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견마지로-13화 (13/226)

13. 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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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룡은 장정 세 사람에게 양팔과 뒷목을 잡힌 채 포구로 끌려가는 중이었다.

사방이 어지럽고 자신이 내딛는 발걸음이 아득하기만 했다. 마치 푹신한 구름 위를 걷듯이 둥실둥실 움직이는 기분이었다. 어두운 창고 안에서 며칠을 갇혀 있었는지, 며칠을 굶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문이 열리고 햇살이 들어오며 그림자 셋이 다가와 우악스럽게 자신의 멱살을 잡아챌 때에도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지금 그는 포구 가까이에 있는 알 수 없는 곳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이… 이… 길은… 사… 상부방… 쪽인데….”

한참 만에 벌어진 입에서 띄엄띄엄 나오는 소리를 들은 사내 중 하나가 너털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래. 상부방이 남아있던 곳인 건 아는구먼? 어쩌냐? 네가 그리 좋아하는 상부방이 쫄딱 망해버려서?”

“이 거북이랑 붙어먹을 새끼야. 네가 우리 방주님 상부방에 팔아먹으려고 했었지? 소문 다 들었어.”

“아니야… 나는… 아니야…….”

“허? 뭐라는 거야. 이 견자 놈 어두컴컴한 데 며칠 처박혀 있더니 정신을 놓았나?”

“난…우리…방주님…존경하고…흠모하고…충성을…다…바쳐서…….”

결국 뒷목을 잡고 가던 금월방도도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거 완전히 글러먹었구만. 어디 이런 놈이 세상에 굴러다니나?”

“너희들…왜…나를…상부방에…데려가는…거냐…나를…팔아먹으려….”

지금까지 잠잠히 팔뚝을 끼고 가던 금월방도 하나가 대차게 아룡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찍으며 조용히 말했다.

“조용히 해라. 견자야. 상부방은 우리 방주님이 다 밀어버리셨으니까. 저긴 이제 금월방이다.”

그러자 갑자기 아룡이 우뚝 제자리에 서 버렸다. 그를 끌고 가던 세 사람이 무슨 일인가 싶어 아룡을 쳐다보니 아룡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그와 함께 입에서 곡소리 같은 말이 흐느끼며 쏟아지는데 그 어조가 절절하기 그지없었다.

“크흐흑! 방주님! 제가 오늘 같은 날이 올 줄 알았습니다! 이 아룡! 오늘을 보려고 불철주야 분골쇄신하여 이 날을 기다려왔으니…제가 죽기 전에 드디어 이 날을 보옵니다! 하늘이여! 땅이여! 우리 방주님을 굽어 살펴 주시사…우리 금월방이 세세영원 무궁하게 하옵시며…….”

양팔을 잡고 있던 금월방도 둘이 뒷목을 잡고 가던 사내를 동시에 쳐다보았다. 금월방도 하나가 뒤의 조장에게 말했다.

“대형, 이놈 진짜 맛 간 놈 같은데요?”

조장도 멍하니 아룡의 뒷목을 바라보다가 하늘을 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런 미치광이가 대체 왜 필요한 거야…?”

***

동명각 삼층의 방주 처소에 던져진 아룡은 자신의 눈에 들어오는 광경에 감격을 금할 수 없었다.

호피가 깔려있는 거대한 의자에 앉아 조용히 차를 마시고 있는 흉터투성이의 중년인은 다름 아닌 금월방주 장철오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아룡은 천천히 두 손을 하늘 위로 뻗으며 큰소리로 쩌렁쩌렁 외쳤다.

“창천금월! 위풍당당! 만고영원!”

“되었다.”

“창천금월! 천천세세! 상하화목!”

“그만하라고!”

금월방주의 짜증나는 호통을 듣고 나서야 아룡은 고개를 불쑥 들었다.

금월방주는 쌍심지를 돋운 채 아룡을 노려보고 있었는데, 얼굴에는 짜증과 분노가 서려있을지언정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는 것으로 봐서 아룡을 해할 생각은 없는 듯 보였다.

아룡은 숨을 가다듬고 무릎을 바로 꿇은 뒤 고개를 들고 방주를 쳐다보았다.

“금월방의 무두리, 단성룡! 방주님을 뵈옵니다.”

장철오는 입술을 꽉 깨물고 있다가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각설하고, 네 너를 이곳으로 부른 이유를 말하겠다.”

“하명하옵소서! 이 무두리! 어떤 명이던 받아 높은 산이나 깊은 바다 어느 곳이던 뛰어들어 엄숙하게 받은 명을 수행하겠습니다!”

아룡은 자신이 한 말에 도취되었는지 부르르 몸을 떨며 눈에 다시금 이슬을 반짝였다.

아룡이 하는 짓을 물끄러미 보던 금월방주 장철오가 저절로 이를 악물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가 하늘을 보며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래, 내가 너에게 특별하게 일을 하나 맡길 것이 있으니…….”

아룡의 눈이 번득 빛을 발하였다.

“방주! 언제라도 맡겨만 주십시오! 선봉에 서서 입마개를 물고! 한 손에 칼! 한 손에 금월방의 기치를 들고 천 명의 적과 대적하여 홀로 싸우겠습니다!”

“닥쳐라.”

금월방주가 머리를 내저으며 슬쩍 손을 올려 표시를 보였다. 아룡의 눈이 그제야 금월방주의 손이 가리키는 곳으로 옮겨갔다.

환한 방 안 햇살이 닿지 않는 어두운 곳에 의자 하나가 놓여 있고 그 위에 한 명의 사내가 앉아 있었는데 기다란 목발을 짚고 흰 수염을 고르게 다듬은 하얀 적삼의 노인이 보였다.

아룡이 무슨 영문인지 몰라 눈을 끔벅이는데 금월방주가 아룡을 보더니 질문을 던졌다.

“너는 저 분을 아느냐?”

“네? 소인, 저 노사를 처음 뵙는 것 같습니다만….”

“그럴 리가 있느냐? 네가 저 분을 몰라봐?”

“네?”

아룡이 한참을 들여다보고 이리저리 시선을 돌려봐도 모르겠다는 눈치를 보이자 지금까지 잠자코 앉아있던 노인이 히죽 웃음을 지어보이며 말하였다.

“아니, 여보게. 지금까지 나를 병구완했다는 사람이 내 얼굴을 모른다니 말이 되는가! 이거 섭섭하구먼!”

순간 아룡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지며 입에서 바람 새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때를 놓치지 않고 금월방주가 입을 열었다.

“저 분은 아룡 네가 지금까지 돌봐드렸던 그 노인이시다. 지금 와서 말하지만 내 외숙 되시는 분이시지. 다시는 못 깨어나실 줄 알았는데 네 지극정성으로 일어나셨다고 하더구나!”

“수…숙부요?”

“허허허허! 내가 어느 날 눈이 떠지고 귀가 트이고 입이 열렸는데! 여기 있는 우리 방주께 안부를 물어보니 자네가 나를 마치 친 부모처럼 정성껏 간호해 줬다고 하더구먼! 그게 사실인가?”

“하… 아… 네! 그렇습니다! 사실입지요!”

아룡의 눈동자가 좌우로 번갈아 돌아가며 방주와 노인을 쳐다보는데 금월방주가 슬쩍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하였다. 금월방주 장철오의 눈빛이 매섭게 변하였다.

“아룡, 나는 네 놈이 내 처소로 자객들을 보냈던 것을 알고 있어.”

“바 방주님! 그건 오해… 오해십니다! 제가 보낸 것이 아니라 그놈들이 저를 협박하여….”

“닥쳐라. 여기서 명을 끊어주리?”

순식간에 사색이 된 아룡이 금월방주를 바라보는데 옆에 있던 당태세가 은근한 목소리로 방주에게 말하였다.

“여보시게 방주. 너무 그러지 마시게. 그래도 저 친구가 아니었으면 내가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남지 못하였을 것 아닌가?”

금월방주의 표정이 염라대왕의 표정에서 다시 평상시의 표정으로 변하였다. 그 모습을 보던 아룡은 재빠르게 고개를 노인에게 돌리더니 고개를 땅에 박고 연신 절을 하였다.

“아닙니다, 노사! 제가 불민하여 늘 제대로 모시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으로 남았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나셨으니 제 정성이 하늘에 닿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어찌 천지신명께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당태세와 장철오의 눈이 마주치며 동시에 서로 고개를 끄덕였다. 금월방주가 아직 고개를 숙이고 있는 아룡에게 시선을 돌렸다.

“내 죄를 따지자면 이미 목을 베고 몸뚱어리는 바다의 고기들에게 밥으로 주는 것이 타당하지만, 네가 한 가지 잘 한 것이 있으니 그것으로 내 죄를 갈음하고자 한다. 대신 너는 내가 명할 것이 하나 있으니…….”

아룡의 고개가 불쑥 들렸다.

“내 외숙께서 정신을 차리셨지만 그 동안 세상이 어찌 변하였는지 모른다고 하신다. 어제도 나를 붙잡고 한탄하시더구나. 숙부께서는 천하가 어찌 돌아가는지를 알고자 하시고, 나 또한 우리 금월방을 둘러싼 천하가 어찌 움직이는지를 알고 싶으니….”

장철오의 말에 당태세가 불쑥 끼어들었다.

“나와 같이 세상 구경을 좀 하지 않겠느냐? 움직이는데 필요한 거마비는 금월방주가 준다 하였으니 그 또한 나쁜 일은 아니렷다?”

아룡이 정신을 차린 노인의 말을 가만히 듣자하니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있던 사람치고 말투가 재기발랄하고 명랑하며 선량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것이 무해(無害)한 위인이 분명해보였다.

더군다나 거마비까지 받아서 천하를 돌아다니는 일이라니! 아룡의 눈이 번적이는 것을 보던 금월방주가 못을 박아버렸다.

“네 녀석이 이 일을 제대로 수행하면 지금까지의 과오를 용서하고 단두 자리 하나 정도는 마련해 줄 수 있느니라.”

순간 아룡의 마음은 철석같이 굳어버렸다. 좌우를 돌아볼 필요가 없었다. 아룡은 엄숙한 표정이 되어 노인과 방주 앞에 정좌하고는 또렷하고 맑은 목소리로 자신의 말을 표하였다.

“이 무두리, 단성룡, 여기 계시는 금월방주와 노사 앞에서 감히 하늘에 맹세합니다. 제가 노사를 모시고 천하를 종횡한 뒤 무사히 다시 산동으로 돌아오겠습니다! 노사의 몸에 깃털 하나 들러붙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금월방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겠습니다! 저 찬란한 만청 팔기의 여덟 깃발도 노사의 강호행 앞에서 자리를 비킬 것입니다! 이 단성룡에게 중임을 맡겨주시니 오직 충절로 보답하겠습니다!”

“오냐. 이것으로 결정된 것이다. 가하십니까? 숙부님?”

“그래그래! 저 친구라면 믿을만 하겠지!”

아룡은 그제야 숙부라는 노인이 어느새 머리를 밀고 금전서미의 변발을 만든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룡은 자기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최소한 이 노인은 세상 돌아가는 일에 박자를 맞출 줄 아는 위인이었다.

자기와 말이 통할성 싶었다. 그리고 단 둘이 여행하는 것이라면 그보다 자유로운 것이 있을 수 없었다. 아룡은 고개를 숙이며 벌어지는 입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썼다.

역시 고진감래(苦盡甘來)라더니 이런 날이 오는구나.

결국 아룡의 입은 환하게 옆으로 벌어졌고, 고개 숙인 아룡을 바라보는 두 사내의 입 역시 기묘한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

새벽 일찍 작은 나귀에 매달린 조그마한 수레에 당태세가 올랐다.

사내의 등 뒤를 따르던 금월방주는 슬쩍 당태세에게 작은 호주머니 두 개를 전달해 주었다.

하나는 짤랑대는 소리와 묵직함으로 봤을 때 여비가 틀림없었고, 두 번째는 첫 번째와 다를 바 없는 무게였으나 주머니 안에서 하나가 되어 놀았다. 금월방주가 조용히 당태세에게 말하였다.

“첫 번째 것은 거마비이고, 두 번째 것은 창두입니다. 아무쪼록 요긴하게 쓰시옵소서.”

“쓸 수 있는 곳에 거침없이 쓰겠네.”

사내의 말에 금월방주는 얼굴이 굳은 채 조용히 목례를 하며 뒤로 물러섰다. 금월방주의 뒤에는 흑색과 청색의 도포를 협객처럼 차려입은 아룡이 헌헌장부처럼 서 있었다.

아룡은 나귀의 고삐를 잡고 당태세에게 머리를 까닥 숙여 묵례를 하고는 수레 뒤에서 그들을 지켜보는 금월방주 장철오에게 다가가 엄숙하게 포권하였다.

“이 단 모, 처음을 마지막처럼 하여 임무를 완수하겠습니다.”

“그래 말처럼 행동을 건실하게 하여라.”

“존명!”

금월방주가 뒷짐을 지고 출발하는 나귀 수레를 바라보았다. 이내 수레는 희뿌연 아침 안개 사이로 모습을 감추었고 금월방주 장철오는 짧은 한숨으로 배웅을 마무리했다.

아룡은 고삐를 쥐고 삐걱대며 나가는 수레 옆에 서서 걷는데, 마치 천자의 가마를 호위하는 위사인 듯 고개를 뻣뻣이 들고 턱을 세운 채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정작 수레에 탄 당태세는 말이 없었다. 사내는 눈을 깜박이며 뭔가를 골똘히 생각 중이었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룡이 먼저 입을 열었다.

“노사, 어디로 먼저 여행을 가시렵니까? 좋은 풍광을 들러보실 것인가요? 아니면 아름다운 여인들이 있는 기루로 향할까요?”

노인은 아룡이 말이 떨어지자 히죽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다. 나는 천하를 바느질하듯 이 성 저 성 돌면서 아래로 내려갈 것인즉….”

“바느질이요?”

“그래 바느질처럼…….”

당태세의 말이 작아지며 눈초리가 가늘어지다가 다시 눈을 껌벅이더니 아룡을 보며 히죽 웃음을 머금었다.

“일단 대처로 가자꾸나! 산동 하면 제남이지! 제남으로 가야겠다!”

노인의 말을 들은 아룡의 입도 덩달아 활짝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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