은 이자성에게 붙어 구명을 한 것뿐 아니라 청나라에 붙어 종이쪼가리 한 장에 조국도 팔아먹은 것이었다.
“그리고 내 순천문과 내 아들은 너희 덕에 세상에서 사라졌고.”
가슴 한편이 자르르 울리며 아파왔다. 당태세는 이를 악물었다.
흔들리는 수레 덕에 간헐적으로 찾아오는 다리의 통증에도 눈살 한번 찌푸리지 않던 늙은이의 눈가에 어느새 눈물이 맺혀 있었다. 천하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러울 것 없던 아들 당운천. 무덤도 찾을 수 없는 아들 당운천.
당태세는 주먹을 불끈 쥐고 눈을 감았다. 터져 나오는 울음을 삼키기 위에 노인은 꽉 쥔 주먹을 이로 깨물었다. 눈물이 주르르 흘러 수레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한참동안 자는 듯 누운 채 숨소리를 죽였던 당태세의 입에서 주먹이 떨어지며 한숨이 새어 나왔다. 사내의 입에서는 짧은 혼잣말이 흘러나왔다.
“무창 견정문.”
다시 눈을 뜬 사내의 젖은 눈 사이로 매서운 안광이 흘러나왔다.
***
“그 노인은 좋은 사람들이었지요. 사람이 순후하고 다른 사람 말도 경청할 줄 아는 이였습니다.”
산동 제남 객잔의 주인은 푸근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종리세리의 질문에 상세하게 대답하였다.
“다리를 심하게 절긴 했지만 용케 괴상한 목발을 짚으면서 걸어 다니시더군요. 급할 때는 후다닥 가는 게 꽤 오랫동안 목발을 쓰신 것 같긴 했습니다.”
“괴상한 목발?”
객잔주인은 이리저리 손발 짓을 해가며 목발의 모양을 설명하였는데, 종리세리는 그 설명을 듣고는 턱을 만지작거렸다. 처음 보는 모양새의 물건이었지만 딱히 병장기의 느낌이 들지는 않는 물건이었다.
“새로 만든 물건일수도 있습죠. 돈은 꽤 있어 보이는 분이니 자기에게 맞는 목발이야 못 만들 이유가 있겠습니까?”
“돈이 많아보였소?”
“아, 그럼요! 부자였지요!”
객잔 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매일 하는 일이 제남 성도를 구경하는 일이었지 뭡니까요. 노인 분은 대처 명산과 사찰을 둘러보는 게 취미고, 같이 온 조카는 기루와 술집을 전전했습죠. 그 젊은 친구…… 술만 좀 절제하면 괜찮은 사람 같았는데 말입니다. 허우대도 멀쩡하니 대장부였고요.”
“조카가 있었소?”
종리세리가 눈을 번득이자 객잔 주인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직 채 약관은 안 된 것 같았습니다만 그래도 몸이 크고 어깨가 떡 벌어진 것이 꽤 사내다웠습니다. 좀 건들대고 경망스러워 보여도 자기 숙부에게는 깍듯하더군요. 대인, 그 둘에게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요?”
“체구가 좋은 조카라…….”
종리세리는 객잔 주인의 물음에 대답 대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객잔 주인은 종리세리의 반응에 두 손을 맞잡고 가만히 옆에 서 있는데, 혼자 골똘히 생각에 빠졌던 종리세리가 다시 주인을 돌아보았다.
객잔주인은 그 때, 자신을 쏘아보는 종리세리의 눈빛에 순간 숨이 턱 막히고 말았다. 마치 거대한 뱀이 사람으로 변해 자신을 한입에 삼키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얼토당토않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 둘이 어디로 갔는지 주인은 아시는가.”
“모, 모모… 모릅니다요… 하… 하지만….”
“하지만?”
“제가… 소, 소항(蘇杭)을 유람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한 적이 있긴 합니다요! 그 조카 되는 젊은이가 다음 행선지를 묻기에 그렇게 권한 적이 있습니다.”
검(劍)대신 객잔주인의 육신을 휘젓고 다니던 종리세리의 시선이 거두어졌다. 칼 같은 무인은 슬쩍 품 안에서 작은 종이를 꺼내어 살펴보더니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남(南)이라…….”
종리세리는 천천히 몸을 돌려 객잔의 밖으로 나가버렸다.
사내가 나간 한참 뒤에도 객잔 주인은 두근대는 가슴을 채 진정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팔기(八旗)에게 끌려가 심문을 당하고 나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객잔주인은 문 밖으로 고개를 삐죽 내밀고 종리세리가 사라진 것을 확인하였지만 못내 등 뒤까지 올라온 소름을 떨쳐낼 수는 없었다.
객잔주인은 자신이 대답을 잘한 것인지 자신이 없었다. 기실, 객잔주인은 한 가지 사실을 더 말할까말까 한동안 고민을 하다가 입을 꽉 다문 것이었다.
충룡방주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던 그 날, 자신의 뒤에서 자신을 바라보던 절름발이 노인의 그 무시무시한 눈빛은 아직까지도 객잔주인의 뇌리에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것까지 관(官)에서 찾아온 사내에게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다른 것은 몰라도 그 노인은 자신에게 돈을 주고 간 ‘좋은 고객’이었지 않은가.
더불어, 만에 하나 그가 수상하다는 사실을 관에 나온 이에게 말한 뒤에 행여 노인이 그 살겁의 범인이라면, 그리고 그가 만약 잡히지 않는다면 당연히 그 다음의 표적은 자신이 될 것이 자명하였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객잔주인은 다시 등 뒤로 좌르륵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아무렴.”
객잔주인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아무렴. 내가 잘 먹고 살아야지.”
그 시각, 당태세를 태운 수레는 무창을 향해 터덜터덜 천천히 다가가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