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상부방(2)
상부방의 본청으로 쓰고 있는 동명각은 시원시원하게 덧창을 떼어 놓아 건물의 안까지 햇살이 밝게 들어왔다. 음침할 것 같은 하오문 방파의 본거지치고는 색다른 구조였다.
상부방도를 앞세우고 목발을 짚으며 뚜벅뚜벅 들어가는 당태세의 앞을 막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부에는 똑같은 복색의 사람들로 가득했다.
모두가 하류임을 내세우기 위해서인지 머리를 기르고 변발은 한 자는 보이지 않았는데 하나같이 웃통을 벗어던지고 검은 비갑이나 가죽조끼를 입고 허리에는 한자 길이의 단도를 차고 있었다.
게다가 여럿은 얼굴과 팔에 먹실로 무늬를 넣어 자신들이 범인과 다르다는 표식을 하고 있었다.
당태세는 목발을 짚고 전각의 위로 올라가며 옷 안쪽에 자신이 차고 들어온 단도의 감촉을 느꼈다.
말이 하오문이지만 이 정도 인원에게 사방에서 습격을 당한다면 초패왕이 들어온다 해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방주께서는 삼층각에 계시오.”
그를 인도하던 상부방도가 당태세를 일층에서 멈추게 하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지금 노사의 용건을 먼저 방주께 전하고 올 것이오. 노사의 용건을 들을지 말지는 오직 방주님의 의사에 따른 것이오. 그러니 이곳에서 방주님의 말씀을 못 들었다 해서 섭섭하게 생각하거나 거래가 끊어졌다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방주님을 못 뵙고 가면 우리 배들은 어찌 된단 말이오?”
조금 전까지 부두에서 서로 으르고 으르렁대던 상부방도는 제 딴에는 당태세를 자기가 모시고 온 손님이라 여기는지 다른 이들 앞에서 체면을 세워주려고 애쓰는 중이었다.
“걱정하지 마시오, 노사! 노사 정도의 물량이면 우리 쪽에서도 그리 소홀하게 처리하지 않을 것이니 방주께서 직접 나가지 못하더라도 사대천왕이 직접 관여해서 일을 마무리 지어줄 것입니다.”
“사대천왕?”
당태세가 실소가 터져 나오는 것을 꾹 참고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자 상부방도는 고개를 근엄하게 끄덕였다.
“우리 상부방에서 방주님 다음가는 위세와 무위를 지닌 인물들이지요. 비록 지금은 한 석이 공석이지만 그들의 배분이면 노사께서 이 포구를 맘대로 통과하시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을 것입니다.”
“그거 참 고맙기 그지없구먼. 내 이번 거래가 잘 되면 대협께 톡톡히 대접을 하리다.”
당태세의 말을 들은 사내가 저절로 입이 헤벌쭉해지더니만 부리나케 이층으로 뛰어올라갔다.
혼자 남은 당태세는 슬쩍 의자를 가져와 그 위에 걸터앉으며 다리를 쉬었다.
아무리 나무와 가죽 끈으로 받치고 동여매었다 하더라도 뒤틀린 발을 계속 땅에 대고 있자니 오른 다리 전체가 저리고 허리까지 아팠다.
사내는 목발에 기댄 채 천천히 전각의 모습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계단은 한쪽에만 붙어있어 삼층까지 이어진 계단들이 아래에서 모두 보일 지경이었다. 각 층의 규모는 비슷한 규모일 터였지만 올라갈수록 머무는 사람의 수는 적을 것 같았다.
아래층에 머무는 사람들은 위층으로 올라가는 일이 극히 드물었다. 상부방은 하오문치고 위계와 서열이 상당히 엄격해 보였다.
이층과 삼층으로 올라가는 통로는 커다란 계단이 전부이고 다른 출입문은 보이지 않았다. 올라간 길로 내려와야 했다. 당태세는 눈을 찌푸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두 발이 멀쩡할 때라면 삼층부터 일층까지 내려오면서 모두 도륙을 하는 방법도 생각해 봤을 터였다.
하지만 그건 젊은 시절 이야기였고, 젊다 해도 실패할 확률이 더 높은 경우였다.
어찌한다.
당태세는 강호에서 정도문파의 협객으로 사는 길을 걸어왔지 살수(殺手)의 도(道)를 접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갈 길을 정한 지금은 협객보다는 살수의 길을 걸어야 함이 옳았다.
당태세의 머릿속이 차가워지며 생각이 정리되었다.
조금 뒤면 올라가거나 올라가지 못할 경우의 수를 상정해야 했다. 올라갈 경우는 단순했고, 올라가지 못하고 돌아갈 경우라면 다음 기회를 노려야 할 것이었다. 이도저도 안 되면 상부방이 금월방을 습격한 것처럼 방주가 나올 때 급습을 해 버리는 수밖에 없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오시지요!”
그를 데려온 상부방도의 목소리와 함께 당태세는 정신이 들었다. 목발을 짚고 계단을 천천히 올라가는 순간 많은 이들이 그의 움직임을 눈동자로 좇았다.
당태세는 이층을 지나 곧장 삼층으로 인도되었는데, 이층은 보아하니 배분 있는 자들의 숙소로 사용되는 곳 같았다. 삼층의 문은 붉은색으로 칠해져 있는 두꺼운 나무문으로 되어 있는데 상부방도는 그 앞에서 천천히 쇠고리를 두들겼다.
안에서 이윽고 퉁퉁 소리가 울려 퍼지자 상부방도는 고개를 끄덕이며 당태세를 쳐다보았다.
“지금 방주께서 두령들과 같이 계시니 잘 말씀하시지요. 전 내려갈 테니 좀 있다 뵙겠습니다.”
“고맙소.”
당태세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 나무문이 열렸다. 인도해준 상부방도는 화들짝 놀라며 자신의 모습이 행여 눈에 띌 세라 부리나케 계단을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당태세의 앞에서 열린 문 안으로 삼층의 내부가 보였다. 문의 맞은편에 곰 가죽을 깔아놓은 커다란 의자와 그 의자에 앉아있는 사내가 보였다.
“어서 들어오라.”
문을 열어준 사내가 퉁명스레 말했다. 당태세는 목발을 짚으며 일부러 더욱 절뚝거리면서 안으로 들어섰다. 당태세의 뒤에서 문이 닫혔다.
“그래, 네가 나와 이야기를 해 보겠다는 늙은이냐?”
곰 가죽을 깔아놓은 의자에 앉은 이는 비둔한 몸집을 가진 거한(巨漢)이었다.
튀어나온 배나 늘어진 몸을 봐서는 전혀 날렵해 보이지 않았지만 의자 옆에 세워 둔 낭아봉(狼牙棒)을 보아하니 꽤나 완력은 있는 듯 보였다. 당태세는 그 앞에서 손을 모으고 공손히 말하였다.
“북경에서 온 왕모라 하옵니다.”
“소개는 되었다. 네가 우리 포구에 물건을 들여놓는다지? 그것도 꽤 많이?”
“배 세 척에서 내리는데 각각이 백 필은 되는 포목들입니다. 모두 상등품이지요.”
“우리에게 얼마나 주겠다고?”
눈을 게슴츠레 뜨고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는 상부방주는 당태세의 신상이나 거래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보였고 오직 돈에만 집중하는 위인이었다. 반쯤 감은 눈에서도 탐욕이 그득한 것이 느껴질 지경이었다.
“원래는 1할을 주기로 되어 있었는데…제가 계약한 이들이 모두 포구에서 사라졌지 뭡니까요.”
당태세의 대답에 상부방주가 슬쩍 무거운 눈꺼풀을 치켜 올리며 되물었다.
“계약? 누구와 계약을 하였느냐?”
“맨 처음에는…이름이…아, 금월방이었나 했던 것 같은데…어디론지 다 없어져 버렸습니다.”
순간 뒤에서 껄껄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당태세의 등 뒤로 세 명의 사내가 작은 평상에 앉아 있었는데 모두 건장해 보이는 것이 아래층에서 말한 ‘사대천왕’들인 모양이었다.
그 중 한 명의 걸걸한 목소리를 시작으로 사대천왕이 당태세를 둘러싸고 이죽대기 시작했다.
“이보시오 노인장, 금월방은 금명간에 사라질 것이니 그 계약은 헛수고가 되었소이다.”
“우리를 놔두고 엉뚱한 곳에서 계약을 했구먼.”
“그래도 부처님의 은덕이 있었나 보네. 조금만 빨리 왔으면 칼 맞을 뻔 하였수.”
“무슨 소리요? 칼 맞을 뻔 하다니?”
당태세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뒤를 돌아보자 앞에 앉아있던 상부방주가 두툼한 손을 들어보였다.
“금월방은 우리와 포구를 차지하려고 한바탕 싸움을 벌였던 방회지. 그쪽 손님이었으면 노사도 화를 당했을 거란 말이오. 하지만 이제 그곳은 지리멸렬 망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야. 이젠 우리가 이 포구를 지배하거든?”
“금월방도 규모가 꽤 된다 하였는데 그들이 모두 망했단 말입니까?”
당태세의 말에 상부방주가 푸푸거리며 기묘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모두 오합지졸들이니까. 개중에 우리 상부방의 무위를 받아낼 자는 아무도 없어. 아, 금월방주는 조금 예외로 하지. 그 놈은 우리 사대천왕 중 한 명을 없앴거든.”
슬쩍 상부방주가 자세를 고쳐 앉았다. 사내의 게슴츠레한 눈에 슬쩍 붉은 기운이 감돌았다.
“하지만 그 빚은 조만간 받을 거야. 이번에는 우리 모두가 그놈을 잡으러 갈 예정이거든. 어차피 늙은이 자네 입장에서는 우리 상부방만 기억하면 되는 거야.”
당태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나는 상부방만 기억하면 되겠지. 어차피 길게 기억할 이름은 아니겠네만.”
상부방주가 무슨 소리냐는 듯 눈을 껌벅이는데, 당태세는 상부방주에게서 등을 돌리더니 저벅저벅 뒤를 향하였다.
사천왕들이 당태세를 보며 무슨 일이냐는 듯 보고 있는데 당태세는 문을 슬쩍 만져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소리가 밖으로 나가진 않으렷다.”
“어이, 늙은이, 지금 뭐 하는 거냐?”
당태세가 몸을 뒤로 돌렸을 때, 방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목발을 짚은 늙은이의 차가운 비웃음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당태세의 가느다랗게 변한 눈동자가 사람들을 죽 둘러보았다.
“하늘 높이가 참 낮구나. 보잘것없는 천왕이 넷이나 된다니.”
당테세의 옆에 있던 건장한 사대천왕 중 하나의 눈빛이 달라졌다.
이 방에 모인 사내 중 가장 눈치가 빠른 자였다. 하지만 그 순간 당태세의 목발이 번개처럼 수평으로 움직이며 사내의 울대를 강타해버렸다. 순간 컥 하는 소리와 함께 사내의 호흡이 끊겼다.
사람들의 눈이 화등잔처럼 커졌다.
모여 있던 사람들이 채 자세를 잡기 전에 당태세의 몸이 먼저 움직였다. 땅을 박차고 질풍처럼 움직이는 노인의 모습은 말 그대로 귀기(鬼氣)가 서려있었다.
“막아!”
상부방주의 말이 떨어지는 것과 무섭게 앞에 있던 키 큰 사대천왕이 칼을 뽑아들고 당태세의 앞을 가로막았다.
순간 당태세의 왼손이 칼을 뽑아든 손을 휘감더니 사대천왕의 손목을 꺾어버리는 것과 동시에 상대편이 들고 있던 칼을 그대로 배에 박아 넣어버렸다.
흐억하는 바람 빠지는 소리가 사대천왕의 입에서 새어나오면서 무릎이 풀썩 꺾였다.
사대천왕의 무릎이 땅에 닿기 전, 당태세는 상대의 잡은 손을 풀며 다리를 벌리고 몸을 낮추었다.
그리고 목발을 두 손으로 잡고 삽으로 땅을 퍼내듯 목발의 끝을 어깨 뒤로 넘겨 찌르는 동작이 물 흐르듯 이어졌다.
퍽하는 소리와 함께 뒤에서 당태세를 쫓아오던 사대천왕의 어깨가 목발에 맞아 휘청거렸다.
그 와 동시에 당태세의 왼발이 바닥을 찍으며 뒤에 서 있는 사대천왕에게 붙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옆구리에 차고 있던 칼날은 빛을 발하며 어느새 당태세의 왼손에 들려 있었다.
엉거주춤하니 서 있던 마지막 사대천왕은 비명하나 지를 새도 없이 그대로 옆으로 짚더미가 넘어가듯 쓰러졌다. 이미 사내의 가슴팍은 길게 혈흔이 새겨진 뒤였다.
“하오문의 무공은 정저지와(井底之蛙: 우물안 개구리)라 생각했는데.”
당태세가 단도에 묻은 피를 털고 다시 품 안으로 넣었다.
“이건 개구리에 비할 바도 못 되는군.”
상부방의 ‘사대천왕’들은 모두 당태세가 헤아린 동선(動線)대로 몸을 움직였고, 당태세는 대비한 계책을 충실하게 이행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수(手)와 선(先)과 선(線)을 읽지 못하는 범인의 눈에는 그저 세상을 초월한 고수의 무위일 수밖에 없었다.
당태세가 다시 몸을 돌려 상부방주를 바라보는데, 그 회색 머리카락 아래 서늘하게 빛나는 눈동자는 보는 것만으로도 전의를 상실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상부방주는 눈을 깜박이며 천천히 몸을 커다란 의자에서 일으켰다. 최소한 한 방회의 두목이 가질 수 있는 배짱은 타고 난 듯 보였다.
“금월방에서 보냈느냐?”
상부방주가 낭아봉을 한손으로 쥐면서 이를 부드득 갈았다. 하지만 당태세는 그 모습을 보더니 히죽 실웃음을 남기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금월방에 네 목을 보내주마.”
당태세의 표정을 보고 대답을 들은 상부방주가 눈이 뒤집혀 이를 드러내었다.
사내는 두 손으로 낭아봉을 움켜쥐더니 당태세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바닥에 끌리는 낭아봉에 나뭇조각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죽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