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하남 개봉부 (10)
원래 사람이 일을 하려고 할 때 잘 풀리는 이는 일석이조(一石二鳥), 일거양득(一擧兩得)으로 술술 잘 풀리는 인간이 있다. 반면 안 풀리는 이는 갑갑하니 아무런 소식도 없다가 막상 일이 시작되면 우후죽순으로 경우 없이 일이 벌어지다 결국 아무것도 손에 쥐지 못하는 일이 허다한 법이었다.
지금 당태세의 경우가 그러했다.
구봉방의 문으로 들어갔던 석장 황충수를 죄수 사이에서 발견하자마자 길 건너편에서는 아룡이 기다리는 선술집 안으로 익히 보던 문사 두 명이 다시 입장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당태세는 저절로 입안이 말라붙었다.
어느 쪽으로 가 봐야 할 지 지금 정해야 했다. 분명 그 날 본 구봉방 문 앞에서 본 것이 황충수가 맞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고, 그게 황충수가 맞다면 뭔가 다른 실마리를 풀어줄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주루 안에 있는 이들은 그들의 동선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질 터였다. 결정을 빨리 내려야 했다. 무엇을 얻을까가 아니라 무엇을 버릴까를 고르는 일이었다.
“어쩔 수 없지.”
당태세는 마음을 굳혔다.
모든 것을 손에 쥘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는 주루로 향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미 문사 두 사람이 입구로 들어가는 것을 아룡이 탁자에서 지켜보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설마 술집에서 칼부림이라도 하려는 것이냐.”
그 순간, 아룡의 옷자락 속에서 번쩍이는 물건이 튀어나왔다. 당태세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욕이 튀어나왔다.
“미친 놈, 진짜 일을 저지르려는 건가!”
감정이 끝에 닿으면 앞뒤를 재지 않는 아룡의 성격이 개봉에서 다시 튀어나온 것이었다. 두 명의 문사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누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동시에 주루의 입구로 튀어나오면서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아룡의 몸뚱이가 주루 밖으로 튀어나오며 대갈일성을 질러댔다.
“이 매국노들아! 게 섰거라!”
당태세의 몸도 빠르게 움직였다. 아룡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움직이면서 골목과 인파들 사이에 숨어서 그들을 좇으며 거리를 좁혀갔다.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아룡에게로 쏠려있는 것이 다행이었다. 문인 두 사람과 아룡과 당태세가 거리와 사람과 골목의 틈새에서 서로가 서로의 기척을 숨기고 찾기 위해 기를 쓰는 중이었다. 한 골목 사이로 그들과 거리를 좁혀가던 당태세는 찌르듯 밀려오는 왼 어깨와 오른다리의 통증을 무릅쓰고 다시 재게 발을 굴렀다.
그 순간, 도망가던 문인 두 사람이 오른쪽 골목으로 몸을 비틀었다. 당태세가 달려가고 있는 골목의 앞참이었다. 당태세가 재빨리 고개를 삐죽 내밀고는 두 문인을 향해 짧고 굵게 소리를 질렀다.
“두 분은 어서 이리 들어오시오! 이쪽이오!”
순간, 두 문인은 누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당태세의 말을 따라 골목 안으로 몸을 숨겼다. 골목 안으로 꺾어 들어온 문인은 그제야 자신들을 부른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챈 모습이었다.
“잠깐, 당신….”
“조용!”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한 당태세의 말에 두 문사가 일순간에 입을 다물었다. 그와 함께 아룡의 욕 소리와 발소리가 바로 옆의 골목을 따라 가까워졌다가 멀어지는 것이 귓가에 들려왔다.
두 사람은 가쁜 숨을 진정시키더니 서로의 얼굴과 그들을 골목 안의 어두운 곳으로 끌어들인 당태세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이 어느 정도 숨을 돌리고 안색이 회복되는 것을 본 당태세는 넙죽 고개를 숙이며 목괴를 잡고 허리를 숙였다.
“참으로 미안하오! 내가 면목이 없소이다! 하나뿐인 혈육이지만 내가 고개를 들 수가 없구려!”
문사들은 여전히 숨을 헐떡이면서도 뒤를 돌아보며 아룡이 따라오는지를 보는 중이었다. 그 야밤에 술 취한 취객을 습격하던 기개는 어디 갔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맨 정신으로 덤벼드는 사람 하나를 못 이기면서 그 시점에는 어찌 사람을 해할 생각을 했는지가 신통할 지경이었다.
“내 두 분에게 실수를 하였소! 내가 조카에게 그날 밤 두 분의 일을 실없이 이야기했다가 이런 욕을 당하게 만들었소이다! 내 입이 백 개라 하여도 더 드릴 말이 없구려!”
두 문인은 그제야 왜 아룡이 자신을 보고 칼을 뽑아들고 덤벼들었는지 알 법한 듯 한숨을 쉬더니 오히려 고개를 숙인 당태세를 위로하였다.
“그 때 우리도 분별없는 짓을 하였습니다. 노사.”
“그렇지요. 어쩌면 우리가 오늘 이런 일을 당하는 것도 다 원인과 결과가 있는 것입니다. 노사가 굳이 사과를 할 일이 아닙니다.”
몸에 밴 문인의 겸양인지 가슴 속에서 나오는 말인지 알 도리는 없었지만 어쨌건 두 문사의 반응은 생각보다 훨씬 온화한 것이었다. 당태세는 고개를 연신 숙이며 침울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아니외다. 내 나름대로 큰 뜻을 품고 조카와 더불어 개봉에 온 것인데 내 조카의 성정이 이렇게 어그러지고…… 자신의 근본을 잊었는지 알지 못했소이다.”
당태세의 침울한 표정을 본 두 문사도 입을 다물었다. 당태세가 두 사람을 보더니 나름대로 결심한 듯 입술을 깨물더니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내가 비록 이렇게 체두변발을 하고 청의 습속을 좇는 듯 하지만 내 속내는 하루에도 수백 번이 뒤집히오. 오직 이 비루한 육신을 지키려고 이렇게 몸을 만주족에게 낮추고 사는 것인데 내 조카 놈은 내가 하는 짓이 마치 내가 원해서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모양이외다!”
“노사. 그 마음 전부는 몰라도 십분 이해합니다. 얼마나 통절하시겠습니까!”
“내 조카에게는 내 동생이 어릴 적 급사하였다 속이고 지금까지 지내오만…… 실은 내 동생은 저 멀리 산해관에서 병사로 나갔다가 팔기에게 죽임을 당하였소이다! 그런 내력도 모르고 조카 놈은 저리 엇나가니… 이를 어찌하면…….”
신기한 일이었다.
맘에도 없는 말을 하면서 감정을 북돋는데 열중하던 당태세의 눈시울이 시큰해지더니 한 방울 눈물이 뚝하니 땅에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생전 다른 사람을 속일 생각을 품어본 적도 없고, 억울한 일을 당하면 일신의 무공으로 해결하던 당태세로서는 자신에게 이런 재주가 있었는지 처음 안 것이다.
자신의 감정이 이끄는 대로 얼굴의 표정이 변하고 목소리가 절절해지는데, 자신의 연기를 듣고 있던 당태세는 어느새 자기 목소리에 취해 조카 걱정에 애간장이 끊어지는 늙은 숙부로 빙의하고 있었다.
늙은 절름발이 노인이 눈물까지 흘리는 것을 본 두 문사는 덩달아 가슴이 북받치니 여린 성정의 문인은 자기도 눈시울이 시뻘게진 채 뒤로 돌아 하늘을 보며 눈을 깜박일 정도였다. 문사 하나가 당태세의 손을 와락 붙잡더니 가슴 깊은 곳에서 끌어낸 탄식과 함께 말을 꺼내었다.
“걱정 마십시오, 노사! 어찌 그 마음이 땅에 떨어지겠습니까? 이렇게 노사와 우리가 만난 것이 인연중의 인연입니다. 이렇게 강직하신 분의 소망을 안 들어드릴 수는 없는 노릇이오. 이보게, 재경! 우리 이 노사를 구봉방에 연결해 드리는 게 어떤가?”
구봉방.
당태세의 눈물 젖은 눈 사이로 번득이는 빛이 스쳐 지나갔다. 당태세가 원하는 말이 바로 이것이었다. 재경이라 불린 문사는 심각하게 친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더니만 동의하는 표시를 보냈다.
“내 노대인의 말을 들어보니 그 수밖에 없겠네. 사랑하는 자식에게 회초리를 아끼면 그릇된다 하지 않았던가? 한 번 따끔한 맛을 보여주는 것이 조카에게도 좋을 것이야.”
“구… 구봉방이라니, 구봉방이라면 그때 말씀하셨던….”
당태세가 말을 잇지 못하고 얼버무리자 두 문사는 웃는 낯으로 손과 고개를 흔들어보였다.
“걱정 마십시오! 사람을 상하게 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기껏해야 어디 멍이나 들고 며칠 앓아눕겠지요.”
“지금 장성한 조카를 훈육하는 일이니 꽤 심하게 맞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일생의 큰 가르침은 될 것입니다. 이 땅이 애오라지 청(淸)의 것이 아님을 아는 것만 해도 큰 도움이지요!”
당태세는 잠시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이더니 알겠다는 듯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의 얼굴에 결의가 떠오르자 두 문사도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
“좋소이다. 내 어디서 그들을 만나면 되겠소이까?”
“우리가 만나는 이들은 성부 동쪽 하구에 있는 작은 나루의 가옥입니다. 그들은 세상을 속이기 위해 그곳에서 도장(賭場)을 열고 있습지요.”
도장(賭場). 도박판을 열어서 방의 재정을 충당하는 것이 그곳 구봉방의 일일 것이다. 당태세가 슬쩍 눈살을 찌푸리자 문사 하나가 표정을 바로 하며 손을 휘휘 내저었다.
“어허, 이상한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어디까지나 우리는 그곳에서 대계를 논하며 망국의 설움을 달래러 지사들을 만나는 것뿐이지. 푼돈 하나 그곳 판에 걸어본 적이 없소이다.”
묻지도 않는 말에 굳이 대답을 하는 작태가 참으로 수상했지만 당태세는 그러려니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곳에 있는 이들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 조카가 매일 대취하여 그렇지 저 놈도 꽤나 일신의 무공이 있다고 자랑하는 편인데….”
“걱정 마십시오. 그곳의 구봉방도는 일개 잡졸이 아니라 구봉방에서도 손꼽히는 고수라 들었습니다. 한 명이 그곳에 상주하고 다른 사람이 같이 도와 일을 처리하는데 둘 다 쟁쟁한 고수라는 소문을 익히 들었지요. 그들이 맘만 먹는다면 개봉지부의 목 정도는 쉽게 끊어버릴 것입니다.”
팔익(八翼)까지. 갈수록 좋구나.
당태세는 표정을 가다듬고는 품안에서 동전을 꺼내 두 사람의 손에 쥐어주었다. 화급히 손을 뿌리치려는 두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며 당태세가 말을 이었다.
“이걸 받으시오! 이 동전은 다른 것이 아니라 내 결의요! 내가 지금 당장 그곳을 찾아갈 수는 없지만 내 마음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표시입니다! 내 조만간, 사흘 안에 그대들에게 날을 받아 말을 전하겠소! 그 때 나와 함께 그 도장에 갑시다! 그리 해 주시겠습니까?”
문사들은 그제야 손에 잡힌 동전을 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노대인의 결심이 이리 강고하니 어찌 우리가 다른 마음을 먹겠습니까?”
“늘 가던 주루에 있을 것이니 그리 오시면 저희가 안내를 하겠습니다!”
세 사람은 동시에 손을 맞잡고 마치 결의형제라도 맺은 듯 잡은 손을 허공에 흔들고는 흩어져 자신의 길을 찾아 흩어졌다. 당태세는 그들의 모습이 사라지자 길게 한숨을 쉬며 목괴에 몸을 의지하였다. 차라리 몸으로 치고받는 싸움이 쉽지 말과 표정으로 사람의 혼을 빼는 일이 훨씬 고된 노동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한참동안 제 자리에 서 있던 당태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대마(大馬)는 잡을 준비를 해 놓았지만 껄끄러운 구석도 해결해야 할 것 같은데…….”
당태세는 턱을 쓰다듬더니 목괴를 앞으로 내밀었다. 사내의 몸이 천천히 다시 서쪽 객잔 쪽을 향하였다. 사내는 좌고우면 하지 않고 작은 가옥들이 즐비한 골목 앞으로 걸어가다 규모가 작은 허름한 객잔 안으로 쑥 들어가 맨 앞에 있는 객실 문을 활짝 열었다.
객잔 안에 있던 사내가 술잔을 입에 가져가다 당태세를 바라보더니 화들짝 놀라 술잔을 내팽개치고는 그 자리에 무릎을 풀썩 꿇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당태세의 입에 씩 미소가 올라갔다.
“문각.”
“네! 대협! 문각, 여기 대령했사옵니다!”
당태세가 흡족한 표정으로 꿇어앉은 사내를 보더니 이를 드러내었다.
“생각보다 말을 잘 듣는구나. 내가 이 객잔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말라 명하였지?”
“네, 대협! 볼일 보러 뒷간에 가는 것 외에는 하루 종일 방 안에 있었습니다!”
“내 말을 어기면 나와 흑풍방이 너를 처리하러 온다는 것도 명심하고 있고?”
문각의 낯색이 해쓱하게 변하며 고개가 쉴 새 없이 위아래로 움직였다.
“무, 물론입니다! 알고 있습죠! 그러니까 이러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좋다.”
당태세가 턱을 쓰다듬으며 말하였다.
“나와 함께 나갈 일이 생겼다. 당장 옷을 챙기거라.”
“존명! 어디로 모시면 되겠습니까!”
문각의 결의에 찬 표정은 이내 당태세의 답변이 흘러나오자마자 다시 새하얗게 변해버렸다.
“성을 쌓고 있는 수인(囚人)들이 어디 갇혀있는 지를 보러 가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