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하남 개봉부 (15)
반사적으로 목괴를 들어 올린 당태세의 손목에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온몸으로 충격이 전해져왔다. 분명 목괴를 통해 막은 발차기였지만 그 충격의 여파는 상상 이상이었다.
당태세가 본능적으로 뒤로 한 발을 물러서자 백포의 사내는 순간적으로 틈을 좁히며 더 빠르게 각법을 이어갔다.
재빠르게 들어오는 발차기가 상하좌우를 가리지 않고 당태세의 몸을 파고들었다. 당태세는 목괴로 들어오는 발차기를 하나하나 막아내다가 재빠르게 허리를 틀고 오른발을 축으로 몸을 돌리더니 목괴를 땅바닥에 끌 듯 한 바퀴를 돌리며 백포사내의 공격 범위 바깥으로 벗어났다. 그제야 숨을 돌린 당태세가 짧게 숨을 뱉어내며 다시 오른손을 앞으로 뻗었다. 축으로 삼고 체중을 실었던 오른발의 찌릿한 통증이 머리까지 욱신욱신 밀려 들어왔다.
“소생의 공부가 부담되신다면 그 나무목발을 짚는 것까지 뭐라 하진 않겠소이다.”
백포사내가 웃음을 머금으며 당태세를 바라보았다. 사내의 호흡은 안정되어 있었고 땀 한 방울 흐르고 있지 않았다. 당태세는 흙투성이가 된 자신의 도포를 내려다보고는 손을 들어 손에 묻은 흙을 털어 날렸다.
“소협의 공부가 경지에 이르렀구나.”
“감사하오.”
흙을 털어내던 당태세의 입술이 얇게 갈라지며 이가 드러났다.
“아무리 세태가 망가졌기로 후학이 늙은이에게 초식을 양보하리?”
당태세는 목괴를 든 왼손을 허리 뒤로 돌리더니 절뚝거리는 오른발과 그 위의 오른손을 백포사내의 앞으로 내밀고 장(掌)을 권(拳)으로 바꿔 쥐었다. 당태세의 입에 맺힌 미소가 사라졌다.
“후학은 몸으로 선학(先學)의 공부를 익힐지라.”
백포사내는 당태세의 모습을 보더니 짧은 헛웃음을 내뱉고 두 손을 모았다.
“후회 마시오.”
백포사내의 무릎이 슬쩍 구부러졌다. 백포사내의 눈매는 사냥감을 앞에 둔 맹금처럼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당태세 역시 부릅뜬 눈으로 백포사내를 노려보며 주먹을 천천히 비틀어 쥐었다.
순간, 백포사내의 몸이 팽팽하게 당겼다가 끊어지는 실처럼 제자리에서 앞으로 튀어나오며 발로 땅을 박차고 허공으로 두 발을 퉁겨 올렸다.
순식간에 백포사내가 보이지 않는 속도로 당태세의 가슴팍과 어깨와 머리를 연달에 쳐올릴 기세로 움직였다. 하지만 그보다 빨리 당태세의 흔들리던 오른발이 아래로 붙으며 당태세의 권이 들어오는 백포사내의 발을 맞받아치고 주먹에 이은 어깨가 앞으로 나가면서 태산 같은 붕격(崩擊)을 사내의 뒷발에 격중 시켰다.
백포사내의 몸이 허공에서 중심을 잃고 그대로 옆으로 튕겨나가며 쇠창살에 부딪혔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쇠창살이 흔들리자 조봉이 움찔거리며 눈을 휘둥그레 떴다.
쇠창살에 부딪힌 채 비틀거리던 백포사내가 다시 중심을 잡는데 어느새 사내의 얼굴에 만만(滿滿)하던 자신감은 어디론가 사라진 지 오래였다. 당태세가 목괴를 짚고 뚜벅뚜벅 백포사내의 앞으로 다가왔다.
“쾌(快)를 쾌(快)로 잡는 것만큼 간단한 게 있으랴.”
백포사내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당태세를 향해 다시 몸을 날렸다.
사내의 발이 엄청나게 긴 궤적을 그리며 관운장의 청룡도가 목을 노리듯 옆에서 머리를 향해 날아왔다. 하지만 당태세는 슬쩍 머리를 들어 사내의 발차기를 피하였고 그에 이어 아래에서 위로 솟구치는 백포사내의 번신각을 우수로 가볍게 틀어 보냈다.
그때였다.
백포사내의 눈이 죽일듯한 기세로 당태세를 바라보며 두 팔이 등 뒤에서 빠져나오며 양쪽에서 번쩍였다. 양손에는 어느새 예리한 단검이 들려 있었다.
순간 당태세는 백포사내의 양손이 자신의 목에 닿기 전에 몸을 틀며 허공에 떠 있던 오른손을 그대로 내리며 백포사내의 가슴팍을 찍어 내리듯 가격했다. 백포사내의 가슴팍에서 마치 작은 천둥이 치는 것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순간 백포사내의 몸이 그대로 허물어지며 양 무릎이 전당의 단단한 포석 위로 쾅 하니 떨어졌다. 사내의 손에 들려있던 단검 두 자루가 힘을 잃고 바닥으로 빙글빙글 같은 궤도를 그리며 굴러갔다. 어느새 청수한 사내의 입에서 울컥하니 선혈이 새어 나왔다.
“몸을 다스리는 공부는 훌륭히 배웠다만…….”
당태세의 뇌까림에 멍하니 초점 없이 앞을 보던 백포사내의 눈이 노인을 향하였다.
“네 사부는 마음을 다스리는 것을 가르쳐주지 않았구나.”
당태세의 말이 멎는 것과 함께 백포사내의 눈이 뒤로 돌아가며 그대로 옆으로 쓰러졌다.
당태세는 쓰러진 사내의 품을 뒤지더니 시커먼 열쇠 하나를 꺼내보였다. 그 모습을 보던 조봉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당태세가 조봉을 보더니 눈썹을 위로 올려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열쇠가 그 쇠창살의 열쇠가 맞는 모양이구먼?”
당태세는 목괴로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전당 안을 걸어갔다. 노인이 향한 곳은 전장의 쇠창살문이 아니라 정반대인 철문이었다.
노인은 힐끗 자신의 앞에 높인 철문을 바라보더니 길게 숨을 들이쉬고는 오른손을 가슴팍 앞까지 끌어당겼다가 가볍게 앞으로 향해 죽 뻗었다.
철문에 당태세의 우수가 닿는 순간, 철문이 징 소리를 내며 가볍게 울리기 시작했다. 철문은 마치 한기(寒氣)를 느끼는 듯 웅웅대며 떨리더니만 조금씩 앞을 향해 열리기 시작했다.
굳건히 닫혀 칼 한 자루 비비고 들어올 수 없었던 문의 틈새가 조금씩 벌어지며 밖으로 열리기 시작하자 문틈 사이로 바깥의 빛살이 새어 들어오기 시작했고, 곧이어 벌어진 틈새 사이로 손가락들이 비집고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광경을 멍하니 보고 있던 조봉은 마치 혼절이라도 할 것 같은 표정이었다. 당태세가 다시 등을 돌리고 조봉을 바라보는 순간, 창해전당의 문이 활짝 열리더니 한 손에 단도를 든 수십 명의 사내들이 왈칵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노사! 수고하셨습니다! 청해전당은 이제 우리 흑풍방이 접수할 것이오!”
맨 처음 당태세의 앞으로 뛰어든 사람은 다름 아닌 흑풍방주 백당락이었다. 당태세는 말없이 쇠창살의 검은 열쇠를 건네주며 짧게 말하였다.
“전당의 전표와 장부를 찾아보시오. 혹여 녹영군과 관계되어 있는 것이 있다면 바로 조사해야 할 것이외다.”
“알겠습니다!”
흑풍방주의 손에 잡힌 열쇠가 쇠창살을 열고 전당 내부와 통하는 철문을 열어젖히자 안에 있던 조봉이 화급하게 장부를 챙겨 후다닥 위로 향하는 계단으로 뛰어 올라갔다. 흑풍방주가 손가락으로 계단을 가리키며 소리를 질렀다.
“모두 이층으로 올라가라!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을 가져가되, 장부는 내게 가져오라!”
방주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뒤에 대기하고 있던 사내들이 성난 개미떼처럼 우르르 계단을 타고 올라가며 함성을 질러댔다. 뒤에 쳐진 흑풍방도들은 전당의 창구 안으로 들어가더니 단도로 궤짝을 뜯고 그 안에 보관 중이던 패물과 은자를 챙기기 시작했다.
원래 전당이라는 곳은 손님의 물건을 받고 그것으로 돈을 갈음하는 곳인 바, 이곳은 집으로 쌓아 올린 보물창고나 다름이 없었다. 흑풍방주가 히죽 웃으며 당태세를 바라보았다.
“노사께서도 이럴 때 조금 챙겨 놓으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구봉방에 갈 돈이면 우리가 취하는 것이 낫습니다!”
당태세가 쓴웃음을 지으며 흑풍방주의 말에 손사래를 치려고 손을 드는데, 갑자기 위에서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 꺼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당태세와 흑풍방주의 안색이 급변했다.
순간 계단참에서 사내 하나가 굴러 떨어지듯 계단을 내려오더니 깨진 머리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흑풍방주를 바라보았다.
“야차 같은 역사 하나가 창고에 진을 치고 앉아 우리 방도들을 때려잡고 있습니다!”
“나머지 팔익(八翼)이 거기 있었구나!”
당태세는 재빨리 목괴를 끼고는 날듯이 몸을 움직였다. 사내가 계단을 목발로 찍으며 위로 성큼성큼 올라가는 모습은 창창한 장한의 몸동작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당태세가 위로 몸을 날려 사방을 둘러보는데, 그곳은 이미 아비규환이 펼쳐져 있었다.
널따란 건물의 이층은 휑하니 하나로 뚫려 있는 방이었는데 방의 여기저기에 큼지막한 상자들이 기둥을 이루며 천장까지 닿아 있었다. 하지만 당태세의 눈에 맨 처음 들어온 것은 여기저기 머리가 터진 채 쓰러져 신음을 내는 즐비한 흑풍방도들과 그들의 가운데에서 육척곤을 쥐고 쓰러진 자들을 내려다보는 깍짓동 같은 사내였다.
“네가 구봉방의 창고지기냐?”
“오냐.”
육척곤의 사내는 키가 당태세보다 작았는데 어깨 하나가 당태세보다 더 옆으로 벌어져 있었고 허리둘레는 당태세의 두 배는 됨직하였다. 뒤룩뒤룩 불거진 뱃살의 위에는 가느다란 눈과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팔이 보이는데, 웃통을 벗어던진 채 곤을 들고 있는 사내의 모습은 마치 탱화(幀畵)에 나오는 지옥의 옥졸과 같았다.
“네 놈도 팔익이면 재간이 있으렷다.”
당태세가 목괴로 바닥을 짚으며 곤술가에게 향했다.
당태세가 사내의 앞을 맴돌며 병기의 간극을 재기 시작하자 누워있던 흑풍방도들이 하나둘 일어나 인사불성의 동료들을 챙겨 당태세의 뒤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곤을 든 투실한 사내는 주변을 둘러보고는 당태세를 향해 짧게 말을 뱉었다.
“도적들을 때려잡는 재간이다.”
말을 마치자 사내는 흡하고 호흡을 멈추더니 그대로 당태세를 향해 돌진해 들어왔다. 뚱뚱한 몸과 어울리지 않는 기민한 보법이었다. 사내의 두 손이 육척곤을 풍차처럼 휘두르며 선풍을 일으켰다.
당태세의 눈이 잔영을 만들어내는 곤을 노려보며 천천히 목괴를 앞으로 가져왔다.
“살(殺)!”
누군가의 입에서 나온 외침과 함께 두 자루의 막대가 서로 얽혔다.
비둔한 사내의 곤은 마치 두 개의 머리가 달린 뱀처럼 양끝을 현란하게 흔들며 당태세의 온몸을 노리고 덤벼드는 반면, 당태세의 목괴는 성난 학처럼 끝머리를 올려 세운 채 들어오는 곤의 상하좌우 연격을 하나하나 뿌리치고 튕기며 상대의 허점을 찾아 날카롭게 요혈을 찾아 찔러 들어갔다.
작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하얀 접시를 일렬로 늘어놓은 것처럼 바닥에 무늬를 만드는데, 두 사내의 몸이 그 사이를 오가며 접시문양을 자신의 몸에 붙였다가 상대의 몸으로 옮겨 붙이기를 끊임없이 반복하였다.
뒤에 물러서 있던 흑풍방도들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였다.
뚱뚱한 사내와 절름발이 노인이 기다란 막대 두 자루를 가지고 손과 발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현란하게 움직이며 서로의 몸을 찌르고 부수는데, 채 눈으로는 두 사람의 궤적을 따르지 못하고 오직 귀로 나무와 나무가 부딪히는 소리만을 듣고 있었다.
어느새 흑풍방주도 계단으로 올라와 두 사람의 난투를 소리 죽이고 바라보는 처지였다.
“빌어먹을!”
순간, 비둔한 사내가 비틀거리며 뒤로 두 발을 물러섰다. 어느새 사내의 이마에서 선혈이 주르르 흘러 눈 아래로 흘러들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와 합을 맞춘 당태세는 멀쩡한 모습으로 괴를 땅에 짚고 곤술가를 주시하는 중이었다.
“아직 멀었느니라. 공방(攻防)이 애오라지 힘으로 될 일이냐.”
“네… 네놈은 대체 누구냐, 늙은이! 내 곤을 어떻게 간파하는가?”
새파랗게 타오르는 당태세의 눈 아래로 엷은 미소가 걸렸다.
“나는 네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구봉곤(九鳳棍)의 파훼법을 알았느니라.”
“뭐….”
어느새 곤술가의 눈은 동그랗게 커져 있었다. 사내의 이마에서는 선혈과 땀이 같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사내의 두 손은 더욱 곤을 단단히 잡고 있었다.
사내의 표정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당태세의 입에서 미소가 가셨다. 당태세가 짧게 고개를 끄덕이자 곤술가 역시 입술을 일자로 다물었다.
모여 있던 사내들은 둘 중 누가 먼저 발로 땅을 박차고 앞으로 튀어나갔는지, 누구의 막대가 먼저 서로의 이마를 향했는지 구분할 수 없었다. 단지 그들이 알 수 있는 것은 순식간에 두 삶의 형상이 교차했다가 바로 자리를 바꾸었다는 것과, 단 한 번의 격타음이 울렸다는 것뿐이었다.
이윽고 당태세가 몸을 바로 세우고 목괴를 자신의 겨드랑이에 끼우자 약속이라도 한 듯 육척곤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비둔한 사내의 몸뚱이가 소리 없이 앞으로 쓰러졌다.
“대단하시오.”
흑풍방주가 혀로 입술을 다시며 당태세에게로 다가갔지만 노인은 괜찮다는 듯 손을 들어보이고는 쓰러진 곤술가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핏물이 창고 바닥에 질펀하게 고이기 시작했다.
“결기가 있었으니 무인이라 할 것이다.”
노인은 흑풍방주를 뒤로 한 채 몸을 돌려 아래층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흑풍방주는 뒤에 서 있는 사내들을 보며 다시 영을 내렸다.
“어서 값나가는 물건들을 끌어내려라! 그리고 저 놈을 데리고 오너라! 장부를 조사해야겠다!”
흑풍방주의 눈길이 닿는 곳에는 넋 나간 듯이 오들오들 떨고 있는 전당 조봉의 모습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