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견마지로-6화 (6/226)

6. 금월방(5)

금월방주 장철오는 말없이 식탁에 앉아있었다.

파란 채소와 함께 볶아온 돼지고기의 냄새가 작은 방안을 감싸고돌았다. 식탁 위에는 백주도 하나 놓여있었다. 백주 옆에는 잔이 두 개 나란히 준비되어 있었지만 장철오는 잔에 손도 대지 않았다.

그리고 안주도 이제 조만간 떨어질성 싶었다.

볶아온 돼지고기는 거의 두 근에 가까울 정도였지만 이미 쌓여있던 돼지고기의 태반은 노인의 뱃속에 들어간 뒤였다. 앞에 앉은 노인은 고기를 가져오자 쉬지도 않고 젓가락질만 하고 있었다.

“이제 좀 살겠군.”

조금 뒤, 젓가락을 내려놓은 노인이 술잔을 입에 털어 넣고는 짧게 한숨을 쉬며 히죽 웃음을 지어보였다.

장철오는 노인이 웃는 모습을 보자 슬쩍 같이 미소를 지었다가 화급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노인은 잠시 입맛을 다시더니 장철오를 불렀다.

“금월방주.”

“네! 문주님.”

“한 잔하게. 언제까지 그렇게 있을 텐가.”

노인의 손에 술병이 잡히자 금월방주 장철오는 번개처럼 두 손을 뻗어 잔을 잡고 술을 받았다.

술잔을 잡은 손이 덜덜덜 떨렸다. 잔을 받은 사내는 한 번 더 고개를 숙이고 잔을 받았는데 술을 마시는 건지 흠향을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노인, 순천문주 당태세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더니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세월이 많이 흐른 게지? 예전 순천문의 소혈작(小血雀) 장철오는 어디가고 이제는 나이 먹은 금월방주가 남아있으니.”

“……이제 저는 소혈작이 아니라 뇌정팔비(雷霆八臂) 장철오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당태세가 장철오의 말을 듣자 히죽 웃음을 지으며 술잔을 입에 가져갔다.

“그래, 그 정도 별호는 되어야 한 방의 방주가 되지 않겠는가. 그래도 순천문이 배출한 방파 아닌가.”

“황송합니다.”

당태세는 미소를 머금은 채 술잔을 내려놓았다.

사내의 눈은 자신의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돼지고기를 먹기 전, 사내는 자신의 손톱과 발톱을 단검으로 깎은 뒤였다. 사내는 그렇게 손발톱이 길도록 누워 있었던 적이 없었다.

입을 굳게 다물었던 사내가 옛 부하에게 입을 열었다.

“뭣 좀 물어보자.”

“말씀하십시오. 문주님.”

“내가 몇 년을 누워 있었느냐?”

차분한 당태세의 목소리와는 달리 당태세의 눈동자에는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것들이 들어있었다.

노인은 의문과 기쁨과 서러움과 놀라움을 비롯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칠정육욕의 모든 것을 짧은 물음에 다 담았는데, 당태세는 자신이 입을 열어놓고도 채 감정을 추스를 수 없었는지 입술을 부르르 떨고는 다시 잔을 입에 가져갔다.

장철오는 당태세를 바라보며 입을 악물었다.

“십 년 하고도 칠 년이 지났습니다.”

“십칠 년.”

“네.”

십칠 년, 십칠 년.

당태세가 술잔을 든 채로 멍하니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되뇌었다.

십칠 년이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사내의 눈이 껌벅이며 사방을 훑어보는데 그 모습이 영락없이 장터에서 어미를 잃은 아이와 같았다.

당태세의 눈이 천정을 바라보다 다시 장철오의 주름 많고 흉터투성이인 얼굴을 바라보았다. 당태세는 물끄러미 늙은 문도를 보더니만 한숨을 내쉬었다.

“너도 머리를 밀었구나.”

“문주.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지금 나라가…….”

“명이 망하고 청이 중원을 차지했느냐?”

장철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문주! 그것을 어찌 아셨습니까?”

“꿈결 속에서 선녀가 말해주었다.”

장철오가 경이로운 눈으로 당태세를 바라보는데 당태세는 길게 울음 같은 탄식을 바닥에 쏟아내었다.

흐느낌처럼 이어지던 깊은 한숨은 이내 목 막힘이 되어 사내가 인상을 쓰며 자신의 입을 굳게 다무는데, 가슴속에서 터져 나오던 것이 딸꾹질처럼 울려 사내의 어깨가 들썩거렸다.

장철오는 차마 그 모습을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바라보았다.

“황제께서는 어찌 되셨느냐.”

“성이 함락되던 날 목을 매셨습니다.”

“여기가 어디냐?”

“이곳은 산동 청주입니다.”

당태세는 비틀대며 벌떡 몸을 일으키더니만 그대로 앞으로 주저앉으며 서쪽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한쪽 다리를 절름대면서도 몸을 일으켜 세 번 절을 한 당태세는 마지막 절을 할 때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주먹을 꽉 쥐고는 부르르 몸을 흔들었다.

사내의 어깨가 다시 들썩거리기 시작했고, 장철오는 가만히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다시 당태세가 몸을 일으키고 옷을 털고 자리에 앉았다.

사내는 말없이 잔에 술을 따라 한 잔을 마시더니만 젖은 눈을 껌벅이며 입을 굳게 다물었다. 장철오는 그런 사내의 표정을 보며 슬쩍 자세를 바로잡았다.

예전 수많은 문도들 앞에서 훈화하던 시절의 순천문주의 기백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금월당주.”

“예, 문주님!”

“옆으로 오게나. 그동안 겪은 일에 대해 말을 해주었으면 한다.”

사내는 술병을 들고 금월당주를 보고 있었다.

***

“문주께서도 아시겠지만 십칠 년 전 사월 스무닷새에 역도 이자성이 황도로 쳐들어와 황궁을 포위하였지 않습니까. 그 때 문주께서는 황성 위에서 그들을 바라보며 대오를 정리하셨지요.”

장철오의 말에 당태세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북에서는 청나라가 산해관을 두들기고, 남에서는 역도가 황성을 포위하니 어찌 일개 백성이지만 협행을 하던 자가 그대로 남아 칼을 받으리. 그래서 우리들이 뭉친 것 아니더냐.”

“보국구대문파맹(保國九大門派盟) 말씀이지요?”

장철오의 말에 당태세가 고개를 끄덕였다.

“황도에서 가장 세력이 크고 황실의 은혜를 받았다고 자부하던 아홉 개의 문파가 문하를 모두 이끌고 황성의 문을 금군과 같이 지켰다. 아무리 틈장(闖將)인 이자성도 구대문파에 정면으로 맞설 수는 없었으니까. 성 바깥이 깨져도 폐하가 계시는 황성은 부서지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당태세의 말이 거기서 끊겼다. 사내는 눈살을 찌푸리고 이마에 주름을 한껏 잡다가 다시 장철오를 돌아보았다.

“철오. 너는 누가 배신자인지 알겠구나. 구대문파 중에 누가 배신자인지 말이다.”

“문주님.”

“그놈들이 안에서 내통하고 벽을 부수고 황성의 문을 열어주었어.”

“문주님.”

“그리고 나와 우리 순천문을 사방에서 기습했지. 내가 기억나는 것이 거기까지다. 누군가가 반역이라고 소리 지르던 때까지가 내 기억이란 말이다. 장철오. 너도 거기 있었으니 기억나지 않느냐?”

“……기억납니다.”

“소패취(小覇鷲) 금월준과 청월학사(靑月學士) 정경소, 철비준(鐵飛駿) 유함명이 너와 같이 내 아래에 서 있던 것을 기억한다. 너는 듣고 보았을 것이다. 대체 우리를 급습한 문파가 어디였느냐?”

“여덟 문파 전부였습니다.”

“뭐?”

“그리고 문주를 기습한 것은 철비준 유함명입니다.”

휘둥그레진 당태세의 눈이 닫힐 줄을 몰랐다.

술잔을 기울이고 있던 당태세의 손이 허공에 멈추었고, 술잔의 술이 그대로 땅바닥으로 줄줄 쏟아졌다. 장철오는 눈을 질끈 감고 이를 악물었다.

“이미 다른 여덟 문파는 이자성의 격서를 전날 받은 뒤에 모두 투항하기로 결정을 한 뒤였습니다. 그때 문주께서는 유함명의 창을 등에 맞으시고 무너지는 성벽 아래로 굴러 떨어지셨습니다. 그것을 신호로 황성의 성벽이 폭약에 의해 붕괴되며 성문이 열렸지요.”

당태세는 슬쩍 왼손을 뻗어 자신의 가슴 언저리를 만져보았다. 오른쪽 가슴의 상처부터 아래로 이어진 기다란 상처자국이 사내의 손을 타고 느껴졌다. 장철오의 말은 계속되었다.

“황성이 무너지자 황제께서는 후원으로 올라가셔서 그곳에서 목을 매고 자진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겨우 성벽 아래에서 일어나 돌 틈 사이에 끼어있는 문주님을 빼낸 뒤 흙더미 속에 숨어 있다가 다음 날 새벽에 그곳을 빠져나왔지요.”

당태세가 이를 악물었다. 장철오는 슬쩍 당태세의 표정을 보다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

“그러다가 오삼계 장군이 청에 투항하고 산해관이 뚫리자 청의 팔기군이 성난 파도처럼 밀려들어왔습니다. 이자성이 당할 수가 없었지요. 청의 대한(大汗)은 그 날로 황성을 점거하고 자신의 황성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이 강산은 청(淸)의 강역이 되었지요. 문주께서 의식을 잃으시고 황제께서 붕어하신 그 날, 명은 망했다고 봐야합니다. 그게 벌써 십칠 년 전의 일이올습니다.”

“……국적 이자성이 나라를 빼앗지 못한 것이 다행일런가.”

당태세는 다시 술잔을 기울였다. 메마른 사내의 넋두리를 듣고 있던 장철오는 슬쩍 눈치를 보더니 자신의 술잔을 앞으로 가져오며 나직하게 말했다.

“어찌하여 가족의 일을 묻지 않으십니까.”

“……둥지가 부서졌는데 알이 깨지지 않을 리 없다.”

장철오는 말없이 술을 들이켰다.

연거푸 세잔을 들이킨 장철오는 다시 눈을 질끈 감고 시(詩)를 읊듯, 부(賦)를 쓰듯 조용하면서도 끊어지지 않는 사연을 말하였다.

“소문주 철운적우(鐵雲赤雨) 당운천은 문주님이 창을 맞고 쓰러지시는 것을 본 뒤 눈이 뒤집혀 문도들을 이끌고 여덟 문주들과 일전을 벌였습니다. 황성의 앞마당에서 붉은 성루를 뒤에 등지고 여덟 문주들과 한 합씩을 주고받으며 그야말로 영걸처럼 싸웠지요. 하지만 결국 힘이 다해 그만 십여 군데의 창상과 도상을 입고 그 자리에서 순절(殉節)해 버렸습니다.”

당태세는 술잔을 입에 가져가며 눈을 질끈 감았다.

“소문주가 죽고 문주님의 생사가 불명하니 그 날로 순천문은 멸문지화를 입었지요. 청월학사와 소패취는 그 자리에서 죽었습니다. 저 역시 밀려드는 이자성 군과 그 뒤를 이어 달려온 팔기군을 피하여 제 고향인 산동까지 흘러온 것이지요. 그 때 사모께서 저와 함께 해 주셨습니다. 사모께서는 이곳에서 근 십년 넘게 문주님을 보필하였지요.”

당태세는 술을 목으로 넘기고는 술잔을 딱하고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감은 눈을 뜰 수 없었다.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귀를 막고 싶었지만 귀는 막을 수 없었기에 장철오의 말을 고스란히 들을 수밖에 없었다.

“사모님은 강단이 있으셨지요. 문주님 숨이 붙어있으시니 언젠가는 기력을 차리실 거라 하셨지요. 매일 손발을 구부리고 등창이 안 나게 문주님의 몸을 돌리며 닦아주시는 게 일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오년 전 산동에 역질이 돌았을 적에…….”

“그만.”

당태세는 주먹을 쥐고 있었다.

두 사내는 말이 없었다. 작은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이 이제 붉은 빛을 띠고 서산으로 넘어가려는 중이었다. 붉은 햇살을 바라보며 먼저 입을 연 것은 장철오였다.

“팔기가 들어와서 사람들의 머리를 밀었습니다. 안 미는 자는 죽였습니다. 칼도 가지고 다니지 못하였고 팔기에게 조금이라도 대항하려는 자는 그 자리에서 처형했습니다. 저도 여러 번 잡혔다 도망 나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점점 처지는 기울어지고……그나마 제가 순천문에서 배운 것으로 호구지책(糊口之策)을 해결하다 보니 어느새 조그만 포구의 방회를 만들게 되었지요. 재주가 없어 크게 세력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좋은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사모께서 돌아가신 뒤 문주님을 아륙이 모셨습니다. 충직한 놈이었습니다. 점점 처지가 나빠져서 최근에는 문주님을 바닷가 창고 쪽으로 피신시켰습니다만…….”

아륙이었구나.

나를 오 년 동안 계속해서 돌 본 것은 아륙이었구나. 아륙이 내 몸을 굳지 않게 만들고 등창이 안 나게 돌봐준 이였구나.

당태세는 그제야 머리가 차갑게 식는 것을 느꼈다. 십칠 년 전의 이야기를 지금에 와서 반추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지금 나는 오른 발이 부러진 절름발이에 나이도 육십에 가까이 먹은 노추에 지나지 않음인데. 그저 나 같은 놈을 돌보다 죽은 아륙이라는 아이가 내 아들만큼이나 가엽구나.

당태세의 마음은 조금씩 진정되고 있었다. 사내는 한숨을 쉬며 눈을 떴다.

장철오가 그를 바라보았다. 허탈한 표정의 당태세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사내는 술병을 잡았다.

“…세월이라는 것이 흘러 우리가 이렇게 되어 만났구나.”

“송구하옵니다.”

“네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오히려 내가 감사할 뿐이다. 철오.”

술병은 이미 비어 있었지만 취하지 않는 밤이었다. 씁쓸한 미소가 당태세의 입가를 스쳐갔다.

“그래, 나를 배신한 문파들도 결국 같은 처지인 것이냐?”

“아닙니다. 그들은 잘 살고 있습니다.”

순간, 부릅뜬 당태세의 눈동자가 장철오를 죽일 듯 노려보았다.

잠잠하게 가라앉았던 사내의 심정에 천근의 돌이 던져졌다.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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