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산동 제남(7)
해가 중천에 뜬 시각, 슬슬 더워지는 도로 위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충룡대 북향방주 고천평이 걷고 있는 길도 사람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아직 여름이 되지도 않았건만 해는 뜨거워지고 날은 가물었다. 길 잃은 개 한 마리 골목에서 마주치기 힘든 시각이었다.
평범한 사내보다 머리통 하나가 위에 더 붙은 사내는 둔중한 발소리를 내며 골목길 안으로 접어들었다.
사내의 허리춤에 찬 쇠몽둥이가 담벼락에 부딪히며 기묘한 소리를 내었지만 정작 몽둥이의 주인은 메기수염 아래 입을 꽉 다물고 아무런 말이 없었다.
사내의 반쯤 감긴 눈은 골목의 끝을 응시하고 있었다.
조금씩 오른쪽으로 구부러지던 골목길은 마지막에 가서는 우측으로 확 꺾이며 커다란 성벽의 담과 마주한 채 길이 끊겨 있었고, 그 담과 붙은 작은 집의 대문은 틈새가 살짝 보일 정도로 희미하게 열려 있었다.
북향방주 고천평은 열린 대문 앞에 우뚝 서서 크게 심호흡을 하였다.
바람사이로 슬쩍 피 냄새가 들어왔다. 닫혀있어야 할 문이 보란 듯 열려 있었다. 고천평의 턱에 주름이 잡혔다. 잠시 서서 대문을 바라보던 고천평의 손이 문짝을 밀고 한 발을 문설주 사이로 들이밀었다.
집은 조용하였다. 포석 사이를 비집고 올라온 잡초들과 벽을 타고 올라간 덩굴들은 바람에 몸을 맡기고 이리저리 나부꼈다.
마당 너머의 안채는 문이 열려 있었지만 그곳은 누군가의 코고는 소리 외에는 들려오는 게 없었다. 한적하고 평화로웠다.
하지만 바람결에 실려 오는 피 냄새는 작은 집의 평온함이 자연스럽게 취해진 것이 아님을 반증했다.
고천평의 손에 시나브로 쇠몽둥이가 들렸다.
사내는 조심스레 문을 닫고 마당을 천천히 지나며 안채에서 들려오는 코 고는 소리에 집중하였다.
그 순간, 문득 고천평의 동작이 멈추었다. 한 손에 쇠몽둥이를 쥐고 한 발을 내디딘 자세로 마치 석상처럼 굳어있던 고천평의 목이 천천히 오른쪽으로 돌아갔다.
고천평의 시선에 닿은 곳에는 한 노인이 의자에 앉아 목발에 상체를 기댄 채 고천평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꽤 좋아 보이는 비단 옷에 깔끔한 변발을 한 한족 노인이었는데 노인의 무심한 눈빛이 언제부터 고천평을 좇았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고천평은 마당에 들어온 직후 지금까지 노인의 기색을 눈치 채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천평의 무릎이 슬쩍 굽혀지고 허리가 꼿꼿하게 펴졌다.
“그대는 누구인가.”
고천평의 말을 들은 노인은 물끄러미 사내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슬쩍 고개를 숙이고는 목발을 늘어뜨렸다. 고천평이 다시 노인을 보고 말하였다.
“누구냐고 물었다.”
“그게 중요한가.”
노인의 대답에 고천평은 무표정한 얼굴로 노인의 신색을 바라보았다. 그리 작지 않은 체구지만 한 쪽 발을 못 쓰는 노인이었다.
고천평이 슬쩍 한 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사내는 쇠몽둥이를 두 손으로 쥐고 오른쪽 엉덩이 뒤로 내려잡았다.
“이곳에서 살생의 기척이 느껴진다. 사향방주들은 모두 어디 있는가?”
“알면서 왜 묻느냐.”
“네가 한 짓이냐?”
“알면서 왜 묻느냐 말하였다.”
노인의 고개가 들리면서 부릅뜬 눈이 고천평을 향하였다. 순간 고천평이 뒤로 뺀 두 손이 반사적으로 앞으로 돌아왔다. 노인의 눈은 평범한 절름발이가 아님을 일순간 보여주었다.
일신의 공부가 몸에 쌓여있는 자. 사람을 쳐 본 적이 있는 자의 눈이었다.
“보이지도 않는 사람들의 죽음은 알아챌 기감이 있으면서.”
노인의 목소리가 웅웅대며 고천평의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순간 목석같던 고천평의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어딘가에서 분명 들어본 적이 있는 목소리였다.
“목전에 있는 사람은 알아보지 못하는구나.”
“……그대는 누구냐?”
“네 놈은 변하지 않았구먼. 충룡사영 고천평.”
순간, 고천평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노인의 입에서 나온 별호는 십수 년을 훌쩍 건너 뛴 과거에서 튀어나온 것이었다.
고천평의 입이 무의식중에 벌어지고 혀가 입술을 핥았다. 눈을 한참동안 깜박이던 고천평의 눈이 가시처럼 가늘어지며 슬쩍 고개를 옆으로 움직였다.
“그대는 누구냐고 물었다. 분명 내가 아는 이 같은데…….”
껄껄대며 노인이 웃음을 짓더니 목발에 힘을 주고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비록 목발에 의지한 채로 몸을 세운 터였지만 두 발이 땅에 단단히 닿은 노인의 신위는 조금 전과는 또 다른 무위를 보이고 있었다.
고천평이 인상을 쓰며 다시 쇠몽둥이를 잡고 자세를 취하니 노인은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보다는 실기에 충실하게 도법이 바뀌었구나.”
“노사는 누구시오? 존성대명을 말해주길 바라오.”
“네놈도 나이를 먹은 게로구나. 순천문을 잊었다니.”
“순천문?”
눈을 깜박이던 고천평의 입이 갑자기 떡하니 벌어지더니만 자기도 모르게 한쪽 발이 휘청대며 무릎을 꿇을 뻔하였다. 그나마 견고한 자세를 잡고 있던 쇠몽둥이가 아래로 내려오며 바닥을 찍었다.
사내는 어정쩡한 자세가 된 채 노인을 쳐다보더니 넋 나간 사람처럼 어지럽게 말을 중얼거렸다.
“수, 순천문주 귀! 귀린갈(鬼燐蠍) 당, 당태세?”
“이제야 총명함이 돌아왔군.”
순간 커다란 덩치의 사내가 그대로 무릎을 꿇으며 넙죽 엎드렸다. 당태세가 눈을 껌벅이며 사내를 바라보는데 커다란 문짝 같은 등을 가진 사내는 그대로 마당에 하나가 되려는 듯 더욱 몸을 낮추며 굵은 목소리로 정중하게 문안인사를 올렸다.
“추, 충룡문의 고천평이 순천문주를 뵈오이다!”
“이제야 내 얼굴이 생각나느냐?”
“세월이 흘러 존안을 잊었습니다! 제 불민함을 용서하옵소서!”
당태세가 눈살을 찌푸리며 묘한 표정으로 고천평을 바라보다 머리를 긁었다.
노인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 눈가를 만지작거리다가 다시 고개를 들고 헛기침을 하였다. 무릎을 꿇은 고천평은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네놈은 내가 왜 여기 왔는지 알 테지.”
“알 것 같습니다.”
“멸문한 순천문과 내 가족의 보수(報讐: 앙갚음)로다.”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매국(賣國)도 모자라 백성들의 돈으로 치부하는 너희 충룡문에 대한 징치도 겸하리라.”
“그것은…….”
“할 말이 남았느냐?”
잠시 말을 멈추었던 고천평이 슬쩍 고개를 들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갈 곳 없는 우리 문도들을 위한 문주님의 선택이었습니다. 그리고 제남부의 일은 전적으로 제가 벌인 일이지 제 문주님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노릇입니다.”
“허.”
기가 차다는 듯 혀를 찬 당태세가 물끄러미 고천평을 바라보더니 혀를 끌끌 차고는 혼잣말을 내뱉었다.
“견자새끼가 범새끼를 키우고 앉아 있구먼. 부끄럽지도 않은가.”
고천평은 당태세의 혼잣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묵묵부답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옛 한고조의 수가 번쾌 같기도 하고 위나라 조조 맹덕의 심복 전위 같기도 하였다.
“오냐, 네놈의 잘난 문주, 대규호 주통산은 요즘 뭘 하느냐.”
“남산의 작은 불사를 다니며 참배를 하거나 도관에 머물러 계십니다.”
“도관이라 이름 짓고 불사에 참배를 한다? 그놈답구나. 그나저나 위가도가 호법이라지?”
“네.”
자신의 질문에 순순하게 대답하는 고천평을 보는 당태세의 표정은 복잡 미묘하기 그지없었다. 당태세의 질문은 의도와는 전혀 다른 길을 타기 시작했다.
“위가도 같은 녀석의 호법이 되고 너는 길거리에서 도적을 잡는다고?”
“문주님의 명이었습니다.”
“그 놈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도 못 보고 시절도 못 보는 구나.”
다시 입을 닫은 고천평을 보던 당태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노인의 눈이 무릎 꿇은 거인을 노려보았다.
“충룡사영 고천평은 들으라. 나 순천문주 귀린갈 당태세가 문파의 복수를 위해 이 자리에 섰노라. 너 고천평 역시 우리 문파를 멸절시킨 충룡문의 한 사람으로 그 혈겁에 참여한바, 내 너의 목숨을 거두어 영겁의 불길 속 내 복수의 원념을 꺼트릴 한 방울 물로 쓸 것이다.”
고천평은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고개를 들었다. 거한의 눈이 번득였다.
“제 제자들은 모두 문주께서 거둬 가신 겝니까?”
“그러하다.”
당태세의 대답에 고천평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쇠몽둥이를 짚고 고개를 들었다. 어느 새 거한의 몸에는 겸양과 순후함 대신 대적을 만난 협객의 날카로움만이 남아 있었다.
“선학(先學)에 대한 존경은 충분히 표하였으니 이제는 사제(師弟)의 정에 따라 저도 문주님의 목을 취해야 하겠습니다.”
“내가 다시 눈을 뜨고 본 이 중에 오직 네 놈만이 맘에 드는구나.”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당태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거인의 몸이 바닥을 박차고 앞으로 튀어 올랐다.
거인의 손이 어깨 뒤로 넘어가는가 싶더니만 이내 쇠몽둥이가 채찍처럼 눈앞에서 잔상을 그리며 당태세의 머리를 향해 떨어졌다. 하지만 당태세는 머리를 옆으로 치우며 괴의 끝으로 거인의 어깨를 누르면서 발을 뒤로 옮겼다.
조금 전까지 당태세가 서 있던 곳으로 쇳덩이가 떨어지며 석판이 돌덩이로 변해 산지사방 날렸다.
당태세의 몸이 재빠르게 뒤로 빠졌다가 괴창으로 바닥을 찍으며 몸을 띄워 고천평의 뒤로 돌아갔다. 고천평의 몸이 뒤로 도는 순간 날카로운 괴창이 고천평의 가슴과 배를 향해 동시에 날아왔다.
거인의 쇠몽둥이가 들어오는 창두를 막아내고 가슴을 찍으려고 들어오는 괴창의 손잡이를 퉁겨내었다. 덩치에 맞지 않는 기민한 손놀림이었다.
이번에는 고천평이 몸을 굽히는가 싶더니 이내 당태세의 옆으로 들어오더니 현란하게 쇠몽둥이를 돌리기 시작했다.
사내의 건장한 육신을 타고 나오는 신력이 그대로 쇠몽둥이에 전해지며 폭발적인 타격이 터져 나왔다.
봄바람을 타고 흩어지는 꽃바람처럼 예측하기 힘든 난격(亂擊)이 당태세의 사방으로 쏟아져 들어오는데 그에 맞춰 노인의 손에 들린 괴창이 신들린 듯 쇠몽둥이와 박자를 맞추었다.
하지만 이내 당태세는 눈살을 찌푸리고 머리를 숙여 쇠몽둥이를 피하더니 한 걸음 뒤로 물러서 다시 괴창을 몸 뒤로 빼고는 고천평을 노려보았다. 오른 무릎에서 찌릿 거리는 통증이 스멀스멀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고천평은 슬쩍 당태세의 오른발을 바라보더니 다시 당태세의 눈을 바라보고는 쇠몽둥이를 붕붕 휘둘렀다.
거인의 손에 잡힌 굵은 쇠몽둥이는 마치 가느다란 부지깽이처럼 보였다. 하지만 저 부지깽이에 얼굴이 스치기라도 한다면 아마 그 날로 목 위에는 남아있는 것이 없을 터였다.
“공부가 늘었군.”
당태세의 말에 고천평은 대답대신 쇠몽둥이를 뻗어 노인의 얼굴을 뚫어버릴 기세로 찔러 들어왔다.
뒤로 뺐던 괴창이 다시 앞으로 들어오며 쇠몽둥이를 퉁기고 옆으로 빠져나가며 거인의 옆구리를 노렸다. 하지만 그 순간 고천평의 오른 무릎이 강태세의 가슴팍으로 올라왔다.
당태세의 왼손이 장(掌)을 펼치며 들어오는 고천평의 무릎을 막고 돌리며 비어있는 곳을 향해 괴창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 전에 머리 옆에서부터 들어오는 맹렬한 쇠몽둥이의 바람에 괴창이 퉁기며 당태세는 다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오른다리를 내딛자 머리 뒤편까지 강렬한 통증이 밀려 올라왔다.
“할만 하십니까.”
고천평이 잡아먹을 듯한 눈을 한 채 어울리지 않는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당태세는 대답대신 손가락을 들어 고천평의 몸을 가리켰다.
고천평이 화들짝 놀라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자 옆구리 왼쪽이 이미 시뻘겋게 물들어 있었다. 어느새 당태세의 괴창이 거한의 옆구리를 찢은 채 뒤로 빠진 것이었다.
고천평은 다시 이를 악물더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쇠몽둥이를 위로 쳐들었다. 당태세 역시 괴창을 두 손으로 움켜잡고 어중간한 자세로 서서 순좌요의(順左撩衣)의 세를 잡았다.
먼저 움직인 것은 당태세였다.
비틀대는 듯 오른발을 끌면서 앞으로 괴창을 뻗은 채 들어오는 노인을 보던 고천평이 슬쩍 한 발을 뒤로 빼는 듯 하다가 자신의 몸 아래까지 들어온 당태세를 확인하자 재빨리 앞으로 발을 뻗으며 위에서 아래로 쇠몽둥이를 휘감았다.
하지만 거인의 몽둥이에 걸린 것은 오직 따스한 정오의 봄바람뿐이었다.
“쉬어라.”
당태세는 말을 마친 후 괴창을 오른쪽 옆구리에 끼고 비틀대며 정원을 걸어갔다. 뒤에 남겨진 거한의 가슴팍에서 시뻘건 핏줄기가 길게 뿜어져 나왔다.
소리 없이 거대한 사내가 앞으로 쓰러지자 당태세의 입에서 가느다란 한숨이 새어나왔다. 휘파람처럼 하늘로 휘감기는 작은 소리를 듣고 이름 모를 새 하나가 정원에서 화답하였다. 이내 사방은 다시 고요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