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견마지로-9화 (9/226)

9. 상부방(1)

지금까지 사람이 사람과 충돌하기 위해서는 대의명분이라는 것이 있어야만 했다.

정도문파라는 곳의 문주였다는 이가 대의명분을 저버린다는 것은 지금까지 살면서 쌓아올린 것을 모두 내다버린다는 말이나 다를 것이 없었다.

문파끼리 갈등이 시작되면 두 문파에 속하지 않은 이를 초빙하여 중재로 내세운다. 그 자가 문파의 장을 같이 모아놓고 차를 마시며 갈등을 중재한다. 그곳에서 갈등이 풀리지 않으면 대표를 내세워 비무를 벌인다. 대부분은 이곳에서 모든 것이 해결된다.

그것이 성 안에 담을 두른 사람들끼리 분쟁을 해결하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하오문의 계투(械鬪)는 문파의 갈등과는 전혀 달랐다.

하오문의 싸움은 영역의 싸움이었다. 개나 고양이의 싸움과 대동소이했다.

일단 누구든 타 방파의 영역에 들어간다는 것은 목숨을 내건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였고, 그 안으로 칼을 가지고 들어간다는 것은 곧 생사결을 벌이겠다는 의지였고, 누가 하나 달아나거나 죽어야 끝날 일이었다.

당태세 역시 그런 하오문의 법도에 대해서는 들은 바 있었다. 이미 금월방과 상부방은 서로 하나가 없어지기 전까지는 계속되는 항쟁을 이어갈 터였다.

‘상대 방주를 칠 정도라면 그 쪽도 각오는 했을 터.’

마음을 다잡자 발걸음이 빨라졌다. 상부방에 대한 개인적인 원한은 없었다.

하지만 상부방을 치겠다는 생각은 예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생각이었다. 그때가 언제였는지는 모르지만 상부방은 그가 정신을 차린 다음에 다가온 실질적인 위협이었다.

아마 아룡이 순순히 끌려가지 않았더라면 침상에 누워있던 그는 상부방 삼인조에게 그대로 난자당해 생을 마감했을 터였다.

“세상은 모든 것이 얽혀 있으니”

눈살을 찌푸린 채 목발을 짚고 뚜벅뚜벅 걸어가던 당태세는 이내 포구의 선창가에 도달하였다.

작지 않은 강의 연안에 붙어있는 포구는 조금만 강줄기를 타고 나가면 바로 바닷가로 나가는 물길이 뚫려 있었으니 이곳은 강이면서도 바다의 항구나 마찬가지인 곳이었다. 선창가도 소박한 동네에 비교하여 널찍하니 규모가 상당해 보였다.

왜 이 작은 동네에 하오문이 두 개나 생겨나서 피 튀기는 싸움을 하고 있는지 그제야 알 수 있었다. 당태세는 선창가 주변을 둘러보면서 어디가 파란 지붕을 이고 있는 하역장인지를 찾고 있었다. 그때 선창가의 주민들이 옆으로 슬쩍 다가왔다.

“이보시오, 노사. 지금 어디 가는 길이시오?”

“내가 청색 기와가 올라간 하역장을 찾고 있습니다만….”

당태세의 답에 말을 걸었던 사내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어버렸다.

“아니, 그곳은 왜 가시려고 하는 겁니까? 노사?”

“왜요? 가면 안 되는 곳이기 라도 하오?”

“당연한 거 아닙니까? 게다가 노사같이 번듯하니 차려입고 몸도 불편하신 분이라면 그런 아귀같은 놈들이 들끓는 곳에 가시면 안 됩니다. 신체 건장한 사내들도 여럿이 몰려다니지 않으면 이내 옷도 빼앗기고 목숨까지 위험한 곳이 그곳이란 말입니다!”

당태세의 말에 사내는 정색했다. 그제야 당태세는 자신이 금월방주 장철오가 자신을 위해 지어 준 비단옷을 그대로 입고 나온 것을 발견했다.

게다가 최근에 머리와 터럭까지 단정하게 매만지고 새 지팡이까지 짚고 나왔으니 어느 대가집의 노인으로 보는 것도 당연한 것이었다.

“노사가 말씀하시는 곳은 저 동명각(銅明閣)이 맞을 겁니다요. 이 근방에 파란색 비슷한 기와를 얹은 곳은 저 곳 외에는 없습지요.”

사내는 슬쩍 턱으로 당태세가 가는 곳의 옆 건물을 가리키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창고들이 즐비한 골목 가운데 삼층 누각으로 높이 올라간 녹청 기와 건물이 보였다.

아마 맨 처음 지어질 때는 구리로 기와를 올리고 비를 맞아 푸른 녹이 슨 것이 분명해 보였다.

“예전에는 저 곳이 이곳 회운강의 수운을 주관하던 대부호가 살던 곳이었는데……지금은 어디서 굴러먹던 놈들인지 강바닥의 하류(下流)란 하류들이 다 몰려와서 저 곳에 복마전(伏魔殿)을 만들어놨습지요. 지나가던 행상과 배와 아낙네들을 납치해서 돈을 뜯고 온갖 행악을 다 저지르고 주변 상회들을 다 등쳐먹는데… 답이 없습니다.”

사내는 여기까지 말을 하고는 갯벌에 침을 뱉었다. 다행히도 상부방은 토박이들에게 어지간히 미움을 받는 곳인 듯 보였다. 당태세는 그나마 마음속의 짐을 조금 내려놓는 기분이었다.

“저런, 그렇다면 관(官)에서는 아무 일도 하지 않소?”

“관? 팔기 놈들 말씀이오? 사람들 머리나 밀어대고 잘라내는 것들이지 우리 삶에 관심이나 있나. 노사도 아실 것 아니오. 이런 촌구석 포구까지 올 놈들도 아니고.”

“그건 그렇지…….”

“하여간 가지 마십시오. 행여라도 무슨 볼일이 있으시다면 저쪽 애들하고 통하는 사람들을 대동하십시오. 난 경고드렸소.”

사내는 나타날 때와 마찬가지로 허위허위 제 갈 길을 가버리는데 딴에는 이런 일에 엮이고 싶지 않다는 행동처럼 보였다.

사내가 멀어지자 당태세는 사내가 가르쳐 준 길을 따라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당태세는 곧 자신이 움직일 때 큰 실수를 한 것을 깨달았다.

단정한 외모에 비단옷이라니. 이것은 문주의 격이지 하오문에 쳐들어갈 때의 복장은 아닌 것이다. 쓸데없는 시선을 받기에 더할 나위 없었다. 사내는 잠시 눈살을 찌푸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모처럼 차려 입었으면 옷에 걸맞게 움직여야겠지.”

당태세는 목발을 짚고 동명각이라 부르는 커다란 전각 옆을 기웃거렸다.

하오문이 장악한 부두라고 해도 그곳에서 생업에 매진하는 사람은 당연히 있는 법, 작고 초라한 건물들이긴 해도 포구에 인접한 시장은 늘 붐비는 법이었다.

당태세는 사람들이 보라는 듯 일부러 목발을 또각또각 소리 내면서도 고개를 치켜들고 슬쩍 주변을 돌아보니 다들 고만고만한 포구의 사람들 사이에서도 당태세의 행색은 유독 눈에 잘 띄었다.

“노사, 뭔가 찾으시는 물건이 있습니까? 한 번 둘러보시지요!”

상인들이 여기저기에서 말을 붙였지만 당태세는 슬쩍 손을 내저으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닐세, 내 잠깐 볼 일이 있어 이 부두에 왔는데 시간이 남아 구경하는 것뿐일세.”

당태세는 여남은 가게를 돌 때마다 같은 소리를 하며 돌아다니는데 비단옷을 입은 절름발이 노인이 두리번대며 사방을 둘러보는 모습은 이내 포구에서 다 알아볼 정도였다.

슬쩍 여기저기에서 웃통에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검은 비갑을 입은 사내들이 몸을 일으켰다. 당태세가 슬쩍 그들을 보며 발걸음을 포구 쪽으로 옮겼다.

상부방도가 분명해 보이는 사람 몇 명이 호기심 반 탐욕 반으로 당태세의 뒤에 붙자 상인들은 슬쩍 말을 얼버무리며 뒤로 사라졌다.

당태세는 아는지 모르는지 포구 앞에서 물건을 내리는 무리 앞에서 큰 소리로 외쳤다.

“말 좀 물어보겠네. 이 포구에서 하역을 담당하는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

일하던 사람들 중 덩치 큰 사내가 불쑥 머리를 세우더니 당태세를 쳐다보았다.

“내가 이곳의 장(長)이온데 노사는 누구시오?”

“내가 오늘 이 포구로 중선 세 척에 포목을 싣고 들어올 거래를 하였는데 그 짐이 녹록치 않고 부리는데 꽤나 사람이 많이 쓰일 것이네. 그 하역비와 물건을 싣고 갈 수레들을 계산하고 싶네. 그걸 그대에게 말하면 되겠는가?”

순간, 덩치 큰 사내는 슬쩍 눈살을 찌푸리더니 당태세를 쳐다보았다. 엄밀히 말하면 당태세가 아니라 당태세 뒤에 있는 상부방도들을 바라본 것이었다. 사내는 입맛을 다시더니 손가락으로 당태세의 뒤를 가리켰다.

“그런 일이라면 내가 아니라 저 뒤의 사내들에게 말해보시오. 나는 하역만을 담당합니다.”

“뭐라고?”

당태세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뒤를 돌아보는데, 어느새 서너 명의 상부방도들이 당태세가 하던 소리를 듣고 팔짱을 낀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보쇼, 노사. 보아하니 어디 있는 집안의 청지기라도 되는 모양인데 돈 되는 이야기라면 우리하고 합시다.”

“그대들은 누군가? 하역하는 사람은 이 쪽에 있는 것 같은데?”

“이 포구에 나고 드는 배와 그 배에서 나오는 물건들은 모두 우리 상부방이 관할하오. 배가 세 척이나 들어온다면 당연히 상부방에 알려야 하는 거요. 저기서 일하는 놈들하고 말을 나눌 것이 아니라 말이지.”

개중 배분이 높아 보이는 상부방도가 퉁을 놓자 당태세도 슬쩍 인상을 쓰며 말했다.

“아니, 이 포구에 들어오는 물산을 모두 상부방이라는 곳에서 관리한단 말인가? 내 이곳이 관(官)의 간섭이 덜하다고 해서 일부러 골라서 포목을 들여온 것인데 어찌 상부방이라는 곳이 관의 일을 대신한단 말인가?”

노인이 싫은 티를 역력하게 내보이자 상부방도도 점잖은 낯을 버리고 슬슬 말을 험하게 하기 시작했다.

“싫으면 배를 다시 돌려서 다른 데로 가시구려. 만주족에게 세금 내는 건 싫으면서 같은 한족끼리 돈 오가는 것도 싫다는 거야?”

“대체 얼마를 내라는 것인가?”

“그건 우리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알아서 정할 거요.”

당태세의 눈썹이 슬쩍 올라갔다.

“아니, 아무리 하역이 짐에 따라 값이 달라진다고 하지만 어떻게 기준도 없이 돈을 내라고 한단 말인가? 상부방주께서 이 일을 알고 계시는가? 상부방주를 만나서 가격을 정해야겠네!”

노인의 항의를 들은 상부방도도 눈살을 찌푸리고 목소리를 깔기 시작했다.

“지금 어디서 방주님 운운하는 거냐? 늙은이! 네가 함부로 입에 올릴 분이 아니시다. 목발을 두개 짚고 다녀야 정신을 차리겠느냐?”

그때였다. 당태세의 눈초리가 위로 올라가며 이마에 주름이 확 그어졌다. 주름 잡힌 얼굴에 엄정한 빛이 감돌더니만 상부방도는 흉내도 못 낼 정도로 착 가라앉은 목소리가 몸통을 울리면서 뻗어 나왔다.

“잘 들어라. 나는 장사꾼으로 평생을 살면서 네놈들은 구경도 못했을 온갖 파란을 몸으로 부딪혀 겪은 사람이다. 당장 상부방주께 안내해라. 그렇지 않다면 이 포구에서 나에게 말을 건 것을 평생 후회하게 해주마.”

그와 동시에 노인의 온몸에서 강맹한 기운이 감돌며 살기까지 퍼져 나오는데 상부방도 중 맨 뒤에 있던 심약한 녀석은 자기도 모르게 뒤로 몇 걸음 물러서며 얼굴이 해쓱하게 변할 지경이었다.

늙은 장사꾼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다기에는 믿기 힘든 기백이었다.

맨 앞에서 당태세와 말을 섞었던 이도 안색은 진배없이 하얀 색이었지만 그나마 개중에서는 제일 나은 뱃심을 가지고 있었다.

상부방도는 딱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는 입을 애써 열더니 잘 움직이지도 않는 혀를 놀리며 체면을 세우려고 애썼다.

“이…이 놈의 늙은이가 주, 죽으려고 작정을 했느냐? 어, 어디라고 네가 함부로 말을 하느냐?”

“그러지 말고 상부방주께 인사를 드리게 해 주시게. 그리하면 내가 따로 톡톡히 인사를 함세.”

순간 노인을 둘러싸던 흉폭한 기운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상부방도는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고 당태세를 쳐다보았다.

희한한 일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아래로 내려다보며 아무 말이나 막 던질 수 있던 노인이 지금은 차마 눈도 못 마주칠 지경이었다.

상부방도는 연신 입맛을 다시며 마른 입술을 축이더니 큰 맘 먹었다는 듯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래! 나중에 사례는 확실하게 하는 거야? 엉? 거 노사가 우리 집 늙은이랑 비슷한 연배니까 특별히… 그래! 특별히 봐 주는 거야! 알겠어?”

“고맙소. 춘부장께서 꽤 젊으신 모양이구먼.”

“아 시끄럽고…따, 따라오시오!”

당태세의 앞에서 사내들이 길라잡이가 되어 길을 트며 앞으로 나갔다. 당태세는 표정을 갈무리하고는 그들의 뒤를 따라 녹청 기와가 덮여있는 삼층 누각을 향해 걸어갔다.

동명각이라는 거대한 현판이 당태세의 눈앞에 들어왔다. 앞장서 가던 사내의 외침이 들렸다.

“문을 열어라! 방주님께 손님을 모셔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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