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제남 만연사(2)
조용한 능선의 흙길을 타고 떠오른 햇살이 수풀에 진한 음영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어린 떡잎에 햇살이 비추자 얇은 이파리 사이로 핏줄처럼 이어진 잎맥이 보였다. 햇살이 닿는 나뭇가지를 피해 개미들이 응달로 움직였다.
해는 소리가 없었지만 해를 바라보는 이들은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며 살아있음을 보여주었다. 길 위에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가 목표를 가지고 부지런히 움직였다.
오직 한 사람, 장년의 사내만이 돌부처인 듯 우두커니 서서 태양의 등천(登天)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충룡대의 호법 위가도는 졸린 듯 반쯤 감은 눈을 뜨고 동쪽을 바라보았다. 태양이 눈을 비추었지만 사내는 눈이 부신 줄도 모르는 것 같았다.
기실 사내는 태양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었다. 사내의 눈은 초점이 없어 앞에 벌려진 녹음의 움직임과 무관한 것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그렇다고 사내는 운기조식하며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기운의 공명을 감지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사내는 넋을 놓고 있었다. 쉽게 말해 세상사에 벽을 쌓고 자신의 틀 안에 들어있는 것 같았다.
사내가 마지막으로 시선에 담은 것은 연두색에서 노란색으로 빛나며 속살이 드러난 수풀들이었다. 사내의 오감 역시 주인을 좇아 자신의 의무를 저버리고 흘러가는 시간 속에 모든 것을 풀어놓고 있는 모양새였다.
사내는 이미 이런 일과에 익숙해 보였다. 마치 어울리지 않는 곳에 뿌리를 내린 기이한 나무와 같았다. 햇살을 피해 이리저리 날아다니던 날벌레가 하나 사내의 허리춤에 붙었다.
그 때, 위가도의 뒤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조금 뒤 짧은 고함소리가 하나 들려왔고 뭔가 부딪히고 쓸리고 넘어지는 소리가 부산스레 들려왔다. 하지만 그것들 역시 봄날 흘러가는 일광(日光)에 서린 그림자처럼 잠시 귓가에 머무르다 사라졌다. 잠시의 소란은 다시 긴 적막에 묻혀버렸다.
위가도 역시 멍한 표정을 지우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그 때, 다른 작은 소리 하나가 위가도의 귓가로 스멀스멀 기어들어왔다.
“호법님…. 호법님.”
외부의 자극에 처음으로 위가도의 몸이 반응하였다. 사내의 눈이 깜박이고 입술을 혀가 핥고 눈썹이 꿈틀거렸다. 위가도의 몸이 흔들거리는가 싶더니 이내 몸뚱이가 움직였다. 사내의 허리춤에 붙어있던 날벌레들이 화들짝 놀라 날아갔다.
뒤로 몸을 돌린 위가도는 소리가 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녹의인 하나가 길에 널브러진 채 눈을 까뒤집고 허공을 보고 있었다. 위가도의 눈동자가 조금씩 커졌다.
“그곳에 있었구먼.”
낯선 사람의 목소리가 산길 위쪽에서 들려왔다.
위가도는 반사적으로 위를 올려보며 손이 허리춤으로 향하였다. 그를 향해 내려오는 이는 목발을 짚고 있는 노인이었다.
뒤통수에 달려있는 머리 묶음은 하얀 백발이었고 얼굴에도 깊은 주름이 잡혀 있었지만 나이가 몇인지 가늠하기 힘든 얼굴이었다.
위가도는 노인을 바라보았다. 노인 역시 위가도를 바라보았다.
노인의 눈에서 살심(殺心)이 느껴졌다.
“너, 누구냐.”
노인은 위가도의 말을 듣더니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지어보였다.
“나를 모르겠느냐?”
“모른다.”
위가도는 고개를 저으며 허리춤에서 칼을 뽑아들었다.
시커먼 나무 몽둥이가 아닌 진짜 검이었다. 예스러운 문양이 손잡이에 새겨진 도는 오래 되어 보였지만 검날은 어제 벼려낸 듯 서늘한 기운을 사방에 흩뿌리고 있었다. 칼을 바라보던 노인의 얼굴에 일순간 경직이 일었다.
“충룡문의 검이구나.”
“너, 충룡문. 어떻게 아는 거냐?”
“위가도. 네 놈은 변한 게 없구나. 멍청하고 잔인한 것.”
위가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생각 없어 백지 같던 심상에 확 하니 심지불이 댕겨졌다. 위가도의 눈썹이 위로 올올이 곤두서며 갈무리되었던 무공과 투기가 검불을 만난 숯불처럼 타올랐다. 사내의 위용이 바뀌자 절름발이 노인의 표정도 바뀌었다.
“이런 세상에 검을 차고 돌아다니는 놈도 있군.”
“나는, 명령, 듣지 않는다. 만주족 놈들 말은 특히나.”
“그건 맘에 드는군.”
“너, 내가 맘에 든다고? 나 멍청하다고 하지 않았느냐?”
노인은 한숨을 쉬더니 슬쩍 위가도의 뒤쪽을 살펴보았다. 노인의 눈이 서늘하게 빛나는 것을 본 위가도는 검을 고쳐 잡았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노인이 슬쩍 발을 옮겨 위가도의 검이 닿지 않는 곳으로 물러섰다.
노인은 위가도의 검 길이와 팔을 뻗어 찌를 수 있는 길이를 이미 알고 있는 사람 같았다.
“주통산은 어디 있느냐?”
“너, 문주님 존성대명. 함부로 부르지 말라!”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순간 위가도의 입에서 그동안 갈고 닦은 몇 안 되는 말 중 가장 자신 있는 말이 튀어나왔다. 위가도는 이 말을 좋아했다. 이 말을 할 때마다 사람들은 경악하거나 등을 보이거나 피를 흩뿌리고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이었다.
“문주님이 계신 곳은 저승에서 명왕에게 물어보아라. 내 칼이 지름길을 알려주마.”
“미친 놈.”
순간 노인이 히죽 웃는가 싶더니 갑자기 몸을 틀더니 오른 팔에 괴고 있던 목발을 빼어 위가도의 머리를 향해 일격을 날렸다.
굉장히 빠른 속도였다. 위가도는 검을 뻗어 들어오는 목발을 퉁기고 바로 앞발을 내뻗으며 검을 일직선으로 뻗어 노인의 가슴팍을 찔렀다. 하지만 노인의 몸은 목발보다 더 빠른지 바람소리를 내며 오른쪽으로 빠져나간 뒤였다.
위가도가 채 검을 회수하기도 전에 다시 목발이 목과 가슴을 향해 날아들었다. 어찌 된 것이 절름발이가 젊은이보다 몸이 날랬다.
위가도 역시 돌린 검으로 들어오는 목발을 퉁겨내며 검첨을 아래로 내리고 들어오는 공격을 막는 것과 동시에 상대박의 가슴을 빗겨 찌르기 시작했다. 어려서 충룡문에 입관하면서부터 배운 절기였다.
이 절기를 몸에 체화(體化)시키기 위해 문주가 위가도를 매질하다 부러진 죽봉들만 합쳐도 거대한 죽림(竹林)을 이뤘을 것이었다.
번개처럼 들어오는 위가도의 공격에 당황한 노인이 슬쩍 뒤로 물러서자 위가도는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상대방이 수세에 몰리자 위가도는 재빨리 검을 돌리며 당태세의 좌우를 봉쇄하고 양측을 방어하기 위해 상대방의 두 팔이 벌어지자 단숨에 검을 가슴으로 모았다가 파도가 휘몰아치듯 앞으로 뻗으며 적의 심장을 관통하였다.
위가도가 자랑하는 충룡문의 절기 충룡첩심(忠龍喋心)이었다. 위가도의 입술에 반사적으로 미소가 번졌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올라왔던 미소는 이내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절름발이 노인은 아예 양쪽에서 들어오는 허초에는 반응도 하지 않은 채 찔러 들어가는 위가도의 진초에만 목발을 내밀었을 뿐이었다.
더군다나 찔러 들어오는 목발이 거의 가슴 끝에 다다랐을 때가 되어서야 슬쩍 손목을 움직여 칼끝을 옆으로 밀어내었는데 그 움직임은 지극히 단순하여 마치 소꼬리로 파리를 내치는 것이나 다름없는 동작이었다.
위가도의 손이 허공에서 멈춘 채로 노인을 바라보았다. 노인은 눈썹 하나 움직이지 않은 채 위가도를 마주하고 있었다.
“왜 그러느냐?”
“누구냐. 너!”
“이 초식을 보니 이제야 기억이 나는구나.”
“뭐라고? 내가 기억 나?”
“네놈이 당운천의 등을 찔렀겠다.”
“다, 당운천? 잠깐….그게 누구지?”
순간, 노인의 몸이 슬쩍 옆으로 움직인다 싶더니 바로 앞으로 목발의 끝이 날아왔다. 위가도의 검이 들어오는 목발을 퉁기며 노인의 팔목을 베어버리려고 손목을 틀었다.
그 순간 목발의 끝이 기묘하게 감기며 위가도의 손목을 먼저 비틀었다. 찌릿한 통증과 함께 손가락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그와 함께 검이 손아귀에서 튕겨나갔다. 위가도의 눈이 커졌다.
사내는 재빨리 몸을 틀며 왼손을 뻗어 떨어지는 검을 향해 손을 뻗었다. 목발에 휘감긴 오른 손목에서 두둑 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위가도는 고통을 개의치 않았다.
사내의 왼손이 절박하게 검을 향해 튀어나갔고, 천신만고 끝에 겨우 손잡이가 손바닥에 잡혔다. 이를 악문 위가도의 눈이 다시 노인을 향하였다.
그 순간, 목발의 힘과 중심이 급격하게 변하는 것이 부러진 팔목을 타고 위가도에게 전해졌다.
뭔가 잘못된 것을 알게 된 위가도의 왼손이 급하게 회전하며 들어오는 목발을 막았다. 하지만 목발의 휘어진 손잡이가 먼저 위가도의 태양혈을 강타하였다.
갑자기 세상이 하얗게 변하며 모든 것이 멈춰버렸다.
위가도는 자신의 손에서 검이 떨어져 나간 것을 느낌으로 알았다. 곧 자신의 가슴팍에 온몸이 찢어지는 것 같은 고통이 밀려들어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위가도는 의식을 잃으면서도 자신이 자신의 검날에 가슴을 꿰뚫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철운적우 당운천의 아비, 귀린갈 당태세가 십칠 년 만에 아들의 복수를 하노라.”
노인의 마지막 말이 위가도의 머릿속으로 둥실둥실 떠서 들어왔다. 그와 함께 위가도는 자신이 잊고 있던 세월 건너편 구석에 구겨져 있던 기억 한 토막이 활짝 다시 펴지는 것을 보았다.
무너지는 성벽 아래에 한 사내가 쓰러진 채 누워 있다.
그리고 그를 지키기 위해 한 자루 장창을 들고 분투하는 젊은 협객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앞에는 여덟문파의 장문과 후기지수들이 있었다.
젊은 시절 충룡도를 들고 그들과 함께 서 있는 위가도의 모습은 건장하였고 두려움이라고는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를 막아서 있는 젊은 창수는 오직 절박함과 공포, 고통만이 남아있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한 발짝도 뒤로 물러서지 않는 불퇴(不退)의 무인이었다.
아 철운적우. 기억나지. 순천문의 소문주 아니었던가.
그리고 저 아래 깔려있던 이는 바로 순천문주 귀린갈 당태세 그 분 아니던가. 무서운 분이었지. 엄한 분이었지. 그리고 한 번 말을 걸어보는 것만으로도 내 인생의 광영이라 생각했던 분이었지.
그랬구나. 당문주였구나. 지금까지 살아계셨구나. 왜 여기까지 왔는지 이제야 알겠구나.
내가 왜 몰라보았을까.
안부라도 여쭤볼 것을 그랬지.
이런.
햇살에 비춰진 위가도의 눈동자는 여느 때와 비교도 못할 만큼 반짝이며 빛나고 있었다.
위가도의 눈동자가 슬쩍 당태세를 바라보는가 싶었지만 이내 위가도의 눈에서는 생기가 빠져나갔다.
충룡문의 호법이 죽은 것을 확인한 당태세의 표정은 엄혹하기 그지없었다. 그 역시 위가도의 칼을 받아내자 잊고 있던 그 날의 광경이 눈앞을 스쳐지나갔기 때문이었다.
“내 아들은 순천문의 소문주답게 죽었다.”
죽어 넘어간 위가도의 형체가 흐릿해졌다. 그 순간 당태세의 가슴에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찾아들었다. 노인은 그대로 무릎을 꿇고 앞으로 쓰러졌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늙은 당태세의 눈에서 한 줄기 눈물이 뚝하니 땅으로 떨어졌다.
“진짜 죽었구나! 내 아들이! 당운천이 진짜 죽었어!”
잃어버렸던 십칠 년의 세월은 시간의 간극도 지워버렸다. 강렬하게 돌아온 옛 기억은 마치 어저께 당한 일이나 진배없었다.
당태세가 눈을 감기 전 마지막으로 봤던 광경은 당운천이 피를 뿌리며 천천히 주저앉는 광경이었으니 당태세는 충격에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노인의 손이 땅을 움켜쥐었다. 뱃속부터 끌어올려진 울음이 악문 잇새로 흘러나왔다. 스물둘 어린 나이에 얻었던 헌걸찬 아들은 이제 아비보다 먼저 가고 세상에 없었다.
“내가 살고 네가 죽다니……이게 무슨 허망한 일이냐!”
노인은 엎드려 한참동안 몸을 떨었다. 울음소리 대신 신음이 새어나왔다.
몸을 구부린 사내의 신음에 햇살 사이에서 빛을 쬐던 어린 산새들이 화답하였다. 노인의 입술이 부르르 떨리더니 다시 한 마디를 뱉어냈다.
“……피는 피로 갚는 거다!”
노인의 몸이 다시 일어났다. 당태세는 위가도의 가슴에 꽂혀있던 충룡검을 뽑아들고는 목발을 짚었다.
한 발짝 한 발짝 사내는 천천히 땅을 밟으며 앞에 보이는 작은 전각을 향해 움직였다.
노인의 물기어린 눈동자는 시뻘겋게 충혈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