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산동 제남(8)
다음날 아침부터 제남부는 막대기로 쑤셔댄 벌집처럼 소란스러웠다.
대로변을 돌아다니는 녹의대의 고함소리가 담을 넘어 객잔 안까지 밀려 들어왔다. 어딘가 골목에서는 그릇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고 사람들의 고함과 비명이 여기저기에서 들리는 중이었다.
당태세는 어림짐작으로 자신이 벌인 일이 충룡대에 전해진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게요?”
당태세가 방에서 나와 객잔 주인과 만나자 객잔 주인 역시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당태세를 마주하였다.
“아니 글쎄, 오늘 아침부터 충룡대원들이 가게와 민가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행패를 부리고 있지 뭡니까. 사람을 찾는다는 둥 원수를 갚겠다는 둥 별 희한한 소리를 하고 있는데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허어, 충룡대라면 그때 봤던 그 치안대 말하는 거 아니오?”
당태세의 말에 객잔주인도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기 수염을 신경질적으로 긁어댔다.
“내 참, 몽땅 무슨 귀신에 홀린 듯 돌아다니니 어찌 대처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때였다.
갑자기 신경질적으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만 이내 열린 문 안으로 녹의를 입은 사내 일고여덟 명이 우르르 객잔의 마당으로 들어오는데 하나같이 몽둥이를 뽑아들고 험한 눈초리를 하고 있었다.
객잔 주인이 차마 앞으로 나서지는 못하고 당태세 옆에 서서 우물쭈물하고 있는데 개중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녹의인이 몽둥이를 뽑아 객잔주인을 가리켰다.
“네놈! 이곳에 새로 들인 손님 중에 거동이 수상한 자가 있었느냐 없었느냐!”
“나, 나으리, 저희 객잔에는 이상한 분이 없습니다요.”
“네가 보장하느냐? 만약 하나만 있다면 네놈의 사지부터 분지르고 객잔에 불을 놓을 것이다!”
객잔주인은 처음 들어보는 충룡대원의 협박에 정신이 반쯤 나갔는지 휘청대며 뒤로 한 발 뒤로 물러서는데 충룡대원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객잔의 방문을 하나씩 열어젖히기 시작했다.
곧 객장의 사방에서 비명과 고함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하니 평온하던 객잔이 아수라장으로 변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객잔주인은 머리를 싸쥐고 쭈그려 앉아 바들바들 떨었고 여기저기 객잔에서 밖으로 쫓겨난 손님들은 채 옷도 제대로 갖춰 입지 못한 상태였다.
당태세는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가만히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기실 이 사달이 일어난 원흉은 모두 자신이 제공한 것 아닌가.
하지만 지금 섣불리 나섰다가는 모든 충룡대원들을 적으로 돌리게 될 터였다.
“늙은이, 네 놈은 누구냐?”
지금까지 말없이 마당을 지키고 있던 충룡대원이 당태세를 노려보았다.
“저는 그저 이곳을 들러 다른 곳으로 가는 행객입니다.”
당태세는 천천히 옆으로 움직였다. 노인의 목발이 바닥과 닿으며 또각소리를 내었다. 충룡대원들의 시선이 노인의 얼굴에서 다리로 움직였다. 다리에서 얼굴로 돌아온 충룡대원의 표정이 풀렸다.
“밖으로 돌아다니지 말고 객잔에만 있도록 하시오!”
“알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
당태세의 말에 충룡대원의 표정이 소태라도 씹은 듯 바뀌고는 객잔 바닥에 침을 뱉었다.
“나가세!”
당태세의 질문에 충룡대원들은 객잔에서 자신들이 사라지는 것으로 화답했다. 이미 난장판이 되어버린 객잔은 여기저기에서 불평이 쏟아져 나왔지만 사람이 상하지 않은 것만으로 위안을 삼아야 했을 터였다.
객잔 바깥에 비교하면 담 안쪽은 극락이나 다름없었다. 정신을 차린 객잔 주인이 이를 부드득 갈며 녹의인들이 사라진 문을 뚫어지라 노려보았다.
“견자 놈들, 그 동안 같은 한인이라 얼마나 편의를 봐줬는데, 은혜를 이 따위로 갚는단 말인가.”
“세상사가 그렇지 않겠소. 힘이 없으면 참아야지.”
당태세의 한가로운 말에 객잔주인은 더 열이 뻗치는 듯 고개를 흔들며 손가락을 펴보였다.
“아닙니다. 내가 저놈들에게 몽둥이로 맞싸움을 걸 수야 없지만 딴지는 당연히 걸 수 있지요.”
“어찌 말이오?”
“이곳엔 엄연히 녹영군이 있고, 녹영군 위에는 팔기가 있소이다. 어찌 황제의 군문(軍門)에 속하지도 않는 놈들이 사사롭게 백성들을 징치한단 말인가? 허! 내가 장사를 하는지라 이렇게 유하게 있어서 그렇지 나도 이리저리 선 댈 곳은 많다 이겁니다.”
“그래도 같은 한족인데…….”
당태세의 어눌한 말에 객잔 주인은 힐끗 당태세를 바라보더니 인상을 쓰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같은 민족은 무슨…… 애초에 만주족한테 먼저 붙어 사람 감시하는 개가 된 게 누군데. 충룡방 저 견자들이지.”
당태세가 면구스럽다는 듯 입을 다물자 객잔주인이 자신에게 다짐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두고 보십시오. 노사. 연유가 어찌 되었건 지금 저 놈들이 눈에 뵈는 게 없어서 저러고 다니는데 오늘 저녁이나 내일 아침부터는 성내에서 곡소리가 날 겁니다.”
“왜 그렇단 말이오?”
“녹영군과 팔기가 저 꼴을 두고 볼 리가 있습니까요?”
객잔 주인의 말은 점복(占卜)보다 정확하였다. 그 날 해가 중천에서 넘어가자마자 제남부에 주둔하고 있던 녹영군의 영문이 열리며 성내로 진입해 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남쪽의 성문이 열리면서 근방의 팔기가 들어와 친군(親軍)하며 녹영군의 일을 감독하였는데 그 위세가 날선 창검처럼 서늘하였다.
녹영군은 질풍처럼 북쪽의 가도를 타고 들어와 제남의 번화가와 성시를 둘러싸고 근처에서 행패를 부리는 충룡대를 머리사이 이 뽑듯이 하나하나 잡아채 가는데, 그 솜씨가 절묘하면서도 인정사정없었다.
“백성들을 핍박하는 적도들을 포획하라! 녹색 옷을 입은 비류들을 놓치지 말라!”
청(淸)의 관인(官人)들은 명과 달리 효율적이고 무정하였다.
무기라고는 넓적하니 허리에 찬 몽둥이 하나요, 호신을 위한 단도가 전부인 충룡대가 갑주를 받쳐 입고 들이친 녹영군을 어찌 당할 것인가.
속절없이 두들겨 맞거나 팔다리를 칼에 찔린 채 끌려가는 사람이 부지기수니 한 시진이 지나가기도 전에 제남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던 초록색 옷은 이제 눈 씻고 찾아보기도 힘들 지경이 되어 있었다.
“세상 무서운 줄 모르던 놈들이 이제 정신 좀 차리겠구먼.”
객잔주인의 느긋한 미소가 소름끼치게 보일 지경이었다. 같은 한족이면서도 녹영군은 돌로 만든 신병(神兵)처럼 앞에서 저항하고 애걸하는 충룡대원들을 개처럼 끌고 나갔다.
“어찌 저리 같은 민족끼리 험하게 구는고?”
철모르는 시골 노인 당태세의 말에 객잔주인은 고개를 저었다.
“녹영군은 황제의 직속으로 배속된 군대입니다. 당연히 황명을 따라야 함이 첫째고, 만주족은 한인을 다스릴 때 위세를 부려 엄하게 다스리는 것이 둘째지요.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만주족이 아닌 한족이 한족을 독하게 잡아야 나라에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객잔주인의 기묘하게 즐거워 보이는 답변에 당태세는 입을 다물었다.
“제남부가 네 것인 줄 알았느냐. 황제의 것이지. 청(淸)의 것이다. 아무리 봐도 네 것은 아니었다.”
길거리를 보던 객잔 주인의 독백이 당태세의 귀에 얹혔다. 노인은 묵묵하니 객잔 주인과 함께 객잔의 문 앞에서 녹영군의 용병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로써 충룡대는 제남에서 전멸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당태세의 유일한 걱정은 아무쪼록 끌려가는 충룡대 안에 충룡문주 대규호 주통산이 껴 있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그 자가 행여 녹영군의 진영에라도 끌려 들어가면 그 때에는 당태세도 목숨을 내놓고 일전을 불사하는 수밖에 없었다.
“어이구, 이게 무슨 난리통이란 말인가?”
그때였다. 먼지투성이의 걸인 하나가 어기적대며 객잔 안으로 비척비척 걸어 들어왔다.
객잔주인이 눈살을 찌푸리며 사내를 막으려고 다가가 살피더니 화들짝 놀라 당태세를 바라보았다. 거지꼴의 사내는 다름 아닌 아룡이었다. 당태세는 깜짝 놀라며 아룡을 바라보았다.
“아니, 이게 어찌된 일이냐? 나는 네가 종내 무소식이어서 다른 주루나 객잔에서 자는 줄 알았거늘?”
아룡은 고개를 내저으며 넌더리난다는 투로 말했다.
“아이고, 말씀 마십시오. 엊그제 아침 일찍부터 주루에 가서 한 잔 마시고 있었는데 그게 독주(毒酒)였던 모양입니다. 아니면 주루 주인이 약을 탄 게지! 하여간 그 술을 먹고 갑자기 정신이 확 나가버렸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알지도 못하는 골목 한 구석에서 지금까지 자고 있었지 뭡니까?”
아룡은 먼지가 흩날리는 윗도리를 털더니 자신의 몰골을 빤히 쳐다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누가 웃옷과 전대까지 털어갔지 뭡니까. 새벽이슬에 몸이 떨려 지금까지 골목길에 기대어 있다가 겨우 밖으로 나왔는데, 나와 보니 사방에 창검이 살벌하게 널려 있었습니다. 대체 영문을 몰라서 이렇게 객잔까지 뛰어왔죠!”
“그래도 몸이 상하지 않는 것이 어디냐. 천운이구나.”
당태세는 이렇게 말하면서 실로 놀랍다는 듯 아룡을 바라보았다.
어제 당태세는 고천평을 없앤 뒤에 서향방의 안채를 싹 뒤져 패물까지 다 털어내고, 마지막에는 여전히 코를 골며 자고 있던 단성룡을 업고 집을 빠져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있는 진기를 다 쓰며 고천평과의 일전을 마치고 난 뒤 건장한 단성룡까지 짊어지고 길을 걷기에는 무리였다.
궁여지책으로 조금 떨어져 있는 다른 골목길에 단성룡을 내팽개치고 그냥 몸만 빠져나온 터였다.
아룡이 쉽게 죽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생각 외로 멀쩡하게 객잔까지 와 놓고 술 먹은 뒤의 일은 기억도 못하는 것을 보면 확실히 기이한 녀석은 기이한 녀석이었다.
“네 놈은 천시(天時)가 돕는 것이렷다.”
“하하, 당연한 것 아닙니까요? 그나저나 이게 무슨 일이랍니까?”
객잔주인에게 대충 설명을 듣던 아룡의 표정이 굳더니 갑자기 비분강개한 표정이 되어 길거리를 보며 삿대질을 하기 시작했다.
“내 그럴 줄 알았다! 객잔에 함부로 들어와서 노닥거리질 않나! 멀쩡한 상인을 역적이라고 잡아가질 않나! 저런 여우같은 놈들이 바로 조정과 황제의 이름을 등에 업고 우리 멀쩡한 한족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놈이란 말입니다. 저런 몰상식하고 불충한 것들이 만한일체의 도리를 깨버리는 역적인 게요!”
먼지투성이 아룡이 길거리에서 잡혀가는 충룡대를 보며 소리 소리를 지르자 주변에 있던 상인들과 백성들이 빤히 아룡을 바라보았다. 심지어는 충룡대를 끌고 가던 녹영대들도 아룡의 모습을 한 번 쳐다보고는 다시 길을 지나갔다.
녹영대의 행렬은 객잔 앞을 계속 지나갔고, 그들을 인솔하는 장교들 중 몇 명은 객잔주인에게 슬쩍 목례를 하고 지나갔다. 보아하니 이 객잔의 주인은 음양으로 ‘선 댈 곳’이 꽤 있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관대가, 그동안 무양하셨소?”
개중 녹영군을 이끄는 부장 하나가 객장 주인에게 인사를 하였다. 객잔주인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이천총(千總)께서도 잘 지내셨소? 신수가 훤하시구먼!”
“남대가만 하겠소! 그나저나 격조하여 이런 사달 아니면 얼굴 보기도 힘들구먼!”
“거 빨리 오셨소이다. 안 그래도 오전에 패악질이 심했는데 본보기를 보여주시오!”
“안 그래도 그럴 예정이오. 이미 상인들에게서 진정이 들어온 것은 꽤 된 이야기였는데…….”
천총의 말을 들어보니 이미 충룡대의 비위는 음양으로 사찰대상이었던 것임이 분명했다. 당태세가 한 일은 결국 기다란 화선(火線)에 불똥 하나 옮겨놓은 일이었다. 언젠가는 터질 일을 앞당겨 온 것이었다. 당태세가 천총을 보고 슬쩍 말을 건넸다.
“장군, 저들의 괴수는 잡혔습니까?”
천총은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저들의 본채인 도관을 급습하였지만 대주의 신변을 확보하진 못했소이다. 어디로 갔는지 종적을 감추었는데 아무도 발설하는 자가 없구려. 조만간 밝혀질 노릇이겠지만 말이외다.”
그 순간, 당태세의 눈이 번득였다.
그의 짐작대로라면 사냥감이 갈 곳은 단 한 곳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