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견마지로-34화 (34/226)

34. 하남 개봉부(7)

친구를 잃은 텁석부리 수염과 당태세를 태운 조각배는 남에서 동으로 한참을 흘러 동쪽 어구에 위치한 부둣가에 자리를 잡았다. 어깨를 움츠리고 배에서 몸을 내리는 텁석부리 사내의 어깨를 당태세의 손가락이 갈퀴처럼 움켜잡았다.

“아이고! 대인! 왜 이러십니까? 살려주신다고 했잖습니까요!”

소스라치게 놀라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텁석부리 사내를 노려보던 당태세가 힐끗 앞에 보이는 붉은 대문의 큰 저택을 바라보았다.

“이곳이 누구의 집이냐?”

“이곳이 곽가회의 회주 개봉금검 곽풍주의 집이옵니다!”

“이 자가 개봉 삼대 걸물이라 이거냐?”

“아니, 삼대…라고 하기보다는….”

순간, 당태세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자 텁석부리 사내는 다시 비명을 질렀다.

“입 간수 잘하여라. 곽회주를 만나보고 네 삶을 결정해 보겠다.”

“가, 감사합니다! 대협!”

당태세는 텁석부리를 앞세우고 붉은 칠을 한 대문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문을 가로막고 있던 덩치 큰 장한 둘이 사내를 알아보고는 히죽 웃으며 말하였다.

“이봐, 문각, 그 절름발이 노인은 누구인가?”

“절름발이라니! 내가 모시고 온 귀한 손님일세! 회주님을 뵈러 왔네.”

장한 중 하나가 당태세의 얼굴을 슬쩍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앞을 가로막은 막대를 치웠다.

“절름발이면 어떻고 앉은뱅이면 어떤가. 돈 냄새가 나는 것 같으니 한 번 들어가 보게.”

두 장한이 껄껄대고 경계를 풀자 두 사람은 넓은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온갖 기화요초가 사방에서 자라나는 장려한 정원이 두 사람 앞에 나오는데 여기저기 심은 나무와 기묘한 모양의 바위들을 보아하니 꽤 많은 공력과 돈을 소비한 듯 보였다.

“방회의 문지기라는 것들이 시답지 않은 소리나 지껄이고 아무렇게나 사람을 들이는 꼴을 보니 이 방회의 수준을 알 만 하다.”

“대, 대인…. 곽회주는 좀 사람이 다를 것입니다. 배포가 남다르니 믿어 보시옵소서.”

당태세는 텁석부리 뒤에서 침묵을 지켰다. 당태세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자 몸이 단 것은 텁석부리 사내였다.

사내는 여기저기 서 있는 사내들에게 간단하게 눈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면서 휘황찬란한 본각으로 들어가는데 당태세를 위시한 두 사람이 문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아무도 그들을 제지하는 사람이 없었다.

전각의 주인은 당태세가 잘 보이는 중앙의 좌석에 위치하고 있었다.

금박을 입힌 호피 의자 위에 앉아 와룡관을 쓰고 자색과 청색을 섞인 비단으로 온 몸을 감싼 사내는 터질 듯 부푼 배 위에 옥대를 두른 채 앉아 들어오는 텁석부리 사내와 당태세를 가느다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고개가 조금씩 움직이지 않았더라면 아마 앉은 채로 잠이 들었다 해도 좋을 만큼 가느다란 눈이었다. 이 비둔한 자가 각가회의 회주였다.

“네 놈은 문각 아니냐. 무슨 일로 이 아침에 이곳까지 찾아왔느냐?”

문각이라 불린 텁석부리가 고개를 숙이자 뒤에 서 있던 당태세가 고개를 쳐들고 곽회주를 바라보았다. 당태세는 눈을 감았는지 떴는지 모를 위인에게 두 손을 모은 뒤에 걸걸한 목소리로 용건을 말하였다.

“이 개봉부에 구봉방주에 맞설 위인이 오직 곽가회의 곽회주뿐이라는 소리를 듣고 이렇게 찾아왔소이다!”

“구봉방?”

“그렇소. 그들이 이곳 개봉에서 전횡을 펼친다 하니 나도 그들과 악연이 있어 그들을 쫓아내는 데 도움을 드릴까 하여 왔소이다.”

“허.”

곽회주는 피식 실소를 내보이더니만 앞에 있는 구운 콩을 하나 까먹고는 껍질을 당태세 쪽으로 튕겼다. 사내의 가느다란 눈이 당태세를 응시하는 것 같더니만 그의 입이 열렸다.

“돈을 가져온 것도 아니고, 뇌물을 바치겠다는 것도 아니고, 구봉방과 우리더러 싸우라는 말을 하는 것인가? 대체 정신이 있는 늙은이인가 광인인가? 얘들아!”

“네!”

“저 늙은이와 문각을 내보내라!”

당태세가 다시 곽회주를 보며 외쳤다.

“그대는 일개 방회가 개봉부의 권력을 휘어잡는 것을 마뜩하게 여기는 것이오?”

곽회주는 당태세의 눈을 빤히 쳐다보더니만 다시 실소를 지어보였다.

“구봉방이 내 사업에 관여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들이 내 영역을 들어오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내가 왜 그 일에 관여를 한단 말인가?”

곽가회의 사내들이 양쪽 기둥에서부터 우르르 몰려나와 당태세와 문각이 있는 곳으로 몰려나왔다. 그러자 당태세는 손을 번쩍 들어 보이고는 몸을 뒤로 돌리며 텁석부리 문각에게 말했다.

“돌아가자.”

당태세가 문각의 뒷목을 잡고 다시 절뚝거리며 본각의 계단을 내려가자 일제히 양 옆에서 굉소가 터져 나왔다.

문각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로 당태세에게 목을 잡힌 모습 그대로 문을 지나 부둣가까지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거룻배 위에 내동댕이쳐진 문각의 겁먹은 눈동자에는 냉엄한 표정으로 그를 내려다보는 무시무시한 절름발이 노인의 신위가 가득 들어왔다.

“대, 대인! 죄송합니다! 저 곽회주가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네놈이 나를 능멸하고 싶은 게냐?”

“아닙니다! 아니에요!”

“어디 배부른 돼지새끼를 호걸이라고 말하며 나를 속여?”

문각은 머리를 세차게 좌우로 돌리며 손바닥을 싹싹 비비기 시작했다.

“한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숭호방의 이방주와 흑풍방의 백방주는 알짜배기 사내중의 사내요! 불과 물을 겁내지 않는 이들입니다! 제발 그들을 만나보시고 말씀하십시오!”

“오냐, 만약 이번에 만나는 놈도 허깨비 같은 소인배라면 네 놈은 하신(河神)도 만나고 네 동무도 만나게 될 것이다!”

“예예! 여부가 있겠습니까!”

문각은 발작하듯 벌떡 일어서서 미친 듯이 삿대를 젓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배는 곽가회를 지나 다시 수로를 타고 동쪽으로 휘감는데, 어느덧 해는 구름에 감추어지고 어둑해진 수로 위에 빗발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당태세가 하늘을 보며 중얼거렸다.

“고마운 비로구나. 그동안 가물었는데 마침 잘 되었도다.”

“하하! 대인, 지금 보는 숭호방의 이방주야말로 시우(時雨)같은 분이시오! 한번 만나 보시지요!”

거룻배는 이미 허름한 부둣가에 안착해 있었다. 두 사람은 배에서 내려 잡초가 무성한 길을 따라 규모가 있어 보이는 가옥으로 향하였다. 문지방과 가옥의 정원을 보던 문각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여기 왜 이래? 사람이 없나?”

당태세가 보기에도 집의 정원은 돌본지 꽤 시일이 지난 것 같았다. 사람의 왕래조차 없었는지 길까지 잡초가 비집고 올라온 거택의 풍경은 푸르러서 오히려 을씨년스러웠다. 사방을 지키는 자조차 없었다.

문각과 당태세가 정원 가운데의 안채에 들어섰을 때도 그들을 제지하는 자는 하나도 없었다. 분명 안에서 사람이 거하는 기척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사방은 고요하기만 하였다.

“숭호방주… 계십니까….”

문각이 뒤에 서 있는 당태세를 힐끗대며 뺨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았다. 촛불 하나 켜있지 않은 방 안에는 뭐가 움직이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그 때 당태세의 입이 열리며 낮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숭호방 이방주시오?”

“……누구시오?”

어둠속에서 가느다란 소리가 들려오자 문각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당태세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당태세는 딱히 놀라는 기색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구봉방을 파하는 데 도움을 원하는 노물이외다.”

“……구봉방….”

어둠 속에서 신음이 흘러나오더니만 뭔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딱딱 부싯돌 소리와 함께 화르륵 등잔에 불이 올라왔다. 불 아래에는 한 사내가 이불과 옷가지에 의지해 침상 위에 비스듬히 누워있는데 얼굴이 파리하고 핼쑥한 것이 병색이 완연해보였다.

“구봉방이라면 이 몸도 원한이 없지 않으나… 보시다시피 이 행색으로는 아무것도 도움을 드릴 수 없소.”

“숭호방의 이방주는 무예가 뛰어나다 들었소. 대체 이 무슨….”

“구봉방과 한 번 붙었지. 보름 전에.”

문각이 눈이 휘둥그레져 입을 떡 벌리고 등잔 아래 사내를 쳐다보는데 숭호방의 이방주는 눈살을 찌푸리며 자신의 가슴팍을 누르고는 이를 뿌드득 갈았다.

“숭호방은 파방(破幇)되었소이다. 남은 것은 내 부서진 몸뚱이뿐이지. 구봉방의 팔익(八翼)에게 당했소이다. 방주 휘하 여덟 고수…… 고수라기보다는 떼거리로 덤벼드는 것이 더 무섭지만…….”

“그들의 무공이 고강하였소?”

“그들이 고강하다기 보단 우리 방이 약하였소. 게다가 다른 일도 좀 있었고…….”

“무슨 일 말이오?”

등잔 아래 이방주는 표정이 굳어질 뿐 당태세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굳은 표정의 이방주는 당태세를 바라보며 손으로 밖을 가리킬 뿐이었다.

“노사의 한이 무엇인지 내 알 수 없소이다. 하지만 내가 지금 노사에게 도움을 드릴 수는 없을 것이오. 만의 하나, 내 처지를 보고서도 구봉방에 대한 포한을 갚고자 한다면 흑풍방의 백방주를 찾아 가시구려.”

“흑풍방.”

이방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자라면 분명 노사에게 좋은 답을 줄 것이외다.”

***

거룻배 위에 앉은 당태세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문각이 열심히 뒤에서 삿대를 저으며 노인의 표정을 관찰하려 해도 팔짱을 낀 채 석불처럼 앉아있는 당태세의 등 뒤에서는 어떤 것도 알아낼 수가 없었다.

‘내가 어쩌다 이런 처지가 되었나. 그저 쓸데없는 돈 욕심에 동무까지 잃고…….’

문각은 인상을 있는 대로 찌푸리며 삿대를 저어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지만 흑풍방이 가까워질수록 사내의 손은 땀으로 미끌거렸다. 흑풍방은 지금까지 방문했던 곽가회나 숭호방과는 성격이 달랐다.

비록 문각이 어느 방회에도 들어있지 않았지만 개봉부에서는 마당발로 통하던 하오문의 위인인지라 두 방파에서는 어느 정도 먼 식구쯤으로 이해를 해주는 반면, 흑풍방은 자기 방회 사람이 아니면 아예 없는 사람 취급을 하는 곳이었다.

저 미치광이 고수 늙은이를 데리고 간다고 해도 자신이 환영을 받을 수 있을지 부터가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아직 멀었느냐?”

당태세의 목소리가 동굴 속 범의 울음소리처럼 울리자 문각은 심장이 털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아닙니다, 대인! 바로 저곳입니다! 저 다리 옆의 작은 집들이 흐, 흐, 흑풍방입니다.”

“작구나.”

“아닙니다. 저 작은 민가들은 속에 들어가면 모두 담이 헐려있고 커다란 장원으로 되어 있다 들었습니다.”

“들어?”

문각은 입이 바싹 말랐다. 이 영감은 무술도 무술이지만 사람의 머리 위에 있었다. 눈치가 보통인 아닌 위인이었다.

“대인. 사실. 흑풍방은 외인을 굉장히 꺼려하는 곳이라 저도 안까지 들어가 본 적이 없어서….”

“그럴 법 하군.”

“네?”

어느 새, 거룻배는 다리 아래 멈춰서 있었다. 당태세가 불쑥 몸을 일으키자 어둠 속에서 두 사람이 다리 아래로 모습을 드러냈다. 문각이 화들짝 놀라 삿대 뒤에 몸을 숨기는데 당태세는 목괴를 짚고 뚜벅뚜벅 뭍으로 올라가는 중이었다.

“이미 다리가 눈에 들어올 때부터 두 사람이 우리를 감시하고 있었느니라.”

“네?”

문각이 삿대를 두 손으로 움켜쥐고 눈을 껌벅이는 동안 이미 당태세는 자신을 보고 있는 두 사람 사이로 몸을 밀어 넣은 지 오래였다. 다리 아래를 지키고 서 있는 두 사람은 변발을 하지 않은 젊은이 둘이었는데 두 사람은 모두 손에 새파란 박도(朴刀)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가히 이 다리 아래는 청나라의 법이 통하지 않는 곳 같았다.

“이봐 노인, 이곳은 아무나 오는 곳이 아니다.”

“흑풍방주를 보러 왔네.”

두 사람이 서로 눈을 마주보고 다시 당태세를 노려보았다.

“너 같은 퇴물이 만나 뵐 분이 아니다.”

“말이 안 통하면 밀고 들어가는 수밖에.”

두 사람은 당태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같이 피식대며 웃음을 머금었다.

“밀고 들어가? 그 몸뚱이로?”

“어떻게 말이냐. 그 목발로 우리를 패고 들어가기라도 하겠다는 거냐?”

당태세가 히죽 웃으며 두 사람의 미소를 맞받았다.

“잘 아는구먼.”

당태세의 왼발과 목괴가 슬쩍 동시에 앞으로 한보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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