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견마지로-26화 (26/226)

26. 하남 관도(官道)

해가 우뚝 솟은 중천의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다.

푸르디푸르러 맑기만 한 하늘은 보기와 다르게 끔찍한 열기를 땅에 쏴대는 중이었다. 초봄의 날도 지났건만 땅에서는 아지랑이가 올라와 길게 뻗은 관도를 애매하게 구부리는 중이었다.

“이런 하늘은 단단한 기와가 올라간 정자나 기루 안에 들어가서 술 한잔 하면서 보는 것이지 땅을 거닐면서 볼 것은 아닙니다요.”

당나귀 고삐를 잡고 가는 사내와 당나귀는 모두 더위에 지쳐 있었다. 아직 한 여름도 아니지만 이미 대지는 달궈질 대로 달궈진 뒤였다. 올 해 여름은 오늘보다 훨씬 더울 것을 생각해보니 단성룡은 기나긴 한숨부터 나왔다. 지금 가는 곳은 하남 개봉인데 만약 한두 달 뒤에 소주나 항주로 간다면 뜨거운 여름 햇살 아래 소항의 길을 걷게 될 터였다. 아무리 아름다운 가인(佳人)과 기화요초가 만발한 지상의 낙원이라도 한여름의 무더위 속을 활보하는 것은 사양하고 싶어졌다.

“조금만 참거라, 아룡, 내 생각에 저 길만 돌아가면 관문이 하나 나올 것 같구나. 그곳에서 조금 쉬었다 가면 되지 않겠느냐?”

“안 그래도 쉬지 않으면 가지 못합니다요. 그나저나 개봉(開封)은 아직도 먼 것입니까?”

당나귀 뒤에 매달린 채 흔들대는 수레 안에서 당태세는 몸을 일으키고 눈을 게슴츠레 떠 보았다. 산수는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는 듯한데 예전에 보았던 건물과 도로들은 어찌된 영문인지 기억 속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당태세는 한참동안 햇살 가득한 풍광을 바라보더니만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말았다.

“아마 거의 다 왔을 것이다. 내 생각이 맞다면 이 언덕 위에 관문이 있고 그 언덕을 지나자마자 개봉의 성도가 보일 것이니.”

“그 말씀이 맞기를 바랍니다요.”

뚱한 말투로 다시 당나귀 고삐를 잡는 단성룡의 뒤통수를 보며 당태세는 품 안에 있는 창촉을 던져 머리를 깨 버릴까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가 다시 힘이 빠진 듯 뒤로 스르르 누워버렸다.

당나귀고삐를 잡고 가는 것만큼이나 흔들리는 수레를 타고 가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게다가 이리저리 짐짝처럼 부딪히고 있는 오른발은 수레가 덜컹대고 부딪힐 때마다 찌릿찌릿한 통증을 안겨주었다.

당태세는 슬쩍 자신의 오른발을 묶고 있는 가죽 끈을 풀고 부목을 빼었다. 지금까지 억지로 똑바로 당겨놓았던 발목과 무릎이 다시 옆으로 돌아가자 통증이 가시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자 이번에는 치골 쪽으로 뻐근한 통증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산 넘어 산이로구나. 모자란 부분을 억지로 고쳐 쓰려니 몸이 축나는가.”

당태세는 씁쓸한 표정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비단 아픈 곳은 다리뿐만 아니었다. 목발 대신 쓰고 있는 괴창을 짚고 산동에서 한바탕 뛰고 난 여파인지 목괴를 잡고 있는 어깨와 등과 허리까지 뻐근한 기운이 밀려왔다. 아무래도 몸을 비스듬히 세우고 체중은 목괴에 실은 채 공방을 펼쳤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운기조식도 모자라고 연공도 모자란다. 저 녀석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해야 하는데…….”

당태세는 앞에서 고삐를 잡고 가는 아룡을 빤히 바라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뭐, 세상사가 내 맘에 들게 움직였던 적이 있었던가.”

그 순간 한마디 대갈일성과 함께 수레가 멈추었다.

“정지! 수레와 당나귀를 옆으로 세워 놓아라!”

당태세가 몸을 일으켰다. 노인의 눈앞을 적황색의 벽돌담이 가로막고 있었다. 당태세가 앞으로 다가와 수레 입구로 다가서자 거대한 성문과 그 앞을 지키는 군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하남에서 처음으로 맞이하는 관문이었다.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가운데에서도 변발을 한 군사들은 두꺼운 갑옷을 입고 문루 위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청(靑)의 군사들.

당태세는 슬쩍 굳어지는 표정을 애써 풀며 시선을 땅으로 돌렸다. 젊은 시절 이 관문은 명의 군사들로 가득 차 있었건만, 이제는 다른 나라 다른 민족의 요새가 되어 한인들을 통제하는 중이었다. 수레의 앞으로 두 명의 군관이 다가오더니만 당나귀 고삐를 잡고 있는 아룡에게 말을 걸고 통행증을 요구하였다.

“무두리라 합니다! 이렇게 불철주야 민생안전과 치안유지를 위해 애쓰시는 팔기를 보고 있으니 이 미천한 목숨도 충심(忠心)이 불길같이 솟아오릅니다요!”

“무두리?”

“예! 무두리라 하옵니다!”

군관은 피식 웃음을 지으며 아룡이 내민 통부(通符)를 보고는 슬쩍 눈살을 찌푸렸다. 군관은 아룡과 당나귀와 수레 안에 타고 있는 당태세를 빠르게 훑어보더니만 뱀 같은 시선으로 아룡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개봉에는 무슨 일로 가느냐?”

“아, 네! 우리 숙부께서 더 나이 드시기 전에 개봉의 성읍을 보고 싶다 하셔서….”

“고작 그 이유냐?”

“네?”

팔기의 군복을 갖춰 입은 군관은 유창하게 한어를 구사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한참동안 아룡의 얼굴과 수레와 통부를 보더니만 습 혀를 차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아룡에게 말했다.

“이게 산동의 관인 맞느냐? 왜 이렇게 흐리게 찍혔는가?”

“네? 이건 제가 직접 제남에서 받아온 관인입니다! 흐리게 찍히다니요?”

아룡이 당황하여 군관의 얼굴을 쳐다보는데 군관은 통부를 흔들어 보이며 다시 종용하고 침착하게 말하였다.

“산동의 관인이 왜 이렇게 흐리게 찍히는가를 물은 거 아니냐? 너는 왜 이러는지 모르느냐? 네가 모른다면 우리도 적법한 조치를 취하는 수밖에 없느니라!”

한어로 떠드는 군관 뒤에 서 있는 또 다른 군관은 무표정한 얼굴로 검대에 손을 올리고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아룡은 덜컥 겁을 집어먹었다. 무슨 영문인지도 모른 채 얼어붙어 입만 벙긋거릴 뿐 채 말이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때였다. 한참동안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당태세가 목괴를 끼고 절뚝거리며 수레에서 내려 다가왔다. 두 군관의 시선이 아룡에게서 당태세에게로 옮겨갔다.

“관청에서 제대로 관인을 찍지 못했구먼. 우리 조카가 아직 세상사에 어둡습니다. 이런 때를 대비해서 잘 봐 두라 하였건만….”

당태세는 슬쩍 군관에게서 통부를 받아 들더니 다른 손아귀 위에 있는 쇄은(碎銀) 몇 개를 통부 위에 올려 다시 군관에게 내밀었다. 군관의 엄하던 표정이 순식간에 누그러졌다.

“다시 보니 제대로 찍힌 것 같기도 하구먼.”

군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 위의 은을 번개처럼 쓸어간 뒤 슬쩍 통부를 보는 척 하더니만 당태세에게 돌려주었다.

“노인장께서는 관(官)과 일을 해보신 적이 있으신 모양입니다그려.”

“예전에 불려가서 중임을 떠맡을 뻔한 적도 있었습지요.”

일이 일사천리로 풀어졌다. 중원천하 관리 중에 뇌물 싫어하는 인간은 명(明)이나 청(靑)이나 없는 건 마찬가지였고 이 군관도 자신이 전수받은 방법 그대로 관문을 이용하는 이들에게 돈을 뜯어내고 있었다. 당태세는 이전에도 이렇게 이 관문을 지나간 적이 있었다. 아룡의 얼굴에 그제야 화색이 돌았다.

“하하! 역시 우리 숙부께서는 박람강기(博覽强記) 하시단 말이오! 제가 큰 오해를 불러일으킬 뻔 했습니다.”

“그럼 수고하십시오. 저희는 가 보겠습니다.”

당태세가 고개를 숙이고 수레를 향해 몸을 돌리는 순간, 지금까지 뒤에 서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 군관이 갑자기 눈빛을 번득이며 짧게 말하였다.

“멈추라!”

“네?”

뒤에 서 있던 군관은 아룡이 아닌 당태세를 뚫어지라 바라보고 있었다. 당태세를 바라보는 군관의 눈빛은 예리하기 그지없었다. 순간 당태세의 등골에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한인들과 업무를 담당하던 군관과 뒤에서 있던 군관이 당태세를 보면서 만주어로 뭔가 알아듣기 힘든 말을 빠르게 지껄이기 시작했다.

슬쩍 당태세의 눈이 문루의 위를 쳐다보았다. 궁수가 여덟에 장병기를 든 자가 넷이었다. 아래 있는 군관과 건너편 문에 있을 군관까지 합하면 도합 열여섯.

전력을 다한다면 못 싸울 것도 없지만 갑주를 두른 정병과 싸워서 이길 승산은 희박하다고 봐야 했다. 당태세는 자신의 품 안에 갈무리해 둔 단도의 위치를 기억해 두었다. 안되면 재빨리 군관 둘을 주살하고 나귀의 고삐를 자른 뒤 나귀를 타고 개봉으로 도주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용모로는 금세 들통이 날 터였다.

“이보시오 노사. 잠시 이리 오시오.”

한어를 하는 군관이 당태세를 불렀다. 당태세의 눈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노인이 목발을 짚고 저벅저벅 두 군관에게 걸어가자 무표정하게 그를 바라보던 군관의 눈빛이 다시 예리해졌다. 당태세는 천천히 왼 주먹을 쥐었다. 그때였다.

“노사, 이 친구가 말하는데 목발을 언제부터 그렇게 짚었냐고 하십니다.”

“다친 다음부터 계속 이렇게 짚었소만…….”

군관이 동료에게 이 이야기를 전해 듣자 갑자기 인상을 굳히더니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무표정한 군관이 슬쩍 두 팔을 걷어 부치고는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와서 당태세의 앞에 섰다. 당태세의 눈이 번뜩였다. 좌고우면할 때가 아니었다. 목괴와 뒤틀린 발에 힘이 들어가고 저절로 인상이 찡그러졌다. 당태세가 목발을 돌려 군관의 턱을 치고 단도를 뽑으려는 순간, 군관의 입이 열렸다.

“그거, 아니오!”

“뭐?”

“아픈 발! 아니오! 그쪽! 아니오!”

당태세가 눈이 동그래져 한어를 말하는 군관을 바라보자 다시 당태세 앞에 있던 군관이 뭐라고 빠르게 청나라 말로 말하였다. 그제야 고개를 끄덕인 한어 하는 군관이 당태세에게 웃으며 말을 하였다.

“노사, 지금 목발을 잘못 짚고 계시다는 거요. 목발은 아픈 발쪽을 짚는 게 아니라 멀쩡한 발쪽으로 짚어야 아픈 발의 무게가 안 실린다오!”

“뭐라고?”

“평생 목발을 잘못 짚고 계셨다고 합니다!”

당태세가 잠시 멍한 표정으로 서 있다가 천천히 목괴를 왼쪽 겨드랑이에 끼고 발을 디뎌보았다. 팔기 군관의 말이 사실이었다. 다친 오른 발을 내디딜 때 목괴가 같이 앞으로 나가자 훨씬 부드럽게 발을 옮길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쑤시던 허리와 어깨도 통증이 올라오지 않았다. 당태세는 자기도 모르게 입이 벌어지며 헛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팔기군관 둘이 껄껄대며 웃기 시작했다. 이 모습을 보고 있던 아룡 역시 박수를 치며 큰 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역시 팔기의 군기는 엄정하고 위민(爲民)에 밤낮이 따로 없도다! 이것이 모두 우리 황제의 선하심이 아닌가! 송축하라! 송축하라! 천천세! 만만세!”

당태세는 자기도 모르게 군관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비록 지금까지 익힌 투로와 창법의 위치를 다시 바꿔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겠지만 지금 이 상태로 육신을 움직이는 것이 백 배 더 몸이 가볍고 백 배 몸이 덜 아팠다. 당태세는 부지불식중에 대규호 주통산에게서 빼앗은 전대를 열어 그 안에서 쇄은을 꺼내 두 군관의 손에 나란히 쥐어주었다. 군관들은 웃으면서 질색하는 시늉을 하면서도 손에 쥐어진 쇄은은 조심스레 자신들의 품으로 가져가갔다.

***

“거 참! 훌륭한 군관들 아닙니까요? 명대에도 저런 군관들이 있었습니까? 정말 우리 청(靑)의 군기와 풍습은 고금에 아름다운 것입니다. 만주족의 호협한 기상을 우리 한족은 따라갈 수 없어요! 한족은 아예 엄두도 못 낼 것이지요.”

“오냐. 그렇구나.”

아룡이 당나귀 고삐를 잡고 걸어가면서 수레 안에 있는 당태세에게 말을 걸었다.

다른 때 같았다면 말대꾸는커녕 뒤통수에 살기어린 안광을 폭사시켰을 당태세도 이번만큼은 건성으로나마 아룡의 말에 맞장구를 쳐 주었다. 아룡은 당태세가 맞장구를 치자 신이 난 듯 혀를 재게 놀리기 시작했다.

“이번 여행은 감이 아주 좋습니다! 아마 개봉 성내에 들어가더라도 제남부 만큼이나 훌륭한 대접을 받고 나올 겁니다요!”

“그랬으면 좋겠구나.”

당태세는 대충대충 아룡의 말에 맞장구를 치면서 슬쩍 주통산에게서 빼앗은 전대를 다시 조심스레 열어보았다. 은자가 가득한 비단 주머니 속에 곱게 접힌 종이가 하나 손에 들어왔다. 아까 군관들에게 전대를 열면서 손에 잡혔던 물건이었다. 당태세는 아룡이 볼 새라 조심스레 옆으로 누운 채 종이를 펴 보았다. 종이 안에는 숫자와 사람들의 이름이 가득 써있고 맨 아래 붉은 인장이 숱하게 찍혀 있었다. 당태세는 눈썹을 모으고 한참을 쳐다보더니만 고개를 갸웃거렸다.

“팔대문파의 이름이……대체 이 표는 무엇인가?”

수레는 어느새 언덕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 개봉성의 높은 문루가 아지랑이를 타고 이지러진 채 아룡의 눈에 들어오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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