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견마지로-5화 (5/226)

5. 금월방(4)

아룡의 입이 열리자마자 세 사람은 약속한 듯 서로를 쳐다보더니 아룡에게 다가갔다.

한 사람이 아룡의 허리춤에 있던 단도를 빼내어 내던지고 다른 사내가 아룡을 부축하듯 어깨동무를 하였다. 그리고는 아룡의 뒤에 한 사람이 붙었는데 여차하면 바로 옆과 뒤에서 칼이 들어갈 수 있는 자세였다.

세 사람의 능숙한 자세로 보아 이런 일을 많이 해본 솜씨였다.

“대형, 저 늙은이는 어쩌죠?”

한 사내가 누워있는 당태세를 바라보며 중얼거리자 아룡의 등 뒤에 있던 이가 이죽댔다.

“놔둬라. 칼 맞아 죽는 게 굶어 죽는 것보다 빠른데 우리가 누구 좋으라고 그런 수고를 하냐?”

세 사람은 제멋대로 떠들더니 어깨 사이에 고개를 파묻고 있는 아룡을 데리고 방을 나섰다.

방문이 닫히는 것과 동시에 당태세의 몸이 옆으로 움직이며 고양이처럼 바닥으로 떨어졌다. 당태세는 재빨리 아룡의 칼을 잡고는 문 앞으로 움직였다. 멀어져가는 발소리가 들렸다.

당태세는 자기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천우신조이자 한 번밖에 없는 기회였다.

아룡의 그릇으로 미루어 봤을 때 아룡은 ‘대가’라는 사내가 사는 곳으로 저들을 인도할 것이 분명했다.

자기가 살기 위해서는 부모도 팔아먹을 놈이었고, 같이 먹고 자던 친구를 가차 없이 죽인 놈이다. 대가라고 해서 다를 바가 없었다.

당태세는 그들이 대가를 잡기 전에 먼저 저들을 해치우고 대가를 만나야 했다. 하지만 그 전에 그가 저들 셋을 상대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당태세는 자신의 손에 들린 칼을 바라보았다.

하나, 둘은 가능하겠지만 셋이 가능할 것인가? 허약한 절름발이 노인이 몇 수나 먼저 펼쳐서 상대할 수 있을까?

당태세는 잠시 눈살을 찌푸렸다가 결심한 듯 짧게 읊조렸다.

“그래도 가야겠지.”

당태세는 문을 열었다. 바깥의 바람이 훅하니 당태세의 몸을 휘감았다. 얼마 만에 불어 닥치는 외부의 바람인가.

당태세는 밀려 들어오는 신선하면서도 짠내가 나는 바람에 잠시 정신이 아찔해졌다. 바닷바람의 냄새였다.

이곳은 바닷가거나 강이 바다로 향하는 하구가 틀림없었다.

당태세는 고개를 숙이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넓은 갯벌과 진흙탕이 뒤섞여 이루어진 갯벌 너머로 넓은 강어귀가 보였고 동쪽에는 희미하지만 번득이는 수평선이 보이는 듯하였다.

당태세가 누워있던 곳은 강어귀 아무렇게 지어져 있는 수많은 초옥 중 하나였다. 작지 않은 어촌의 창고들이 분명했다.

당태세는 슬쩍 건물을 짚고 나와 바닥에 찍혀 있는 발자국이 향하는 곳을 돌아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작은 건물 사이로 빠져나가는 시커먼 조끼사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당태세의 비척대는 걸음이 빨라졌다.

사내는 절름대면서 용케 넘어지지 않고 토옥과 초옥의 벽을 잡으며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오른발이 시큰하게 저려왔다. 누워있던 창고 안에서 이렇게 빨리 걸어가 본 적은 없었다.

예전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성큼 대며 걸어갔을 길이 마치 천리 길 만리 길처럼 느껴졌지만, 당태세는 멈추지 않았다.

“제기랄.”

당태세는 저 멀리 진흙길을 걸어가는 네 명의 사내를 바라보며 이를 악물었다. 점점 거리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들은 강어귀에서 조금 떨어진 언덕배기 위쪽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오르막으로 올라간다면 거리는 더 벌어질 것 같았다.

당태세는 다시 발을 디디며 그들을 향해 몸을 틀었다. 그 때, 당태세의 눈에 창고 옆에 세워 놓은 뭔가가 들어왔다.

***

“여기가 확실하냐?”

“예, 대형, 저 곳이 장대가가 있는 집입니다. 아래 아이들이 있지 않습니까?”

검은 옷의 사내는 골목길 사이에 주저앉은 아룡의 어깨를 누르고는 슬쩍 고개를 내밀어 건너편의 작은 주택을 바라보았다.

그나마 이곳에서는 번듯하게 기와를 올려놓은 집인데 창문이 작고 문이 튼튼해 보이는 것이 내부의 방비가 잘 되어 있는 듯 보였다.

그리고 문 앞에는 두 명의 건장한 청년이 서 있었다.

“안의 방비는 어떻게 되어 있냐.”

“네?”

“몇 명 있냐고 이 견자 놈아! 확 여기서 목을 따줄까? 똑바로 말해! 몇 놈이 안에 있어?”

“밖에 두 놈! 안에 두 놈 있습니다! 조금 있으면 한 놈이 밥을 먹으러 나갈 거예요! 대가의 밥을 사오려고 나갈 겁니다!”

아룡은 칼이 자기 몸을 쑤신 듯 사지를 떨면서 아는 사실을 다 털어놓았고, 그들은 한참동안 골목 어귀에서 망을 보다가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집 안에서 한 사내가 나오더니 성내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사내 하나가 아룡을 가리키며 소리죽여 웃었다.

“형님, 이놈 말이 맞는데요?”

“넌 이제 금월방 하기는 다 글렀다. 이 기회에 상부방으로 들어와야겠구만?”

두 사람이 이죽대자 아룡은 눈물을 글썽거리더니 입에 미소를 지어보였다.

“정말입니까? 제 평생의 소원이 상부방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제발! 제발 입방시켜주십시오!”

다시 망을 보던 표독스러운 인상의 사내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입 닥쳐라. 한 사람이 나갔다 해도 앞문의 두 명을 상대해야 해. 야, 견자!”

“네?”

“네가 일 하나만 제대로 처리하면 우리 방주님께 입방을 허락받아주마.”

“뭡니까요?”

“저 문 앞을 막고 있는 금월방 놈들을 다른 곳으로 불러내어라. 저 두 놈만 멀리 떨어뜨려 놓으면 금월방주와 다른 한 놈은 우리 셋이 알아서 처리한다. 알았냐?”

“그것만 하면 됩니까요?”

아룡의 겁먹었던 눈동자가 어느새 제 자리로 돌아왔다. 사내의 오뚝한 코 위의 눈이 기이한 광채를 내기 시작했다.

사내의 표정을 보던 상부방의 사내는 슬쩍 비웃음을 짓더니만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가 통하는 녀석이구만. 좋아. 그럼 한 번 시작해 봐라. 우린 여기서 바로 들어갈 테니!”

***

한편 그들의 뒤 사각에서 두런대는 사내들의 모습과 그들이 바라보는 집을 동시에 조망하는 사내가 하나 있었다.

당태세였다.

사내는 벽 그늘에 주저앉아 아룡을 포함한 넷이 사이좋게 두런대는 모습을 보며 자신의 품 안에 들어있는 단도와 오른쪽 겨드랑이에 끼고 있는 막대를 동시에 돌아보았다.

창고 앞에서 주운 목파(木耙)였다.

보아하니 물건에 흙이 묻지 않도록 창고 앞의 진흙탕을 다지는데 쓰던 물건이었던 듯한데 하도 오래되고 낡아서 흙 고르는 널빤지가 다 닳아버려 버린 듯한 물건이었다.

하지만 그 물건을 거꾸로 들고 겨드랑이에 사이에 끼니 아주 그럴듯한 목발로 쓸 수 있었다.

당태세는 오른손으로 목발을 잡고 허리춤에 단도를 꽂아 언제라도 뽑을 수 있도록 대비하였다. 앞의 넷은 금방이라도 앞에 보이는 작은 가옥을 들이 칠 듯하였다.

‘대체 셋으로 어떻게 저 곳을 친단 말인가?’

당태세가 의아해 하고 있을 때, 아룡이 불쑥 일어나더니만 골목에서 건들대며 나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와 함께 손을 흔들며 번을 서고 있는 두 사내에게 다가가 뭔가 손짓발짓을 하며 세 놈이 숨어 있는 다른 곳을 가리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당태세는 한 눈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를 확인하자 자기도 모르게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세상에 저런 말종이…….”

그 순간, 아룡의 언변에 휘말린 두 사내가 문 앞을 빠져나가 옆으로 돌아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와 함께 세 명의 상부방 사내가 몸을 일으켰다. 당태세도 목발에 의지해 몸을 일으켰다.

더 이상 머리를 쓸 시간이 아니었다. 눈에 띄는 곳으로 몸이 움직여야만 했다.

당태세는 재빨리 목발을 앞으로 뻗으며 몸을 날렸다. 비뚤어진 발을 디디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몸이 앞으로 나갔다.

‘괴창(拐槍)으로 땅을 찍고 한 발로 도약하는 식이 고홍파(孤鴻派)의 진전이었지,’

당태세는 예전에 타문파에서 견식 했던 보법을 시전하여 앞으로 튀어나갔다. 전과는 비교되지 않는 속도로 달려 나가는 사내의 모습은 말 그대로 바람 같았다. 하지만 이미 상부방의 세 살수는 닫혀있는 문을 박차고 집 안으로 쇄도해 들어간 뒤였다.

당태세의 눈이 부릅떠졌다. 안에서 챙챙대는 칼의 부딪침과 사람의 고함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당태세는 앞뒤 가릴 것 없이 열려있는 문을 통해 안으로 돌입했다.

“누구냐!”

“죽어!”

고함이 들렸다. 시간이 없었다.

당태세의 몸이 문 안으로 들어갔다. 피칠갑이 된 오른쪽 벽이 눈에 들어왔고, 하얀 옷을 입고 있던 젊은이 하나가 어깨부터 아래로 붉은 물이 든 채 스르륵 주저앉고 있었다.

소리는 안쪽의 큰 방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순간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한 사내가 배를 움켜쥐고 비틀대며 걸어 나왔다. 검은 배자를 맨살 위에 입고 있던 상부방의 젊은이였다.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무릎을 꿇던 사내의 얼굴이 들리며 바람처럼 달려오는 당태세의 눈을 바라보았다.

단말마의 고통에 빠져 있던 사내의 눈이 경악으로 커지는 순간, 당태세의 목발이 땅을 찍고 왼 무릎이 무릎 꿇은 사내의 머리를 그대로 걷어찼다.

상부방의 사내가 고개를 뒤로 꺾으며 벽에 머리를 부딪쳤다. 당태세는 쓰러진 사내를 쳐다보지도 않고 바로 방 안으로 쇄도해 들어갔다.

두 명의 상부방도가 청의에 은색 자수가 들어간 옷을 입고 있는 중년의 사내와 검투를 벌이는 중이었다.

셋 다 짧은 단도를 휘두르며 접전을 벌이고 있었는데, 중년인의 무위는 두 사람보다 확연히 위에 있어 보였지만 패기와 머릿수로 무장한 상부방의 살수들이 점점 기세를 드높이고 있었다.

당태세는 두 사람을 보더니 아까 자기의 집에서 만났던 가장 흉악해 보이는 인상을 가진 이를 향해 덤벼들었다. 순간, 당태세가 노린 상부방도가 목발 소리를 듣고 휘릭 몸을 뒤집어 당태세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넌 뭐야!”

상부방도의 일갈에 당태세는 대답 대신 목발을 들어 사내의 넓적다리를 찔렀다.

비틀대는 사내의 몸을 향해 당태세가 다가서며 왼쪽 팔꿈치로 사내의 오른 어깨를 찍고 목발로 사내의 얼굴을 때렸다.

그 순간 상부방도는 팔을 들어 목발의 공격을 막더니만 바로 오른손을 앞으로 휘둘렀다. 번쩍이는 단도가 당태세의 앞에서 춤을 추었다.

순간 당태세의 왼손에 들려 있던 단도가 위로 올라오며 떨어지는 상부방도의 단도를 막아내더니만 목발을 놓은 오른손으로 단도를 쥔 사내의 오른팔을 잡았다. 그리고는 온몸을 돌리며 그대로 땅바닥을 향해 몸을 눕혔다.

두둑하는 소리와 함께 사내의 오른팔이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상부방도의 비명이 길게 울려 퍼지는 순간, 당태세의 왼손에 들린 단도가 그대로 상대방의 목을 찍었다.

당태세는 상대방의 죽음을 확인하지 않았다.

그는 그 상태에서 다시 몸을 데구르르 굴러 ‘대가’와 싸우고 있는 마지막 상부방도의 뒤로 굴러 들어가더니만 그대로 단도를 휘둘러 양쪽 허벅지를 순식간에 뒤에서 베어버렸다.

“으악!”

순식간에 자세가 흐트러지며 몸을 움츠리는 상부방도의 머리위로 청의를 입은 대가의 단도가 그대로 내려 꽂혔다.

우당탕 소리와 함께 사내가 그대로 뒤로 넘어갔고 청년의 피가 주저앉은 당태세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비규환의 비명이 울리던 자택이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고맙소. 노사, 누구시오?”

머리 위에서 들린 목소리에 붉게 물든 얼굴을 들어 은색자수의 청의 중년인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당태세는 눈을 끔벅이더니만 피식 이를 드러내었다.

청의 중년인, 속칭 ‘대가’는 그런 당태세를 바라보더니만 다시 한 번 물었다.

“그대는 누구요? 나를 구명해 준 이유라도 있소?”

“장대가 장대가 하더니만…철오, 네가 장대가였느냐?”

청의중년인은 멍한 표정으로 한참동안 당태세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사내의 눈썹이 기이하게 한참을 꿈틀거리더니만 이윽고 눈썹이 위로 치솟으며 눈이 왕방울처럼 휘둥그레졌다. 주름과 흉터가 가득하던 얼굴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하더니 입에서 꺽꺽 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다… 다다…당…, 당문주…문주님?”

“이제 알아보느냐?”

쉬어터진 목소리로 웃으며 대답한 당태세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털썩 무릎을 꿇은 장대가, 장철오의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어리기 시작했다.

“문주님!”

“그래, 철오.”

“네! 문주님! 문주…문주님! 이게…이게 대체…천지신명이시여! 이게 대체….”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네?”

“고기 좀 사와라.”

“네?”

붉은 얼굴 사이로 웃는 낯을 지닌 노인이 번득이는 눈동자로 장철오를 바라보고 있었다.

“돼지고기로 사와라. 배고프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