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금월방(3)
다음날 아침.
잠에서 깬 아룡이 숙취를 이기지 못하고 신음을 흘리자 당태세도 정신을 차렸다.
슬슬 몸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과 동시에 당태세의 몸도 피로함을 느끼고 있었다. 까닭 없이 잠이 오고 온몸이 간지러웠다.
비몽사몽간에 어찌어찌 죽을 쒀서 반은 당태세에게 주고 반은 자기가 먹은 아룡은 해가 중천에 떠오를 때까지 침상에 누워 있다가 겨우 몸을 일으키더니 다시 어디론가 문을 열고 나갔다.
아마 근처의 도박판이라도 기웃거리러 나간 듯싶었다.
당태세는 천천히 두 팔에 힘을 주었다.
지금까지 누워서 심상으로 훈련했던 것처럼 두 팔에 정신을 집중하고 천천히 들어 올려 보았다. 당태세의 두 팔이 천천히 위로 들리더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그의 눈에 들어왔다.
얼마나 지났는지 모를 두 팔은 비쩍 말라 있었고, 길게 자라 구부러진 손톱은 마치 빠싹 말라붙은 나무덩굴 같았다. 아룡은 손발톱까지 잘라주지는 않았다.
사내는 하늘 위로 올라온 두 손을 이리저리 돌려 보고는 다시 손을 아래로 내렸다.
이번에는 배에 힘을 주고 천천히 몸을 일으켜 보았다. 순간 허리와 엉덩이 쪽에 찌릿거리는 통증이 일었다. 당태세는 이를 악물고 다시 팔에 힘을 주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쓰러진 나무토막을 일으켜 세우는 듯한 동작이 작은 침상 위에서 벌어졌다.
오래된 이끼와 흙덩이가 떨어지듯 그동안 흘린 죽 찌꺼기와 피부껍질들이 떨어져 나갔다. 사내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신음이 저절로 새어나왔다.
천천히 왼발이 움직이며 침상 밖으로 움직였다.
그와 함께 두 몸을 지탱하는 두 손이 들리며 사내의 몸뚱이가 드디어 침상 밖의 바닥으로 한 발을 내디뎠다.
되었다.
그 순간, 늙은 사내의 몸이 휘청하며 한쪽으로 기울었다.
왼쪽 발이 땅에 닿았지만 오른 발은 몸을 따라 내려오지 않았다. 순간 늙은 당태세의 몸이 그대로 기울어지며 땅바닥을 향해 머리부터 떨어졌다.
당태세는 자기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고 두 손을 엇걸어 머리 위로 올리며 손바닥과 팔뚝을 얼굴 앞에서 교차시켰다.
쿵하는 소리와 함께 두 손에 얼얼한 충격이 가해졌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머리와 목은 다치지 않은 듯싶었다.
“빌어먹을.”
사내가 처음 뱉은 말은 욕이었다.
그 욕은 기묘한 어조로 쉬어터진 소리가 되어서 입 밖으로 새어나왔다.
사내는 처음으로 말을 내뱉고는 연신 기침을 해대었다. 숨이 넘어가도록 기침을 해댄 당태세는 그제야 자신의 오른발을 바라볼 수 있었다.
오른발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리고 왼발과 달리 오른쪽 발은 기묘하게 무릎 아래부터 틀어져 있었다. 사내는 슬쩍 헤진 바지를 걷어 올리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무릎 아래 다리 쪽은 기묘하게 뒤틀린 채 붙어 있었고 발도 오른쪽으로 틀어져 있었다. 분명 한 번 부러진 채로 그래도 붙어버린 게 분명했다.
당태세는 그제야 자신이 눈을 감기 전 성벽 아래에서 기억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터지는 폭음과 번쩍이는 칼날, 그리고 날카로운 상처의 고통과 발아래에서 무너져 내리던 성벽.
사내는 손을 들어 옷 속을 만져 보았다.
오른쪽 가슴부터 시작된 왼쪽 옆구리까지 울퉁불퉁한 요철이 만져졌다. 당태세는 이를 악물고 다시 몸을 일으켰다. 이번에는 오른쪽 다리에 힘을 주지 않고 천천히 왼다리에 힘을 주며 일어섰다. 사내의 몸이 곧게 펴졌다.
오른 다리에 통증이 오며 무릎 위까지 저린 기운이 올라왔지만 당태세는 굴하지 않고 두 다리를 땅에 대었다. 허리와 등에서 두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당태세는 크게 호흡을 하고는 슬쩍 오른 다리를 앞으로 밀었다.
순간 무릎 아래가 휘청이더니 다시 사내의 몸이 앞으로 풀썩 꺾이며 쓰러졌다. 오른발에 힘을 주는 것은 무리인 듯싶었다.
“엉망이구나.”
쉬어터진 목소리는 마치 노파의 울음소리 같았다. 사내는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헛웃음이 터졌다. 귀신이 낄낄대는 것 같은 소리가 목구멍을 타고 새어나왔다.
무릎을 꿇고 앉아있던 당태세의 눈에 다시 광망이 일었다.
“다시”
당태세는 몸을 일으켰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다시 발을 내디뎠다.
오른발에 실리는 체중을 조금씩 늘려보았다. 오른발 뒤꿈치는 허공에 뜬 채로 땅에 붙지 않았다.
삼분지 일. 삼분지 일의 힘만 받는구나.
사내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내의 두 손이 양 옆구리에 붙더니 다시 앞으로 뻗어 나왔다. 그와 동시에 허공에서 원을 그리며 다시 쌍장을 그리며 전후를 치고 몸을 굽혔다.
휘청하면서 몸이 오른쪽으로 출렁거렸다. 그리고 갑자기 머리가 어질어질하더니 온몸이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사내는 그대로 풀썩 주저앉으며 길게 심호흡을 하였다.
“큰일났구만.”
사내의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비망권(飛蟒拳)의 기수식인 전후열세(前後裂勢)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힘이 다 빠진 것이다.
‘차 한 잔 마시기 전에 오순(五順)을 돌았거늘 일순은커녕 시작도 못해보겠구나!’
설상가상 오른 다리를 쓸 수 없으니 각법은 엄두도 나지 않았다. 이래서는 아룡인지 뭔지 하는 놈이 들어온다 치더라도 순식간에 두들겨 맞고 내쫓길 게 분명했다.
아니, 살아서 내쫓기면 그게 다행이었다. 그 놈은 아예 송장을 만들어 침상에 눕히고도 남을 위인이었다.
그제야 당태세는 자신의 주변을 돌아볼 여유 아닌 여유가 생겼다.
좁은 초가였다.
바닥과 벽의 흠집들로 봤을 때 이곳은 예전에 창고로 사용되던 곳 같았다. 이미 안쪽의 벽은 천천히 허물어지고 있었고 그나마 바람과 비가 들이치지 않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만큼 낡은 집이었다.
작은 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비린내를 품고 있었다. 부두라는 말을 오가는 이들이 하는 걸로 봐서 이 곳은 강가나 바닷가 같았다.
귀린갈 당태세는 자신이 왜 이런 곳에 와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의 고향은 북경이었고, 그가 마지막까지 있던 곳 역시 북경이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지금으로써는 맥락을 확인할 길이 없었다.
“……처음부터.”
한참 동안 주저앉아 있던 당태세는 다시 몸을 일으켰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가야할 길은 가야하는 법이다. 당태세는 다시 자신이 정한 원칙을 상기했다.
몸을 쓰는 법을 다시 배우고, 몸이 움직여지면 거처할 다른 곳을 찾는 일이었다. 하지만 사내는 자신의 몸 상태를 보고 첫 번째 원칙을 정정하기로 하였다.
몸을 꾸준히 사용하여 상태를 회복하되 어지간하면 이 집에 누워있기로 한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하건 아룡은 자신에게 하루에 두 번 음식을 가져다주었다.
누군가 자신을 간병하라 시킨 것일 테니 최소한 자신을 안전하게 돌볼 수는 있는 공간이었다. 당태세의 생각에 자신의 후견인은 아룡이 종종 언급하는 ‘대가’라는 인물 같았다.
조만간 몸이 회복되어 아룡이 불손한 마음을 먹지 못하게 되었을 때, 아룡에게 대가가 누구인지 직접 물어보거나 캐물으면 될 것 같았다.
당태세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슬쩍 자신의 주먹을 꽉 쥐여보았다.
“맨 입으로 안 될 때라는 게 있으니…….”
예전의 귀린갈이었다면 아룡 같은 녀석은 주먹을 섞을 배분도 아니었다. 하지만 만의 하나 무슨 일이 있을지 어찌 안단 말인가. 일단은 몸의 단련이 우선이라고 생각한 당태세였다.
귀린갈 당태세는 다시 몸을 돌려 자신이 누워있던 침상으로 돌아갔다. 침상은 엉덩이와 등이 놓였던 곳이 쑥 패여 있었다.
오랜 세월 누워있던 흔적이었다.
이리 오래 누워있으면서 등창이 생기지 않은 것이 용했다. 누군가가 그를 끝없이 간호하고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아룡이 아니었다.
아룡은 그가 정신을 차린 뒤에 밥 먹이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당태세는 들창으로 들어오는 희미한 빛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알아야 할 것이 산더미로다.”
다음날부터 당태세의 일과는 정해진 대로였다. 아룡은 죽을 먹이면 바로 집을 나섰고, 인기척이 사라지면 바로 당태세는 자리에서 일어나 연공을 시작했다.
자신의 몸을 하루하루 다잡아가는 일이었다.
비망권 한 순(順)을 도는 데 걸린 시간은 나흘이었다. 그나마 한쪽 다리를 못 써 비틀대며 약식으로 각법을 쓰며 돌린 시간이었다.
비망권의 마지막 초식 굉룡제천(宏龍制天)에 이르렀을 때 당태세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서 잠시 혼절하기도 하였다. 그동안 쓰지 않았던 사지에 예전의 감각을 돌리는 것은 새로 태어나는 것보다 어려웠다.
“일순을 돌았으니, 다음은 이순이라.”
당태세는 연공이 끝나면 몸을 겉옷으로 닦고 다시 누워 저녁에 밥을 얻어먹고 아무것도 못 하는 인간처럼 대소변을 옷에 지린 뒤 다시 아침에 밥을 얻어먹고 몸을 닦아주면 일어나 연공을 시작하였다.
비망권을 한번 돌리는데 든 시간은 이제 하루로 줄어들었고, 이후 하루에 두 번을 돌릴 수 있었고, 급기야는 세 순(順)을 돌릴 지경까지 이르렀다.
당태세는 자신의 몸뚱어리가 회복되어가고 있음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깡말랐던 팔뚝과 허벅지에 조금씩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비록 예전만은 못하지만 권을 내지를 때 바람소리가 날 정도는 만들 수 있었다.
이 정도라면 아룡이 덤벼든다 하더라도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아룡의 실력이라면 대충 봐 주면서 싸워도 확실한 우위를 점할 수 있을 듯싶었다.
허나 비망권을 네 순(順) 돌리는 공부를 끝낸 날, 당태세는 자신의 오른발을 보면서 씁쓸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확실한 우위는 아니겠지.”
자신의 비망권은 결코 예전의 비망권이 아니었다.
한 발을 질질 끌면서 젊은 아이와 싸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발차기 한 번이면 아룡의 허리뼈를 단박에 박살냈을 터였다.
그러나 지금은 몸을 움직이는 것도 쉽지 않았다. 게다가 아룡이 칼까지 휘두른다면 권법만으로는 어렵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당태세는 다시 자신의 생각을 수정하기로 하였다.
당분간 이 자리에서 머물면서 몸을 만드는 것은 그대로 하되, 아룡이 잠이 들었거나 예전처럼 술에 취한 다음이라면 일격에 제압한 뒤 그를 후원하는 대가라는 이가 누구인지 물어보기로 한 것이었다.
이대로 계속 여기 있는 것은 이제 끝내야할 때가 온 듯싶었다. 그러기에는 너무나도 시간이 아까웠고 궁금한 것도 너무 많았다.
“좋아, 그럼 오늘 밤에…….”
그때였다. 누군가 급작스레 집 근처로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당태세는 몸을 굴리다시피 하며 자신의 침상에 그대로 누웠다. 늙은 사내가 자리에 눕는 것과 동시에 문이 거칠게 열리며 아룡이 방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정확히 말하면 뒤에 오던 사내들에게 던져졌다고 하는 게 옳을 것이다.
한눈에 봐도 힘 꽤나 쓸 것 같이 생긴 사내놈 셋은 모두 손에 같은 색 같은 모양의 단도를 쥐었는데 하나같이 변발을 하고 검은 조끼를 맨 살에 찬 것이 영락없는 부둣가의 하오문이었다.
개중 한 명이 비틀대는 아룡을 보며 말했다.
“너 맞지? 늙은이 송장하고 같이 산다는 금월방 놈 말이야!”
“뭐…, 뭐요?”
“이놈 맞네. 저기 늙은이 보이잖아? 숨은 쉬나보네? 허! 별 희한한 꼴을 다 본다.”
“대체… 너희들은 누구냐? 누구길래 이 무두리님을…….”
그때 뒤에 서 있던 깡마른 사내가 칼을 손아귀에서 빙그르르 휘둘리며 앞으로 나섰다. 사내의 눈매는 표독하기 그지없었는데 다른 이들과 비교가 안 되는 지독한 살기가 뿜어 나왔다.
“시끄러워. 네 놈 금월방 놈 맞지? 네가 두 달 전쯤에 춘매(春梅) 데리고 이 집에 왔잖아. 그때 우리 상부방 이름 팔았지?”
“아니, 전 그러려고 한 게 아닙니다! 나으리! 제발 살려주십시오! 저는 그냥 술에 취해서…….”
아룡이 순식간에 꼬리를 내리고 고개를 바닥에 처박는데 칼을 돌리던 사내는 그 모습을 보더니 히죽 웃음을 짓고는 칼을 고쳐 잡았다.
“아니, 우리가 필요한 건 네 놈 모가지가 아니야. 머저리 자식아.”
“네?”
“너 장대가 알지? 네가 금월방 장대가의 심복이라며?”
아룡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깡마른 사내의 붉은 혀가 뱀처럼 날름대며 나왔다 들어갔다.
“우리가 필요한 모가지는 그 놈 거야. 상부방이 그 놈을 얼마나 찾는지는 알고 있지?”
“아…… 무, 물론입죠! 대형! 제가 잘 알고 있습죠! 그럼요! 그러믄요!”
아룡의 떨리던 입에 슬쩍 안도의 미소가 어리기 시작했다.
“그 놈이 어디 숨어있는지 잘 압니다! 그 앞까지 모셔다 드릴 수 있습니다요!”
누워있는 당태세의 귓속으로 ‘대가’라는 말 하나가 파고들어왔다.
장대가.
그가 만나고자 하던 바로 그 위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