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금월방(2)
하루의 일과는 사시(巳時:09:~11:00)에 시작되었다.
한참 늘어지게 잠을 잔 아룡이 침상에서 몸을 일으킨 뒤 구석에서 볼 일을 보고 노인의 바지를 벗겨 볼일을 봤는지 확인한 뒤 처리를 해주었다.
그 뒤 조금 있다 쒀 온 죽을 노인의 입에 성의 없이 밀어 넣는 게 일과였다.
죽은 늘 너무 뜨겁거나 너무 식어 있었다. 보통은 미지근한 상태로 노인의 입을 벌리고 들이붓는 단순한 과정이었다. 밥은 사시에 한 번, 유시에 한 번. 두 번이 전부였다.
“다녀 올 테니 집 잘 지키고 있어라. 늙은이.”
아룡은 아륙이 죽은 뒤 외출이 잦아졌다. 아륙의 시체를 혼자서 들어낸 뒤 대충 방을 치운 뒤에 혼자 집을 차지하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한 번 나간 아룡은 비가 오지 않는 한 금세 들어오지 않았다.
유시가 다 되어서 노인의 밥을 줄 때가 되어서야 어기적대며 들어왔고, 밥을 먹인 뒤에는 다시 나가는 것이 일상이었다. 유시에 밥을 먹일 때 노인은 아룡의 입에서 풍기는 술 냄새를 확인할 수 있었다.
노인, 귀린갈 당태세는 아룡이 나가고 난 뒤부터 자신의 일과를 시작하였다.
사내가 하는 일은 천천히 힘을 모아 사지의 말단에 신호를 보내는 일이었다. 일단 눈에 사물이 들어오고 귀가 열리고 코가 뚫린 이상 이대로 누워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었다.
당태세가 맨 처음 한 일은 입과 혀를 움직이는 일이었다. 생각보다 쉽게 두 가지 일은 성공할 수 있었다. 매일 죽을 얻어먹고 있었으니 어쩌면 입과 혀는 예전부터 쓸 수 있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아직 말을 하지는 않았다. 입을 벌리면 목소리가 나올 것 같기도 하였다. 하지만 사내는 일단 지금은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하였다.
첫 번째는 지금 누워있는 이곳이 어디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누군가의 은혜로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지만 다 허물어져가는 초옥의 천장과 벽을 보았을 때, 자신이 여기 있는 것을 아는 이는 별로 없는 듯싶어서였다. 그리고 두 번째는 자신을 돌봐주고 있는 아룡이라는 인간 때문이었다.
당태세는 비록 눈이 트이기 전이라 하더라도 웅웅대는 소리 사이로 아룡과 아륙이라 서로 부르던 아이들의 아비규환을 똑똑하게 들을 수 있었다.
아륙이 어떤 식으로 죽었는지는 몰라도 마지막 단말마를 지르며 발밑에서 죽어갔다는 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눈이 뜨이고 오감이 돌아온 뒤 집안의 정경을 봐도 그건 확실했다.
어느 방파의 싸움인지 하오문의 싸움인지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 당태세가 알 수 있는 건 있었다.
아룡, 이 인간은 절대 믿어서는 안 될 놈이었다.
행여 자신이 눈이 돌아오고 귀가 트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아륙이 죽었다는 것을 자신이 안다는 것을 알아챈다면 분명 자신을 백 번 천 번 죽이고도 남을 놈이었다.
아룡이 옆에서 코를 골며 자는 동안 천장을 바라보면서 곰곰이 당태세가 생각한 방법은 하나였다.
아룡이 알 수 있기 전에 온몸의 기력을 다시 회복하고 아룡이 눈치채지 못할 때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도록 힘을 기르는 것이었다.
일단 아룡의 앞에서는 호흡을 갈무리하고 오관의 기를 죽여 예전과 같은 상태를 최대한 유지하되, 아룡이 밖으로 나가게 되면 온몸을 쓰는 법을 익혀서 하루 빨리 이곳에서 나가 다른 거처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그 시일이 얼마나 걸릴 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이 어떤 시절인지 알 도리도 없었다. 귀린갈 당태세는 마음을 다잡았다.
얼마나 걸릴 지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분명 길이 보일 것이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였다.
일단 사지를 마음대로 놀릴 수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다.
당태세는 조금씩 온몸의 신경을 발끝과 손끝에 집중하였다.
조금씩 자신의 손과 발이 움직이는 것을 머릿속에 생각하며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손과 발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내의 손과 발은 머릿속의 생각과는 달리 미동도 하지 않았다.
몸을 움직이겠다고 마음먹은 지 사흘, 나흘이 지나고 급기야는 칠주야가 지나도록 사내의 몸뚱어리는 감각이 없었다. 당태세는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이대로 나는 온몸이 굳은 채 여생을 마무리해야 하는가.
아니면 지금 내 사지가 붙어있기는 한 것인가. 이도저도 아니면 저 아룡이라는 못 믿을 놈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할 것인가. 그 자가 내 이야기를 이해할 것인가. 내가 누군지는 알고 있는 것인가.
귀린갈 당태세는 시간이 갈수록 답답해지고 절박해졌다.
손발을 내려다 볼 수도 없었다. 마치 목 아래로 뭔가 턱하니 막혀 내려가지 않는 듯한 기분이었다.
당태세가 이렇게 홀로 분투하는 사이에 이미 깨어난 지 열흘이라는 시간이 흘러간 뒤였다.
노인은 하루 일과를 해가 뜨고 지는 것으로 하나하나 계산을 해 두고 있었다. 자신이 일어난 지 얼마나 되는 것인지를 기억해두고 싶었다.
얼마나 깊은 시간을 잠들어 있었는지, 혹은 깨어있었는지 알 수 없는 당태세에게는 찰나의 변화 하나하나가 중요한 사안이었다.
예전 순천문주로 천하를 주유할 때에도 결코 주변의 상황을 간과하지 않았던 그였다.
그 주도면밀함이 그를 문주로 올리고 그의 무명을 세상에 떨치게 한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도 슬슬 자신감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었다.
“여기가 공자의 집이에요?”
그때였다.
늦은 저녁, 밥을 거르고 한참동안 들어오지 않던 아룡의 기척이 나자 당태세는 다시 오관의 기를 절제하고 입을 벌린 채 기색을 감추었다.
삐그덕거리며 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아닌 두 사람의 기척이 방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방의 퀴퀴한 공기 사이로 향긋하고 독한 지분냄새가 풍겨 들어왔다. 여인의 냄새였다.
오랜만에 맡아보는 지분의 향기는 너무나도 강렬하여 당태세의 머리에 두통을 안겨줄 정도였다. 하지만 여인을 데려온 아룡의 술 냄새는 여인의 지분 냄새보다 더 독했다.
이미 혀가 꼬일 대로 꼬인 아룡이 히죽대며 여인에게 수작을 거는 중이었다.
“그렇지. 이 몸이…이 무두리께서! 잠시 몸을 낮춰서…그래, 숨어 지내는 자리니라. 이곳에서 우리 한번…그러니까…그…진하게 회포를 한 번… 하핫! 풀어보는 거야!”
“공자. 공자가 진짜 상부방의 유격총두가 맞아요? 상부방이라면 우리 부두 다 관리하는 그 사람 맞죠?”
“상부방이라고 했나…그래! 아, 그렇지! 내가 상부방이야! 금월방의 장대가 그 놈하곤 다르지. 우리 상부방은 말이야!”
“알았어요. 그런데 그렇게 대취하셔서 여자 옷고름이나 잡으실 수 있을까?”
“네 이년…우핫핫핫! 나를 뭐로 보고. 내가 바로, 이 협객 무두리님이 네게 잊지 못할 밤을 선물해주겠다 이거야!”
순간 꺅하는 여인의 비명과 간드러지는 웃음이 들려오고 옆의 침소에 우당탕하며 울리는 소리가 동시에 울렸다. 사내의 헛웃음 소리와 옷들이 붙어 부석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당태세는 말없이 허공을 보며 어두운 방 안이 조용해지기만을 기다렸다.
그 순간, 덥썩하니 짙은 향이 풍기는 가느다란 손바닥이 당태세의 얼굴 위를 뒤덮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여인의 찢어지는 비명이 울려 퍼졌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저기! 저기 구석! 뭐가 있어요! 뭐야? 저거?”
“쥐 아니야? 쥐겠지.”
“아니야! 사람이었어! 사람…시체…송장 아니에요?”
여인의 다급한 외침에 혀 꼬부라지는 소리로 느긋하게 대답하는 아룡의 목소리가 뒤따랐다.
“아니라고 안 죽었어…그냥……몸 안 좋은 할아버지라고.”
“할아버지? 뭐요? 지금 여기 우리 둘만 있는 거 아니었어?”
아룡이 비틀대며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괜찮다니까 그래! 그냥 숨만 붙어있는 노인네야! 나도 장대가한테 부탁받아 두는 거야! 아무것도 못 보고 듣지도 못한다니까!”
“장대가? 금월방 장대가?”
“어엉?”
순간, 짝하는 소리와 함께 어정쩡한 침묵이 이어졌다. 침묵을 깬 것은 여인의 새된 목소리였다.
“이 거북이랑 붙어먹을 새끼! 내 이럴 줄 알았어! 상부방? 어디서 거짓말을 해? 어쩐지 처음부터 수작질하는 게 수상하다 했더니만 금월방 졸자였어?”
“어? 아니…아니…난…뭐? 아니야! 난 상부방이라고!”
다급하게 혀를 놀리는 아룡의 대답을 여인의 목소리가 매몰차게 끊었다.
“시끄러! 날 무슨 여염집 규수로 보는 거야? 한 번만 이런 개수작 보이면 상부방에 그대로 갖다 찌를 줄 알어! 선금을 줬으니까 지금 당장 가서 이르지는 않을 테니까 여기서 그냥 나자빠져 있어!”
“뭐…뭐가…어째…….”
“그리고 무두리? 야, 아무리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 팔기가 세상을 잡았다고 해도 어떻게 제 이름을 팔아먹고 싸돌아다니는 놈이 있니? 그러면서 밥이 넘어가니? 이 견자놈아!”
“겨…견자가 어째? 이 계집이….”
순간 짝하는 소리와 우당탕하는 소리가 동시에 울리고 여인의 발소리가 울리더니만 방문이 열리고 세차게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바닥에서 아룡의 신음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아룡은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중얼거리며 여자에게 욕을 하는 것 같더니만 이내 바닥에 쓰러져서 코를 골기 시작했다. 술 냄새가 좁은 방 안에 그득하게 차올랐다.
하지만 지금 귀린갈 당태세의 눈은 커다랗게 열려 있었다.
만약 방 안에 불을 켜 놓고 아룡이 술에 취해 잠들지 않았다면 사발처럼 커다랗게 뜬 눈으로 천장을 뚫어지라 노려보는 당태세를 바라볼 수 있었을 것이다.
당태세의 머릿속에는 조금 전 여인이 남긴 말이 계속해서 메아리치고 있었다.
명나라가 망하고.
명나라가 망하고,
팔기가 세상을 잡았다고?
순간, 사내의 오른쪽 엄지와 새끼손가락이 불에 덴 듯 화끈한 느낌이 드는 것과 동시에 저릿저릿한 감각이 손등과 팔목을 찌나 어깨를 통해 사내에게 올라왔다.
그와 동시에 왼쪽의 손가락들도 불에 타는 고통과 저린 감각이 같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왼쪽 허벅지에도 찌릿거리는 감각이 들어오는 중이었다.
목 아래로 한 줄기 선이 이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니 그 느낌은 조금씩 두꺼운 실처럼 변해갔고 이윽고 허리를 지나 엉덩이뼈를 건드릴 때에는 굵은 동아줄 같은 것이 다시 몸을 잇고 당기는 듯한 감각이 생겨났다.
허벅지 아래 무릎이 사내에게 느껴졌고 무릎 아래 종아리의 감각이 들어왔고, 결국에는 발바닥과 다섯 발가락이 고통스럽게 저리기 시작했다. 사내의 온몸이 조금씩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하지만 사내는 자신의 신체가 변화하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지 않았다.
여전히 사내의 눈은 크게 열린 채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내의 머릿속은 지금 거대한 범종이 울리며 육신과 혼을 분리하는 것만 같았다. 그 범종의 소리는 여인의 목소리였다. 여인은 계속해서 당태세에게 외치고 있었다.
당신이 지키고자 했던 나라가 망하고 세상이 바뀌었다고.
늙은 사내의 눈에 눈물이 가득히 고여 옆으로 흘러내렸다.