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견마지로-7화 (7/226)

7. 금월방(6)

삭월(朔月)의 하늘에는 수많은 별무리가 달 없는 하늘을 대신 채우고 있는데 그를 바라보는 노인의 침상 위에는 작은 술잔 하나만 남아있었다.

술잔 속 하늘. 동그랗고 작은 하늘은 위에 수놓인 편만한 별들을 모두 담으려고 애썼지만 이내 주름 많은 손이 하늘에 파문을 만들어 별들을 쫓아내었다.

당태세는 촛불 하나 켜지 않은 어두운 방 안에서 묵묵히 술을 마시고 있었다.

비단으로 된 옷을 갖춰 입고 안락한 침상이 구비된 방 안에 앉아있었다.

포구의 언덕 위에 올라가 있는 단출하면서도 깨끗한 집은 혼자 기거하기에 알맞았고, 날씨가 좋을 때에는 포구를 따라 이어져 있는 갯벌 너머의 바닷가가 훤히 보이는 위치였다.

금월방주 장철오가 남들 몰래 마련해 준 새 거처였다. 지난 몇 년간 묵었던 허물어진 창고에 비하면 극락이나 마찬가지인 곳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서 홀로 독작하며 밤하늘을 바라보는 당태세의 얼굴은 처참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사내의 머릿속에는 장철오가 해 준 이야기가 환청처럼 계속 맴돌고 있었다.

“오삼계가 청나라 팔기를 앞세워 황도에 도착했을 때 나머지 팔대문파는 그대로 청나라에 귀부하였습니다. 그들은 이자성 군에 편입되는 척하면서 다시 팔기군을 받아들이는데 앞장섰지요.”

당태세는 장철오가 해 준 이야기를 곱씹고 또 곱씹는 중이었다.

“이자성을 몰아내는 데 앞장선 것도 그들입니다. 팔대문파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무위를 인정받았지요. 모두가 황도에서 떠나가는 대신 혜택을 받았습니다. 팔기(八旗)의 관직을 받은 이도 있고 상급을 받은 이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모두가 원래 문파가 뿌리를 이룬 곳으로 돌아가 성민들을 감찰하는 조건으로 말입니다.”

“청(淸)의 명을 받아 명(明)의 백성들을 감시한다고?”

“문주, 이제 명은 없습니다.”

당태세의 생각이 끊겼다.

하늘의 별들이 깜박이며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사람들에게 확인시켰다.

장철오의 말이 옳다는 것을 당태세도 알고 있었다. 당태세에게 명나라의 멸망은 어저께의 일이지만 장철오에게는 십 년이 한참 지난 전의 이야기였다.

당태세는 슬쩍 자신의 머리를 만져보았다. 풍성한 머리카락이 손가락 사이로 만져졌다. 이젠 이것도 십칠 년 전의 구습(舊習)인 모양이었다.

“이젠 문주께서는 걱정 마시고 지난날의 근심을 잊으십시오. 이제 산동에서 제가 모시겠습니다. 지금까지의 고통을 어찌 잊으시겠습니까만 남은 날들은 복락을 누리셔야 할 것 아닙니까.”

복락(福樂)이라. 당태세의 입술이 히죽 올라갔지만 거기까지였다.

사내는 술잔을 내려놓고 주먹을 꽉 쥐여보았다.

이제는 손과 주먹에 어느 정도 힘이 붙었고, 조금만 더 수련하면 예전의 기량을 회복하진 못해도 어느 정도 만족할 수준까지는 가능할 터였다.

시간이 지났어도 계속 연마를 하게 되면 사람의 육신은 그만큼 반응할 수 있다는 것이 당태세의 지론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번 상부방 삼인조와의 검결 때도 느꼈던 것이었다.

“사람의 육신은 한계가 있을지언정 시간을 늦출 수는 있으니…….”

당태세는 거기까지 말하다가 갑자기 입을 닫았다. 사내의 눈이 갑자기 깜박이더니만 이윽고 어둠 속에서 맹렬한 안광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자기도 모르게 으르렁대던 입이 열렸다.

“사람의 포한(抱恨)이 어찌 시간에 좌우된단 말이냐!”

사내의 이가 부드득 갈리고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모든 것을 잃은 것이 어제 같은데 정작 배신을 한 원수 놈들은 십 년이 넘게 복락을 누리고 있단 말 아닌가!

“어찌 그냥 둔단 말이냐!”

사내는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서다 비틀대며 침상을 잡았다. 날카로운 오른발의 고통이 사내의 정신을 맑게 만들었다. 하지만 사내의 이글대는 눈동자는 변한 것이 없었다.

나라는 망했지만 원수는 남았다.

그렇다면 사내가 할 일은 오직 하나 아니냐. 당태세의 입이 나직이 열렸다.

“군자보구 십년불만(君子報仇 十年不晩)”

군자의 복수는 십년이 걸려도 늦지 않다 하였다.

그 말이 맞는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그것 외에는 없지 않느냐.

문파를 망가뜨리고 혈육을 죽이고 육신을 상하게 한 자들이 백주에 횡행하며 돌아다닌다면 남은 자의 선택은 단 하나 아니겠는가.

복수다. 복수로다. 복수를 해야 한다. 하지만 이대로 입술을 깨물어 피를 내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니.

그때였다. 누군가의 기척이 다가오고 있었다. 당태세는 옆구리에 찬 단도를 만져보고는 슬쩍 자세를 바꿔 문을 향하였다.

밖에서 있던 사람이 문을 다섯 번 두드렸다. 그제야 당태세는 자세를 바로잡으며 문을 향해 말하였다.

“들어오게 금월방주.”

조용히 문이 열리며 금월방주 장철오가 들어왔다. 어두운 방안에 흠칫 놀라는 그였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 당태세의 앞에 가 무릎을 꿇는데 그 충절은 십 여 년이 지난 지금이나 그때나 변한 것이 없어보였다.

“무슨 일인가.”

“아룡 그 녀석을 잡았습니다.”

“그래?”

장철오는 입맛을 다시더니 다시 말하였다.

“다른 곳으로 가겠답시고 포구를 얼쩡대다가 우리 애들에게 잡혔더군요. 일단은 사지를 꽁꽁 묶어 창고 안에 넣어두라 하였습니다. 당장 해치울까 하다가 그래도 그 놈이 문주님을 모시고 있던 공로가 있으니…….”

“그 놈에게 내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니겠지?”

장철오는 고개를 저었다.

“문주님에 대한 상황은 알지 못합니다.”

“내가 지금 여기 온 것을 아는 이 역시 아무도 없으렷다?”

“네.”

“내가 상부방의 자객들을 해치운 것 역시 아무도 모르겠지?”

장철오가 슬쩍 헛웃음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방도들은 모두 제가 단칼에 세 명을 해치운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편이 낫기도 하고요. 아마 상부방에도 그렇게 소문이 난 모양입니다.”

당태세도 장철오의 말이 일리 있다 여겼다. 어차피 작은 포구의 이권을 둘러싸고 싸움이 벌어진다면 이쪽의 무력이 상당하다는 인식이 있어야 했다.

예전 문파들의 경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비무를 가장한 세싸움은 북경 여기저기에서 벌어지기 마련이었고, 어디서든 드세고 강인하다는 인상을 주는 이들이 주도권을 잡는 법이었다.

하물며 칼을 빼 들고 피를 보는 하오문의 인생에서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것을 보고하러 온 것이냐?”

“그 문제도 있사옵고…….”

“또?”

장철오는 당태세 앞에서 신중하게 말을 고르는 듯싶더니만 이내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문주께서는 어찌 하실지 결정을 내리셨습니까?”

“복수를 할 것이다.”

장철오의 말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당태세의 대답이 튀어나왔다. 늙은 협객의 눈은 땅이 아닌 하늘의 별을 바라보았다.

“내 십칠 년 허망한 인생의 보상이 아니다. 어찌 하늘 아래 비겁함으로 인생의 낙을 산 자들이 천수를 누리게 한단 말이냐. 하늘이 십칠 년을 즐겁게 살게 두었으니, 사람인 내가 빚을 받아야겠다.”

“문주님.”

“내 공부가 세월에 빛바랜 지 오래지만 이대로 저들의 행각을 묵과하며 살 생각은 전혀 없다.”

“홀로 무엇을 하신단 말씀이십니까? 팔대문파가 아무리 청 팔기의 간섭을 받아 세력이 약해졌다지만 여전히 그들을 따르는 이들은 남아 있고 세력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문주께서 아무리 만부부당의 무공을 지니셨더라도 이제 한쪽 다리도 쓰지 못하시고 나이도 있으시니…….”

“너와 금월방은 내 생각을 어찌 보느냐?”

지금까지 절절하게 충심을 피력하던 금월방주의 입이 갑자기 닫혔다. 한참동안 말이 없던 금월방주 장철오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금월방의…방도들은…모두…이 곳의 토박이라…다른…다른 지역의 일에 관여. 아니, 이곳을 벗어나는 것을 생각도 해 본 적이 없으나 명을 내리신다면…충심으로 받들겠사오나, 그러니 저기….”

“어렵겠다는 말이구나.”

“아니, 그것이 아니오라…….”

“아니다. 네가 젊은이도 아니지 않느냐. 무슨 말인지는 알겠다. 어차피 나 혼자 짊어질 일 아니더냐.”

“그럼 저라도 문주를 따라 나서리까?”

이번에는 당태세의 입이 닫혔다. 그러자 오히려 좌불안석이 된 것은 금월방주 장철오였다.

사내는 고개를 죽 뺐다 넣었다 땅을 보고 다시 당태세를 보기를 수차례 하는데 마치 그 모습이 안절부절 못하는 강아지 같았다. 당태세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 어찌 이제와 너에게 그런 일을 명하리. 내가 너에게 그런 일을 말하는 것이 과욕이겠구나.”

“문주!”

순간 장철오는 당태세의 이가 별빛에 하얗게 보였다고 생각했다.

“너는 오늘 부로 순천문에서 파문이다.”

장철오의 입이 떡 벌어졌다.

“네? 문주님!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입 다물고 듣거라. 대신 내 십칠 년간 너에게 받은 그동안의 은혜는 갚으려 한다.”

순간 알 수 없는 살기에 등줄기가 오싹하게 움츠려든 장철오의 앞으로 당태세가 고개를 숙이며 내려다보았다. 어두운 방 안에서도 사내의 눈동자가 번득이는 것이 느껴졌다.

장철오는 새삼스럽게 순천문주 당태세의 별호가 무엇인지 떠올랐다.

귀린갈(鬼燐蠍) 당태세.

태양 아래에서도 어둠 속에서도 한 번 찍히면, 목숨으로 사죄를 해야 한다는 순천문의 효웅(梟雄). 장철오의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하, 하명 하옵소서!”

“내가 필요한 것을 준비해 줄 수 있겠느냐?”

“필요하신 게 있다면 말씀만 하십시오. 바로 올리겠습니다.”

당태세는 결의에 찬 장철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복수행에 가담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심정이 한결 가벼워진 것 같았다. 당태세는 잠시 생각하다가 마지막 부탁을 하였다.

“그리고 그 아룡이라는 놈 말이야.”

***

“살려주시오!”

아룡의 목소리는 입에 물려놓은 재갈 덕분에 제대로 나오지도 않았다. 손은 뒤로 묶여 있고 발도 기둥에 단단히 묶어 놓아 옴짝달싹도 하지 않았다.

창고 안은 퀴퀴한 냄새가 진동을 하는데 볕 하나 들어오지 않았다. 이미 눈까지 묶여 있어 대체 이곳이 어디인지 감도 오지 않았다.

“이게 무슨 꼴이야! 내가! 이 무두리님이 무슨 꼴이냐고!”

장대가가 칼 하나로 상부방 세 명을 눈 깜짝할 사이에 해치울 수 있었다는 걸 아룡은 알지 못했다. 장대가를 과소평가한 자신의 실수였다.

‘그 정도 호걸이었으니 나를 부려먹었던 것이지! 내가 주인을 잘못 선택한 것이 아니다!’

아룡은 자신의 처지를 살펴줬던 장대가의 용모를 기억해내려 애썼다. 아륙과 함께 자신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어줬던 장대가의 풍모를 기억해내려 힘썼다. 그 정도의 도량과 무위가 있었으니 지금의 금월방이 존재했던 것 아니랴!

그 때 상부방 놈의 감언이설에 넘어가지 않았더라면 자신은 아직까지 금월방의 충신으로 자리할 수 있었을 터였다.

간악한 상부방 놈들! 잘 죽었다! 날 이간질한 놈들의 최후에 걸맞는구나!

아룡은 어서 이곳에서 풀려나면 장대가 앞에서 자신의 결백함을 읍소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잠시의 유혹에 빠진 것을 사내답게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면 천하영웅 장대가가 자신을 용서해 주실 것이기 때문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아룡은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그 때였다. 뭔가가 자신의 손을 물고 지나간 것 같았다. 순간 아룡은 소름이 좍 끼쳤다. 이렇게 옴짝달싹 못하게 되었을 때 산채로 쥐에게 파먹히면 어찌 되는가 싶은 공포감이 전신을 휘감았다. 사내는 다시 온몸을 구불거리며 큰 소리로 외쳤다.

“사람 살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았다. 창고 안은 쥐죽은 듯 고요하기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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