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견마지로-46화 (46/226)

46. 하남 개봉부 뇌옥(1)

당태세는 거의 잠을 자지 않았다.

발의 통증 때문에도 그렇지만 새벽 일찍 밖으로 나서야 하는 일 때문이기도 하였다. 사내는 아직 별이 채 지기 전, 동쪽에서 박명(薄明)이 일기 전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복장을 갖추었다.

돌아간 다리를 다시 제자리로 돌리고 가죽 끈과 막대로 고정을 하자 그나마 괜찮아졌던 통증이 다시 밀려왔다. 당태세의 눈썹이 저절로 가운데로 몰렸지만 손은 힘껏 가죽 끈을 조이고 있었다.

“살아있으니 아픈 것이다.”

노인은 혼잣말을 중얼대며 목괴를 짚고 허리를 폈다. 건너편 침상에는 여전히 비몽사몽 누워있는 아룡의 모습이 보였다. 당태세는 여전히 눈썹을 찌푸린 채로 아룡을 바라보았다.

과연 이 어린 녀석은 어찌 처리해야 할 것인가. 하려면 개봉에서 처리해야 하는가. 아니면 더 길을 떠나서인가. 아직까지는 분명 효용이 있지만 해가 가고 길을 같이 갈수록 언젠가는 내 하는 일에 의심을 하게 될 것인데.

그 순간, 잠들어 있는 줄 알았던 아룡이 슬쩍 눈을 뜨고 당태세를 바라보았다. 노인의 눈과 젊은이의 눈이 동시에 서로를 마주보았다.

“숙부님.”

“오, 무두리. 괜찮으냐? 몸은 멀쩡한 것 같은데 이제 정신이 드느냐?”

“예… 아직 여기저기 쑤시긴 합니다만….”

당태세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상하면서도 엄한 표정으로 누워있는 젊은이를 바라보았다.

“너는 일어나지 말고 오늘은 객잔에서 정양을 하고 있거라. 내가 괜히 너를 비류의 구렁텅이에 밀어 넣은 것 같구나.”

“제가… 제가 어찌 된 것입니까? 누가 저를 이곳까지 데려 온 건가요? 도장에서 시비가 붙어서 역적(逆賊)모의를 하던 한족 쓰레기들과 말다툼을 하다 맞은 기억은 있는데…….”

당태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겨우 빠져나와 포쾌를 불러 화를 면하였다. 근처의 의로운 이들이 너를 도와 이곳까지 오게 되었구나. 이 모든 게 내 잘못이다.”

“그러게 제가 가지 말자 하지 않았습니까. 들어가 보니 역적 놈들의 소굴이지 않습니까? 망한 명나라의 귀신을 붙잡고 하늘같은 우리 황상을 모욕하고 있으니…….”

당태세는 이를 악물고 고개를 다시 끄덕거렸다.

“그래도 네가 절개를 지키고 황상에 대한 충심을 표했다고 사람들이 칭찬이 자자하더구나. 내 감동하였다. 역시 너는 청(淸)의 창룡(蒼龍), 무두리로다.”

아룡은 당태세의 말을 듣더니 해쓱한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무척이나 순수하게 미소 짓는 그의 얼굴에는 붉은 충심(忠心)외에는 없는 것 같았다.

“사내로 태어나 어찌 나라를 배반하겠습니까?”

당태세는 말없이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당태세가 젊었을 때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면 그날로 머리가 일도양단 되었겠지만 이제 당태세는 이런 대화가 익숙해지고 있었다.

“누워 있거라. 객잔 주인에게 부탁을 해놓겠다. 나는 관아에 가서 이번 일을 마무리 짓겠느니라.”

“관아요?”

“너를 때려눕힌 잔당을 다 잡지 않았더구나. 명(明)의 습속이 하리(下吏)들에게 남아있어 일처리가 더디다. 내 그놈들에게 본때를 보여줄 테니 너는 얌전히 있거라.”

아룡은 당태세의 얼굴을 보더니 그제야 당태세의 정제된 의관이 뭔지 알겠다는 듯 입을 벌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잘 다녀오십시오. 숙부님. 제 원한을 풀어주십시오!”

“오냐. 내 어찌 이놈들을 그냥 두겠느냐.”

당태세는 숙소를 나서 아직 어두운 하늘을 보며 객잔 마당을 가로질렀다. 객잔주인이 모습을 드러낸 당태세를 보며 슬쩍 묵례를 하였다. 당태세는 품에서 쇄은을 꺼내 주인의 손에 쥐어주었다.

“제 조카 놈이 앓아누워 있으니 간병을 부탁합니다. 늦어도 저녁께까지는 올 겁니다.”

“위험한 일을 하시는 것은 아니시겠죠. 노사?”

감사인사 대신 객잔주인의 입에서 나온 것은 뜬금없는 대꾸였다. 당태세는 허를 찔린 듯 눈을 크게 뜨고 주인을 바라보는데 늙은 객잔주인은 당태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다시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간 노사가 우리 집에 거하시며 많은 이들을 보고 부지런히 다니시는 것을 본 것 같습니다만….”

“그러한데?”

“……저도 한세월 이 일을 하면서 보냈습니다. 사람은 대충 볼 줄 알지요.”

당태세는 객잔주인을 바라보다 먼저 고개를 돌렸다. 뚜벅뚜벅 목괴를 짚으며 문을 향해 나가던 당태세는 낮은 목소리로 객잔주인에게 말을 남겼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잘못 보신 걸게요.”

객이 사라지고 아직 어둠은 사방에 가득하였다. 객잔주인은 어두운 객잔의 마당에서 노인이 나간 대문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

“얼추 시간이 된 것 같군.”

뇌옥 밖으로 잠시 나갔다 들어온 덩치 좋은 검은 피부의 사내가 감옥 안에 쭈그리고 자고 있는 사내에게 말을 걸었다. 찢어진 저고리 하나만 걸치고 있는 사내는 뇌옥의 횃불을 받아 온몸이 쇳덩이처럼 번들거렸다.

주변 철창 안에 갇혀있던 사내들은 옥 바깥에서 웃통을 벗다시피 하며 걸어 다니는 사내의 눈을 쳐다보지 않았다. 키도 장대할 뿐 아니라 찢어진 옷 사이로 불거진 울퉁불퉁한 근육은 사내의 힘이 여간내기가 아니라는 것을 무언중에 과시하고 있었다.

사내의 말에 부스스 머리를 긁으며 일어난 감옥 안의 허여멀건한 사내 역시 옥 바깥의 사내와 차이 없는 옷차림을 하고 있었는데 그 역시 우락부락한 덩치가 일반인과는 격을 달리하는 이였다.

옥 안의 사내는 찢어지라 입을 벌리고 하품을 하더니만 자기가 누워있던 옥문을 활짝 열고 넓은 복도로 나와 한껏 기지개를 켰다.

“맘 주는 곳이 고향이라고, 여기 감옥도 한참동안 누워있었더니 정이 들 지경이더구먼.”

“그 짓도 오늘로 끝이네.”

“방주님의 연락은 있었나?”

“참장이 여기 있는 이들을 인솔해 간 다음 일이지. 아마 개봉부에서 만나지 않겠나?”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굳게 닫고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팔짱을 끼고 선 채로 뇌옥으로 들어오는 출입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슬슬 동이 터 오는 시간이니 곧 뇌옥의 교대가 있을 예정이었다.

“열쇠는 수직사령이 가지고 들어오나?”

하얀 낯빛의 사내가 중얼대자 검은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양옆으로 늘어선 철문을 보더니 마치 거대한 범종(梵鍾)이 울려 퍼지는 듯한 소리를 내었다.

“모든 지사(志士)들은 일어나 대기하시오. 오늘부로 우리는 개봉부를 접수하고 청나라의 녹을 먹는 개봉지부를 처단할 것이오.”

“존명!”

옥 안에 있던 사내들이 동시에 대답하였다. 검은 사내의 말이 이어졌다.

“곧 옥문이 열리면 백호(白虎)의 지휘 하에 무기를 건네받으시오. 한시가 급하니 모든 이들은 정해진 명에 따라 바람처럼 움직여야 할 것이외다. 아셨소?”

“존명!”

“누가 온다, 묵룡(墨龍).”

두 사람의 입이 닫히자 뇌옥 안의 사내들은 마치 선방안의 고승들처럼 묵언(默言)으로 답하였다. 천천히 거대한 뇌옥의 출입문이 열리고 무장한 수직군사들이 창날을 위로 한 채 양옆으로 갈라지며 들어왔다.

묵룡과 백호라 불린 두 거한은 뇌옥의 복도 한가운데 서서 군사를 점고하는 장군처럼 서 있었다.

이윽고 출입문이 열리고 갑주를 차려입은 무장이 들어오자 두 사람은 올 것이 왔다는 듯 팔짱을 풀고 천천히 앞으로 걸어오기 시작하는데, 적수공권임에도 불구하고 두 사내가 앞으로 걸어오자 장내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갑주를 차려입은 무장은 두 사람을 쳐다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연신 혀로 입술을 축였다.

“열쇠를 가져오라.”

묵룡의 천둥 같은 목소리가 뇌옥의 벽에 부딪혀 쩌렁쩌렁 울렸다. 갑주를 입은 무장은 자기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묵룡의 눈가에 주름이 잡히더니 짜증나는 어조로 목소리가 바뀌었다.

“지금 뭐하는 짓인가?”

그 순간 무장의 태도가 바뀌었다. 겁을 먹은 듯 뒤로 물러서던 무장이 갑자기 눈을 부릅뜨더니 들고 있던 지휘채로 흑백 두 명의 사내를 가리키며 새된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군사들은 들어라! 개봉부의 뇌옥 안을 아무런 제재 없이 사방을 활보하며 다니는 죄인의 죄가 지대하다! 당장 옥졸들은 저 둘을 포박하여 하옥하라!”

“존명!”

흑백 두 사내의 눈동자가 둥그렇게 커졌다. 백호가 졸린 듯한 목소리로 무장을 보며 물었다.

“뭐라고? 지금 내가 뭘 잘못 들었나?”

“저 자들을 하옥하라! 반항하면 참(斬)하여도 좋다!”

무장의 말에 묵룡이 눈을 번득이더니 이를 드러내었다. 하지만 묵룡의 표정으로 봐서는 그리 화가 많이 난 것 같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냉정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백호, 아무래도 참장(參將)이 개봉지부에게 붙은 모양이다.”

“뭐? 우리 돈을 그렇게 먹고?”

묵룡이 두 손을 맞잡더니 주먹마디를 꺾었다. 부드득하며 뼈 부러지는 소리가 소름 끼치게 옥 안에 울려 퍼졌다. 묵룡이 내뱉었다.

“사리판단 못 하는 거지.”

백호가 껄걸 웃더니 묵룡의 옆에서 어깨를 흔들어보였다. 옥 내부에 갇혀있던 사내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무장의 입에서 다시 쇳소리 섞인 명령이 떨어졌다.

“저 자들을 잡아들여라!”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양옆으로 도열해있던 창수들이 창을 바투 쥐고 두 사내를 향해 양쪽에서 덤벼들었다.

이미 언질이 있었던 듯, 창을 잡은 병사들은 좌고우면하지 않고 그대로 돌진하여 흑백 죄수 두 명을 창에 꼬치라도 꿸 듯한 기세였다. 순간, 흑백의 죄수 들이 슬쩍 어깨를 흔들며 앞으로 나가는가 싶더니만 어느새 창날과 창대 사이로 몸이 파고들었다.

창수들의 눈이 휘둥그레지는 것과 두 사내의 입에서 기합이 터져 나오며 창대가 두 사내의 겨드랑이 사이에서 위로 휘는 것이 동시에 이루어졌다. 순간 창대가 터지며 부러졌고 두 사내의 품에서 박살난 창대는 어느새 두 사내의 품에 들어 있었다.

짧은 단창으로 변한 창날 네 자루가 각각 하나씩 사내들의 양손에 쥐어져 있었다.

“모두 물러서라! 위험하다!”

수직사령의 비명 섞인 명령보다 두 사내의 양손이 먼저 움직였다.

두 사내의 몸이 야수처럼 부러진 창대를 들고 서 있는 옥졸들 사이를 누비며 두 손이 횃불에 반사되어 번득이며 빛났다.

비명과 살점과 옷자락이 사방으로 튀어 오르며 네 사람의 육신이 허물어지듯 바닥에 깔렸다. 옥 안에 있는 사람들은 숨도 쉬지 못하였고, 바깥에서 창을 내뻗으며 두 사람을 지켜보는 사람들 역시 얼어붙은 듯 제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백호가 으르렁거리며 서 있는 옥졸과 수직사령들을 노려보았다.

“어서 열쇠를 내놓아라. 그렇지 않으면 모두 이렇게 될 것이니.”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희들은 우리를 알지 않느냐?”

묵룡의 침착한 소리에 창을 쥐고 있는 옥졸들이 서로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어느새 옥졸들은 슬금슬금 뒤로 물러서는 중이었다.

“빌어먹을…….”

이 모습을 보던 수직사령이 연신 입술을 핥으며 자기도 모르게 검대 위로 손이 올라갔다. 그때였다. 수직사령의 뒤에서 또각또각 나무가 바닥을 찍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모두 물러서시오.”

침착한 노인의 목소리가 옥 안으로 퍼졌다.

“이 곳은 내가 맡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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