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견마지로-42화 (42/226)

42. 하남 개봉부 (14)

“어이 늙은이, 이쪽으로 오라고.”

앞장서 가는 구봉방도는 말이 짧고 거칠었다. 사내는 당태세가 이곳에 온 취지 같은 것은 아예 전달받지 않은 모양이었다. 자신의 두목인 팔익들이 노인을 전당까지 끌고 가라는 것을 보니 분명 물건을 맡기고 돈을 털어오라 시킨 것으로 오인하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당태세는 굳이 그 사실을 말하고 싶지 않았다. 말 할 필요조차 없었다.

“알겠습니다. 발이 뒤처지니 조금만 천천히….”

“아, 빨리 오라고! 한쪽 발은 성하잖아!”

“네네! 알겠습니다.”

당태세는 젊은 구봉방도 뒤를 비틀거리며 따라갔다. 순간 당태세는 주변에 있던 사내들이 거리를 두고 자신과 함께 길을 걷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여느 사람들은 평범한 복장이고 어떤 이들은 불량스러워 보이는 복장을 하고 있는데, 그들은 당태세가 확인을 못할 것이라는 듯 넓게 퍼진 채 거리를 한참 띄우고 당태세의 주변에서 같은 방향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당태세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날은 화창하고 해는 뜨거웠다. 바닥에 깔린 포석에 햇볕이 닿으며 슬슬 달아오르기 시작하였다. 당태세의 앞에서 길을 인도하는 구봉방도는 이 더운 날 지붕 밖으로 자신을 불러낸 당태세를 향해 알아듣기 힘든 욕을 구시렁거리는 중이었다.

“다 왔어. 늙은이. 들어가자.”

당태세의 앞에 보이는 건물은 벽돌로 올린 커다란 이층 가옥이었다. 사람이 통과할 수 없는 주먹만 한 창문들만 나 있는 것이 귀중한 물건을 쌓아둔 집이라고 광고를 하는 것 같았다.

건물은 창해전당(滄海典當)이라는 커다란 간판 아래로 커다란 쇠문이 달려 있었는데 기묘하게도 근방 길거리는 쥐죽은 듯 고요하기만 하였다. 마치 생령(生靈)은 근처에 오지도 못하는 것 같은 묘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당태세는 재빨리 건물의 위아래를 훑어보는데 그의 옆에 서 있던 구봉방도는 노인의 표정을 보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어이, 안 들어가고 뭐하는 거냐, 늙은이?”

“여기가 전당 맞습니까요? 어째 뇌옥처럼 생긴 것이…….”

젊은 구봉방도는 겁많은 늙은이를 한심하게 쳐다보더니 이를 드러내었다.

“너 같은 늙은이에게는 철상지옥보다 무서운 곳이 이곳이다. 이곳에서 돈을 빌리고 갚지 않으면 아마 뇌옥에 끌려가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 것이야.”

“그… 그렇습니까?”

“대체 넌 뭘 맡기려는 것이냐?”

“예… 집안의 보도를 팔려고…….”

구봉방도가 한심하다는 듯 당태세를 흘겨보았다.

“늙어서 한다는 짓이 가문의 재산 축내는 짓이야? 늙은이, 잘 생각해 봐. 이런 곳에서 돈 빌려서 노름판에서 마구 쓰다가 나중에는 골목에서 굶어 죽는 거야. 몸도 안 성한 사람 앞날이 뻔한 거 아니야?”

“네…….”

당태세의 희미한 대답을 들은 구봉방도는 코웃음을 치며 중얼거렸다.

“내가 이쪽 물 예전부터 먹어서 말하는 건데 늙은이 같은 인생 많이 봤거든? 오늘 돈 바꾸면 그 돈 가지고 노름할 생각 말고 집에 가져가서 고기나 구워 먹으라고. 그게 훨씬 도움 되는 인생이니까.”

“네…….”

당태세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들어가려는 순간, 구봉방도가 다시 말을 걸었다.

“그리고 전당에 있는 두 분에게 돈 몇 푼 가지고 말싸움하지 마. 무서운 분들이니까.”

“무섭습니까?”

“개봉부에서 거기 앉아있는 두 사람 권장도검으로 이길 수 있는 사람 없다. 알았어?”

당태세는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구봉방도는 앞장서서 앞으로 걸어가더니 똑똑똑 세 번 문을 두드리고 잠시 뒤 다섯 번을 더 두드렸다. 그러자 커다란 철문 사이로 틈이 벌어지더니 서서히 앞을 향해 열렸다. 거대한 장정 두 사람이 양쪽에서 문을 열어주고 있었다. 강철문의 두께는 어른의 주먹 두께였다. 안에서 작심하고 걸어 잠그면 군(軍)이 들이닥쳐도 열 수 없을 것 같았다.

“무슨 일이냐?”

“도장에서 왔습니다. 이 늙은이에게 특별히 돈을 빌려주라 하였습니다.”

철문이 조금 더 열리며 사람 하나가 들어갈 정도의 너비로 벌어졌다. 당태세의 앞에서 조용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들어오라.”

***

내부는 생각보다 크고 어두웠고, 손님은 보이지 않았다.

전당의 안은 긴 쇠창살로 막힌 창구와 쇠창살 뒤의 넓은 공간과 금고와 궤짝, 그리고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참이 있었다. 당태세는 한눈으로 주변의 구조를 파악할 수 있었다.

단순한 사각으로 이루어진 공간이라 사방이 쉽게 눈 안에 들어왔다. 창구 앞에 앉아있던 조봉(朝奉: 창구에서 전당의 일을 맡아보는 이)이 당태세와 뒤를 따르는 구봉방도를 보더니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이리 오시오. 전당 처음 와 보시오?”

당태세는 천천히 쇠창살이 둘러쳐진 창구 앞으로 가 보았다.

원래 전당의 창구는 돈을 빌리러 온 사람보다 높아 조봉이 마치 재판장의 판관처럼 위에서 돈 빌리어 온 이를 내려다보게 되어 있었다. 칼 든 도적에게서 몸을 지키고, 권세 쥔 이처럼 보여 전당의 거래에서 이점을 얻게 하기 위한 고래(古來)부터의 설계였다.

검은 수염을 기르고 두 손이 먹물에 물들어 있는 조봉은 슬쩍 당태세를 내려다보고는 입을 열었다.

“돈을 빌리고 싶소이까?”

“그렇다.”

당태세는 목괴를 단단히 틀어잡았다. 문지기로 서 있는 커다란 덩치가 둘, 쇠창살 너머에 있는 조봉이 하나. 보이는 것은 이들이 전부였지만 분명 이들보다 많은 이들이 이 전당 안에 있을 터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곳 어딘가에 있는 팔익이었다.

그들은 어딘가에 모습을 감추고 당태세의 하는 일을 바라보고 있을 터였다. 조봉이 당태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맡기실 물건은 무엇이오?”

당태세가 조봉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사실은 내가 물건을 받으러 왔네만.”

“뭐요?”

뒤에 서 있던 구봉방도가 무슨 소리냐는 듯 당태세를 쳐다보는데 당태세는 청년의 표정은 개의치 않고 조봉을 바라보며 덤덤히 말을 이어갔다.

“팔익의 목을 받고 싶다. 한시가 바쁘니 내가 둘을 찾아 직접 가져가야겠어.”

순간, 조봉의 얼굴빛이 기묘하게 변하더니 당태세를 보며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지어 보였다. 조봉은 자신의 머리 위에 있는 종을 잡아당겼다. 짤랑짤랑 소리가 나자 강철 문을 여닫던 장한 둘이 고개를 돌려 당태세를 바라보았다. 조봉이 그들을 보며 차갑게 말하였다.

“이 늙은이를 죽여라. 미친놈이다.”

당태세의 뒤에 있던 구봉방도가 안색이 변하며 재빨리 몸을 뒤로 피하였다. 문을 잠근 장한 둘이 뒤춤에서 똑같이 생긴 철편을 꺼내들었다. 당태세는 그들이 다가오는 것을 빤히 바라보며 낮게 중얼거렸다.

“팔익이 아니라면 가까이 오지 마라. 경고다.”

장한 하나의 무표정한 얼굴에 슬쩍 미소가 감돌았다. 그와 함께 두 사내가 당태세의 앞에서 앞뒤로 갈라졌다. 두 사내는 익히 협공에 대한 묘리를 터득한 것 같았다.

“오자평 그 늙은이가 놀고 있지는 않은 모양일세.”

당태세의 혼잣말이 끝나는 순간, 뒤에서부터 살기가 튀어나왔다. 철편이 공기를 가르고 매서운 소리를 내며 당태세의 뒷머리를 부숴버릴 기세로 쏟아졌다. 그와 함께 앞에 서 있던 사내의 철편도 옆구리를 노리며 움직였다.

당태세의 몸이 강풍에 비틀리는 나뭇가지처럼 뒤틀리며 성한 왼발을 축으로 빙글 돌며 왼쪽으로 재빠르게 빠져나왔다.

당태세가 휘두르는 목괴에 두 개의 철편이 동시에 튕겨 나왔다. 당태세의 발이 땅을 박차고 뒤로 움직이며 맨 처음 철편을 휘두른 거한을 향해 튀어나갔다. 철편을 손에 든 거한은 철편을 검처럼 휘두르며 목괴의 공격을 방어하고 있었다.

착실하게 배운 공부였다. 당태세의 눈이 번쩍였다.

“기초가 좋구나.”

순간 당태세의 왼발이 장한의 왼발과 오른발 사이로 들어가는 것 같더니만 몸을 숙이며 무릎으로 장한의 허벅지를 찍었다.

그와 동시에 당태세의 목괴가 땅을 받치고 당태세의 어깨는 사내의 다른 쪽 다리를 찍어 내리듯 눌렀다. 거한의 중심이 순식간에 허물어지며 그대로 뒤로 넘어지는 순간 바람을 가르고 날아든 목괴의 끝이 장한이 턱을 그대로 강타하였다.

실로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인지라 철편을 들고 있던 다른 장한이 채 동무를 구하고 다가오기도 전이었다. 순식간에 눈이 풀린 채 철편을 떨구는 동료를 본 다른 장한이 눈에 쌍심지를 돋운 채 당태세를 향해 철편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 순간 이미 당태세의 목괴가 땅에서 떨어지더니 마치 창처럼 당태세의 손아귀에 들리더니 훌쩍 철편이 위에서 떨어지는 찰나를 타고 장한의 목을 찌르고는 뒤로 빠져나갔다.

헉하는 소리와 함께 태산 같은 장한의 몸이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이를 보고 있던 조봉의 입이 떡하니 벌어졌고, 당태세를 이곳까지 데리고 왔던 구봉방도는 아예 허리가 빠졌는지 엉덩방아를 찧은 채 귀신만난 듯한 얼굴로 당태세를 바라보았다.

“어이 젊은이, 이쪽으로 오라고.”

“네네?”

어느새 구봉방도의 말투는 무척이나 겸손해져 있었다.

“저 철문이나 열어라. 답답하구나.”

“저… 저….”

“젊은이, 잘 생각해 봐. 이런 곳에서 늙은이 말 안 듣고 대들다가 나중에는 골목에서 죽은 채 발견되는 거야.”

구봉방도는 이제 얼이 다 빠져나간 것 같았다. 사내는 비실비실 일어나더니만 거대한 철문을 향해 다가가더니 두꺼운 철문을 두 손으로 밀면서 힘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육중해 보이는 철문은 젊은이의 힘으로는 옴짝달싹도 하지 않았다.

당태세가 한숨을 쉬며 그 모습을 보고 있더니 결국 목괴를 다시 겨드랑이에 끼고 젊은 구봉방도를 향해 다가갔다.

“제대로 하는 것도 없구만.”

그때였다. 당태세의 앞에서 지독한 살기와 함께 무형의 압력이 바람처럼 벽을 타고 쏟아져 들어왔다. 당태세는 재빨리 몸을 뒤로 피하면서 목괴를 고쳐 잡았다. 어느새 철문을 열려고 끙끙대는 구봉방도의 옆으로 하얀 도포를 입은 사내가 불쑥 나타난 것이었다.

백포 사내는 슬쩍 구봉방도의 하는 짓을 보더니만 한마디도 없이 슬쩍 옆으로 몸을 틀었다. 사내의 몸동작과 함께 퍽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구봉방도가 허리를 부여잡고 벽에 처박혔다

백포사내는 자신의 옷매무시를 가다듬더니 뒷짐을 지고 천천히 당태세의 앞으로 걸어 나왔다.

사내의 몸에서 풍기는 공력은 결코 얕잡아볼 수준의 것이 아니었다. 분명 저 백포사내는 당태세가 전당에 들어올 때부터 이곳에 있었던 것임이 분명하였다. 당태세는 백포사내를 보더니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기척을 숨길 지경에 이르렀다니, 좋은 공부다.”

“노사의 공부도 잘 봤습니다. 제법이더군요.”

“그 실력이면 이미 기습으로 날 노렸을 법도 한데.”

“노사 역시 실력을 숨겼으니 대항할 수 없었습니다.”

정중한 문답 속에서 불꽃이 튀었다.

당태세는 그 와중에도 흡족한 듯 얼굴에 슬쩍 기묘한 웃음이 올라왔다. 나이를 먹고 세월이 흘렀어도 이 얄팍한 호승심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네가 팔익이냐?”

“팔익의 말석이외다.”

“네 스승을 칭찬해 줄만 하구나.”

백포사내는 손을 들어 당태세에게 넓은 자리로 가자고 권하였다. 당태세는 순순히 백포사내의 말에 따라 다시 전당의 일층, 창구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백포사내의 보법은 기묘하였고, 그 보법을 축으로 시전하는 각법(脚法)또한 매서웠다. 여유만만한 태도 역시 공부와 기공에 대한 자신감이 없으면 나오지 못할 터였다.

당태세는 다시 몸을 돌려 백포사내를 쳐다보았다. 백포사내는 여전히 뒷짐을 진 채 당태세를 노려보고 있었다.

“철옹성이나 다름없는 제 창해전당에 들어와서 제 목숨을 노린다 말씀하신 노부의 존함을 알 수 있겠습니까? 그 과단성은 높이 쳐드리겠습니다만 이 무모함은 목숨으로 갚을진대, 명부로 가시기 전에 존성대명이라도 들어두면 편할 것 같습니다.”

“어차피 네가 먼저 갈 것이니 굳이 듣지 않아도 되느니라.”

“그렇습니까?”

“내가 저승으로 보낸 이들이 내 이름을 안다. 가서 물어보아라.”

“허.”

뒷짐 진 사내의 몸이 슬쩍 아래로 내려가더니 두 발이 천천히 앞뒤로 벌어지며 무릎이 굽혀졌다. 백포사내의 눈이 매서운 빛을 발하며 당태세를 노려보았다. 당태세 역시 목괴를 땅에 짚고 오른손을 들어 가슴 앞에서 장을 펴고 백포사내를 바라보았다.

“들어오라.”

당태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백포사내의 몸이 시위에 올린 화살처럼 앞으로 튀어 들어왔다. 사람의 눈에 넣기 힘들 정도의 빠르기였다. 순간 당태세의 옆에서 일진광풍이 불더니 왼쪽 옆에서 강맹한 발차기가 그대로 당태세의 목을 자를 듯 예리하게 날아 들어왔다. 당태세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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