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견마지로-28화 (28/226)

28. 하남 개봉부(1)

당태세는 수레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기이한 표정으로 사방을 둘러보는 중이었다. 늙은 사내의 눈 아래 주름이 짙어지고 눈썹 윗부분에도 새로운 주름이 잡혔다. 사내는 한참을 둘러보고 또 사방을 둘러보다가 다시 뚫린 앞길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침내 사내는 앞에서 당나귀를 몰고 가는 아룡을 불러 세웠다.

“무두리.”

“네, 숙부!”

“이곳이 개봉이 맞느냐? 내가 알던 개봉하고 전혀 다른 것 같구나.”

“개봉…일 텐데 말입니다?”

아룡의 자신 없는 대답에 당태세는 다시 수레 밖을 살펴보았다. 고색창연하던 옛 성루는 온데간데없어지고 시커먼 주춧돌 위로 새로 깎아 넣은 돌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성루는 아예 지은지 일 년도 안 되어 보이는 새로운 건물이었다. 성루에서 이어지는 성벽도 최근에 지어진 것이 분명했다. 심한 곳은 지금도 성벽을 짓고 있는 곳이 있었으니 조금 과장되게 말하면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는 성곽이나 진배없었다.

“내가 아는 개봉이… 아닌…….”

당태세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슬쩍 눈이 커졌다. 어딘가 익숙한 불탑(佛塔)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비록 색은 시커멓게 썩었고 기단도 약간 무너진 듯 보이긴 했지만 분명 그가 젊은 시절 개봉에서 바라본 것이 맞는 불탑이었다. 당태세는 입맛을 다시며 다시금 주위를 둘러보다 고개를 흔들었다.

“대체 무슨 곡절이 있기에 예전부터 있던 건물은 저 불탑 하나만 빼 놓고 보이질 않는단 말이냐? 하다못해 성벽이라도 남아있는 게 있어야 개봉의 정취라도 찾을 터인데 이게 어찌된 영문이란 말이냐?”

“전란 때문에 온 성도가 박살이라도 난 거 아닐까요?”

아룡의 말에 당태세는 헛웃음을 지어보였다.

“그게 가능한 일이냐? 그런 일이 어찌 세상에 있을 수 있겠느냐?”

***

“전란 때문에 온 성도가 박살이 나 버렸지.”

당태세는 멍하니 눈을 껌벅이며 객잔주인의 말을 듣고 있었다. 객잔 주인은 당태세보다 나이가 더 들어 보이는 노인이었는데 얼굴과 손을 가득 메운 잔 상처와 주름들은 그가 무슨 일을 겪으며 지금까지 객잔을 꾸려왔는지를 반증하고 있었다. 노인은 말 대신 손을 들어 지금 새로 쌓아 올린 성벽 가운데쯤을 가리키며 중얼거렸다.

“물이 저기까지 올라왔었소. 노인장은 알지 않으시려나? 이자성 그 삶아 죽일 놈이 황하의 물을 가둔 둑을 터뜨려버렸지. 북문이 일시에 무너지고 물이 노도처럼 성을 삼켰어. 그 때 성부 백성의 반이 쓸려나가 죽었소. 관군이 깨지고 개봉부는 이자성에게 항복했지. 몇 년 뒤에 북경까지 함락되고…… 황제께서는 돌아가시고…….”

노인은 마지막 ‘황제’라는 말을 할 때는 목소리를 죽이고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그래도 안심이 안 되는지 당태세의 눈치를 보며 슬쩍 아룡의 안색도 살폈다. 하지만 아룡은 별 생각이 없는지 반응이 없었고 당태세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객잔 노인은 한숨을 내쉬고 자기 말을 이어갔다.

“우리는 이자성이라면 아직도 이를 갈아. 우리 일가를 다 죽여 버린 놈이거든. 새로운 세상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가족이 다 죽었는데.”

그때까지 말없이 노인의 말을 듣고 있던 아룡이 노인의 말이 끝나자마자 손뼉을 치며 화답했다.

“내 말이 그 말입니다! 이자성 그런 역적이 무슨 도움이 됩니까? 명나라의 원수를 갚아준 것이 바로 이 청나라, 우리 황제폐하라 이겁니다! 개봉부를 비롯한 천하의 사람들은 우리 황제폐하와 청나라에 대해 하해 같은 은혜를 빚지고 산다고 믿어야 하는 거예요!”

객잔주인이 뜨악한 표정이 되어 아룡을 쳐다보다가 당태세를 바라보니, 당태세는 헛기침을 하고 아룡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저도 대충 이야기는 들어서 알고 있었지요. 하지만 그 때는 이자성에게 개봉이 함락되었다는 이야기만 들었을 뿐이었습니다. 세상에……이렇게 변하였다고는 상상도 못 하였습니다.”

“그랬을 겁니다. 그나마 청나라가 들어서고 이곳을 재건하기 시작해서 이렇게 그나마 도시 같은 형체를 유지하기 시작한 거요. 그 전까지는 집인지 무덤인지 구분이 안 될 지경이었지. 성벽도 다 무너져 버렸거든요.”

객잔주인은 허탈한 표정이 되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 보면 공자 말씀대로 우리가 청나라에 은혜를 입은 게 맞긴 하오. 이렇게 늘그막에 다시 성시(城市)안에서 살림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오.”

“허 참…. 그렇다면 과거의 자취는 이제 찾을 수 없다는 말입니까?”

“있기야 하지요. 한번 둘러보시면 예전에 보신 불사나 도관 같은 것을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낮은 곳에 있던 집터는 다 날아갔다고 보셔야 합니다. 새로 성벽 올리는 건 보셨죠?”

당태세가 침울한 표정으로 앉아있자 옆에 있던 아룡도 덩달아 풀이 죽은 채 객잔 주인을 쳐다보았다.

“그럼 이름 높은 주루와 기루들도 모두 망가져버린 것입니까?”

“뭐…… 예전 주루들은 망했지요. 하지만 이번에 나라에서 개봉성을 수축하면서 북직례 쪽에서 사람들이 꽤 넘어왔어요. 괜찮은 주루도 새로 많이 생기고 기녀들도 많이 올라왔다고 합디다.”

아룡은 그 말을 듣자 손가락을 딱 튀기더니 주먹을 불끈 쥐었다. 사내의 우울하던 표정은 어느새 푸른 하늘처럼 상쾌하게 변해있었다.

“숙부! 너무 지나간 과거에 신경 쓰지 마십시오! 옛것이 지나가고 새것이 돌아왔다면 당연히 우리는 현재 있는 새것을 누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분명 과거의 향취는 없어도 현재의 편리함은 있을 것입니다. 너무 낙심하지 마시고 한 번 도성을 돌아보십시오.”

“그럴까?”

“혹시 압니까? 숙부께서 좋아하시는 불사를 들리셨다가 이곳 개봉에서 대오견성하게 되실지?”

“네 놈 말도 일리가 있구나.”

어서 숙부는 갈 길을 가시고 제게는 돈만 좀 주십시오 하는 뜻을 이리저리 포장한 아룡의 말이었지만 당태세는 그 말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안 그래도 행여 낯선 곳에 와서는 같이 다니자고 할까봐 슬쩍 걱정이 되던 당태세였다. 아예 아룡은 당태세를 따라다니며 음주가무와 기루 구경에 매진하기로 마음먹은 듯싶었다. 그 말을 듣던 객잔 주인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대가께서 개봉에 오랜만에 오셨으면 한번 쭉 돌아보십시오. 저 공자의 말처럼 여전히 불사는 흥왕합니다. 새로 지은 곳이든 오래된 곳이던 말씀이지요. 얼마나 계실 요량이십니까?”

당태세는 객잔 주인의 말에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답하였다.

“글쎄요. 저도 제 불심을 찾으려면 시일이 꽤 걸리겠지요.”

***

그 다음 날부터 당태세와 아룡은 부지런히 개봉의 성곽 안을 각기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아룡은 번화가를 돌며 새로 생긴 주점들과 음식점을 섭렵하러 달려들었고, 당태세는 도관과 절을 오가며 혹시나 뭔가 알 법한 단서가 있는 지를 찾아다녔다.

“하남의 구봉문이렷다?”

당태세는 품속의 종이를 한 손으로 두드리며 작열하는 태양을 피해 골목과 나무 사이를 오갔다. 비록 날씨는 덥고 밀어버린 머리 위로 내리쬐는 태양은 견디기 힘든 것이었지만 예전보다는 보행이 훨씬 편하였다. 관문에서 만났던 청나라 군관이 가르쳐준 대로 목괴를 짚었더니 예전보다 훨씬 운신이 쉬었다. 당태세는 목괴와 성한 발을 같이 움직이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명(明)을 지키겠다던 순천문주가 청(靑)나라 군관의 도움으로 걸어 다니는구나.”

기실, 어느 집단에나 선함과 악함이 존재하고, 적이라 하더라도 배울 점과 도리를 따지는 위인이 있는 법이었다. 바꾸어 생각하건대 같은 깃발 아래 있다 하여도 그 속내를 엿보기 두려운 종자들이 있었고 마지막에 가서는 모두를 배반해버리는 말종들도 있는 것이었다. 결국 자신도 그런 배신자들에게 일격을 당하고 이런 꼴이 되어버린 것 아니었던가.

“내가 하는 일이 헛된 것은 아니겠지. 정말 허물어진 성읍을 다시 맞춰보겠다고 부서진 벽돌을 들고 가는 꼴은 되지 말아야 할 것 아닌가.”

당태세는 피식 헛웃음을 지어보이다가 더 이상 내리쬐는 햇볕을 피할 도리가 없어 작은 다관으로 몸을 옮겼다.

차는 깔끔하였고 다관의 내부도 정갈하였다. 분명 지어진지 얼마 되지 않는 곳이었다. 연륜의 깊이는 없을지언정 새집이 풍겨내는 쾌적한 정취가 다향(茶香)과 잘 어우러지는 것 같았다.

“그나저나 어디서 구봉문을 찾는단 말인가. 보아하니 이곳은 치안 유지도 녹영군이 알아서 하는 것 같은데…….”

당태세는 차를 들이키고는 기지개를 켜고 오른다리를 주물렀다. 작은 다관이지만 사람들의 왕래가 꽤 있는 것이 대처의 큰 다관 못지않은 듯싶었다. 게다가 들어오는 사람들은 각양각색이 복식에 인상도 제각각이었는데 보아하니 개봉에 사는 이들이 반이고 나머지는 모두 외지인 인 듯 보였다.

“이보시오 주인장, 꽤나 사람이 많구려. 장사가 잘 되는 비법이 있는 모양이오?”

당태세가 찻값을 내며 일어서자 찻집주인은 웃음을 지으며 손을 내저었다.

“비법은 무슨 비법입니까. 그저 사람들이 지금 개봉에 득시글하니 모여들어서 그런 것이죠. 매년 이러겠습니까요?”

“득시글하니 모이다니?”

찻집 주인이 슬쩍 당태세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노사도 외지 분이시구먼요. 아시는 바 그대로입니다. 지금 나라에서 이 개봉성을 재건하면서 각처 일꾼들을 다 불러들였지요. 이제 조금 뒤면 낙성식이 있을 것이니 마지막으로 인부들이 몰리는 것입니다. 이 망할 놈의 이자성 덕을 지금에서야 보네그려.”

개봉사람들이 이자성을 싫어하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당태세는 그들을 바라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외지인과 토박이가 서로 이렇게 섞인다면 구봉문의 자취는 오히려 더 찾기 힘들어질 수도 있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내일부터는 개봉 토박이들이 모여 사는 쪽을 알아봐야 할 성 싶었다.

“이보시오 주인장, 여기 토박이들은 지금 어디에 모여 산단 말이오?”

“글쎄요. 대중없지요? 보통 예전에 수마를 덜 입은 곳이 남문, 서문 쪽이니 그 쪽에 아무래도 많이 모여 살지 않겠습니까?”

서문과 남문. 찻집주인의 대답을 듣고 당태세는 속으로 지명을 되뇌었다.

***

“잘 다녀오셨습니까, 숙부님!”

“오냐, 그런데 웬일로 이리 일찍 들어왔느냐?”

객잔에 먼저 도착해 있는 사람은 무두리, 아룡이었다. 아룡은 입맛을 다시더니만 아쉽다는 표정으로 당태세를 바라보며 말했다.

“좋은 기루와 주루가 꽤 있어 보이는데 사람이 너무 많았습니다요. 어디서들 사람들이 그리 많이 들어오는지 다른 주루로 자리를 옮기려니 아예 들어갈 곳이 없지 뭡니까? 하릴없이 기다리다가 그냥 객잔에서 한잔 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들어왔습니다.”

“이곳에 뜨내기가 꽤 많다더구나. 성벽 공사 때문에.”

마치 당태세는 진짜 피붙이 조카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룡 역시 고개를 끄덕이더니 당태세의 말에 맞장구를 쳐댔다.

“바로 그겁니다요. 백회가루 펄펄 날리면서 술집에 들어와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꼴이라니! 이래서 우리 한족들이 품위가 없다고 하는 것이지요. 만주족들은 하루 종일 말을 타고 산다 치지만 최소한 식사예절은 제대로 갖추는데 말입니다.”

아룡은 으레 입에 달고 다니는 빈정댐을 개봉에서도 어김없이 풀어내었다. 그러더니만 뭔가 재미있는 걸 본 듯 혼자 키득대더니 당태세를 돌아보았다.

“개봉 분위기가 예전 저희가 있던 금월방하고 비슷합니다요. 사람들도 많이 드나들고 그 사람들을 통제하는 방도 따로 있고 말입니다. 술 한 잔 마시다가 대나무를 어디서 딱! 치는 소리가 들리면 일사불란하게 다시 일터로 뛰어가는데…… 딱 금월방 부둣가 같다니까요?”

“허허, 그러냐?”

“이름도 구봉방인가 뭔가 라던데…… 사람들 모집한다고 시장터에 깃발도 세워놓고 말입니다요….”

순간, 당태세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노인은 한참동안 아룡을 쳐다보더니 알겠다는 듯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 그래? 그거 참 희한하구나! 희한해…….”

노인이 슬쩍 아룡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객잔의 벽을 바라보고 있던 노인의 눈에서 조금씩 새파란 광망이 돋아 오르기 시작했다.

“희한하게 변했구먼.”

노인의 혼잣말은 아룡의 귀에 들어가지 않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