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견마지로-12화 (12/226)

12. 금월방(8)

당태세는 다음 날 느즈막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부터 포구에서 한참 떨어진 외진 객잔을 골라 들어가 화주 한 병을 시켜 먹으며 잠자리에 들었었다.

제대로 몸을 써 본 것이 거의 이십 년이 다 되어 가는 날인데다 온전하지도 않은 몸에 술까지 먹으니 몸이 배겨낼 리가 없었다.

정신을 차린 것은 해가 중천에 떠서 객잔의 주인이 돈을 더 내고 잘 것인지 말 것인지 채근하는 소리 덕분이었다.

“이보시오 노사, 굉장히 피곤해 보이시긴 합니다만 아직까지 주무시면 어떻게 하십니까? 이제 슬슬 나가 보셔야 하는 거 아니오? 일박인데 너무 오래 계십니다그려.”

“벌써……시간이 이렇게 되었소?”

당태세는 팔을 내딛다가 자신의 오른발의 통증이 밀려오는 것에 눈살을 찌푸렸다. 객잔주인은 노인이 짜증을 내는 줄 알고 슬쩍 인상을 굳히며 말하였다.

“아 그럼요! 오래 되셨지. 얼마나 세상모르고 주무셨으면 간밤에 천지개벽하는 소동이 있던 것도 모르고 주무셨냔 말이오.”

“무슨 일이 있었소?”

당태세의 말이 나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객잔주인이 침을 튀기며 장광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아, 포구에서 검난(劍難)이 있었다지 않소! 불이 오르고 창고가 타고! 시뻘건 화염이 여기까지 보일 지경이었다니까? 무슨 전쟁난 줄 알고 짐 싸는 판국이었소이다.”

당태세는 일어날 일이 정확히 시간을 맞춰 일어났구나 싶은 심정이었다. 사내는 옷을 대충 차려 입고 목발을 짚었다. 객잔 주인이 노인을 쳐다보더니 뚱한 표정으로 당태세에게 말했다.

“아니, 그 이야기 듣더니 왜 그리 빨리 일어나시는 게요?”

“포구가 난리라니까 한 번 구경 가 봐야지.”

“어허, 거 무슨 소리요? 지금 살벌하게 생긴 놈들이 포구에 좍 깔렸다던데! 이러다가 팔기가 들어 올까봐 걱정이 태산이구만! 노사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면서 그런데 가면 큰일 나요! 나이도 많으신 분이 술 다 자셨으면 어서 집에 돌아가오! 아니면 여기 좀 더 앉아 계시던가!”

조금 전까지 왜 일어나서 방을 안 빼냐고 할 때와는 또 다른 경망스러움이었다. 당태세는 피식 웃었다. 사내의 이런 가벼움이 그리 싫지 않았다.

“난 아직 환갑도 안 지났소. 노사는 무슨….”

“그래요? 그런데 왜 머리랑 수염이 다 새하얗대?”

씁쓸한 미소를 짓던 당태세가 머리를 흔들고는 손을 들어 보이고 천천히 객잔 문을 나섰다. 그 때 뒤에 있던 사내가 다시 당태세를 불렀다.

“이 보시오, 노사!”

“노사 아니라니까.”

“다른 건 모르겠는데 충고 하나만 합시다.”

당태세가 뒤를 돌아보자 객잔 주인은 자신의 머리를 가리키며 손가락으로 톡톡 이마를 만졌다.

객잔주인의 머리는 이미 시원하게 박박 밀려 있었고, 뒤통수에 쥐꼬리처럼 매달린 한가락 머리타래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객잔주인이 당태세를 보며 말했다.

“요즘에도 머리카락을 간직하고 계시는 게 놀라울 뿐이구먼. 비류(非類)나 걸인이 아닌 담에는 확실하게 해 두시는 게 나을 겁니다. 점점 단속이 심해지고 있어요.”

“그렇소?”

“머리를 밀지 않은 자는 보이는 대로 참(斬)하라는 지시가 아직도 유효하다고 합니다. 아무리 머리카락이 소중해도 목이 더 중한 거 아닙니까요?”

당태세는 객잔주인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사내는 무심결에 자신의 머리를 슬쩍 만져보았다. 사내의 길게 땋아 내린 머리카락은 이미 허리춤까지 오고 있었다. 십칠 년간 한 번도 자르지 않은 머리였다.

“……소중할 만도 하지.”

사내의 마지막 말은 수수께끼가 되어 객잔 주인의 마음에 남았다.

***

“이리 올라오십시오. 문주님.”

금월방주 장철오가 동명각 삼층의 거대한 의자에 앉아 있다가 엉덩이를 떼고 일어섰다.

여기저기 물청소라도 한 듯 사방을 덮고 있던 피칠갑들은 지워진 뒤였지만 여전히 피비린내는 남아있는지 어울리지 않는 향로가 하나 놓여 있었다.

의자를 덮고 있던 곰 가죽은 어디로 갔는지 없어지고 의자 위에는 호피(虎皮)가 덮여 있으니 오히려 그럴듯해 보이는 것이 패왕의 권좌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금월방주는 당태세를 모시고 온 부하들을 보며 짐짓 엄숙한 표정으로 그들을 대하였다.

“이 분은 우리 방의 귀빈이시다. 대접에 소홀함은 없었으렷다?”

“별 일 없이 올라왔네. 자네 이름을 대니 알더구먼.”

당태세는 뒤에 서 있는 세 명의 사내들을 쳐다보았다. 하나같이 기골이 장대하고 차려입은 것이 여느 하오문과는 달리 격식을 갖춘 의관이었는데 사내들의 얼굴은 한군데씩 찢어지고 피멍이 들어 있었다. 당태세가 장철오의 눈치를 보더니 짧게 말했다.

“귀가 좀 어두운 것 빼곤 맘에 들었네.”

“나가보아라.”

장철오의 한마디에 세 사람은 절도 있게 고개를 숙이고는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당태세의 생각에 규율의 엄정함은 정도문파들보다 하오문이 더 강한 것 같았다. 아마도 대의명분보다는 힘이 힘을 지배하는 난폭한 성정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더 엄혹한 질서를 필요로 하는 듯싶었다.

하지만 그와는 별도로 지금 당태세의 앞에 앉아있는 금월방주 장철오의 표정은 진실로 천하를 한 손에 얻은 자의 얼굴이었다.

모두가 사라지자 장철오는 의자에서 불쑥 일어서더니 아래 있는 당태세를 향해 넙죽 엎드리며 절을 올렸다.

“문주님, 정말 제가 어떻게 이 은혜를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십년 넘게 몸속의 고질(痼疾)처럼 품고 있던 상부방을 말끔하게 없애주셨습니다!”

“시작이야 내가 했지만 없앤 것은 자네 아닌가. 어젯밤에 이곳을 접수한 게지?”

당태세의 말에 장철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문주께서 보낸 아이의 전갈을 받고 바로 정예를 꾸려서 들이쳤습니다. 들어왔을 때는 이미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뿔뿔이 흩어져 달아난 놈이 반은 넘었으니까요.”

“그러리라 짐작했네.”

“그 아이를 선봉으로 우리가 들이닥쳐 이곳을 접수한 것은 채 한 식경이 지나지 않았습니다. 도주하던 상부방 잔당 놈들이 창고에 불을 놓아서 그 뒤치다꺼리가 더 힘들었지요.”

당태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마 이 주변에서는 견고해 보이던 동명각이 이리 쉽게 지리멸렬해 질 것이라고는 당태세도 예상한 바가 아니었다. 아무래도 이건 금월방주의 복이었다.

“이 전각은 출입하는 곳이 하나이니 나중에 방비에 신경을 쓰게나.”

“그건 방주인 제가 책임을 질 일이니 걱정 마십시오.”

“단도 두 자루를 들고 간 그 놈은 포상을 했는가?”

“어제부로 단두 자리 하나를 줬습니다. 상부방 아이들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당분간 필요하겠지요. 그 아이를 보고 다시 금월방으로 들어오는 애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계산은 확실하게 해야지. 은혜든 원한이든.”

“문주님다우십니다.”

대화가 그쳤다. 나무 바닥을 들여다보던 당태세의 회색 머리가 들리며 금월방주를 쳐다보았다. 금월방주 장철오는 나무의자가 아닌 마룻바닥에 앉아 있었지만 여전히 입가에 짓고 있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지만 당태세의 표정은 아무것도 읽을 수 없이 눈빛만 번득이고 있을 뿐이었다. 장철오의 표정이 그제야 진지하게 변했다.

“내가 줄 것은 다 줬으니……철오, 너도 내가 원하는 것을 준비하였느냐?”

“하루 반나절 만에 일을 마무리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준비하라 하지 않았느냐?”

차가운 눈빛이 장철오를 노려보았다. 장철오는 자기도 모르게 입맛을 다시고는 슬쩍 몸을 일으켜 탁자 위에 종이와 필묵을 가져왔다. 멧돼지처럼 생겼던 상부방주라도 문방사우정도는 구비해 놓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모아놓은 이야기들은 모두 제가 기억하고 있습지요. 제가 지금은 구변(口辯)으로 설명을 드리거니와, 내일 아침에 정갈하게 글로 정리하여 문주님께 올려드리겠습니다.”

당태세가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 보아라.”

장철오가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열었다.

“십칠 년 전 황성의 문루를 지키던 황도구대문파는 우리 순천문을 포함하여 영우문, 견정문, 포일문, 백룡문, 구봉문, 동성문, 충룡문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사형문이었다.”

말을 내뱉는 당태세의 눈빛은 형형하여 감히 말을 걸 수도 없었다. 장철오는 자기도 모르게 꿀꺽 침을 삼키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네, 사형문이 있었습니다. 이 중에 지금 황도에 남아 있는 문파는 하나도 없습니다. 황제가 황도에서 한인에게 무공을 가르치는 것을 금하였고, 중원천하 어디에서든 무공을 전수하거나 장병기를 가르치는 것을 엄하게 금지하였기 때문입니다.”

“허면?”

“하지만 이들 여덟 문파는 청나라 팔기군이 역적 오삼계와 함께 황궁의 문을 여는데 공을 세웠다 인정받아 그들의 무공을 펴는 것까지는 허락했습니다. 하지만 황도를 떠나 정해진 도시, 정해진 구역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무공을 쓰는 이 역시 그 구역을 떠나면 참(斬)하도록 영을 내렸습니다.”

“견자 놈들, 자기 처지가 어찌 될 줄도 몰랐는가.”

“그래서 그들은 각기 장문인을 따라 황도의 산문을 폐관하고 각기 연고가 있는 지역으로 모든 것을 옮기니 그 파와 장문의 세에 따라 각각 자기 지방에서….”

“철오.”

“네, 문주!”

당태세의 말에 금월방주가 입을 닫고 당태세를 쳐다보았다. 당태세는 벽이 뚫어지라 한 곳을 응시하며 이를 부드득 갈고 있었다.

“짧게, 어디에 누가 있는지만 말하라.”

장철오의 입은 마치 주문이라도 걸린 듯 벌어지며 짧게 움직였다.

“산동 제남. 충룡문!”

“좋아.”

“하남 개봉, 구봉문!”

“그리고.”

“호광 무창에 견정문, 호광 장사에 영우문!”

“호광에 둘. 그리고?”

“강남… 소주에 동성문 항주에 백룡문이 있는데 이들이 제일 청에 귀부를 열심히 한 자들입니다.”

“그래. 또.”

“섬서성 서안에 포일문.”

“포일문주 진계량이 섬서 사람이었지. 사형문은?”

“사형문은 원래 호광 악주에 있다가 청 팔기의 명으로 사천으로 옮겨갔다 들었습니다.”

“무슨 소리냐?”

장철오는 천장을 보며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더니 손뼉을 짝 치며 말을 이었다.

“문주께서 깨어나지 않으실 적에, 장헌충이 사천의 모든 군사를 모아 청에 대항하였는데…. 팔기가 계속 압박해오자 광증이 돌아 사천의 사람들을 깡그리 도륙하고 자신도 죽었다고 합니다.”

“뭐?”

“사천에 살아있는 사람이 없어서 지금 조정에서 호광으로 사람들을 계속 보내고 있는 실정이지요.”

당태세는 자기도 모르게 표정을 풀고 멍한 얼굴로 장철오를 바라보았다. 지금 세상은 자신이 아는 세상과 판이하게 다른 것이었다.

청에게 도륙당한 게 아니라 청을 막던 이가 성의 사람들을 다 죽이다니. 멍하니 앉아있던 당태세는 겨우 입을 닫고 장철오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일까지 이것들을 종이에 표로 써서 줄 수 있겠느냐?”

“알겠습니다. 문주…. 진실로 복수행에 나서실 요량이십니까?”

장철오가 조심스레 묻자 당태세는 마룻바닥을 멍하니 응시하다가 넋을 잃은 듯 말했다.

“……내가 몸담았던 문파는 멸문 당했고 내가 살던 나라는 이미 망하였다.”

“문주.”

“그리고 나는 같은 깃발아래 대의명분을 믿는다는 이들을 모았다가 모든 것을 잃었다.”

노인의 침잠되었던 눈동자에 다시 불길이 맴돌았다. 입이 벌어지고 송곳니가 드러났다.

“내가 배신자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후회와 고통뿐이다. 부처의 자비와 공자의 인의는 내가 줄 것이 아니다!”

“문주.”

“가는 길 하나만 얻을 수 있다면 그 다음부터는 내가 뚫고 나가겠다.”

금월방주 장철오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비는 제가 준비하겠습니다! 어찌 목숨도 아닌 돈을 아끼겠습니까. 제가 넉넉하게 준비하겠습니다.”

당태세가 돈 이야기가 나오자 말이 빨라진 장철오를 보며 피식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아무리 옛 정이 있어도 지금 장철오는 한 방회의 방주인 것이다.

가장 쉬운 일처리가 돈으로 해결하는 것쯤이라는 건 이제 그도 알고도 남았다. 그런 나이 그런 세월이 된 터였다.

“다른 건 필요 없고 아룡만 내게 붙여라.”

“네? 누구요? 아룡?”

장철오가 한참동안 머리를 갸웃대더니 눈을 깜박였다. 그제야 누군지 알아챈 장철오의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그놈을 대체 뭐에 쓰시려는 겁니까? 아무짝에 쓸모없는 것을…….”

노인은 슬쩍 뒤의 문을 노려보더니 다시 장철오을 바라보았다.

“그 놈이 아륙을 죽인 것을 아느냐?”

순간 장철오의 눈이 사발만 해 지는데, 당태세는 그 모습을 보더니 소리를 죽여 다시 말했다.

“그 놈은 근본이 쓰레기새끼다. 나랑 돌아다니다 같이 죽어도 너에게 일절 손해가 아닐 거다.”

“막 되어먹은 놈은 맞습니다. 그래서 그런 놈을 붙여 드리기가…….”

“네가 손해 봐서는 안 될 놈을 달라는 말이다.”

장철오는 한숨을 쉬었다. 늙은 문주에게 짐을 떠맡긴다는 자책인지 자기 손에 피를 안 묻히고 쓰레기를 치운다는 안도감인지 알 수 없는 태도였다. 당태세는 다 되었다는 듯 크게 머리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키려다가 문득 뭔가 생각났는지 다시 장철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지막 부탁 하나만 더 하자.”

“말씀하십시오.”

대답이 끝나자마자 당태세는 품 안에서 상부방도가 가지고 다녔던 단도를 꺼내 내밀었다. 장철오가 무슨 뜻인지를 몰라 눈을 끔벅이며 당태세를 바라보는데 당태세는 오른 손으로 자신의 뒷머리를 잡아 보이며 웃어보였다.

“네가 밀어다오.”

사내의 입은 웃고 있었지만 번뜩이는 눈은 결코 즐거워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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