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노상(路上)
“제가 누워 있는 동안 그런 일이 벌어진 줄 어찌 알았겠습니까? 개봉부에 난리가 났었다니요?”
퉁퉁 부은 당태세의 발을 찜질해주던 아룡이 당태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듣더니 적잖이 놀랐다는 눈치로 말하였다.
이제 아룡은 몸을 회복하고 나귀를 끌 정도로 거뜬하게 회복된 반면, 늙은 당태세는 아룡이 적신 물수건을 다리에 올릴 때마다 자기도 모르게 신음을 내고 있었다.
“그러게 말이다! 내 개봉부 근처까지 이르러 이 일을 하소연하러 갔다가 글쎄, 녹영군하고 그 역도들하고 싸움질이 붙는 바람에 계단에서 구르지 않았겠느냐.”
“계단에서 구른 것 치고는 너무 다리가 많이 부으셨습니다. 며칠 더 정양을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룡의 말에 당태세는 입술을 차며 고개를 저었다.
“너무 오래 있었느니라.”
“네?”
“개봉의 옛 성읍을 보고 옛 거리를 보았더니만…….”
“네.”
“쓸모없는 회한만이 남는구나.”
노인의 눈은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아룡 역시 뭔가를 알겠는지 혹은 모르고 따라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도 이리 역심(逆心)을 품은 종자들이 많은 것을 보며 저도 같은 생각을 하옵니다. 어찌 청의 사내로 태어나지 못하고 명(明)의 씨앗으로 태어나 이런 지저분하고 더러운 꼴을 보는지 원…….”
“세상에 겉 다르고 속 다른 이가 어찌 한둘이겠느냐.”
당태세는 다리를 찜질하던 수건을 치웠다. 아룡이 무슨 일이냐는 듯 당태세를 바라보았다.
“언제까지 있을 수는 없느니라. 더 나은 것을 보러 떠나야지. 언제까지 옛 것에 머무를 수 있겠느냐?”
“맞는 말씀입니다만… 다리가 괜찮으시겠습니까?”
당태세가 빙긋 웃어보였다.
“괜찮다. 어차피 수레에 타고 다니지 않겠느냐? 그때 쉬어주면 훨씬 나아지겠지! 다른 곳은 멀쩡하니 염려 말거라! 이젠 남쪽을 한 번 봐야 하지 않겠느냐?”
남쪽이라는 말은 마법의 단어였다.
심드렁하니 당태세의 말을 듣고 있던 아룡의 눈이 화들짝 크게 떠지더니 고개를 두너서 번 빠르게 끄덕이고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아룡은 벌어지는 입을 채 간수하지도 못하였다.
“알겠습니다! 숙부의 바람이 그러시다면 제가 이러고 있을 수는 없지요! 당장 나귀와 수레를 보고 올 터이니 기다려 주십시오!”
“허허. 그렇다고 그렇게 서두를 일이야…….”
“아닙니다! 지금이라도 가시려면 가시죠! 개봉이라면 저도 지긋지긋 합니다!”
아룡이 말을 마치자마자 후다닥 객잔의 뒤로 수레와 나귀를 보러 뛰어갔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당태세가 코웃음을 치며 자신의 발을 쳐다보았다.
따스한 햇살이 객잔의 안마당을 내리쬐며 작은 새들이 내려앉아 어린 풀을 쪼아 먹는데, 쇠한 육신은 피가 돌지 않고 두터운 천으로 몸을 보하여야만 하였다.
부러진 곳은 없었다. 하지만 성한 곳도 없었다. 언제까지 이 뒤틀린 다리로 대지를 딛고 원수들과 싸워 보수(報讐)를 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당태세는 물끄러미 발을 보다가 가죽 끈과 부목을 가져왔다.
“끈이 먼저 터지든가 뼈가 먼저 부러지든가.”
당태세는 말을 하다가 피식 웃더니 다시 혼잣말을 이었다.
“그전에 먼저 칼을 맞고 죽든가.”
노인은 자신의 행장을 마무리했다.
말마따나 이제 개봉을 떠나야 할 때가 온 것이었다. 노인은 품 안에서 종이를 꺼내 보았다.
“무창의 견정문. 장사의 영우문, 소주의 동성문, 항주의 백룡문…….”
남으로 가느냐, 동으로 가느냐, 노인은 종이를 뚫어지라 바라보며 글자를 통해 거리를 가늠하듯 눈을 가늘게 떴다. 그 순간, 사내는 일단의 사내들이 자신의 앞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며 자신의 품 안으로 종이를 숨겼다.
“노대협, 몸은 어떠십니까? 괜찮아지셨소? 떠나신 줄 알고 걱정하였습니다그려.”
당당한 체구에 흑백의 정갈한 의복을 갖추고 깔끔하게 변발을 친 사내가 당태세의 안부를 물었다. 다름 아닌 흑풍방주 백당락이었다.
당태세는 물끄러미 사내를 올려다보며 말을 잇지 못하는데 흑풍방주는 슬쩍 자신의 머리를 만져보며 멋쩍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자리가 바뀌니 어쩔 수 없이 바꿔야 하는 것도 있더군요. 그렇다고 진심까지 바뀌기야 하겠습니까?”
나는 그대의 진심이 뭔지 궁금하오.
당태세는 입으로 소리를 내지 않았다. 단지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었다. 흑풍방주의 뒤에는 이제 비틀대지도 않고 똑바로 선 채 잔잔한 미소를 짓고 있는 숭호방주와 뭔가 마뜩찮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자리를 뜨지 않고 있는 곽가방주의 모습이 보였다.
명실상부 흑풍방주 백당락은 개봉 팔십방회의 맹주로 그 위상을 공고히 하고 있는 것임이 틀림없었다. 한바탕 큰 싸움으로 모두를 잃은 것은 구봉방이요 모든 것을 얻은 이는 흑풍방주였다.
“개봉지부와는 연락을 하였소?”
흑풍방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간 구봉방의 악행과 우리의 진심을 들었었으니 앞으로는 만사가 잘 해결될 겁니다. 북문의 공사는 우리 방회에서 맡기로 하였고, 구봉방이 맡았던 사업들은 모든 방에서 공평하게 이문을 챙기게 될 것입니다.”
“녹영군 참장은 괜찮소? 구봉방하고 얽혀있던 인간 말이오.”
흑풍방주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 사람이 죄수들의 반역을 발고하였다고 말했지요. 애꿎게 이번 사건의 일등공신이 되었습니다만 어쩌겠습니까? 오히려 그가 잘 되어야 그의 꼬리를 잡고 있는 우리가 더 편한 것이니.”
당태세는 자기도 모르게 실없는 웃음을 지어버렸다.
그 모습을 보던 흑풍방주 역시 미소를 머금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두 손을 뭉쳐 보였다. 한 손은 권(拳), 한 손은 장(掌)을 편 채 서로 맞물리는 흑풍방주의 인사는 신기하면서도 절도 있었다.
“비록 이(利)를 탐하고 권(權)에 붙어 세(勢)를 키웁니다만 이 백 모, 아직 마음 한구석에는 명(明)이 있습니다. 이 표식은 지나가던 지사가 우리에게 전해준 것이오. 노대협. 비록 이렇게 만났지만 다음에 만날 때는 머리가 아닌 가슴에서 우러나는 자리를 만들겠습니다.”
당태세는 흑풍방주를 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난 그대의 진의(眞意)를 여전히 모르겠구려.”
흑풍방주가 껄껄 웃으며 슬쩍 손을 들어 보였다. 뒤에 서 있던 방도 하나가 작은 상자 하나를 가져와 당태세의 발아래 내려놓았다. 뜬금없는 일에 당태세가 눈을 껌벅이자 흑풍방주는 다시 말을 이었다.
“오랫동안 앓아 온 고질(痼疾)을 치운 일입니다. 노대협이 없었으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오. 감사의 마음이 어찌 재물보다 작겠습니까만 사람의 치사가 이것 외에는 되지 않습니다.”
“이보시오. 내가 이런 것을 받을 것이 아니라…….”
“받아주십시오. 대협. 대협께서는 개봉뿐 아니라 제 비루한 인생을 나락에서 꺼내셨습니다.”
뒤에서 조용히 말하는 자는 숭호방의 이방주였다.
이방주의 눈에는 사심이라고는 없는 온전한 감사와 경모의 눈빛만이 가득하니 당태세 역시 그를 바라보며 짧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흑풍방주가 히죽 웃었다.
귀린갈아. 당태세야. 쓸모없는 빚을 지는구나. 인생사 얼마나 남았다고 부질없는 빚을 또 지느냐. 모든 것을 정리하러 강호에 나온 것일진대.
당태세는 한편으로는 그리 씁쓸하게 생각을 접으면서도 기왕지사 이리된 것 하나를 더 부탁하는 것도 나을 성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흑풍방주. 이리된 거 하나만 더 부탁을 합시다.”
“무엇입니까? 제가 할 수 있는 일입니까?”
“뇌옥 안에 있는 사람 하나만 꺼내주시구려. 이 일에 연루되어 있는 사람이오.”
흑풍방주는 당태세의 작은 소리를 조심스레 경청하고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더는 말이 필요 없었다. 흑풍방주가 다시 한 번 정성껏 예를 드리고 고개를 돌리자 모여 있던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등을 돌리며 객잔을 빠져나갔다.
후일 누군가 개봉팔십방회의 초대 맹주가 예를 차렸던 노인이 누구냐 묻는다면 아마 이리 대답하리라.
보잘 것 없는 절름발이 노인이었다고.
당태세도 쓴 입맛을 다시며 한 손에 상자를 옆에 끼고 다른 손으로 목괴를 겨드랑이 사이에 낀 채 객잔의 문을 나섰다.
이제 떠날 때가 된 것이었다.
당태세는 객잔주인에게 마지막 정산을 해 준 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때였다.
“노사, 그대는 선인(善人)이시오, 악인이시오?”
객잔 주인의 말에 당태세는 노인의 눈을 바라보았다. 객잔주인은 겁이 나는 듯 살짝 입술을 움찔거리면서도 고개를 똑바로 들고 당태세를 보며 말하였다.
“나는 이곳에서 이자성이 성문을 넘어뜨리는 것도 보았고, 변발을 한 청군이 명군을 도륙하는 것도 보았소이다. 그리고 그 전에는 탐리의 가렴주구도 보았고 화려했던 개봉과 참혹한 폐허를 모두 보았소. 하지만 나는 노사가 누구인지 모르겠습니다. 그 많은 것을 다 보았는데…….”
객잔 주인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당태세를 바라보다 말을 이었다.
“나는 그대가 선인을 만나고 악인을 미워하는 것을 보았지만 청인을 돕고 비류와 동무하는 것 또한 보았소. 그대는 어떤 사람이십니까?”
“나는 젊었을 때부터 선인은 아니었소.”
당태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무척이나 건조하고 무뚝뚝하였다. 만약 목소리가 사람이 잡을 수 있는 물건이었다면 조금 전 당태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객잔주인의 손에 닿기 전에 허공에서 부서져 버렸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당신은 악인이오?”
객잔 주인의 목소리도 어느새 쉬어 있었다. 당태세는 물끄러미 노인을 바라보았다. 당태세는 결국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돌리고 절뚝거리며 객잔의 문을 향해 걸어갔다.
객잔주인 역시 떠나가는 손님을 보며 입을 열지 않았다.
목발을 잡은 늙은이의 모습이 문 앞에서 사라져 한 줄기 바람이 노인의 발에서 떨어진 먼지를 불어 날릴 때까지도 객잔주인은 움직이지 않은 채 없어진 사내의 자취를 바라보고 있었다. 날씨에 어울리지 않는 스산한 바람이었다.
***
“몸은 괜찮으십니까?”
덜그럭덜그럭 수레를 몰고 나귀를 잡은 채 길을 떠나는 아룡이 수레에 탄 당태세를 돌아보았다. 당태세는 괜찮다는 듯 손을 들고 웃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룡이 다시 고개를 돌리고 혼잣말인 듯 대화인 듯 알 수 없는 말을 허공에 내던졌다.
“성벽을 지나기 전에 한 번 더 정경을 보시렵니까. 개봉에 다시 올 날이 있겠습니까? 성벽은 하얗고 물은 맑구나. 청조(淸朝)의 은혜가 가득하니 세세토록 영원하리로다.”
“다시 볼 날이 있겠는가…….”
당태세는 오히려 고개를 숙이며 입맛을 다셨다. 사내가 이끄는 나귀수레는 천천히 개봉성문을 넘어 사방 널찍하게 트인 광야로 접어들었다.
천하는 이미 봄이 완연하여 여름을 불러오는데, 아직도 세찬 바람은 여기저기에서 흙먼지를 하늘로 퍼올렸다. 당태세는 다시 가슴팍에서 종이를 꺼내었다. 어디로 갈 것인가. 이 사방천하 너른 곳에서 이 늙은 육신은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어허, 잠깐 비켜주시오.”
그때 아룡의 볼멘소리가 짧게 울렸다. 당태세는 반사적으로 종이에서 고개를 떼고 앞을 바라보았다. 순간 당태세의 눈이 앞에서 수레를 비켜나는 허름한 복장의 사내에게 고정되었다.
여기저기 헤진 복장에 되는대로 싼 봇짐을 든 껑충한 사내는 퀭한 눈으로 말없이 하늘을 바라보며 터덜터덜 걷고 있었다. 한때 개봉 북문의 조각상을 능숙하게 다듬던 사내는 이제 더는 할 일이 없다는 듯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며 황량한 길을 걷는 중이었다.
당태세는 황충수의 얼굴을 바라보며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수레가 멍하니 걷는 석장(石匠)의 곁을 지나쳐 갈 때, 한줄기 흙바람이 둘 사이를 파고들었다.
누런 흙바람이 먼지를 사방으로 날리며 사람들의 시선을 아래로 떨구는데, 시나브로 바람이 걷히고 사방이 다시 정돈되었을 때, 수레는 이미 사내를 지나쳐 다른 곳을 향해 머리를 돌린 뒤였다.
당태세는 뒤에서 하늘을 보고 있을 사내에게 차마 고개를 돌릴 수 없었다.
“숙부님, 어디로 갈까요?”
“……남(南)으로 가자.”
노인의 목소리는 불어온 흙바람처럼 거칠고 퍼석거렸다. 나귀의 머리가 오른쪽으로 돌아가며 사람과 수레의 방향도 바뀌었다. 고삐를 잡은 사내의 입에서 흥얼대는 잡가(雜歌)가 흘러나왔다.
갈림길에서 갈 곳 잃은 사내와 갈 길 먼 수레가 갈라지며 헤어졌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는 만나지 아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