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하남 개봉부 (11)
지금 당태세가 처한 상황은 급하다면 급하고 한가롭게 시간을 뺀다면 얼마든지 유유자적 놀 수 있는 시간이었다.
구봉방에 대한 복수야 하루 이틀 미루면 될 일이었고 문사들과 만나기로 한 약속도 사흘이나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당태세는 오늘 밤 안으로 이 모든 일을 처리해야 할 것 같았다.
시불가실(時不可失)이라, 때를 놓치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 법 아니랴. 당태세는 오늘이 지나면 문루에서 만난 황충수를 다시는 못 만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인(囚人)들이 있는 곳을 왜 가려 하십니까요? 그곳은 녹영군의 관할입니다요.”
문각은 당태세의 말에 앞장서 길잡이를 하면서도 안내하는 곳으로 가기 싫다는 표시를 역력하게 드러내었다.
녹영군이 아무리 한족으로 이루어진 군대라 하나 그 속내는 팔기(八旗)의 군율을 다루는 만주족의 손발이나 다름없는 바, 일반 백성들이 고운 눈으로 쳐다보는 위인들이 아니었다. 그 반대급부로 녹영군 역시 일반 백성들을 동포로 보지 않고 팔기의 눈을 좇아 다스리고 처리하는 개돼지와 같은 가축으로 보기 일쑤였다.
“물론 말이 통하는 녹영군도 많습니다요. 하지만 그 윗선에 올라가면 이 놈이 청인(淸人)인지 한인(漢人)인지 모를 놈이 허다하단 말입니다. 굳이 그런 곳에…….”
“내가 녹영의 윗선을 만나러 가는 것으로 보이느냐?”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만…….”
문각은 어깨를 움츠리며 당태세의 장(掌)이 자기 몸에 닿을까 섬찟섬찟 놀라며 길을 따라나서는데 이들이 접어든 길은 일반 백성은 다니지 않는 곳인 듯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원래 개봉부는 일국의 수도였으며 천하를 경영하던 성부였으니 그 길의 다채로움이 다른 곳에 비하랴마는, 이런 넓고도 호젓한 길은 당태세도 처음 걸어보는 길이었다.
“관도(官道)입니다. 이제는 녹영과 팔기만이 사용하는 길입지요.”
“이런 곳을 네가 다녀도 되느냐?”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백성이 다니지 말란 법은 없습니다. 그저 이곳에 오는 것을 꺼리기 때문입니다. 이 길을 다니는 것은 녹영군 아니면 녹영군에게 끌려가는 이들 뿐인데 어찌 평범한 백성이 이곳을 찾아오겠습니까?”
“허, 사냥개가 사냥꾼을 끌어내는 구나.”
“대협, 그런 말씀 마십시오. 이곳은 몸뚱어리가 없어도 귀는 있는 곳입니다.”
두 사람은 어둑해진 하늘을 바라보며 성벽을 따라 창 없는 건물이 즐비한 골목을 지나 성벽 아래 햇살이 비치지 않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직 하늘에 해가 떠 있건만 이 골목은 사방천하가 마치 삭월(朔月)이라도 만난 밤인 양 어둡기만 한데 도로는 어울리지 않게 널찍하여 그 기괴함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문각은 이 도로의 끝에 등불을 밝혀놓고 있는 커다란 문 앞으로 다가섰다. 문 위에는 뇌옥(牢獄)이라는 서투른 글씨 하나가 나무판에 음각되어 있었다.
“문각, 여기 무슨 일이냐?”
“아… 하하… 여보게. 잠깐 면회가 가능한가?”
문 앞에 서 있던 녹영군의 군졸은 문각과 예전부터 안면이 있는 듯 문각의 요구에 슬쩍 눈썹을 치켜세우면서도 딱히 호통을 치거나 창을 들이대지는 않았다. 사내는 힐끗 당태세를 쳐다보더니만 다시 문각을 바라보았다.
“뭔데? 누군데?”
문각이 운을 떼었으니 당태세가 마무리를 지을 차례였다. 당태세는 일부러 목괴에 힘을 주고 비틀비틀 걸어가며 병졸 앞으로 다가가자 병졸은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못내 불편한 감정을 얼굴에서 지우지 않았다. 문각이 먼저 선수를 피며 병졸에게 말했다.
“내가 동리에서 모시고 있는 노사요. 이번에 이 분의 독자가 어쩌다 이곳으로 잡혀 온 모양인데….”
“제발 한 번만 얼굴을 보게 해 주십시오! 하나뿐인 아들입니다. 그 놈 생각하면 잠을 잘 수도 없고 음식을 먹어도 지푸라기를 먹은 기분입니다. 어찌 한 번만 얼굴을 볼 수 없겠습니까?”
한 번 시작하기가 어렵지 맘먹고 시작 하려하니 술술 풀려나오는 것이 연기(演技)였다.
당태세의 절절한 목소리를 듣고 있던 군졸은 당태세를 보며 고향에 두고 온 아비 생각이라도 나는지 한참동안 눈살을 찌푸리다가 옆에 있는 동료와 뭐라고 이야기를 하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조금 뒤 그들을 다스리는 군관으로 보이는 사내 하나가 불쑥 문 앞으로 나오더니 당태세를 보고 처연한 표정이 되어 말을 걸었다.
“내 그대의 이야기를 들었네. 사정은 딱하지만 국법이 지엄하니 어찌 그를 어기겠나?”
“장군! 제발 한 번이면 됩니다! 차 한 잔 마실 시간만 어찌 허락이 안 되겠습니까?”
당태세의 손이 소매 안으로 들어갔다 나오며 군관의 손에 반짝이는 쇄은(碎銀)하나를 쥐어주는데 군관은 지엄한 표정으로 당태세를 노려보며 쇄은을 자연스레 품 안에 집어넣었다.
“나도 고향에 봉양하는 어른이 있으니 어찌 금수가 아닌 담에 맘이 동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 잠시 시간을 줄 터이니 이리 따라오시게.”
문각은 문 밖에 남고 당태세는 목괴를 땅에 대고 군관을 따라 좁은 벽돌과 벽돌 사이의 문틈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아직 저녁이 되지 않았지만 별감 사이에 꽂힌 관솔불이 아니라면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어두운 복도를 따라 당태세는 몸을 움직였다.
좁은 복도는 계단이 되어 다시 아래로 내려갔고 한참을 내려가던 계단은 다시 평지가 되어 넓은 복도 안으로 이어졌는데 매캐한 횃불 냄새와 여기저기에서 들리는 신음소리가 이곳이 정상적인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아님을 알게 하였다.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가?”
“황충수라 하옵니다.”
“저 방 안에서 기다리게. 곧 올 것이네.”
당태세는 군관이 가리켜 준 작은 방 안으로 몸을 옮겼다. 말이 방이지 복도 사이에 움푹 들어간 곳에 작은 의자 두서너 개를 놓은 것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당태세는 그곳에 앉아 이 곳의 지리를 머릿속으로 복기하였다. 좁은 출입구와 좁은 계단, 그리고 넓은 복도와 그 옆에 이어진 감옥들이 이 곳의 전부였다. 출입구가 이곳 아닌 다른 곳도 있을 수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좁은 입구와 두 사람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들어갈 수 없는 계단의 구조는 동일할 것 같았다.
“일 대 다로 싸우기엔 적당한 곳이긴 하구먼.”
당태세는 자신의 혼잣말이 크게 새어나온 것이 아닌가 싶어 사방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옆에 있는 옥졸들은 미동도 없이 자신의 감시범위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다행이라 생각한 당태세가 짧게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바깥에서 복도를 향해 다가오는 인기척이 들려왔다.
“내 부친께서 찾아왔다니 이게 무슨…….”
황충수가 불쑥 당태세가 앉아있는 골목의 ‘방’안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황충수는 당태세를 확인하고 나자 갑자기 긴장하던 얼굴에 피식 웃음이 감돌더니만 터덜터덜 안으로 들어와 의자에 앉았다. 사내의 넉살좋은 웃음은 여전하였다. 감옥에 끌려와 노역을 하는 이 답지 않은 대범함이 남아 있었다.
“노사셨군요! 전 이게 어찌 된 영문인가 싶었습니다. 아버지가 무슨 신통함을 가지셔서 내가 여기 앉아있는 걸 아셨는지 싶지 않았습니까?”
“아니, 자네가 성벽에 있는 것을 보고 나서 이렇게 급히 찾아온 것일세. 몸은 괜찮은가?”
당태세의 말에 황충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몸은 멀쩡합니다. 아니, 더 잘 먹고 잘 입는다고 해야 할까요? 허허.”
“뭐?”
그 때였다. 다른 그림자 하나가 불쑥 당태세와 황충수의 옆으로 나타나더니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자네 혈육이 아닌가? 그렇다면 여기 오래 있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순간, 당태세는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감옥의 횃불을 등에 짊어지고 어두운 그림자가 얼굴부터 드리워진 또 다른 장한의 기도에는 무지막지한 내공이 감지되었다.
얼핏 그림자 사이로 보이는 손과 발, 어깨의 모습은 외문무공을 정석대로 쌓아올린 고수의 외형이었다.
“아니오. 이 분은 제가 만나고 싶었던 분이기도 합니다. 걱정 마십시오. 이 분도 우리와 뜻을 같이 하는 분이니.”
“……짧게 말하게.”
두 사람에게 드리워졌던 그림자가 옆으로 사라지고 횃불의 불빛이 다시 두 사람을 밝혔다. 하지만 당태세는 아까 두 사람을 내려다보던 사내가 옆으로 위치를 옮겼을 뿐 자리를 뜨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저는 이 곳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사실 말씀드릴 여력도 없었습니다만… 원래 전 뜨내기 같은 위인이니 말이 그리 많지도 않고요.”
“자네는 이곳에 잡혀온 것이 아닌가?”
황충수는 슬쩍 주변을 돌아보더니 미소를 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잡혀온 것은 맞지만 잡혀온 것이 아닙니다. 저는 제 스스로 걸어 들어왔습니다.”
“뭐?”
“대계를 위해서지요.”
“대계라니?”
황충수의 웃던 표정이 사라지고 심각하고 진지한 장한의 얼굴만이 남았다.
“노사, 노사께서도 지금 우리의 처지를 통분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청인(淸人)들의 세상에서 언제까지 우리가 이렇게 억압받고 살아야 하겠습니까?”
잘못되었다.
뭔가 애초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이다.
당태세의 육감이 위험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황충수의 말은 계속되었다.
“조만간 개봉부에 큰 일이 하나 벌어질 겁니다. 그리고 이곳은 다시 한족(漢族)의 보루가 되어 세상에 명의 깃발을 드날릴 것입니다. 저 멀리 광동에서 아직 꺼지지 않은 명나라의 항쟁처럼 말입니다.”
“뭐라고… 지금 자네는 여기서…….”
“더 자세한 사항은 말씀드릴 수 없는 게 안타까울 뿐입니다.”
무슨 소리인가.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가? 당태세는 흐트러진 정신과 생각을 바로잡고 최대한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지금 황충수는 명(明)나라를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 뇌옥은 청나라에 반기를 든 사내들로 가득하다는 말인가?
“내가 밖에서 도울 일은 없겠는가?”
당태세의 물음은 짧았고 황충수 역시 당태세의 표정을 보더니 다시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끄덕였다. 황충수의 손이 당태세의 손을 꽉 잡았다. 감옥 안에 있던 사내의 손은 오히려 당태세의 손보다 뜨거웠다.
“오는 열하루 날, 개봉부 근처에는 가지 마십시오.”
열하루라면 사흘 뒤였다. 당태세를 바라보는 황충수의 눈은 손보다 뜨거웠다. 횃불이 비친 사내의 눈은 말 그대로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당태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한마디를 더하였다.
“이 일에 구봉방이 관련되어 있는 게로구먼. 그때 자네가 나에게 소개했던 그… 지사들 말일세.”
“그렇습니다.”
“저 이도 그러하고? 저 자와 함께 있으면 자네가 안전한 것인가?”
황충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구봉방의 고수입니다. 한 명이 더 있으니 저는 그리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바깥보다 안전하니까요.”
팔익(八翼)의 둘은 이곳에 있구나.
당태세는 지그시 이를 깨물었다. 뭔가 감당하지 못할 일이 자신의 머리 위에서 움직이는 기분이었다. 황충수는 더 지체할 수 없다는 듯 몸을 일으키더니 두 손을 모아 인사를 하고는 다시 감옥 안으로 향하였다.
당태세는 떠나가는 황충수를 보기 위해 고개를 돌려 복도 바깥을 향하였다. 건장한 사내와 함께 어두운 옥의 복도를 걸어가는 황충수의 뒷모습이 보였다. 구봉문의 앞에서 보던 것과 너무나도 흡사한 모습이었다.
“어째 보고 싶은 분은 잘 뵙고 오셨습니까?”
감옥을 떠나 아무도 없는 호젓한 관도를 걷던 문각이 말없는 당태세를 보며 먼저 입을 열었다. 당태세는 문각의 말에는 대답하지 않은 채 눈을 부릅뜬 채 바닥만을 보면서 걷고 있었다. 문각이 심드렁해진 채 입술이 댓 발 나와 옆에서 하늘을 보고 걷고 있는데, 느닷없이 당태세의 말이 흘러나왔다.
“문각.”
“네, 네네! 대협!”
“내일 새벽 해가 뜨기 전에 나를 찾아오너라.”
“네?”
문각이 당태세를 바라보았을 때, 당태세는 여전히 땅바닥을 보면서 고개 하나 돌리지 않은 채로 말을 이어갔다.
“흑풍방에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