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하남 개봉부(2)
당태세는 아침 일찍 일어나 객잔을 나섰다.
아룡이 채 일어나기도 전에 나선 개봉의 새벽 공기는 서늘하고 무거웠다. 희뿌연 안개가 가라앉은 하얀 성벽은 마치 괴담에서나 나올 것 같은 을씨년스러움이 있었다. 당태세는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성벽을 천천히 눈으로 쓰다듬듯 살펴보았다.
“내가 아는 개봉은 어디로 가고…….”
노인이 목괴를 땅에 찍으며 몸을 돌렸다.
“구봉문이 올리는 새 성벽만 남아 있구나.”
구봉문(九鳳門).
여섯 척 구봉혈창으로 일세를 풍미했던 정도무문은 아련하게 당태세의 기억 속에 남아 있었지만 그 화려하던 추억은 이자성이 쳐들어오던 날 당태세의 핏물로 시뻘겋게 덧칠되어 있었다. 여전히 당태세는 자신을 향해 달려오던 구봉문주 오자평의 부릅뜬 눈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오자평. 색산조(塞刪爪) 오자평(吳子平).
“나이가 많지 않았지만 고풍스러운 품격이 있었고, 천박하지 않았지만 수완도 떨어지지 않았지. 내 이후 일세의 대종사가 되어 북경을 다스릴 것이라 믿었건만….”
당태세는 히죽 웃으며 손으로 쌓아올린 성벽을 어루만졌다. 하얀 백회가루가 손에 묻어 땅 아래로 떨어졌다.
“이제는 명성 대신 돌을 쌓아 올리고 있다 이거냐.”
노인의 미소 짓는 얼굴에 서늘한 눈빛이 얹혔다. 당태세는 아룡이 어저께 한바탕 헤매고 놀았다는 개봉부의 중앙 대로를 향해 걸어가는 중이었다. 노인은 고개를 쳐들고는 밝아오는 하늘을 보며 다시금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무슨 짓을 하는지는 내 눈으로 보고 판단할 노릇이지.”
***
‘구봉방’이라는 이름이 쓰인 깃발을 찾는 것은 생각보다 쉬었다. 커다란 대나무 장대 위에서 펄럭이는 깃발은 널찍한 북쪽대로의 광장 한가운데 걸려 있었다.
광장은 중앙대로의 끝에 걸쳐져 있었는데 그 바로 건너편은 아직 채 완공이 되지 않은 북문이 통하는 길이었다. 하지만 당태세의 눈을 끈 것은 그 깃발이 아니라 깃발 아래 모여 있는 사람들이었다.
아직 채 시중의 가게들이 문을 열기도 전에 사람들은 광장 깃발 근처에 빽빽하니 모여 있었다. 사람들 앞에는 커다란 솥이 하나 걸쳐져 있고 그 앞에 커다란 바구니가 놓여 있었다.
사람 하나가 그 앞 에서서 따뜻한 콩국과 속없는 만두를 사람들에게 배분해 주는데 여기 서 있는 이들은 모두 식사를 기다리는 이들이었다.
“호오.”
모여 있는 사내들은 대부분 아룡과 비슷한 또래의 혈기방장한 젊은이들이었는데 흰머리가 올라오고 주름 잡힌 장년의 사내들도 꽤 있었고, 어떤 아이들은 아직 이른 아침에 나오기에는 너무 어려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다관 주인이 말에 의하면 이곳에서 일하는 이들 중 태반은 외지에서 개봉성을 재건하기 위해 부른 이들이라 하였으니, 결국 이곳에서 지금 밥을 먹는 이들은 아침 일찍 성을 쌓기 위해 모인 것이라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얼추 반 이상의 사람들이 만두를 손에 집어 들자 웃옷을 걷어붙인 건장한 사내가 막대 하나를 들고 앞으로 나오더니 사람들을 향해 큰 소리를 내었다.
“형제들! 다들 들으시오! 이제 낙성까지 얼마 안 남았소이다! 이제 북문만 완공되면 개봉성은 그 위용을 갖출 것이오! 처음의 부지런함을 마지막까지 이어서 후대에 이어줄 역사를 만들어봅시다!”
“좋습니다!”
모여 있던 모든 이들이 모두 사내의 말에 환호하며 손뼉을 쳤다. 누군가 뒤에서 큰소리로 외쳤다.
“품삯만 정확하게 준다면 다 할 수 있소이다!”
사내의 말에 모인 모두가 와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막대를 든 사내는 걱정 말라는 듯 웃음으로 그들의 말에 화답했다.
“걱정 마시오! 야반도주만 하지 않는다면 일이 끝나는 날까지 다 받아드릴 테니까!”
당태세는 사내들의 대화를 들으며 적잖이 놀라고 있었다. 첫째는 지금 여기 모인 이들이 신공(身貢)을 나라에 바치는 것이 아닌 품삯을 받으면서 일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이 많은 이들을 품삯을 따로 주면서 일을 시킬 수 있는 집단이 따로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지금 저 앞에서 사람들을 관리하는 것이 구봉방이라면, 관부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구봉방이 축성의 일을 맡아 하는 것이란 말인가?”
당태세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저 멀리 희미한 성벽 근처에 일군(一群)의 다른 사내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여기 모여서 조반을 먹는 사람들과는 또 다른 일꾼들 같았는데, 그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모여서 아침을 먹는 사람들은 슬쩍 자리를 옮기더니만 슬슬 피하는 눈치였다.
당태세가 눈을 깜박이며 모여 있는 인부와 그 너머 도착한 사내들을 보고 있자니 성벽 근처에 출현한 사내들 근처로 무장한 병사들이 속속들이 등장하고 있었다. 그제야 당태세는 성벽 아래 등장한 사내들은 모두 다리에 차꼬를 차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노역(勞役)을 사는 죄수들이구나. 하긴 이 큰 성읍 전체를 어찌 품삯을 주면서 쌓을 수 있으리.”
당태세는 이른 아침 반 시진 정도를 제 자리에 서서 개봉성의 인부들을 관찰하고는 나름대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대부분 어려운 성곽은 죄수들을 동원해서 나라가 쌓는 것이고, 성문과 같은 복잡한 장인(匠人)들의 일과 간단하지만 손이 많이 가는 일들은 주변의 사람들을 동원하여 임금을 준다는 말이렷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당태세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거 참, 구봉방주가 꽤 머리를 잘 쓴 것이로구먼. 나랏돈을 자기가 받고 공인과 잡인들에 대한 관리는 만주족 대신 자기들이 하는 것이겠지. 이문이 있는 장사일 것 아닌가.”
당태세는 혼잣말을 중얼중얼 거리면서 피식 다시 헛웃음을 지었다. 꽤 희한한 습벽이긴 하지만 혼잣말이 늘면서 혼자 웃는 일도 많아졌다. 예전 순천문주로 지냈을 때는 상상도 못한 버릇이었다. 지나간 세월과 낡은 상흔이 사람을 변하게 한 듯싶었다. 어쨌거나, 당태세는 이제 혼잣말을 하지 못하면 입이 근질거려 견딜 수가 없었다.
“잘한다, 구봉문주. 이젠 아예 장사꾼이 되었구나.”
그때였다. 슬쩍 인부들 사이를 헤치고 한 사내가 불쑥 당태세 앞으로 나타났다. 어깨가 두툼하고 가슴이 떡 벌어진데다 키도 훤칠하게 큰 사내였다.
당태세는 자기도 모르게 슬쩍 한 발을 뒤로 빼고 사내를 바라보았다. 시원하게 변발을 치고 짧은 수염을 기른 사내는 아룡보다도 키가 큰 헌헌장부였는데, 당태세를 바라보며 시원하니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어 보이고 있었다.
“이것 보십시오, 노사. 지금까지 아무것도 안 드시고 어찌 이곳에 서 계시는 겁니까? 식사는 하셨습니까?”
사내는 불쑥 당태세에게 속없는 만두를 내밀며 말했다.
“보아하니 이곳에서 일을 하시는 분 같지도 않고, 몸이 불편하신 것 같은데 딱히 식사할 곳을 못 찾으신 겁니까? 괜찮으시면 이거라도 같이 나눠 드시죠!”
“아이고! 아닐세! 난 객잔에 짐이 있어요! 조반은 가서 먹어도 된다네!”
당태세의 손사래에도 불구하고 인상 좋은 사내는 만두를 좍 두 쪽으로 쪼개더니 한 쪽을 당태세의 손에 쥐어두고 반쪽을 시원스레 자기 입에 털어 넣었다. 우물거리면서 만두를 씹던 사내가 당태세를 보면서 씩하니 웃어 보이는데 거칠 것 하나 없는 쾌남의 모습이었다.
“아무러면 어떻습니까? 이렇게 노사와 뵙게 된 것도 인연 아니겠습니까?”
당태세의 눈이 빤히 사내를 쳐다보더니만 알겠다는 듯 미소를 짓고 만두를 입에 넣었다. 갓 쪄낸 밀가루 반죽은 나름대로 먹는 맛이 괜찮았다.
“만약 멀리서 개봉으로 구경을 오셨다면 이런 모습 보는 것도 흔한 풍경은 아니니 볼만 하실 겁니다. 우리도 맨 처음에 이곳으로 일하러 왔을 때 이런 대역사(大役事)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하였거든요!”
“자네도 타지에서 왔구먼? 무슨 일을 하시는가?”
사내가 당태세의 말에 슬쩍 두 손을 잡고 고개를 숙이더니 공손히 말을 이었다.
“저는 석가장에서 온 황충수라고 합니다. 석공을 업으로 하는데 성문의 문루의 돌계단과 장식들을 제가 맡고 있습지요.”
“공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구먼.”
“알아주시니 뿌듯합니다.”
사내는 공손하게 자신을 낮추면서도 쾌활하니 정력이 넘치는 목소리를 갖고 있었다.
태도도 전혀 비굴해보이지 않고 당당했다. 가히 예전에 유수의 문파들을 방문하고 다니던 청년협사들의 모습을 다시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당태세는 이 석공이 진실하니 사람됨이 건실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나마 부서진 개봉성이 황처사 같은 이를 만나서 빛을 보는구먼.”
“저야 좋은 일이지만 애초에 부서져서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지요.”
“아직도 개봉에는 이자성을 미워하는 이들이 많더구먼.”
당태세의 말에 황충수라 자신을 소개한 이는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조용히 새벽녘 성벽으로 끌려가는 죄수들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그렇다고는 해도 나라까지 다른 이들에게 빼앗기는 것은 너무 절통한 일이지요.”
당태세가 눈을 둥그렇게 뜨고 사내를 쳐다보자 황충수는 예의 쾌활한 미소를 씩 입가에 올리더니 손을 내저었다.
“너무 무겁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어차피 저는 속에 무거운 걸 담고 살 수 있는 성격이 못됩니다. 맺힌 건 바로바로 그 자리에서 풀어야죠.”
“위험한 세상이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내가 얼마나 오래 살려고 평생 비루하게 살겠습니까?”
이 사내라면 괜찮을까?
당태세는 황충수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한 입으로 두말을 할 사내도 아닌 듯싶었고 비루한 짓을 할 사내도 아닌 듯싶었다. 하지만 초면이었다. 어디까지 말을 하고 어디까지에서 잘라내어야 안전할 것인가. 아니, 둘 다 안전할 것인가?
당태세는 만두를 씹고는 한가로이 고개를 돌리는 척 하다가 국통 앞에 늘어져 있는 깃발을 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저 곳에 있는 깃발은 무엇이요? 구봉방이라 하는구먼?”
“저 구봉방이 우리들을 이리로 불러들인 이들이지요. 북경 쪽에 아는 줄이라도 있는 모양인지 관(官)에서 연락을 받고 개봉에 와 보니 저 구봉방이 우리를 다 관리하고 있더라 이겁니다. 뭔가 특별한 위인들이지요.”
“허, 특별하다?”
황충수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냥 제 짐작입니다. 저희들이야 그럭저럭 품삯이나 대우가 괜찮은 편이죠. 하지만 관하고 연결되어 자기들이 공사를 차지하는 꼴이지요. 겉으로 봐서는 그냥 뒷돈 받아먹는 이들하고 다를 바가 없지만…….”
“허, 뭔가 하오문 같은 이들인가 보오?”
“일견 그렇게 보이지요.”
황충수는 씩하니 웃음을 짓더니 만두를 먹은 손을 아무렇게나 바지에 닦아댔다.
“구봉방이 그리 많은 인원은 아닙니다. 한 열대여섯 정도 되는 이들인데…… 딱 봐도 장삼이사와는 태가 다르지요. 인상도 거칠고 몸들도 건장하고…. 하지만 말을 섞어 보니 진짜 사내들 같습니다. 노사처럼 심지가 곧은 사람들이에요.”
“엉?”
황충수는 엄지를 들어 자신의 가슴팍을 가리키고 또 당태세의 가슴을 가리켰다. 사내의 웃는 얼굴 위에 빛나는 눈동자가 새삼스레 다르게 보였다.
“사람의 근본을 잊지 않는 자들이더라 이겁니다.”
당태세는 당혹스러웠다.
구봉방이 이곳에서는 인심을 꽉 잡고 있는 듯싶었다. 황충수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 비슷하다면 결국 당태세는 수많은 인부들을 잠재적인 적으로 돌리고 구봉방과 맞서는 수밖에 없을 터였다. 보다 깊은 심계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때였다. 황충수가 슬쩍 손을 뻗어 당태세가 말하는 것을 진정시키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조조를 말하면 조조가 온다더니….”
그 말을 들은 당태세의 눈이 슬쩍 황충수의 시선이 닿는 곳으로 돌아갔다. 남쪽에서부터 서너 명의 사내들이 저벅저벅 일꾼들이 밥을 먹는 쪽으로 안개를 헤치며 걸어오는데, 슬쩍 살펴본 것만으로도 일반인들과 기도(氣度)가 판이한 이들이었다.
하나같이 변발을 한 머리 양 옆의 태양혈이 툭 튀어나오고 걸음걸이 자체가 무림인의 보법인데, 안광까지 타인과 다르니 모두 고수라 칭하여도 될 법한 이들이었다. 당태세는 자기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었다.
“다르구먼.”
“보셨죠? 여염의 백성과는 다르잖습니까.”
황충수의 말에 당태세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의 혼잣말은 ‘제남의 충룡대와는 다르다’는 말의 끝말이었다.
실로 구봉방은 아직까지 구봉문의 유지가 그대로 남아있는 듯싶었다. 당태세는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저 정도의 무위를 보전한 곳이라면 과연 당태세 혼자 상대할 수 있을 지에 대한 의문이 생긴 것이었다. 사지가 멀쩡해도 꽤나 고생할 법한 일이 틀림없었다.
그 순간, 당태세의 눈이 화들짝 커졌다.
구봉방의 사내들의 맨 뒤에서 안개를 헤치고 나타난 한 백포장한의 신형이 그의 시선을 모두 빼앗아버렸기 때문이었다. 분명 사내의 용모와 복장이 현격하게 달라졌을지언정 당태세는 그가 누군지 확실하게 기억할 수 있었다.
“구봉문주 오자평.”
당태세의 혼잣말은 같이 새어나온 신음소리에 묻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