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견마지로-11화 (11/226)

11. 상부방(3)

역발산기개세라, 산을 우려 뺄 힘과 세상을 뒤엎을 기운을 가졌다는 이 말이 지금의 상부방주 만큼 어울리는 사람도 없었다.

돌진하는 모습은 고삐 풀린 황소 같고 한 자루 낭아봉에 맺힌 힘은 천하를 두 쪽 낼 기세인데 정작 그 앞에 서서 낭아봉을 받아야 하는 이는 목발에 의지한 늙은 절름발이 노인이었다.

땅을 긁으면서 불똥을 튀기던 낭아봉이 번쩍 위로 들리며 노인의 머리를 향해 유성처럼 떨어지니, 행여 스치기만 해도 뇌수와 육편이 사방으로 튀고도 남을 것 같았다.

“타!”

괴상한 기합이 상부방조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하지만 백발노인은 슬쩍 자신이 짚고 있던 목발을 들더니 손으로 잡는 손잡이를 들어 올려 머리로 떨어지는 낭아봉을 기묘하게 틀면서 막아내었다.

상부방조의 눈이 뒤집히며 떨어지는 낭아봉을 채 올려 아래에서 위로 무시무시한 타격을 가했다. 하지만 이타(二打)역시 노인의 목발에 슬쩍 튕겨나며 옆으로 밀려날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력(神力)을 무시할 수는 없는지 낭아봉을 받아낸 노인의 몸이 비틀대며 뒤로 밀려나왔다. 절뚝거리는 오른발을 디디며 눈살을 찌푸리는 것이 아무래도 오래 버티지는 못할성 싶었다.

“흠씬 두들겨 가죽을 편 뒤에 의자에 곰 가죽 대신 깔아주마!”

상부방주가 몸을 날리며 두 손으로 낭아봉을 잡고 팔방(八方)으로 낭아봉을 휘두르며 노인을 강타하였다.

한 대라도 맞으면 뼈가 부서지고 가죽이 터져나갈 맹격이 숨 쉴 틈 없이 쇄도했다. 낭아봉이 만들어내는 바람이 누각 안을 가득 메울 지경이었다.

그러나 궁여지책으로 방패대신 목발을 들고 거한의 공격을 힘겹게 막아내는 절름발이 노인은 어찌어찌 용케 목발로 낭아봉을 빗겨 막으며 간발의 차이로 뿌리치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씩 낭아봉의 기세에 노인은 뒤로 밀려나고 있었고 상부방주는 이를 악물고 있으면서도 잇새로 비릿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이대로 구석에 밀어 넣고 육포로 만들어주겠다!”

결국 당태세의 등이 뒤에 닿았다. 상부방주의 눈이 번득였다.

거한의 두 손에 잡힌 낭아봉이 허공에서 춤을 추다 번개가 되어 당태세의 머리를 향해 떨어졌다. 상부방주의 전력이 담긴 일격은 차마 눈으로 좇을 수도 없을 만큼 빨랐다.

그 순간, 상부방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신의 낭아봉이 분명 늙은 절름발이의 머리를 박살내고 몸뚱어리까지 납작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낭아봉이 노인이 발치 아래로 뚝 떨어져 있었다.

그것도 사정없이 땅에 처박힌 것도 아니고 사뿐히 소리도 없이 마룻바닥에 낭아봉이 놓인 것이었다.

“이제야 좀 수가 보이는구나.”

“뭐?”

중얼대는 당태세의 독백에 상부방주가 눈을 껌벅이며 대꾸했지만 당태세는 상부방주와 말을 섞을 생각이 없는지 계속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목괴(木拐)로 기를 돌리는 게 쉬운 일은 아니구먼.”

“뭐라고?”

당태세는 눈썹을 모으더니 뭔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묘리가 있어. 재미가 있다.”

상부방주의 눈빛이 바뀌었다. 순간 사내의 두 손이 낭아봉을 놓는 것과 동시에 양 옆구리에 차고 있는 번득이는 단도에 닿았다.

당태세의 눈이 가늘어지며 단도를 뽑아드는 상부방주의 오른손을 치며 옆으로 돌아갔다.

상부방주가 왼손을 뻗으며 당태세의 목을 노렸다. 순간, 당태세의 목발이 들어오는 상부방주의 손목을 위로 쳐 올리는 것과 동시에 당태세의 몸이 아래로 내려갔다.

순간 목발과 상부방주의 손이 얽히는가 싶더니만 육중한 상부방주의 두 발이 허공으로 뜨더니 당태세의 목발을 축으로 허공에서 한 바퀴 공중제비를 하였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상부방주의 몸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입에서 기묘한 비명이 흘러나왔다.

이미 상부방주의 왼손은 목발 사이에서 기묘하게 꺾인 지 오래였다. 당태세가 츳하니 혀 차는 소리를 내었다.

“시끄러우면 들키지 않느냐.”

당태세는 재빨리 떨어진 상부방주의 단도를 집어 들고 상부방주의 목을 찍었다. 창졸간에 일어난 일에 상부방주는 소리 한번 질러보지도 못한 채 그대로 절명해버렸다.

당태세는 그제야 몸을 바로 세우다가 인상을 쓰며 자신의 오른다리를 움켜쥐었다.

무릎 아래로는 얼얼하니 감각이 없었고 허벅지위로 끊어질 것 같은 통증이 올라왔다. 아무래도 짧은 시간 몸을 움직이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하오문 넷을 잡는데 시간을 이리…….”

침울하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것도 잠시, 당태세는 상부방주의 단도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다른 상부방도들의 칼과는 달리 흑단 자루에 은박이 상감되어 있는 꽤나 공들인 물건이었다.

당태세는 상부방주의 단도 두 자루를 챙겨 조용히 방을 가로질러 나왔다.

넓은 방은 조용하니 고즈넉하기만 한데 여기저기 누운 채 움직이지 않는 상부방주와 사대천왕들의 시신이 사위를 을씨년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당태세는 슬쩍 땀을 닦고 나무문을 살짝 열고는 몸을 밖으로 빼내었다.

“대체 무슨 소리요?”

순간 당태세의 앞에서 소리가 들렸다.

자신을 삼층까지 인도했던 상부방도와 다른 이들이 계단을 메우고 있었다. 당태세는 슬쩍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문을 닫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손을 내저었다.

“방주님이 화가 나셨네. 내가 한 게 아니야! 안에 있는 세 사람하고 뭔가 틀어지셨나보네.”

“뭐요?”

“아이구…저 가시 잔뜩 돋은 몽둥이를 가지고 막 내리치시는데…말도 제대로 못 해보고 쫓겨났으니. 이를 어찌한단 말인가?”

“그게 무슨 말이야?

상부방도 중 누군가가 계단 위로 올라와 당태세를 밀어젖히고 들어가려는 순간, 뒤에 서 있던 사내 하나가 들어가려는 상부방도의 어깨를 잡더니 고개를 조용히 흔들었다.

사내는 귓속말처럼 목소리를 낮춰 동료에게 중얼거렸다.

“또 개 같은 성질 나왔다. 그냥 다 내려가자고.”

“그래그래. 조용히 내려가. 엄한 우리가 머리 깨진다고.”

상부방도들이 일순간 자기들끼리 두런대며 다시 계단을 내려갈 채비를 하자 당태세가 자신을 데려온 상부방도를 보며 다급하게 물었다.

“여보시게! 나는 어찌하나? 지금 거래를 터야 하는데 이렇게 쫓겨나면 어쩌라는 게야?”

“어……노사. 많이 화가 나신게요?”

“무서워서 도망 나왔네! 지금은 조용하구먼! 화가 풀리신 겐가?”

노인이 다시 문고리를 잡으려 하자 상부방도가 고개를 저으며 노인의 손을 잡아끌었다.

“어허, 이 양반 묫자리를 사방에 알아보고 다니시나? 오늘은 그냥 돌아가시오. 내가 나중에 방주님 화가 풀리면 다시 오라고 말을 전해주겠소이다. 어디 나가서 잠시 술이라도 한 잔 하고 계시는 것이 어떻소?”

“허이구 바쁜데…….”

“미안하게 되었소! 오늘만 날이오? 어차피 우리하고 거래를 할 거 아니오?”

당태세가 사내의 말을 듣더니 내키지 않은 표정으로 그를 따라 내려오다가 슬쩍 사내의 얼굴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이것도 인연인데 내 자네에게는 한턱 내야 하지 않겠는가? 나중에 거래가 끝나면 챙겨주는 것은 별도로 하고, 내 술 한 잔을 사기로 함세.”

“그거 정말이오?”

갑자기 상부방도는 뜻하지 않은 건수를 만났다는 듯 헤벌쭉 입이 벌어졌다.

***

“대체 어디까지 가서 술을 산다는 게요. 이거 너무 멀리 나왔는걸?”

벌써 중천에 떠 있던 해는 서쪽으로 뉘엿뉘엿 넘어가는데, 강줄기와 멀리 보이는 바닷물은 금색으로 물들어 햇살을 반짝이고 있었다. 당태세는 물끄러미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사람들도 하나 둘 자신의 보금자리를 찾아가거나 일을 마무리하는데, 당태세와 상부방도 두 사람은 외진 포구의 무너진 건물 근처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상부방도가 힐끗 노인을 쳐다보며 불안한 어조로 물었다.

“이보시오. 대체 무슨 꿍꿍이요? 술 산다는 건 거짓말이지?”

“돈 좀 다오.”

“뭐요?”

“낙조를 보면서 나 혼자 한 잔 해야겠다.”

“이봐 노인네, 미쳤어? 지금 뭐 하자는 거냐?”

당태세는 대답대신 손을 들어 상부방도의 입을 막더니 슬쩍 품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대신 더 좋은 걸 주지.”

상부방도는 노인의 품 안에서 나온 물건을 뚫어지라 쳐다보았다.

노인의 손아귀에는 흑단 자루에 은상감이 되어 있는 단도 두 자루가 잡혀 있었다. 한참동안 그 물건을 바라보던 상부방도는 고개를 갸웃대더니 당태세를 다시 쳐다보았다.

“이게 뭔데? 이걸 나더러 가지라…….”

순간, 상부방도의 입이 떡하니 멈추더니 눈이 다시 단도에 가 멈추었다.

사내의 커진 눈과 벌어진 입이 닫힐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상부방도는 입을 뻐끔거리며 당태세에게 천천히 시선을 맞추는데 목발에 의지한 채 벽에 기대어 바다를 보던 노인은 사내에게 시선 한 번 주지 않고 조용히 말했다.

“상부방주와 사대천왕은 내 손에 죽었다.”

“저, 저, 네…네…네네…이놈….”

눈이 둥그레진 채 한참동안 머리와 손과 발이 따로따로 움직이던 상부방도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옆구리에 찼던 단도를 뽑아 들었다. 당태세의 눈이 슬쩍 사내를 향했다.

“쓸데없는 짓 말고 받아라.”

“주… 죽어!”

그 순간, 사내의 단도를 든 손이 뻗기도 전에 노인의 목발이 날아와 사내의 손을 올려쳤다. 순간 단도가 허공으로 날았다.

멍하니 빈손을 바라보는 상부방도의 앞에 어느새 목발을 짚은 사내의 오른손이 다가오더니 그대로 활짝 편 장(掌)이 되어 사내의 어깨와 가슴팍을 가볍게 후려쳤다.

헉하는 소리와 함께 전신의 힘이 빠진 사내가 허수아비 무너지듯 그대로 풀썩 뒤로 고꾸라졌다.

자신의 공격에 맥을 못 추고 그대로 널브러진 상부방도를 보며 당태세는 흐트러진 회색 머리카락을 위로 넘겼다. 상부방도의 독 오른 눈빛이 당태세를 노려보았다.

“개처럼 죽을 테냐, 개처럼 살 테냐?”

“주…… 죽여라! 안 그러면 내가 널 죽일 것이다!”

“쓸데없는 소리.”

당태세는 물끄러미 상부방도를 보다가 툭하니 사내의 가슴팍 위에 단도 두 개를 내던졌다.

“이 단도들을 가지고 금월방을 찾아가라. 일어난 일을 말해주면 금월방에서 너를 거둘 것이다.”

“……너는 금월방에서 보낸 사람이냐?”

“너도 이제 금월방 사람이다.”

“뭐가 어째?”

“나를 삼층에 들여보낸 게 누구였느냐?”

땅바닥에 누워있던 상부방도는 입을 다물었다.

표독하던 눈매가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당태세를 고개를 끄덕이더니 목발로 슬쩍 사내의 몸을 이리저리 누르기 시작했다.

“아끼는 아이들을 데리고 금월방에 들어가라. 칼을 들고 선봉에 서서 동명각을 뺏으면 그 공이 높겠지. 두목 없는 방회는 오합지졸이나 다름없으니 쉽게 이길 것이다.”

“이 늙은이…….”

“내가 대접 톡톡히 한다고 하지 않았느냐.”

순간, 목발이 사내의 왼쪽 옆구리에 뭔가를 찍더니 휘휘 목발에 걸어서 위로 올려버렸다. 사내의 전대가 당태세의 목발을 쥔 오른 손으로 올라갔다. 당태세가 쩔럭거리는 소리를 듣더니만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밤엔 술 한 잔 해야겠다. 내일은 동명각의 주인이 바뀌려나.”

“이… 이보시오! 노사! 아니, 노대협! 진짜…… 진짜 내가 그리하면 살 수 있는 것이오? 금월방에서 나를 가만히 두고 볼 것 같소?”

“아까 보니 네놈 말 잘하더구나.”

노인은 목발을 짚고 뚜벅뚜벅 선창의 나무판자를 밟으며 길을 걷기 시작했다.

노인이 가는 길을 누워서 바라보던 사내는 몸을 뒤집어 일어나서 노인의 등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내는 자신의 손아래 떨어진 두 자루의 단도로 이내 시선을 옮기더니 화급하게 두 자루 단도를 품 안에 쑤셔 넣었다.

한참동안 당태세의 뒤를 바라보던 사내가 뭔가를 결심한 듯 몸을 일으켜 당태세가 가는 방향과 반대쪽으로 몸을 날려 뛰기 시작했다. 당태세는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앞으로 비단 옷은 입지 말아야겠구먼.”

기러기 하나가 저녁 바닷가로 날아가며 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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